변호사 사무실이라면 대개는 정돈된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갓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이미연 변호사는 ‘법률 서비스는 돈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다’라는 인식을 바꾸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둥지를 꾸렸다. 경기도 의정부의 제일시장 초입에 있는 ‘동네변호사카페’는 2층에서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3층에서는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카페서 법률 상담 받으세요! 이미연 변호사의 문턱 없는 사무실
의정부 제일시장 초입에 있다는 변호사카페를 찾아 근처를 몇 바퀴 돌았다. 간판이 보이는 순간 반가움과 함께 이런 상가 건물에 자리해도 사람들이 찾아올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재래시장과 시내가 인접하긴 해도 제법 한적한 골목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와의 교감,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 지원이라는 당찬 꿈을 겁 없이 실현시킨 이미연 변호사(31).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크고 화려한 건물에서 일하는 삶을 꿈꾸는 게 당연할 텐데 정작 사무실을 차린 곳은 자신이 나고 자란 의정부였다.
“의정부에서 쭉 살다가 서울로 대학 진학을 했어요. 커피를 좋아해서 홍대나 삼청동 카페에 자주 갔는데 프랜차이즈점보다는 작은 카페가 더 맛있더라고요. 어릴 때만 해도 당연히 서울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돼버렸어요. 경희대학교 재학 중일 때 여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고 그래서 사법시험을 봐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사법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면 남들은 ‘천재’ 아니면 ‘엄친딸’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는 사법시험 준비 중 1년 정도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여행도 다니면서 견문을 넓혔다. 법도 사람의 실생활과 연관되는 학문이기에 공부 외에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법조인으로서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지만 법조인의 길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생활 2년 동안 그동안 꿈꿔왔던 변호사의 길은 그저 이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딱딱한 조직문화 앞에서 좌절감도 느꼈다.
“꿈을 갖고 사법연수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생각과는 달랐던 거죠. 어떤 일이든지 본질은 실무를 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잖아요. 어려운 시험을 모두 통과하고 막상 실무를 접하니까 ‘내가 이 일을 하려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한 걸까’ 하는 회의도 들었어요. 제 성격이 딱히 모난 건 아닌데(웃음), 법원도 맞지 않고 검찰도 맞지 않고 큰 법률사무소도 못 다니겠더라고요. 어차피 평생 일할 거니까 잘할 수 있는 공간에서 의뢰인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카페 같은 사무실을 만들고 싶었어요.”
동네 사랑방으로 자리하고 싶은 꿈

카페서 법률 상담 받으세요! 이미연 변호사의 문턱 없는 사무실
“변호사 사무실은 보통 법원 앞에 있는데 크고 위압적인 간판이 좋게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힘든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편하게 하소연하러 갈 수 있는 공간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법원 앞에는 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시장 근처를 돌아다니다 1년 정도 비어 있던 공간을 리모델링했어요. 사무실의 취지를 말씀드리니 임차료도 깎아주시고 아는 분을 통해서 인테리어도 저렴하게 했어요. 인쇄물 디자인은 동생이 했고요.”
2층 카페는 동생 이세나씨가 맡고, 3층 법률사무소는 이 변호사가 각각 운영한다. 지난해 6월에 사법연수원에서 실무 수습이 끝날 무렵부터 준비해서 공사부터 실제 창업까지 석 달 정도 걸렸다. 손재주가 좋은 세나씨가 이것저것 뚝딱뚝딱 만들었기 때문에 제법 아늑한 공간과 소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커피를 좋아하고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기 원하는 자매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이 변호사는 지난 3월부터 장애인과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하기 위해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까지 받고 있다. 때마침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법률 조력인 제도’가 생기는 등의 움직임이 있어 한창 고무되고 있다.
“성범죄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는 성범죄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피해 아이의 경우 법원에서 진술할 때 돕는 전담 인력이 있는데, 성인이나 장애인은 그런 게 없어요. 재판부가 성폭력이라는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질문을 하니까 피해자는 취조당하는 것처럼 얼어서 아무 얘기도 못할 때가 많아요. 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있는 판사나 변호사는 극히 일부거든요.”
마이너스 통장으로 시작해 아직 ‘돈 되는’ 의뢰인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동네에 자리 잡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정식으로 사건을 수임하기 전에 필요한 법률 상담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소액의 비용을 받고, 수임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했다. 적어도 상담은 누구나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카페서 법률 상담 받으세요! 이미연 변호사의 문턱 없는 사무실
이 변호사는 할머니로 꼭 쥐어준 상담료 몇 만원과 화장품 선물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며 환하게 웃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도 오랫동안 서민을 위한 지역 법률사무소를 꿈꿨다고 하는데, 정작 먼저 실천한 것은 멋모르는 신참 변호사였던 셈이다. 함께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한 41기 동기들도 일을 냈다. 공익 법인인 ‘희망을반드는법’을 창립해 후원과 기금으로 법률 지원이 필요한 공익 사건을 지원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은 편한 길을 선택한 거라며 겸손한 미소를 짓는다.
“동기들도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돈 벌고 나서 하려면 평생 못할 거라고 말해줬어요.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전문성을 쌓다 보면 자연히 수익도 따라오지 않을까요. 저는 인근에서 출퇴근하고 생활비도 거의 안 드니까 급하게 마음먹지 않으려고요. 서울이라면 이만 한 돈으로 시작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올해부터 법률대학원 출신의 변호사들이 등장하고 예전처럼 오랜 기간 사법고시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나날이 줄고 있다. 더 이상은 기득권이 아니라는 현실 앞에서 젊은 변호사들은 자신의 신념을 펼칠 수 있는 활동으로 돌파구를 찾는 셈이다. 동기들 중에는 맞선을 보거나 사법연수원에서 인연을 만나 결혼하는 사람들도 속속 나오고 있는데, 이 변호사는 아직 미혼이다. 독립하기 전까지 당분간은 살림 걱정 없이 자신이 꿈꾸는 일을 맘껏 하고 싶다고 한다.
“부모님이요? 딸을 보아하니 남들처럼 살긴 틀렸다 싶으셨나 봐요. 제가 사무실을 낸다고 하니까 흔쾌히 받아주셔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사람들이 젊은 여자 변호사는 우습게 보는데다 남편도 없고 경험도 적으니까 무시당하기도 쉽죠. 사건 기록 찾으러 법원에 가도 다들 법률사무실 직원인 줄 알아요(웃음).”
그러고 보니 신선한 커피와 직접 구워 내놓은 브라우니가 참 맛있다. 좋은 마음으로 꾸리는 곳이어서 그런지 커피 맛도 브라우니 맛도 모두 특별하게 느껴진다.

카페서 법률 상담 받으세요! 이미연 변호사의 문턱 없는 사무실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 hopeandlaw.org, 02-364-1210 공익변호사모임 공감 www.kpil.org, 02-3675-7740 서울 여성학교폭력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 smonestop.or.kr, 02-3400-1700 |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박동민 ■장소 협찬 / 동네변호사카페(031-821-5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