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뒷간 짓기

행복한 귀농 일기

생태뒷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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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심은 씨감자에서 잎과 줄기가 많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반갑다. 오원근 변호사의 밭에 이달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생태뒷간을 짓는다는 것, 어렵지만 그만큼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일 게다. (편집자 주)

난 오래전부터 인분을 퇴비화하는 데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언젠가 꼭 농사를 지으리라 마음먹었던 차에 검사 시절인 2005년 8월 전북 부안에 있는 변산공동체학교에 3박 4일간 머물면서 농사일을 했다. 그때 인분을 퇴비로 만들어 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행복한 귀농 일기]생태뒷간 짓기

[행복한 귀농 일기]생태뒷간 짓기

인분을 퇴비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똥과 오줌을 분리하는 것이다. 이 둘이 섞이면 냄새가 많이 나고 구더기가 생긴다. 이렇게 분리한 뒤 대변에 톱밥이나 왕겨 같은 것으로 덮어주면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효된다. 그렇게 1, 2년 정도 묵히면 퇴비로 쓸 수 있다. 변산공동체학교의 퇴비장에 쌓인 인분 퇴비를 하루 종일 뒤집어주는 일을 했는데 약간 시큼한 냄새만 날 뿐이었다. 난 그때 인분을 퇴비로 만드는 것이 생태농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화장실
밭에서 난 것을 먹고 배설한 인분을 다시 밭에 돌려준다. 아주 자연스러운 생태 순환이다. 지금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은 위와 같은 순환과는 거리가 멀다. 우린 우리의 똥오줌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난 두 차례 생태뒷간을 경험한 뒤 내 손으로 직접 뒷간을 지으리라는 꿈을 꾸어왔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을 헛되게 버리지 않고 다시 퇴비로 재활용하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사실 옛날에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 설거지를 하고 남은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퇴비장에 부었다. 나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최근 생태뒷간에 대한 꿈을 일부 이루었다. 밭에 생태뒷간을 만든 것이다.

작업은 지난 4월 초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나무는 바로 옆 산에서 벌채해놓은 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도리(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는 나무), 들보, 서까래를 얹었다. 아주 작은 건물이지만 기본적인 것은 다 갖추어야 한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장인어른께서 기둥의 수평 잡는 일을 도와주셨다.

지붕은 솔가지를 썼다. 일단 솔가지로 지붕을 덮었다가 가을에 이엉으로 다시 덮을 생각이다. 밭 주변에서 억새를 베어 지붕 위로 올려 편평하게 깐 다음, 벌채된 소나무에서 꺾어 온 솔가지를 아랫부분부터 차례로 꽂아 올라갔다. 생각보다 들어가는 양이 많아 솔가지를 구하러 여러 번 산에 다녀와야 했다. 혼자서 하는 것이라 일이 더디고 힘들었다. 어느 일요일엔 비를 쫄딱 맞으면서 작업했다.

벽은 높이의 1/3 아래는 돌로 쌓고, 그 위로는 나무를 가로 대고 못으로 박는 방식으로 했다. 전면 벽은 비닐하우스 지을 때 사용하고 남은 대나무를 쓰고 나머지 벽은 벌채된 나무를 가져다 썼다. 주말을 이용해 3주 정도 걸려 뒷간이 완성됐다.

뒷간 안에서 사용할 똥통과 오줌통은 아내의 제안으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구했다. 이번에 생태뒷간을 만들면서 못과 왕겨통, 오줌 받는 바가지만 돈을 주고 샀는데, 만 원 정도 들어갔다. 발판(부돌)은 한쪽 면이 평평한 돌을 흙을 파고 심어 높이를 맞추었다. 모양이 기대 이상으로 예쁘게 나왔다. 쭈그리고 앉아 변을 보면서 밖을 볼 수 있도록 눈앞에 창문도 냈다. 은은한 송진 냄새를 맡고, 밖의 자연 풍경까지 바라보며 볼일을 보는 것은 도시인들은 쉽게 맛볼 수 없는 호사(豪奢)다. 난 아내에게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화장실이라고 으스댔다.

생태뒷간의 사용 방법은 이렇다. 먼저 쓰레받기에 왕겨를 깔고 그 위에다 대변을 받는다. 소변은 앞쪽에서 따로 바가지로 받는다. 용변을 다 본 뒤 쓰레받기 위의 대변은 왕겨로 똥통에 붓고 그 위에 다시 왕겨를 뿌려준다. 이렇게 처리하면 인분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오줌은 2주 정도 오줌통에서 발효시키면 바로 웃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내나 아들 선재는 아직 생태뒷간 사용하는 것을 어색해하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버리지 않고 재활용할 때의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서서히 농부 가족이 되어가다
요즘 우리 밭에는 마늘, 감자가 쑥쑥 자라고 있다. 감자는 한 달 만에 줄기와 잎이 많이 올라왔다. 농작물이 한창인 만큼 풀들도 앞다투어 자란다. 비닐을 쓰지 않았기에 일일이 손으로 뽑아주어야 한다. 아내는 자칭 김매기의 달인이 됐다. 햇볕이 아무리 강해도 밀짚모자와 수건을 뒤집어쓰고 끈기 있게 앉아 풀을 뽑는다. 아내는 마늘밭, 감자밭을 매고도 아직 그 여운을 이어가고 싶었는지, 이번에는 장인어른이 심어놓은 더덕과 도라지밭에도 손을 댔다. 아내가 뽑은 풀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말려놓고 있다. 나중에 인분을 퇴비화할 때 사용할 생각이다.

아내는 시골서 자라지 않았어도 이미 훌륭한 농부의 자질을 갖추었다. 생태적인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한 가치를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설거지를 할 때 나오는 맑은 물은 따로 모아 변기 물 내릴 때 사용한다. 천으로 된 생리대를 쓰고, 개인 컵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한다.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아내와 함께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면 많이 놀란다. 농사에 뜻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는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소비 지상주의인 현대인의 도시적 삶의 허무함을 간파한다면 생태적 삶에 대한 이해와 실천은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내가 2주 전에 풀을 뽑아준 감자밭엔 어느새 쇠비름 같은 풀들이 막 솟아나고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노라면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앞으로 내가 저 풀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비닐 멀칭을 하지 않은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올해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파쟁기가 풀을 제거하는 데 무척이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밭고랑을 따라 쟁기질을 하면서 흙을 파 뒤집어주면 제초 효과뿐만 아니라 이랑 위에 있는 작물에 북까지 주는 효과(식물 주변에 있는 흙을 긁어모아 뿌리 부분을 덮어주는 것을 ‘북준다’라고 한다)가 있다. 오늘 감자밭의 김매기는 이 방법으로 했다. 이를 본 장인어른이 파쟁기의 뛰어난 효과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장인, 장모님은 주말마다 우리와 함께 밭에 나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밥도 밭에서 같이 해 먹을 때가 많다. 나무로 불을 때서 만든데다가 자연 속에서 먹는 것이라 맛이 그만이다.

언젠가 비가 오는 날 비닐하우스 안에서 장인어른과 단둘이 막걸리를 마시게 됐다. 그 자리에서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큰아들도 사위처럼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밭에 왔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자연 속에서 바람을 쐬는 것이 아이들 정서에 얼마나 좋겠냐고.

사실 자연 속에 있으면 아이들 놀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선재는 아내와 내가 농사일을 하는 사이 혼자서 흙장난이나 불장난을 하고, 그것도 이내 싫증이 나면 방 안에 들어가 자기도 한다. 요새는 컵라면 끓이는 법을 배웠는데, 출출할 때 녀석을 시켜 라면을 끓여 오도록 한다. 고사리손으로 끓인 라면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녀석도 아빠를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눈치다. 자연 속에서 흙과 함께 있으면 아이들은 작물처럼 스스로 자란다. 자연보다 더 나은 공부거리는 없다. 우린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려고 노력해왔다.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다.

필자 오원근은…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0년간 검찰 조직에 몸담았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뒤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조직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변호사 겸 농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며 자연 속에서 느꼈던 행복을 되찾은 그는 지금도 농사 공부를 하며 마음 수련에 한창이다.

■글&사진 / 오원근(변호사·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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