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도 모르던 유도선수, 시의 세계에 빠지다

시의 짜릿한 매력! 유도선수 출신 청년시인 김해준
특히 유도선수 출신의 시 부문 당선자 김해준씨는 대다수 작가 지망생과는 다소 차별화된 독특한 이력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는 진득하게 책 한 권 읽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문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는 그는 학창 시절 자신이 시를 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적도, 시를 접해본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기초적인 맞춤법조차 잘 모르는 학생이었다. 친구에게 써서 보낸 카드 속 ‘생일 축화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열일곱 살에 처음 깨달았다던 그는 이제 운명처럼 이끌려 들어선 시의 세계에 무섭도록 흠뻑 빠져들고 있다.
“문학은커녕 원래부터 공부나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위인전이나 명작동화처럼 또래 아이들이 누구나 한 번쯤 볼 만한 책도 읽어본 적이 없거든요. 딱히 읽으라고 권유하거나 시키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책과는 아예 멀어져버렸죠.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지금이랑 비슷했을 정도로 체격도 크고 몸집도 좋았어요. 그러다보니 학교 유도부 선생님 눈에 띄어 유도를 시작하게 됐죠.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엄청난 두각을 나타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국대회에 출전할 만큼 성적도 꽤 나왔고 스스로도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어요. 운동부니까 오전 내내 연습하고 점심 먹고 겨우 학교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그마저도 피곤해서 잠만 자다 나오는 거죠.”
우직한 근성과 반복된 노력으로 벼려낸 이야기
그렇게 계속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갈 거라 생각했던 그의 인생에 의도치 않던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졌다. 몸이 좋지 않아 당분간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마침 고등학교 진학과 맞물리는 바람에 고민 끝에 체육 특기생이 아닌 문예창작과 학생으로 안양예고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느닷없는 우회였지만 당시로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깨가 아파서 일단 운동을 쉬게 되면서 나중에 체육고등학교 같은 곳으로 전학 가는 걸 염두에 두고 특목고 진학을 결정했어요. 선생님께서 어차피 성적도 좋지 않으니까 일반계 공부는 힘들 거고 특목고에서 특목고로 전학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울 거라고 조언하셨거든요. 학교 소개 팸플릿을 보니까 도저히 연극영화과, 미술과, 무용과는 무리인 것 같고 그나마 문예창작과가 무난할 거란 생각에 지원한 거였어요. 다행히 입학은 했는데 문제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거예요. 수업 시간에 앉아 있는 것부터 낯설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가 집에 오곤 했어요. 얼른 전학을 가거나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
어색함을 견디다 못해 ‘그럼 어디 한번 정식으로 공부를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고 처음으로 학교 공부를 시작했다. 문예창작과라는 소속에 걸맞게 글도 써보고 다른 친구들처럼 백일장 같은 글짓기 대회에 참여해보기도 했다. 물론 실력은 스스로 돌이켜봐도 형편없었다. 그러다 난생처음 자신이 쓴 시를 ‘읽어준’ 선생님을 만났다. 특강을 담당했던 김민정 시인이었다. 선생님은 시의 마지막 행에서 눈을 떼며 그에게 딱 한마디를 건넸다. “이렇게 못 쓴 시는 처음 봤다”라고.
“저는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고 스스로 의욕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제게 이런저런 평가를 해준 선생님이 아예 없었어요. 비록 좋은 평가는 아니었지만 김민정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주신 거였어요. 그리고 덧붙이시더라고요. 먼저 책부터 좀 읽으라고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뭔가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직접 쓴 글로 관심을 받아본 게 처음이었거든요.”

시의 짜릿한 매력! 유도선수 출신 청년시인 김해준
“저는 머리가 좋고 재능이 특출 난 사람이 아니라서 남들보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규원 선생님의 「현대시작법」이나 권혁웅 선생님의 「시론」 같은 책이 큰 도움이 됐죠.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컸지만 일상 속에서 시를 끄집어내는 일이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사람마다 체질에 맞는 글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시가 가장 편하고 잘 맞았어요. 물론 쓰는 과정은 어렵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재미도 있고 힘들다는 마음은 안 들거든요.”
학교에서 소설이나 비평 같은 다른 장르도 배웠으나 그와 가장 잘 맞는 쪽은 역시 시였다. 감각을 훈련하고 갈고닦아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또한 시집은 굳이 1페이지부터 정독하지 않고 어떻게 읽어도 의미를 찾을 수 있어 좋았다. 시 한 편으로 몇 시간을 보낸 적도 많다. 여러 번 읽어도 그때그때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시를 쓰는 데도 크게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장르는 도저히 손을 못 대겠더라고요. 특히 치밀하게 앞뒤를 구성해야 하는 소설은 정말…. 보통 소설은 종이에 육신을 밀어 넣어 쓴다고 하고, 시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당겨 쓴다고 하잖아요. 저는 백지에서 기미를 잡아채는 쪽이 맞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정말 투박하게 써요. 평소에는 4절지 연습장에 낙서하듯이 쓰다가 이걸 설계도처럼 짜서 맞춰요. 한 번 앉으면 진득하게 쓰는 편이라 보통 일고여덟 시간씩 끄적거리고 있어요. 중간에 끊어지면 영 다시 시작하기가 힘들어서 늘 그렇게 한 번에 다 써요. 어떤 때는 스무 시간씩 하고 있어요. 머리나 감각은 별론데 체력이 워낙 좋아서 충분히 가능해요(웃음).”
온몸 구석구석 ‘시’라는 굳은살이 새겨질 때까지
오늘날 ‘시인 김해준’이란 이름을 얻기까지 그에게 숱한 좌절과 실망의 나날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과연 제대로 잘 가고 있는 것인지 불안하고, 불투명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었던 기억들도 생생하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께 제대로 칭찬받아본 적이 없어요.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을 보면 저처럼 죽어라 매달리지 않아도 정말 잘 쓰고 실제로 상도 많이 받고 하더라고요. 전 백일장 같은 데 나가서 한 번도 1등을 못해봤어요. 열 개가 넘는 3등 표창장만 갖고 있어요(웃음). 대학도 다른 덴 다 떨어지고 딱 한 군데 붙어서 입학했고, 지금껏 신인문학상 등에 도전한 횟수만 해도 200번이 넘을거예요. 능력 있는 친구들은 목표를 정해서 딱 하나만 보고 도전하기도 하던데, 저는 잡지사나 신춘문예엔 전부 작품을 냈었어요. 그렇게 해도 한 번도 당선이 안 되니까 스스로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는 거죠.”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시를 계속 파고들고 싶었지만 여러 현실적 문제로 인해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쓰고 싶은데 직장일로 도통 시를 들여다볼 시간이 나지 않는 것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원래는 친구도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즐기는 성격이었지만 2년여 전부터는 혼자만의 웅덩이를 파게 됐다.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시간이 나면 방 안에 틀어박혀 시를 쓰기 위한 생각에 골몰했다.

시의 짜릿한 매력! 유도선수 출신 청년시인 김해준
정식으로 ‘시인’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영 믿기지 않는다는 그는 앞으로 오래오래 시를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유도를 그만둔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어도 아직 몸에 남아 없어지지 않은 굳은살처럼 몸 구석구석 ‘시’라는 굳은살을 새겨 넣을 생각이다. 그렇게 온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고픈 것이다.
“시 말고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늦게 문학을 접했지만 시를 쓰는 일도 운동과 비슷한 것 같아요. 훈련하듯이 언어를 연마하고, 본능적으로 경기를 이끌어가듯이 몸을 시에 맞춰가야 하니까요.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몸에 배도록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죠.”
시인으로서 이제야 겨우 관문을 한 단계 통과한 거라 생각한다는 그는 지금부터가 더욱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대회’인 셈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읽어준 이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아니 스스로에게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씩이나마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단 한 명이라도 시를 가까이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시는 인간의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전직 유도선수 시인의 뚝심 있는 ‘한 판’이 기대된다.
김해준 시인의 등단작 한 뼘의 해안선 마른 국화를 태워 연기를 풀어놓는다. 꽃잎이 불씨를 타고 오그라든다. 별들로 판서된 역사가 쇠락한 하늘 아래, 야경꾼의 홍채에선 달이 곪아간다. 통금의 한계에 닿아 부서지는 경탁 소리가 시리다. 첫 기제의 밤이 젖어간다. 된서리 맞고 실밥 모양으로 주춤주춤 경계를 얼려가던 복부에서 비린내가 터져 나온다. 절개했던 자리가 하얗게 번뜩인다. 새어머니는 훗배앓이 중이다. 뻘에서 태어난 입술에서 고동 소리가 샌다. 물려받은 반지의 녹이 지난 맹세로 생식한다. 태어난 해안에서 침몰해가는 유년. 바리캉으로 밀어낸 태모가 이방에 닿아 바람으로 분다. 가마의 계절풍은 성장을 멈추고, 내가 가졌던 땅을 만조로 삼키는 병풍이 펼쳐진다. 유폐했던 이름이 글썽이며 타들어간다. 문간에서 날린 살비듬이 어떤 풍향을 탔는지 나는 모른다. 술잔에 내린 테를 삼켜 캄캄한 바다. 두 명의 어머니가 같은 연안에 이불을 깐다. 해진 안감에 귀를 묻고 손금이 크는 소리를 듣는다. 빛과 어둠이 범벅된 하늘이 몸 안으로 새어든다. |
김해준 시인 추천 처음 시를 접하고자 하는 당신을 위한 시집 3 장석남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장석남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절제된 언어로 자연과 주변을 관조하며 깊은 서정의 세계를 선보인다. 김해준 시인이 ‘진짜 시인의 모습을 가진 시인’이라 생각한다는 장석남 시인은 이 시집에서 느림과 비움, 그리고 ‘호젓함’을 이야기한다. 차분하게 벼려진 단어 하나하나에 마음이 깃들어 있어 가만히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시들이 가득하다. 김기택 「사무원」 익숙한 일상 속 정서를 꿰뚫는 김기택 시인의 「사무원」은 시를 제대로 접하게 된 이후 김해준 시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본 시집이라고 한다. 곳곳에 배어 있는 좋은 이미지들과 사유 덕분에 시 한 편 한 편이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다. 현대인의 고단한 일상을 그린 50여 편의 시는 감정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생활 속 가까이에서 시를 읽고 느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박형준 「춤」 전통적인 시의 서정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박형준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감각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마음을 울리는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비교적 술술 읽힐뿐더러 단단하게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들로 인해 쉽게 시에 젖어들게 된다. 평소 시를 자주 접하지 않았던 이들도 부드럽고 단아한 시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시집이다. |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