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뒷모습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한지수의 기능사

주부, 다시 시작하다

인생의 마지막 뒷모습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한지수의 기능사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주부’를 입력해보면 주부 자격증, 주부 부업, 주부 알바, 주부 창업, 주부 취업, 주부 직업, 주부 재취업이 추천 검색어로 함께 뜬다. 이처럼 자신만의 일을 갖고자 하는 여성은 많지만 사실 기회는 흔치 않다. 특히 가정일에 전념하던 주부가 다시 사회로 나서기 위해서는 바늘구멍처럼 험난한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만의 특기나 관심사를 살려 새롭게 또 다른인생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레이디경향」은 2012년, 이러한 주부들을 찾아 만나 그 경험과 노하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달에는 친환경 한지수의를 제작하고 있는 한지수의기능사를 만나봤다.

<B>이의녕(57)</B> (주)갖춤수의 연실대표

이의녕(57) (주)갖춤수의 연실대표


한 사람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 정성을 더한 옷
근대 이후 서양 문물이 유입되면서 현대 생활의 상당수가 서구화된 모습으로 변화했지만, 그나마 한국적 전통과 정체성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분야를 찾는다면 바로 장례 문화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살면서 맺었던 모든 인연과 쌓아온 시간들을 정리하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그 절차와 예절을 무엇보다 중요시해왔다. 최근에는 병원에서 정형화된 장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상례(喪禮) 또한 매우 간소화되긴 했으나 그래도 아직까지 다양하고 고유한 풍습이 남아 있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수의는 전통 복식을 계승하고 의례와 마음을 표현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방에 따라 ‘호상 옷’, ‘문안 옷’, ‘평생 옷’, ‘먼 데 가는 옷’이라 불리는 수의는 본인에게는 생애 마지막 성장(盛粧)을, 자녀들에게는 효의 실천을 뜻하기도 한다. 이름만 살펴봐도 단순한 옷 이상으로 죽음에 대한 철학을 내포하고 있는 물건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수의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은 그 가능성과 의미를 동시에 찾을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장례 문화를 이해하고 전통 복식 형태가 반영된 남녀 맞춤 수의를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 이들을 수의기능사라 부른다. 특히 최근에는 대량생산된 기성복과 같은 삼베 수의 일색에서 벗어나 종전의 의미를 반영한 좋은 품질의 수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친환경 수의기능사라는 이름도 생겨났다. 또 가격과 친환경적 요소, 모양과 예를 두루 반영한 한지수의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한지수의 전문 업체도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도, 주변에도, 사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
올해 초 ㈜갖춤수의연실이라는 업체를 창업하며 친환경 한지수의기능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의녕씨는 평소 갖고 있던 취미를 발전시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오랜 기간 동안 유치원 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던 이의녕씨가 수의 제작 업체 대표로 변신하게 된 데는 전통 복식에 대한 호기심이 큰 작용을 했다.

“의상에 관한 공부를 따로 했던 건 아니지만 예전부터 한국 민화나 탱화를 그려왔거든요. 그림 속 옛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시대나 신분에 따라 복장이 모두 달라요. 그런 것들을 눈여겨보다 보니 전통 복식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한복 전통 복식을 배워보려고 중부여성발전센터를 찾았는데, 비슷한 분야의 여러 수업 중에 당시 제가 바로 수강할 수 있었던 강좌가 친환경 명품 수의기능사 양성 과정이었어요. 수의도 한복의 일종이라 생각해도 될 것 같고, 또 어떤 면에서는 그림 그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우연처럼 맺게 된 수의와의 인연은 친환경 명품 한지수의 제작을 비롯해 전통 의상 전문가 과정까지를 모두 섭렵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전통 제작 기법을 익히고 천연 소재로 아름다운 수의를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됐고, 또 그 안에 깃든 의미를 알고 나니 보람도 크게 다가왔다. 특히 한지수의의 특성을 하나 둘 발견하면서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됐다.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수의는 당연히 삼베’라는 생각을 갖고 있잖아요. 하지만 한지수의는 고급 한지 자체가 가진 은은하고 우아한 멋을 낼 수 있고 무엇보다 친환경적이에요. 그래서 화장을 하면 매연이나 불순물이 발생하지 않고 완전 연소되고, 매장하는 경우에도 완벽히 소멸되며 별도의 방부 처리 없이 보관이 가능해요. 또 종이로 옷을 지어 입으면 뼈에 좋다고 해 예로부터 매장이나 이장시 한지를 많이 사용했다고 하고요.”

[주부, 다시 시작하다]인생의 마지막 뒷모습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한지수의 기능사

[주부, 다시 시작하다]인생의 마지막 뒷모습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한지수의 기능사

누가 묻지 않아도 장점을 줄줄 늘어놓을 만큼 한지수의에 푹 빠져버린 이의녕씨는 결국 전문성을 길러 사업을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창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처럼 새로운 일자리를 갖기 원하는 여성들을 위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새 길을 닦아보기로 한 것이다.

“저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6년 정도를 평범한 주부로만 지냈어요. 그 뒤에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고자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 막상 뭔가 목표를 정하고 시행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운이 좋게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매진하다 보니 전문적으로도 내실을 갖추게 됐는데, 그대로 머물러만 있기엔 아깝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센터에서 함께 공부했던 교육생들과 모여 우선 우리가 일할 자리라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갖춤 수의연실을 만들었죠.”

사업이란 단순히 기술을 보유했다는 것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터.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던 기획, 마케팅, 경영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은 물론 가장 큰 어려움이었던 재정적 부분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중부여성발전센터의 실질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주부로 살았을 때는 몰랐을, 몰라도 됐을 일들이 한꺼번에 주어지니까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막연히 그냥 잘 만들어서 팔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품이 하나 나오기까지 수반돼야 하는 것들이 어찌나 많던지요. 특히 제겐 홈페이지 구축이라든가 기업의 이미지와 목표를 반영한 디자인을 정립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무척 어려웠어요. 회계나 세무 관계는 거의 손 놓을 정도였고요. 그래서 저와 같은 경력 단절 여성들이 성공적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센터 프로그램을 무척 유용하게 활용했어요.”

그 과정을 이겨내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이 다져졌다. 직원은 총 일곱 명에 불과한 작은 업체이긴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바느질 한 땀 한 땀 가위질 하나하나 최선을 다한다. 전통 바느질 기법과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던 복식을 재현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거품 없는 친환경 한지수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또 사회 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영업 창출을 일궈내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목표도 확고하다.

“처음에는 제가 수의를 만든다고 하면 ‘많고 많은 일 중에서 하필이면 세상 떠나는 사람들 옷 만드는 일을 하느냐’라며 저를 이상하게 보는 분들도 있었어요. 가족들도 ‘그냥 전통 한복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라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는 준비하는 동안은 물론 지금도 제가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스스로 자부심도 크게 느끼고요. 뭔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기보다는 누군가의 마지막 옷을 아름답게 만들어 입혀드린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의녕씨는 앞으로는 친환경 한지수의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성지인 전통 한지 자체가 가진 우수성과 환경 보호 측면, 장례 문화 변화에 따른 인식 확산이 전개될 거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기존의 일률성에서 탈피해 각자의 삶을 반영한 개성적인 수의가 각광받을 것이라 전망한다.

“고전을 찾아보면 옛날에는 그 사람의 신분이나 계급, 학식이나 생활 모습에 따라 수의가 다 달랐다고 해요. 수의가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을 대신하는 옷인 만큼, 아마 그 사람의 성향이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게 되지 않을까요. 유색 수의나 문양이 들어간 수의도 더욱 다양하게 찾게 될 것 같아요.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와 준비를 계속해 나가려고요. 또 ‘우리’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분야인 만큼 좀 더 한국적인 특성을 반영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싶어요.”

친환경 한지수의기능사 양성 과정 안내
서울시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는 한지수의 제작에 관한 이론과 기술을 습득하고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을 위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남녀 수의 제작 실습 일체와 장례 문화, 수의 시장의 이해에 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육 기간 9월 3일~11월 26일 월·목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특강 9월 17~21일 월~금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1시 30분
●교육 비용 6만원(수료 후 6개월 이내 취업시 전액 환급)
●접수 기간 8월 17일까지
●접수시 구비서류 참가신청서, 주민등록등본, 사진 2매, 신분증 사본
●교육 및 접수 문의 중부여성발전센터 새일팀(02-719-8432)
●갖춤수의연실 및 사회적 목적 기업 문의 중부여성발전센터 기획운영과(02-719-8430)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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