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침없는 정치 풍자 논객 ‘강남아줌마’ 강영란
그 사이 강남아줌마의 일상도 변했다. 강남 소재의 아파트와 본인 소유의 차를 팔고 익숙지 않은 강북 도심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백화점 슈퍼마켓의 잘 손질된 재료가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산 식재료로 요리를 하게 됐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열심이라는 것, 교수 남편을 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줌마, 강영란의 일상을 인터뷰 내용과 책 「나를 너희 편에 서게 하라」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봤다. 작가 특유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경어를 쓰지 않았음을 양해해주시길.
그래 내가 강남아줌마야
내가 ‘강남아줌마’란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잖아. 근데 더는 강남에 살지 않게 됐어. 그래도 일단 알려진 필명이니 강북아줌마로 바꾸기는 좀 그렇더라고. 강북으로 이사 오니 어떠냐고? 강남 살 때는 극장도 코앞이고 문화생활을 즐기기 편했는데, 이사 와서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운전할 엄두가 안 나 차를 팔았어. 물론 집 근처에도 영화관이 있지만 더 외출을 안 하게 되고 가까운 곳에도 잘 안 나가게 되네.
집 근처의 재래시장은 싸고 정감 있는데, 손질된 재료만 사 먹다가 일거리가 배로 늘었어. 안 그래도 게으른 주부인데, 휴. 환경이 달라지니 이질감이 드는 건 당연해. 그래도 삼청동이나 부암동, 성북동에 가면 강남보다 훨씬 품격 있고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이란 느낌을 받아. 강남이 미국이라면 이쪽은 유럽이라고나 할까. 내 비유 어때, 좀 적절했나?(웃음)
아이들이 둘 다 근처의 명문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이사한 것도 있어. 아들(25) 하나, 딸(22) 하나가 있는데 둘 다 공부는 곧잘 했지. 극성스러운 엄마 아니냐고? 사실 그건 아니야. 애들 공부는 남편이 챙겼어. 유학까지 한 교수 남편 뒀다가 어디에 써먹어. 남편이 워낙 꼼꼼해서 나는 가끔 싫은 소리나 한 번씩 하는 정도. 원래 천성이 조용히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야. 나도 내가 글 써서 책까지 내게 될 줄은 몰랐어. 원체 책은 읽는 용도로만 사용했지, 별반 써먹는 데가 없었기 때문에 가족이 그리 반기질 않았거든. 오프라인에서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 온라인으로 하는 게 편하고 잘 맞아서 이것저것 쓰기 시작했어. 나름 ‘키보드 워리어’이기는 한데, 악플러는 아니니까 악플은 자제해줘. 내가 은근 소심하다고 아까 말했지? 이 같은 평소 성격과 달리 웹에서는 활달하고 까불고 좀 그래. 날더러 사납다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요즘엔 블로그도 잘 안 하고 주로 트위터로 얘기해. 내 계정은 @kangnamajumma, ‘강남아줌마’야. 이만 하면 일관성 있지?

거침없는 정치 풍자 논객 ‘강남아줌마’ 강영란
대선을 앞둔 시기지만 정치색만 드러내는 책은 아니야. 내용도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재밌게 썼고. 다만 한 사람에게라도 이 정권의 실상을 알릴 수 있다면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지. 주목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나름 익명성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책 하나 내고 유명해지고 싶어 하겠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해.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면 어쩌지? 이민 가야 하나? 아무튼, 정치에 무관심한 게 시크한 게 아니란 사실을 명심하라고.
꾸준히 한 거라곤 글쓰기
보통 주부가 책 썼다고 하면 무지 치열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야. 그래 당신 잘났다, 자상한 남편에 단란한 가족 뭐 그런 뻔한 이야기 아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끝까지 읽어줬으면 해. 시골치고는 유복한 환경에서 막내로 고이 자란 건 맞는데, 부모님 바람처럼 의사 남편 만나서 편하게만 살았다면 지금하고는 많이 달라졌을 거야. 유학생 남편을 만나 독일에서도 살고, 미국에서도 산 덕에 시야가 넓어진 덕을 좀 봤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스물넷에 남편을 만났어. 선을 봤는데 의사 남편감 마다하고 택할 정도로 남편이 맘에 들었지. 유학생이라 가난했지만 의식이 뚜렷하고 지적이었어. 그래서 결혼하고 독일에 따라갔지. 그 나라는 복지도 잘 돼 있고, 시스템도 반듯한데 왠지 답답한 게 있었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이긴 해도 피부색으로 차별받은 적도 있고.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들 보면 성공한다고 해도 교민 사회에서 벗어나기 힘들더라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 살면서 40대엔 나름 사업도 해봤는데 일하는 체질은 아닌 것 같아. 치열한 성격이어야 하는데 느긋하고 게으른 편이라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해버렸지.
그나마 제일 꾸준히 한 게 글쓰기야. 사실 문학 소녀도 아니었고 어릴 적 방송국에 엽서도 한 번 보낸 적 없어. 그런데도 책은 굉장히 많이 읽었어. 말주변이 없다 보니 남편한테 불만이 있어도 눈물이 먼저 나는 거야. 싸우는 것도 잘 못하고. 30대 후반이 되니까 이렇게 늙어가나 싶어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어. 사업도 그만두고 나서는 한 달이면 28일은 집에 있었어. 종일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우울증이 왔어. 다른 재주가 없으니까 글로 조금씩 풀었지.
처음에는 일상을 재밌게 써봤는데 그러면서 처음으로 나를 발견했어. 남편이 나보다 내 글을 더 좋아해준 덕분이지. 조금씩 우울감이 극복이 됐고 활기를 찾았어. 어느 인터넷 카페에 글을 썼는데 남편이 혹시 없어질지 모른다면서 그걸 다 모아놓은 덕분에 책을 낼 수 있었지. 또 책 쓸 때도 평가도 해주고 많이 도와줬지. 요즘 주부들은 얼마나 젊고 능력 있어. 할 수 있다고. 날 부러워할 일이 아니야.
약자를 짓밟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것일 뿐
정치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하는데 장바구니나 교육이나 모든 게 정치와 연결되어 있잖아. 왜 노인 연금이 없어지고 그게 어떻게 4대강 사업하고 연관됐는지 알아야 해. 일하랴, 아이들 선행학습시키랴 정신없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엄마들이 공부하고 달라져야지.
나도 누구 못지않게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지만 역사를 너무 몰라서 일부러 역사서를 찾아 읽었어. 전우용, 이덕일, 남경태씨의 역사책을 추천해. 전우용씨는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적재적소에 결합해 쓰는 걸로 유명하지. 「서울은 깊다」라는 책을 보면 서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알았던 왜곡된 사실을 제대로 알게 해줘서 추천해. 남경태씨의 「종횡무진 한국사」는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진단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줘. 부모라도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를 제대로 지키자는 의미에서 읽어보면 좋겠어.
소설은 일단 재밌어야 돼. 「모방범」이나 「화차」를 쓴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사회적 추리소설이라고 하는데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책들이지. 한국 작가는 박민규, 은희경을 좋아해.
영화나 책은 취향이 달라서 추천하는 것도 우습고, 그냥 본인이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이는 좀 있어도 딸 같은) 기자가 물으니 그래도 답해줄게.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자주 보는데 기억에 남는 영화는 ‘타인의 삶’이야.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때문에 신문지상에도 오르내린 영화야. 도청이나 사찰이 줄기를 이루지만 냉혈한 비밀경찰이 점점 인간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품격 있는 영화야. 최근에는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도 봤지. 재개발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작정 물대포로 쏘고 무리한 진압으로 화재가 나도록 하고, 유가족 동의도 없이 부검하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영화보다 더 무섭고 슬픈 현실이 안타까워.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아. 이제 다 커서 얼른 결혼해 애 낳고 싶어 하는데, 딸한테 서른 살 전에는 하지 말라고 해. 연애도 많이 해보고 시행착오도 해보면서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했지. 대신 책임질 일만은 하지 말라고 해. 내가 결혼을 일찍 해서 사람과 세상을 모르고 갇혀 살았잖아. 40대 이후에야 글 쓰면서 세상을 알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요즘 주부들 보면 30대 때 애 키우면서 그동안 쌓은 커리어가 사라지며 퇴보한 듯한 기분도 들고, 남편이나 시댁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잖아. 시간 지나면 어떻게든 조금씩 해결이 될 거야. 어떤 일이든 얻으면 잃는 게 있고, 잃으면 얻는 게 있는데 그게 똑같은 비율은 아니니까 당장 보이는 것에 너무 신경 쓰거나 집착할 필요는 없어.
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일, 작은 일에도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에야 새삼 알 것 같아. 나는 세상이 뒤집어질 만큼 급진적인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니야. 다만 힘 있는 사람이 약자를 짓밟지 않는 사회,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사회, 국가와 사회가 날 버리지 않을 거란 믿음을 주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보통 사람일 뿐이야. 이렇게 상식적인 내가 ‘세 보이는’ 건 다 이 정부 탓이라고. 아이고, 말을 너무 많이 하려니 숨이 차네. 혹시 나한테 할 말 있거든 연락해. 내가 아까 트위터 계정 알려줬지?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원상희 ■참고 서적 /「나를 너희 편에 서게 하라」(강영란, 모요사) ■장소 협찬 / 카페 체화당(02-364-9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