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과 거장의 나라, 폴란드

세상의 모든 행복

위인과 거장의 나라,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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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잦은 역사적 비극 속에서도 영원한 예술적 영광을 만들어내다

언제부턴가 ‘행복’이라는 단어는 관념적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틈만 나면 행복을 이야기하고, 언제나 행복해지고 싶어하고, 또 행복을 얻으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막상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물음에 시원스레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물질은 넘쳐나지만 마음은 가난한 시대, 국가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윤택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저마다 처한 환경이나 생활방식은 다르겠지만 행복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누구든 같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는 세계 곳곳의 ‘행복한 삶'들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 속에서 ‘행복’을 대하는 자세와 노력을 배울 수 있겠지요. 이제부터 매달 함께 행복의 나라로 떠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행복]위인과 거장의 나라,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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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月 행복의 나라: 폴란드
대개 ‘어느 나라의 사람’을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나라는 어디’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라보다 국민이 더 유명하다고나 할까. 그런 나라가 바로 폴란드다. 때문에 폴란드를 설명하는 데 있어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나 유명 유적지, 세계적인 대회나 경기보다 위인들, 거장들의 이름을 열거한 후 이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묻는다면 오히려 빠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폴란드의 대표 음악가?’ 하면 잘 떠오르지 않아도 ‘쇼팽의 나라?’ 하면 폴란드를 떠올리는 식이다.

일단 과학이든 역사이든 과목을 막론하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인물부터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과학자 퀴리부인,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의 「쿼바디스」의 저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시엔키에비치 그리고 전 세계 평화의 사도이자 아버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아직도 열거할 인물이 많거니와 그 분야 또한 문화예술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정치, 과학, 역사 등 매우 폭넓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세부터 현대까지 걸출한 인물이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폴란드의 저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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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위인의 나라’이니 ‘거장의 나라’이니 하는 말들이 결코 과장되거나 부풀려진 것이 아님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폴란드인들만이 가지는 그 특유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열망과 잦은 침략으로 점철된 비극적 역사 속에서의 깊은 철학적 사유가 만들어낸 무형적 유산이 아닐까 싶다. 예술가이든, 철학자이든, 정치가이든 그도 아니면 그저 평범한 국민이든 그들은 역사적인 비극을 평가하기보다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간의 특성에 대해 논의하길 즐긴다. ‘어떤 것이 인간을 만드는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의 기본적인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데 두려움이 없다. 이러한 폴란드인들의 기본 마인드는 그들의 문화를 더욱더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세계사적으로 족적을 남기는 시대의 인물들을 끊임없이 배출해내는 밑바탕이 됐다.

폴란드 문화예술 역사상 가장 볼품없는 시대라고 자평 아닌 자평을 하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연극, 시각예술, 현대음악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을 키워내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또 ‘피아니스트’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세 가지 색 시리즈 ‘블루, 레드, 화이트’의 감독 키에슬로프스키 등 영화계는 물론 폴란드 출신이 주도하는 대중문화는 이제 국제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유럽의 교차로’라 불릴 정도로 정중앙에 위치한 폴란드는 여러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받아들이고 한데 섞이면서 폴란드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히 폴란드 국민의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철학적인 가치 추구! 그것이 폴란드의 오늘을 있게 했으며, 폴란드를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뿌리 깊은 공연 관람 문화 풍토가 거장을 만들다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레드릭 쇼팽의 나라로 잘 알려진 폴란드. 그러나 쇼팽은 폴란드 국민에게 단순히 거장이나 위인으로 설명되는 음악가가 아니다. 쇼팽은 그들에게 ‘폴란드인 영혼의 본질’을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진정한 아이콘이다. 프랑스로 강제 이주당하기 전까지 그가 살았던 집과 그의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쇼팽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었다. 적어도 폴란드에서는 말이다. 제2, 제3의 쇼팽이 배출되어 폴란드의 음악적 전통을 발전시키며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행복]위인과 거장의 나라,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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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공연 관람을 가장 적극적으로 즐기는 민족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의 유전자에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즐기는 열정적인 DNA가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것은 비단 지식 있는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 국민을 아우르는 특징이다. 덕분에 폴란드에서는 여타 서유럽의 국가들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명망 높은 음악가들의 공연을 자주 볼 수 있다.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난 ‘바르샤바 가을 현대음악축제’는 젊은 관객의 수가 가장 많은 축제로 알려졌다. 이는 음악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폴란드인들은 전통을 깨는 혁신적인 연출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법이 없다. 글로벌 소비사회의 대중문화에 지배되지 않는 매우 다양한 문화생활이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나라가 바로 폴란드다. 이 같은 뿌리 깊은 공연 관람 문화가 폴란드 예술 발전에 밑바탕이 됐으며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훌륭한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복당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던 역사의 자존심
많은 사람들이 유럽이란 곳은 균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유럽이란 곳은 각기 다른 나라와 민족이 지역으로 이어졌을 뿐 실상은 수백 개 문화로 나뉘어 있다. 폴란드는 그러한 유럽 대륙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북쪽 발트해를 제외하고 독일, 체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등의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인 특성이 이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폴란드의 역사는 불행했다. 잦은 이민족의 침략과 정복 전쟁으로 점철된 우울한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여러 민족의 종교들이 유입되면서 독특한 폴란드의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끝없는 전쟁에 의해 땅이 황폐해지는 불운도 계속 이어졌다.

아픈 역사는 과거의 일로 끝나지 않았다. 19세기에 1백 년이 넘었던 독립운동을 시작으로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때 공격을 받았으며, 그 이후에는 공산주의의 억압하에 긴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폴란드인들은 서유럽, 동유럽과는 다른 ‘중앙 유럽'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해가며 폴란드의 자유를 위해 싸워왔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더욱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유럽 통합을 계기로 폴란드의 문화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유럽에 이국적인 힘과 신선한 영감에 의한 활성화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고민의 중심에 폴란드가 있는 것이다. 폴란드는 과거의 ‘연방공화국가’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며 유럽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국경 문화’가 발전했다. 또 동유럽과 서유럽의 전통이 결합됐으며, 고대 라틴의 동방정교회의 신비주의와 유대인 전통의 생활양식, 바로크 신화의 아름다운 민속까지 포함하고 있다. 아픈 역사가 선물한 귀한 진주 같은 문화가 비로소 빛을 본다고 할까.

2011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EU 의장국 폴란드 국제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최된 ‘아이. 컬처 퍼즐’ 행사 현장.

2011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EU 의장국 폴란드 국제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최된 ‘아이. 컬처 퍼즐’ 행사 현장.

교육과 문화에 투자하는 것은 ‘멋진 기회’라고 말하는 정부
교육과 문화에 정부의 예산이 지원되어야만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국가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물론 폴란드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 폴란드 정부는 교육과 문화에 투자하는 것이 폴란드 시민사회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멋진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폴란드의 색깔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폴란드는 5세부터 18세까지 의무교육을 받는다.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폴란드 정부는 시기와 내용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또 대부분의 아이들이 의무교육 시스템으로 학습을 시작한다. 폴란드의 고등교육은 유럽 안에서도 손꼽힐 만큼 다이내믹하게 발전했다. 폴란드 고등교육 과정에 등록된 학생 수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 이어 유럽에서 네 번째로 많다. 4백50여 개가 넘는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학생 수는 2백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매년 50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다. 공공기관에서 학습하는 경우에는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폴란드 정부는 교육과 연계된 국제 문화 교류 촉진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프로그램은 폴란드 학생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하거나 외국 학생들이 폴란드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교류 프로그램이다. 폴란드 문화의 해외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전담하고 있는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은 폴란드의 주요 국가기관에 분류될 정도로 문화에 대한 인식은 매우 높다.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은 폴란드 예술가들이 외국으로 진출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멋진 기회’를 만들기 위한 폴란드 정부의 멋진 일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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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는 한국과 폴란드
폴란드와 한국은 1989년 국교 수립 이전에는 국가 간 교류가 전혀 없었다. 한국은 폴란드에, 폴란드는 한국에 소개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서유럽의 여타 국가들과의 문화 교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하지만 국교 수립 이후에는 쇼팽의 나라, 퀴리부인의 나라, 교황의 나라에서 나아가 로만 폴란스키나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나라가 됐으며, 노벨평화상 수상자 바웬사 전 대통령을 통해 근현대 폴란드를 만날 수 있었다. 바웬사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아 친숙하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예선전 첫 상대로 우리에게 2:0의 짜릿한 승리를 안겨주었던 추억도 있으며,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유럽 현지 공장을 폴란드에 세우면서 경제적으로도 깊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봤을 때 폴란드는 한국을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비중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양국 간의 문화 교류는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인들도 폴란드에 대해 잘 모르지만 폴란드인들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양국 간 문화 교류가 시급한 지금, 폴란드 정부는 다시 한번 ‘멋진 일’을 꾸미고 있다. 바로 ‘아시아 프로젝트’다. ‘아시아 프로젝트’란 폴란드의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중국,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문화 캠페인이다. 2010년부터 진행됐으며, 올 가을에는 서울 아트마켓과 부산국제영화제,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등에서 폴란드 특별 주간을 지정해 폴란드의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또 10월 5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개막작으로 폴란드의 ‘(아)폴로니아((A)pollonia)’가 선정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국내의 영화, 음악, 연극 등과 폴란드의 수준 높은 문화예술이 집중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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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아시아 프로젝트’에서는 서울아트마켓 쇼케이스 초청작인 연극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도 공연된다. 또 각 축제마다 동유럽 포커스를 진행해 폴란드 작품들을 소개하는데 이번에는 ‘가까이’, ‘보이지 않는 듀엣’ 등의 무용 작품까지 그야말로 폴란드의 종합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이 밖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폴란드 영화 거장들의 작품 10편이 상영되며, DMZ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통해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던 안제이바이다와 같은 거장의 작품을 중심으로 매우 실험적이며 독창적인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날 수 있다. 아픈 역사보다 더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 예술임을 알고 기다리며 박수를 칠 줄 알았던 폴란드인. 행복이란 가치를 예술적 영감에서 찾고자 노력해온 폴란드! 위인과 거장의 나라 폴란드가 이제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 / 강은진(프리랜서) ■자료 제공 / 아담 미츠키에비츠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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