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만든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걷는 행복

명사에게 행복을 듣다

제주 올레길 만든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걷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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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50km에 이르는 제주 올레길을 낸 주인공이지만 서울특별시의 도로는 익숙지 않았나 보다. 지인 차의 내비게이션을 믿고 갔다가 엉뚱한 장소에 헛걸음을 했다는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씩씩한 걸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그녀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다.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올라와요. 특강이나 모임이 있으면 오는데, 서울은 무척 달라요. 일단 공항에서 내리면 눈, 코, 귀에 와 닿는 공기부터 다르니까요. 또 눈높이도 다르고요. 서귀포에는 3층 이상 건물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여긴 너무 미로 같고…. 하지만 이제 서울에서 스트레스는 받지 않으려고 해요. ‘서울에 여행 왔다’라고 여기기로 했죠. 도시가 주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짧은 시간에 즐기다가 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오늘같이 (장소를 못 찾아) ‘멘붕’ 상태가 되면 좀 그렇지만(웃음).”

나를 찾기 위한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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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복잡하고 힘겹다. 제주 올레의 엄청난 성공은 물론이고 최근의 귀농, 귀촌 트렌드도 도시의 삶이 팍팍하다는 방증이다. 서명숙에게도 도시는 자극제이다. 한때 이 도시에 살았던 그녀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올레길을 일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제가 길을 걸으면서 좋았어요. 요즘 흔한 말로 힐링된다고 하죠. 오랫동안 쌓아온 하수구의 찌꺼기를 청소한 기분이었고, 또 길에서의 시간이 나 자신과 가장 많이 만나는 시간이었어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남을 만나는 시간은 많았지만, 정작 나하고는 마주하지 못한 듯해요. 내면에 말을 걸어볼 기회나 여유가 너무 없었는데, 길에서 나 자신과 진짜 만나게 됐고,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받았죠. 그러면서 이런 행복을 다른 사람들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애초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단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사귄 한 영국인 친구로부터 “너희 나라야말로 치유의 길이 필요한 나라가 아니냐? 내가 가봤는데 정말 미친 나라더라. 서울은 테러블 시티(끔찍한 도시)야”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자신이 느낀 행복과 치유의 힘을 함께하고자 올레길을 만들 결심을 했다. 그녀에게 길이란 ‘의사도 약사도, 수술도 처방전도 필요 없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예방약이자 종합병원’이다. 다행히 그녀는 아름다운 제주 사람이었고,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아름다운 노을을 품은 제주에 길을 내게 됐다. 제주 올레는 그녀에게 운명과 같다고 한다. 무엇이 운명처럼 그녀를 길 위로 인도했을까? 아마도 치유가 필요했으리라.

“23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있었어요. 전 정말 기자라는 직업을 좋아해서 택했어요. 중학교 시절부터 하고 싶었지요. 하고 싶었던 일이니 미친 듯이 열심히 했고, 여자지만 편집장도 하고 편집국장도 됐지만, 그러느라 정작 나를 잃어버린 거죠.”

첫인상만으로는 착한 소녀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언론사 편집국장이 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을 것이다. 그 산을 넘기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았을 수 없었을 것이고.

“사회적 시선, 사회적 성공, 사회적 성취에 스스로를 다 던져 넣다 보니 40대 중·후반부터 무기력증이 왔어요. 배터리가 방전된 느낌, 영혼의 우물이 바짝 말랐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전에는 물이 찰랑찰랑하는 풍성한 우물이었는데, 퍼내기만 했지 채운 적이 없었으니까요. 끊임없이 나를 몰아세우고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다 보니 나중에는 바싹 말라붙은 우물 바닥을 긁는 느낌을 받은 거죠. 뭔가를 새로 채워야 하겠다는 생각에 휴식에 들어간 거예요.”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이뤄놓은 것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해 쏟아질 주변의 시선도 의식됐지만, 어느 날 문득 치유할 수 없는 암에 걸려버린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자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갈등이 됐던 것은 사회적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고는 지난한 ‘시시포스의 노동’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었다. ‘싫은 일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라는 초등학교 통지표의 담임선생님 평가처럼, 그녀는 과감히 일을 접고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가족도 모두 반대했어요. 그런데 큰아이만 저를 지지했어요. 제가 아들만 둘을 뒀는데, 큰아이가 학교 다니면서 굉장히 애를 많이 먹였거든요. 저에게 걱정만 끼쳤던 놈이 ‘아무 걱정 말고 저만 믿고 다녀오세요’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엄마는 충분히 다녀올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처음으로 자식 낳은 보람을 느꼈다니까요!(웃음) 내가 이제껏 살아온 삶을 존중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인생의 노을 하나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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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편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큰일을 성공적으로 이루는 사람을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과 결과에 박수를 보내줄 지원군이 없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인생이란 무대는 환호해줄 관객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아들의 응원에 힘입어 그렇게 떠난 길에서 그녀는 어떤 행복을 찾았을까?

“제일 행복했을 때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첫날이었어요. 그날 저녁 식사 때 보았던 노을이 잊히지가 않아요.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 전 정말 행복해져요.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추억할 게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부자다’라는 거예요. 지금 당장 행복한 순간을 많이 가지고 그것을 저금해두었다가 말년이 되면 그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해내는 거지요. 그 대표적인 장면이 저에겐 노을이에요.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을 해보세요.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노을을 얼마나 많이 보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해돋이를 많이 보았느냐’라고 말이에요.”

꼭 해넘이와 해돋이가 아니더라도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자신이 있었느냐가 행복의 척도라고 했다. 노년의 양로원에서 아파트 평수가 적다고, 저축해놓은 돈이 얼마 안 된다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했다. 물론 시사지 최초의 여성 편집장이 됐을 때 그 성취감은 짜릿함을 주었다. 하지만 순간적인 쾌감일 뿐 오래가는 행복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순례의 여정을 앞두고 피레네 산맥 아래의 마을에서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며 ‘내일이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다’라는 생각을 하니,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진정한 행복이 가슴을 뒤덮었다고 했다. 하지만 살면서 이렇게 ‘극적인’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극히 드물다. 이런 의문이 들 즈음 그녀가 소소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시 베테랑 기자 출신답다.

“전 굉장히 작은 데서도 행복을 느껴요.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라면 하나 끓여 먹을 때도 저는 집에 있는 갖은 채소를 넣고 굉장히 ‘럭셔리하게’ 끓여 먹어요. 혼자서 라면을 먹는다는 건 자칫 한 끼 때우는 느낌을 줄 수 있잖아요. 이런 때일수록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그릇에 라면을 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먹으면 그것이 행복이에요. 작은 행복의 기억이 얼마나 많이 쌓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표정과 아우라가 달라지는 거죠. 엄청나게 짜릿한 성공, 이를테면 로또 당첨 같은 것이 사람을 오래도록 행복하게 하거나 표정 자체를 달라지게 만들지는 않잖아요.”

살암시민 살아진다
행복은 불행의 또 다른 이름이다. 늘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그녀에게 불행 혹은 슬럼프는 어떻게 다가올까?

“최근 제주 올레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어처구니없는 책임 추궁이나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리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굉장한 분노, 좌절감, 속상함…. 내가 왜 이걸 시작했던가, 하는 순간적인 후회도 들었어요. 예전 일이지만, 학창 시절 데모하다 잡혀갔을 때도 그랬어요. (출소) 이후 제 삶에 대한 굉장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어떤 대단한 해결책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그 시절을 견딘 거죠. 편집장 시절에는 1년 내내 소송이 이어졌는데, 그때도 그냥 견뎠어요. 그럴 도리밖에는…. 밤에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매일 울며불며 견뎠어요. 저는 의지가 강하고 굳은 편도, 대범한 편도 아니에요. 정말 보통 여자처럼 그냥 지지고 볶으면서 견뎌요.”

그냥 견딘다? 참고 견딘다는 것이 쉽지는 않으리라. 시위 전력으로 인해 메이저 언론의 정규 기자가 되기 힘들어 자유기고가로 활동했던 시절, 좋을 글을 쓰지 못하면 다음달에 분유값을 걱정해야 했다는 일화를 통해 그녀의 치열한 삶이 짐작이 됐다. 이때 고생은 훗날 참고 견디는 힘이 됐다고 했다. 그러고는 제주 할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주도 사투리로 ‘살암시민 살아진다’라는 말이 있어요. 살암시민, 즉 살며 견디다 보면, 살아진다는 뜻이에요. 그게 굉장히 아픈 사연들 속에서 생겨난 말이에요. 제주도에 내려가 올레길을 내던 초기 외롭고 어려웠을 때, 그 말이 저에게 멘토링이 돼줬어요. ‘이렇게 힘든 날들도 다 지나가리니’ 이런 거죠. 굉장한 치유의 특별한 말이나 비결은 없는 거 같아요. 이럴 때 이렇게 하라며 구체적으로 매뉴얼을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태풍이 불 때는 그 태풍을 온몸으로 이겨내는 길 외에는 없다고 믿어요. 언젠가는 지나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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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절경으로 보아온 제주에는 아픔이 많다. 아름다운 곳이란 곡식을 생산하고 가축을 키우기에는 적절치 않다. 더구나 4·3항쟁이라는 비극의 흔적도 아프게 남아 있다. 지금의 제주 할망들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그 무거운 삶을 지탱해준 한마디 ‘살암시민 살아진다’, 가슴이 멍해졌다.

주부들의 행복을 위한 조언
“저는 주부들이 정말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 동료가 없잖아요. 더구나 우리나라 주부들은 가사는 물론 학습지도사, 재테크설계사 등등의 역할을 해내는데, 이 모든 걸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주부들이 정말 서로 가식 없는 친구 두세 명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일종의 동료죠. 인생의 동료. 가식을 안 부려도 되고, 냉정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관이 비슷한 친구 두세 명은 꼭 곁에 두세요.”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다. 그래서 행복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좋은 관계’이다. 힘들고 어려운 점을 공감하고 이해해줄 상대가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그녀에게도 일명 ‘십자매’로 불리는 친구들이 있다. 가수 양희은, 구호전문가 한비야, 여성학자 오한숙희, 한의사 이유명호 등이 그들이다. 일정상 때로는 팔선녀가 될 때도 있고, 때로는 칠공주가 되기도 하지만 언제든 지키는 십자매의 원칙이 있다. 바로 남 험담하지 않기, 그럴 시간에 서로를 지지해주기! 덕분에 십자매는 오랫동안 행복을 주는 친구들로 함께하고 있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지 마세요. 남의 시선에 자기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삶의 주관을 뚜렷이 갖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생활철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불만족과 불행감은 올 수밖에 없어요. 저는 우리나라 주부들이 명품에만 집착하지 말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으면 합니다. 꼭 철학자만 철학을 가져야 하나요? 삶의 기준선을 세우는 일, 자기 삶의 원칙을 세우는 일이 철학이지요. 인간이란 영혼을 가진 생물인데 매번 사회의 시선이나 트렌드에 맞추는 것만큼 불행해지기 쉬운 길은 없어요.”

담당 기자가 메어본 뒤 은근히 탐을 냈던 그녀의 넉넉한 오렌지색 가방은 3만원짜리라고 했다. 귀고리도 좋아하지만, 1만원이 넘는 것은 사본 적이 없다고. 자연스러운 멋스러움이 돋보이는 ‘서명숙 이사장표 멋 내기 특강’이라도 마련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모처럼 서울을 방문한 그녀를 독차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녁에는 십자매 멤버들이 주최하는 그녀의 (유쾌한 입담과 ‘초유의 식탐’을 확인할 수 있는) 새 책 「식탐-길 내는 여자 서명숙 먹으멍 세상을 떠돌다」의 미니 출판기념회가 예정돼 있다고 했다. 끝으로 그녀에게 행복하게 걷는 법을 물었다.

“자연에서 걷는 것은 운동장 트랙이나 헬스클럽에서 걷는 것과는 전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호흡법이나 팔의 높이나 각도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걷는 마음이 달라야 한다는 거죠. 살을 빼기 위한 피지컬 트레이닝이 아닌 바에야 자연 속을 걸으면서 목적지를 향해서 앞만 보고 돌진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걷기 여행의 가장 큰 메리트는 그 길에서 만난 사람과 마을의 문화를 접하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올레길에서는 느리게 걷는 사람이 가장 잘 걸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요. 그 길 위에서 가장 오래 머물면서 잘 즐긴 사람이기 때문이죠.”

사색과 휴식 그리고 치유를 위해 걷는 길에서조차 사람들은 목적지만 보고 내달리는 버릇을 쉬 버리지 못한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즐기려면, 빠른 걸음으로는 얻는 것이 없다. 진정 행복한 길은 쉬엄쉬엄 놀면서 걷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맨 피부로 바람과 햇살을 맞으라고 당부했다.

“아! 맞다. 행복하게 걸으려면, 제발 좀 복면들은 안 쓰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아니, 햇볕과 바람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데 그리 꽁꽁 싸매고들 다니세요!(웃음)”

서명숙 이사장은…
1957년 제주도 성산에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하며 상경한 서울에서 정치부 여기자 1세대이자 시사주간지 최초의 여성 편집장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냈다. 2003년 사표를 내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에서 엄청난 위안과 행복을 경험한 후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 ‘길 내는 여자’로 제2의 인생을 열었다. 치열하게 살던 기자 시절 ‘왕뚜껑’, ‘마녀’로 불리던 그녀는 제주올레 이사장으로 바람 향 물씬 풍기는 삶을 살고 있다.

[명사에게 행복을 듣다]제주 올레길 만든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걷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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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여자 마음을 더 잘 아는 여성심리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는 한편, ‘행복연구소 해피언스’를 통해 기업체를 대상으로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와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행복 멘토’라 불리고 있다. 2008년 1월호부터 3년간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을 통해 서른여섯 명의 긍정 아이콘을 만나 그들이 가진 긍정의 힘과 행복 노하우를 독자들과 공유해왔다. 저서로는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심리학 초콜릿」, 「스타트 신드롬」, 「애티튜드」가 있다. 트위터 @happy_mentor

■글 / 김진세 ■기획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 협찬 /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 서울(02-2090-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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