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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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인한 외교적 마찰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땅’ 독도를 지키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집요하게 되풀이되고 있는 일본의 부당한 행태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가 큰 요즘, 그 누구보다 강경한 마음으로 독도를 바라보는 이가 있다. 바로 ‘우리 땅을 내 손으로 지키고 싶다’라며 자원해 지난 1년 동안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온 전 울릉독도경비대장 유단희씨다. 나라 사랑을 실천해온 그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우리에게 독도가 갖는 의미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운명이 이끈 독도 수호의 길
# 내가 눈이 번쩍 뜨이고 놀란 것은 바로 대한민국 영토 울릉도, 독도를 수호할 경찰관 보직 공고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자리는 조국이 바로 나를 찾기 위해, 나에게 영광스럽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자리입니다. 순간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지난 2011년 경찰청은 독도와 울릉도를 지키는 파수꾼을 찾기 위한 공모를 했다. 한반도 최동단의 치안을 총괄하며 경비대장 및 소속 경력 2백여 명을 지휘하는 울릉독도경비대장 임명을 앞두고 독도 영토 수호에 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경비 역량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지원자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울릉독도경비대장의 직급을 종전의 경감에서 경정으로 높였고, 독도경비대장을 총 네 명으로 늘리는 등 규모도 확대했다. 일본 우익 세력들의 잦은 망언과 일본 순시선의 출현 등으로 독도를 둘러싼 긴장이 팽팽하게 서려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움직임이었다.

몇 년 남지 않은 정년을 앞두고 30여 년 몸담아온 경찰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지 고민이 한창이던 유단희씨(55)는 이 보직 공고를 보자마자 곧바로 무릎을 쳤다. 순식간에 고민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남은 기간 동안 열정을 불태워 좀 더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던 바람을 확실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어렸을 적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조상과 가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충경공 유형 장군의 직계 후손. 유형 장군뿐 아니라 조상들 중 상당수가 삼도수문통제사 등을 역임하며 바다는 물론 국토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친 집안 내력을 갖고 있다.

“크고 작은 전투마다 용맹을 떨쳐 일본인들도 무서워했다는 충경공 유형 장군의 피가 제 몸에 흐르고 있잖아요. 그 직계 후손으로서 우리의 신성한 국토를 지키는 일, 그것도 독도를 수호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공직자로서 나라의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몸 바치고 싶기도 했고요. 순경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정보 관련 업무를 맡으며 쌓아온 제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나를 위한 자리구나’ 싶었지요.”

마치 ‘남녀가 처음 만나 불꽃이 튀듯’ 운명적인 이끌림에 마음이 움직인 그는 단숨에 지원서를 써내려갔다. 해양 경계 훈련과 위기 상황에 관한 대응 관리를 담당해야 하는 독도경비대장과 달리 이 모든 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울릉독도경비대장은 더욱 포괄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수십 년간 정보 관련 업무에 종사해온 경찰 정보 전문가인 자신이 적임자라는 판단이 섰다. 공감대를 형성한 대국민 홍보 및 상급 기관과의 커뮤니케이션 역할 또한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음을 자신했다.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울릉독도경비대장을 자원하면서 또 하나 확신했던 것은 제가 2005년 정부중앙청사 전경대장을 역임하며 경호 경비를 맡았던 경력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이었습니다.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훌륭히 제몫을 해낸 것처럼 우리나라의 또 다른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독도에서도 역량을 펼쳐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지요. 그 당시 전경 2백여 명을 총괄했었는데, 마침 울릉도, 독도에서 근무하는 전경들의 숫자도 비슷하더라고요. 경험이 있으니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도 높아졌고요. 여러모로 독도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좌표가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던 커다란 벽도 있었다. 바로 아내와 자녀들의 거센 반대였다. 불과 7개월 전까지도 충북 청주에서 재직하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이제야 겨우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살게 됐는데, 또다시 집을 떠나 그것도 서울에서 한참 먼 섬으로 가겠다고 하니 반대가 심할 만도 했다. 아내는 특히 건강도 생각해야 할 시기에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어떻게 살겠냐며 극구 만류하고 나섰다. 그 역시 가족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한번 선 결심은 꺾을 수 없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난 뒤 아내와 아이들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봤는데 곧바로 한 소리를 들었어요. 딸들은 ‘아빠, 건강을 생각하세요’라고 하고, 아내는 ‘쓸데없는 생각 마라’라고 단호하게 쐐기를 박더군요. 아내는 그동안 제 일에 한 번도 반대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만큼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어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가족을 설득하면서 추진을 강행했죠. 최종적으로 선발 통지를 받았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가장 먼저 가족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걱정도 되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느낄까봐 무척 미안했어요.”

그러나 가족도 꾸준한 그의 설득에 결국 마음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라는 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것. 그렇게 가족의 든든한 성원까지 얻어낸 뒤 드디어 독도로 향할 수 있었다.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소통과 화합을 약속하며 시작된 섬 생활
# 8월 3일 오전에 임명장을 받고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이 흙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임무를 완수하겠다.” 8일 열린 취임식, 역시 취임사의 핵심은 소통과 화합이었다. 또 맞춤형 교육 훈련과 즐거운 부대 생활을 근간으로 해 대원들이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임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울릉독도경비대장은 네 명의 독도경비대장을 비롯한 경비대원을 지휘하며 해안 경계를 책임지는 일을 수행한다. 평상시에는 울릉도에 거주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독도에 들어가 훈련 태세와 시설 장비 점검 등을 실시하게 된다. 또 주변 치안을 총괄하고 독도경비대가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외부 및 본청 등과의 연결 통로 역할도 해야 한다. 종전에 담당해왔던 업무에 비해 한층 종합적이고 새로운,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인 셈이다.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울릉도와 독도는 처한 환경이 특수하고 사회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기 때문에 근무하는 데 남다른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울릉독도경비대장 임명을 받고 섬으로 들어가기 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아버지께서 ‘진충보국(盡忠報國)’이란 글귀를 써주셨어요. 4백여 년 전 조상이신 유형 장군께서 전쟁터로 향하실 때마다 등 뒤에 이 말을 새긴 깃발을 꽂고 나가셨다고 해요.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라는 뜻이죠. 처음 섬에 발을 들인 순간은 물론이고 근무 기간 내내 그 말을 잊어본 적이 없어요. 힘들 때마다,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 원동력이 됐죠.”

취임식에서도 밝혔듯, 그는 임기 동안 실질적으로 독도 경비를 수행하는 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국민과 유대감을 형성해 독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뒀다. 사회의 힘은 소통과 단결에서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울릉독도경비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사람들이 종종 제게 ‘독도를 어떻게 지키나요?’라고 물어왔어요. 그때마다 ‘독도를 지키는 우리 대원들을 지킴으로써 독도를 지킵니다’라고 대답했죠.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제가 독도를 지키는 대원과 지휘 요원들을 잘 지켜줄 때 독도와 울릉도도 무사히 지켜지는 것 아니겠어요. 대원들이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그들을 늘 동생처럼 자식처럼 대하고자 했어요.”

형식적인 점호 방식을 없애고, 사회적 이슈나 인생의 고민을 두고 함께 토론하는 ‘테마 점호’를 도입하고, 영어 공부나 스포츠 활동 등 대원들의 자기 계발을 독려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상급자로서의 권위를 내려놓고 직접 대원들 속으로 파고들어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기도 했다. 기타 동아리를 만들어 쉬는 시간에는 함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기도 했고,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며 체력 단련을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여러모로 불편하고 힘든 점이 있지만, 사실 무엇보다 외로움과 싸우는 것이 가장 큽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따라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감성 훈련과 안정감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어느 부대보다 사기가 높아졌고, 무사히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해낼 수 있었죠.”

경비대 어머니회를 창설하고, 주민들과의 친분을 강화해 ‘우리의 삶의 터전’인 울릉도와 독도를 만드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해경, 해군, 공군 등 유관 기관과의 긴밀한 협조와 철저한 훈련에도 힘을 쏟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이 단순한 하루가 아닌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생각을 늘 잊지 않았던 날들이었다.

꾸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독도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유단희 전 울릉독도경비대장이 이야기하는 우리의 독도

# 어제는 설렘으로 밤새 잠을 설쳤다. 드디어 대한민국 국토의 최동단이자 심장부인 독도에 첫발을 내딛었다. 독도의 상징 괭이갈매기가 우리 일행을 반긴다. 푸른 하늘, 괭이갈매기, 그리고 끝없는 수평선은 알고 있겠지. 우리가 독도에 온 이유를 말이다.


유단희 경정이 울릉독도경비대장으로 근무했던 지난 1년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이 여느 때보다 잦았던 시기였다. 부임 당시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독도 방문 강행 시도를 시작으로 우익들의 망언이 연일 매스컴에 보도됐고, 이후 일본 순시선이 1백여 차례 가까이 출몰하며 긴장 상황을 조성하기도 했다. 엄중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면서 독도가 우리 땅이며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널리 알려야 할 상황이었다.

“나라와 영토를 지키고 유지하는 데는 힘 있는 군대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독도는 무엇보다 국민적 관심과 단결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죠. 역사는 우리의 정신을 통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민간 단체를 비롯해 독도 수호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지만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데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일본의 도발이 있을 때만 분개할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를 공유해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고요.”

그가 세계적인 소년환경운동가 조너선 리의 독도 방문을 추진하고, 쎄시봉 독도 콘서트 및 서경덕 교수의 독도 홍보활동을 도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청소년을 상대로 한 독도 알리기 교육이나 전국의 각 시도 교육청 주최 특강에도 적극 참여했다. 독도와 우리 영토를 잘 지키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과 홍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경비대장으로 생활하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독도일기」도 발간했다. 독도 지킴이 삽살개 분양은 국민이 독도를 더욱 친근하고 가깝게 여기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인생의 큰 전환점으로 남을 1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섬을 떠나온 지도 벌써 4개월째. 아직도 독도를 떠났다는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그는 현재 독도를 지키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울릉독도경비대장으로 근무한 경력을 살려 기회가 닿는 대로 독도 관련 특강을 하는 등 앞으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나라를 위한 힘을 보탤 생각이다.

“일본이 교과서를 왜곡해가면서까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사실을 주입시키는 것에 대비해 우리도 내실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할 거예요. 지질학적,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본 독도의 가치는 매우 크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 독도가 우리 겨레의 자존심이자 진정한 독립국가임을 상징하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도는 우리의 심장이나 다름없어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일본의 말도 안 되는 행위보다 우리 국민의 무관심을 더 경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계속해서 독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사진 제공 / 출판사 지혜의나무 ■참고 서적 / 「독도일기」(유단희, 지혜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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