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고택에 가봤다. 절절 끓는 온돌 바닥, 군불에 구운 고구마는 없었지만 안동 고산서원의 고즈넉함에 푹 빠져서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전국의 고택과 농가를 한데 모아 연결해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를 추진하는 김광림 의원은 안동 태생이다.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는데, 직접 가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안동 스타일의 진수를 만나다

한국 문화 체험형 숙박 시스템 만드는 김광림 의원
“스무 살에 안동을 벗어나 40년을 떠나 있다가 60에 다시 돌아오니 애정이 남다릅니다. 안동은 편안할 안(安), 동녘 동(東)자를 써서 ‘동녘의 편안한 소도읍지’란 뜻입니다. 「택리지」에서는 소백산 자락 끝에 신이 내린 최고의 길지라고 했어요. 서울보다 2.5배 넓은 분지 지형인데 그곳을 흐르는 강이 전국에서 최고로 아름답습니다. 안동의 호족들이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와 견훤을 이기고 고려를 세웠어요. 그때 권, 김, 장 안동 삼씨를 하사했고 고려시대부터 요직에 안동 사람이 많았지요. 조선시대에도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한 걸출한 스승들이 후세를 길러낸, 가르침이 좋은 곳이에요.”
김 의원은 안동의 가장 큰 자랑은 손님을 빈 입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대접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백 년째 물려받은 고택에서 산다지만 먹고살 일이 막막하다면 어떻게 찾아오는 이들을 마냥 반길 수 있을까. 오랫동안 발전에서 빗겨나 정체돼 있던 안동은 경제개발로 사람들이 고향을 잃어버리고 돌아갈 곳을 그리워할 때 문득 떠올리는 곳이 됐다.
“1960년대만 해도 워낙 가난했잖아요. 배를 채우려고 무슨 일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조명하면서 안동이 요즘 말로 ‘뜬’ 겁니다. 사실 우리가 북한보다 잘 살게 된 것이 3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1962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할 때 수출량이 북한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지요. 지금은 우리 국민소득이 2만3천 달러, 북한이 1천 달러예요. 지금이야 다들 먹고살 만하니까 조금이나마 이웃을 돌아보게 됐지만,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도 대접은 후하게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하지만 이런 정신이 오늘의 안동을 이룬 것입니다.”

한국 문화 체험형 숙박 시스템 만드는 김광림 의원
“요즘 오빠들은 강남 스타일, 아빠들은 안동 스타일 아닙니까(웃음). 안동은 먹고 마시러 오는 곳이 아니에요. 젊은 혈기가 남다른 신입사원들이 도산서원 선비수련원에서 교육을 받고는 달라졌다고들 해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편안한 슬로시티가 안동이지요.”
김 의원이 이끌고 있는 ‘지트 코리아’는 여행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오랜 세월 고택과 농가주택을 지켜온 어르신들을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소통이 이뤄지며, 농산물까지 거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면 노년을 훨씬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일찍이 유럽에서부터 현실이 됐다. 농가주택 한 채에서 출발해 전통 가옥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지트 프랑스’가 그 효시이며, 영국의 팜스테이, 미국 헤리티지하우스도 벤치마킹과 국제 네트워킹의 대상이다. 김 의원은 민주통합당 김진표 의원과 함께 지트 코리아의 닻을 올리고 정책 토론회도 가졌다. 그의 고향이자 보여줄 것이 많은 안동에서 의욕적으로 먼저 추진하게 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지트 코리아, 팜 코리아, 두레체험 등 최종적인 이름은 아직 확정 전이지만 먹고 자는 것을 포함해 한국형 문화 체험의 장으로 만들려 합니다. 그냥 잠만 자고 오는 것이 아니라, 고택에 가서 밤에는 현지 어르신의 얘기도 듣고, 낮에는 농사를 지어보거나 각종 체험을 하는 거지요. 일반인들은 돼지를 직접 키우기 힘드니 돼지를 치는 집에 가서 체험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현지 문화에 젖어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안동의 고택이 부족하게 됐어요. 지트 프랑스는 1951년 농가주택 한 채로 시작했는데 연간 수입이 6천6백60억원에 이르고, 방문객이 2백만 명에 달합니다. 창출한 일자리가 3만 개고요.”
한국적인 것 느끼게 하는 체험의 장
하룻밤 묵어 가기에는 낭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고택들의 시설은 낙후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의 경우, 화재의 위험으로 군불을 때지도 못하고 증축이나 개축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라 재래식 화장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세대에게는 이것 또한 겪어볼 가치가 있는 경험일 수도 있다.

한국 문화 체험형 숙박 시스템 만드는 김광림 의원
안동에는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무궁무진하다. 서원이나 절, 종택은 물론, 마을 경로당과 담배를 저장하던 창고도 쓰임새가 있다. 굳이 옛 정취를 살린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종전에 있던 건물을 활용하는 것이니 국가적으로도 이득이다. 스토리텔링이나 특색이 없는 숙박공간에서 비싼 비용을 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한국 문화 체험형 숙박 시스템 만드는 김광림 의원
종갓집을 지키고 있는 종손들은 점차 나이 들어가고, 물려줄 수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을 지키기도 힘든 상황이다. 귀농 인구가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농촌에서는 며느리를 맞는 일이 힘들다. 도시인들이 오가며 정이 들어 사돈까지 맺으면 좋겠다는 것이 김 의원의 바람이다.
농촌을 잘 살게 만드는 정치가 목표
김광림 의원은 함께 지트 코리아를 추진하는 김진표 의원과 나란히 재정경제부 장차관을 지냈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행정고시를 패스한 김 의원은 다른 의원들에 비해 실무 경험이 풍부하다. 경제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진돗개 혈통을 보전하는 일에도 힘써왔다. 김 의원의 집을 지키는 진돗개는 남북 정상이 키우는 진돗개와 같은 혈통이란다.

한국 문화 체험형 숙박 시스템 만드는 김광림 의원
공직생활에 바쁘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드물다. 가족 네 명이 함께 여행을 간 기억이 없을 정도란다. 그래도 힘들 때 위로받는 곳도 가족이고, 돌아갈 곳도 가족이라는 생각은 잊지 않고 있다. 장성한 딸과 아들이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여느 서울 태생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도 안동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김 의원은 농촌을 살리는 일이 나라를 살리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나라 전체를 위해서라도 농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1962년에는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2가 농업에 종사했어요. 정부 예산은 25%에 달했고요. 그때는 소를 한 마리 팔면 서울로 대학을 보낼 수 있었어요. 지금은 농업 종사자가 6%이고 예산은 4.5%에 불과해요. 농촌에서 송아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벼가 누렇게 익은 들판이 없어져 비싼 쌀을 사서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농업은 산업이 아니라 보존해야 할 민족 자산입니다. 현재 농가 가구 월 평균소득이 2백51만원인데, 이를 중위 가구 기준인 3백50만원 정도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그래야 아들딸이 오면 고추도 들려 보내고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각종 기반시설과 시스템 구축을 위해 5년간 20억원의 경상북도 예산도 확보해두었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소도시가 아닌 사람의 활기가 넘치는 안동을 만드는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직접 가보니 고즈넉함도 안동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사람이 곧 미래’라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사진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