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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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행복’이라는 단어는 관념적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틈만 나면 ‘행복’을 이야기하고, 언제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고, 또 ‘행복’을 얻으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막상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물음에 시원스레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물질은 넘쳐나지만 마음은 가난한 시대, 국가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모두 윤택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저마다 처한 환경이나 생활 방식은 다르겠지만 행복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어디든 같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는 세계 곳곳의 ‘행복한 삶’들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 속에서 ‘행복’을 대하는 자세와 노력을 배울 수 있겠지요. 이제 함께 행복의 나라로 떠나는 겁니다.

12月 행복의 나라: 일본

행복을 찾아나가는 그의 일상 1
발 딛고 선 곳을 만끽하고 감사해하며 얻는 행복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여의도 63빌딩에 자리한 정통 일식당 ‘슈치쿠’의 나카무라 코우지(35) 셰프의 하루는 종일 바쁘게 돌아간다. 좋은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시장을 찾고, 정성껏 손질한 재료로 심혈을 기울여 음식을 하나하나 만들어내고, 그가 차려낸 이 맛있는 식탁을 궁금해하는 손님들과 함께 요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손님 대접 뒤에도 그의 일과는 끝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다음에도 또다시 요리 연구 삼매경에 빠진다. 각종 요리 관련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거나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며 끊임없는 실패와 성공을 반복한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요리 블로그를 들여다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오직 ‘요리’만을 생각하는 코우지 셰프의 시간은 흘러간다.

요리의 세계에 풍덩 빠져 있는 코우지 셰프를 만나기 위해 슈치쿠를 찾아갔던 날, 역시나 그는 점심식사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뒤에도 텅 빈 스시 바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자리한 넓은 창 너머로는 도심 전경이 훤히 펼쳐지고,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듯한 구름과 은은한 하늘빛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3백50년 된 일본산 천연 히노키(편백나무)로 제작됐다는 스시 바에서 진중한 표정으로 재료 정리에 몰두하고 있던 그에게서 장인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한국에 있는 일식당 중에서 여기만큼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없을 거예요. 가장 높은 데 위치한 일식당이기도 하고요. 낮에도 이토록 환상적인 모습인데 저녁에는 훨씬 더 로맨틱해져요. 노을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갈 때도 분위기 있고요, 각양각색의 불빛이 가득한 야경은 말도 못하게 훌륭해요. 이렇게 예쁜 배경을 두고 일하는 것도 요리사로서 큰 즐거움이에요. 제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기도 하죠.”

과연 분위기에 젖어 있을 시간이 있을까 싶을 만큼 분주하게 움직이던 코우지 셰프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금방 스시 한 접시를 완성해 내놓았다. 종류를 불문하고 생선이라면 눈 감고도 완벽하게 손질할 수 있고, 스시를 척척 만들어낸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속하는 그가 어째서 오랜 세월 실력을 갈고닦아온 장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두루두루 인정받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스무 살 즈음부터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 그리 일찍부터 발을 담근 것은 아니었지만, 요리는 제게 ‘첫사랑’이나 다름없어요.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고 소중하고 고마운, 그런 존재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기 싫다’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던 재미있는 일이고요. 계속해서 멋진 식당들을 거치면서 좋은 손님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일본에서도, 호주에서도, 그리고 이곳 한국에서도. 늘 새롭고 즐거워요. 저는 언제나 제가 처한 상황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데, 감사하게도 항상 모든 것이 좋게 주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기계공학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우연히 스시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인생의 항로를 변경한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요리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혹독한 훈련이 이루어지던 스시집 일을 거쳐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고, 언젠가는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본식 정통 스시를 선보이겠다는 꿈을 꾸며 호주 시드니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한국인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결국 이곳 한국까지 오게 됐다.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는 베스트 시푸드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호주 ‘피시 페이스’와 5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 스리 스타 별점을 받은 일본 도쿄 스시집 ‘간다’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부터 한국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행복을 찾아나가는 그의 일상 2
엄격하게 지켜나가는 고집과 노력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요리 장인들을 배출해내는 일본은 오래전부터 ‘맛’에 관한 다양한 문화가 발달돼 있다. 지역을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각기 고유한 특징을 간직한 여러 식당들이 성업 중이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맛을 즐긴다. 특히 어딜 가나 긴 세월 특별한 맛과 이야기를 이어온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대를 이어 가업을 지켜가고 있음을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또 사람들은 그 전통과 노력을 존중한다. 새로운 세대의 취향을 반영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면서도 뿌리와 정신만큼은 결코 훼손하지 않는다.

“일본에는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가게들이 많아요.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은 물론이고 요리에 대한 태도, 메뉴, 조리법 등 전부 다요. 심지어 가게 외형적인 모습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돈을 많이 벌고 더 많이 유명해지는 것보다 ‘내 요리’를 선보인다는 데 중점을 두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거예요. 그것이 더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라 생각하는 거겠죠. 먹는 사람들도 더 의미를 두고요.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요리를 하는 거예요. 그래야지만 만드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기분 좋을 수 있으니까요.”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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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유명한 식당일수록 겉모습은 작고 소박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맛의 깊이는 충분히 완벽하다. 그들은 무리해서 덩치를 키우고 겉을 꾸미려 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포장과 야트막한 기술을 덧씌우려 하지 않는다. 시대에 발맞춰 변화해가기는 하지만 타협하지는 않는 것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서도 전통을 살린 창의적 발상을 시도하는 편이다. 바로 그 지점이 일본 요리가 각양각색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비법이기도 하다.

“일본 하면 무엇보다 ‘맛’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실제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고요. 그만큼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일본 요리를 배우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해요. 금방 수월하게 되는 일은 없어요. 무엇보다 기초를 가장 중시해요. 하나하나 천천히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철저하게 배워야 하죠. 그 시간들을 인내하고 잘 이겨내야 성취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코우지 셰프가 처음 스시 전문점에 들어갔을 때 그에게 주어진 일은 청소였다. 생선 손질이나 불을 쓰는 일은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위로 줄줄이 늘어선 선배 요리사들도 경험과 능력에 따라 각자의 임무가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한 단계를 완벽하게 마스터해야만 다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재료 고르기, 손질, 밥 짓기 등 기초적인 부분일수록 엄격하게 훈련해야만 했다. 기본이 똑바로 서 있어야만 기술적인 부분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칫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기초를 갈고닦아 자신의 것으로 체득했을 때, 비로소 요리사의 삶이 시작된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숙련 과정을 인내하고 견뎌낸 이들이기에 자연스레 음식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고집을 형성하게 된다. 그들은 최고의 맛을 내고 유지하기 위해 최상의 재료를 구하는 데 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최적의 요리법을 찾아내는 연구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시간들을 즐거움과 보람으로 채운다.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예를 들면 요리를 배우는 단계에서 한동안은 매일 아침 10시에 쌀을 씻는 일만 계속하게 돼요. 전문가가 봤을 때 제대로 되고 있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다른 일은 가르쳐주지 않아요. 무척 간단한 일이지만 그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다음에 뭘 가르쳐도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저 스시 만드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런 이유로 요리를 시작한 사람들이 금방 그만두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힘들고 어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그렇게 하나씩 밟아나가는 것이 좋았거든요. 제가 정말 맛있는 스시를 만들어내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노력했죠. 그런 기다림이 있었기에 결국 해냈을 때 행복감이 훨씬 컸어요. 처음으로 헤드 셰프가 제게 스시 만들 기회를 줬을 때, 그날의 행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 더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코우지 셰프는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가능한 한 천천히 완벽하게 배워서 조금씩 성취해나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인생의 ‘행복’ 또한 찾고 키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바쁘고 피곤해 힘이 들 때면 처음 스시를 손에 쥐며 느꼈던 벅찬 행복을 떠올려본다. 한 번쯤은 관성적으로 쉽게 일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그렇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행복한 선물을 계속해서 노력하며 지켜나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행복을 찾아나가는 그의 일상 3
나로 인해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서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원칙과 열정이 만든 일식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의 행복한 맛

코우지 셰프는 행복한 삶이란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웃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것, 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따라서 즐거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꿈꾸는 행복이다. 그리고 그에게 그 행복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요리’라는 마법이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갑자기 요리를 하겠다며 공부를 포기한 아들을 눈물로 말리시던 부모님을 설득할 때도, 1년 3백65일 식당의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할 때도, 과연 내가 스시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온몸의 근육이 얼어붙을 만큼 추운 날 자전거로 손님 집에 음식 배달을 다닐 때도, 낯선 나라에서 새롭게 적응하고 공부해야 했을 때도 결코 힘들지 않았어요. 제 손으로 맛있는 스시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늘 좋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순간조차 그에게는 항상 ‘최고’의 시간이다. 코우지 셰프는 그래서 ‘이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더 충실하게 채워 넣으려고 노력한다. 요즘 그의 가장 큰 재산 중 하나는 슈치쿠를 찾는 손님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매일 작성한 노트다. 어떤 손님에게 어떤 스시를 냈는지, 손님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구상을 해보기도 하고 또 그 손님이 다시 슈치쿠를 찾았을 때는 더욱 큰 만족을 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를 한다.

“저한테 ‘요리’ 말고는 다른 게 없어요. 제가 세상과 소통하고 행복을 완성해나가는 매개체가 바로 요리인 셈이죠. 늘 생각해요. ‘오늘 점심시간이 끝났구나’가 아니라 ‘오늘 점심에 행복을 만들었구나’라고요. 아마 여러분 모두에게도 요리가 아닌 각자 행복의 도구들이 있겠지요. 모두 그것을 찾고 키워나가는 행운을 누리시길 바라요.”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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