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일하고 재밌게 살자!

여행박사 신창연 대표의 행복한 회사 만들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1인당 5만원씩 1천만원을, 지난 총선 때는 30만원씩 6천만원을 사비로 지급했다. 주소지가 지방인 직원들에게는 왕복 교통비를 주고 본인이 바빠서 투표를 못 하면 부모님이 투표하신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오후 5시에 회사 문 닫고 투표 못 한 직원들, 경비아저씨, 아르바이트생까지 다 투표소로 보냈어요. 그렇게 하니까 되더라고요. 자신감을 얻었죠. 대선이 가까워지니 직원들이 먼저 ‘사장님, 이번에는 안 하십니까?’ 하더군요. 투표 인증샷도 찍고, 용돈도 벌고 다들 즐거웠어요.”
‘통큰 사장의 1억 공약’으로 이슈화가 되며 회사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은 두 번째로 좋은 것이었고, 첫 번째로 좋았던 것은 선거 기간 내내 회사 내부가 축제 현장같이 즐거웠다는 거다.
“재밌잖아요. 재미있게 일하고 재미있게 살자는 게 제 신조예요. 회사를 세울 때부터 집보다 편한 회사,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경영철학을 이야기하는 신 대표의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가득이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 친근한 말투와 편안한 인상에 금방이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연 매출 1천3백억원에 영업이익 1백20억원, 해외여행 송출 34만 명을 헤아리는 중견 기업 사장의 권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실제로 여행박사는 파격적이다 싶을 정도의 직원 복지정책을 펼치고 있다. 매년 전 직원에게 가족 동반 해외여행을 제공하고, 수영이든 골프든 다이어트든 무언가 배우겠다고 신청하면 지원비는 물론 결과에 따라 성과급도 지급한다. 대학 학자금 및 학원비 지급, 도서 구입비 무제한 지원에다 본인과 가족 병원비 연 1천만원 한도 내 지원 등 의료복지도 웬만한 대기업을 능가한다. 사내 결혼시 혼수와 신혼여행을 지원하고 타 부서 사원과의 친분을 위해 중·석식비를 지원하는 ‘친해지길 바래’ 프로그램도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벽 없는 회사’를 지향하는 신 대표의 경영철학이 담긴 정책이다. 사장을 포함한 팀장 이상 간부를 매년 전 사원 투표로 뽑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회사 내 직책이 직원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다 보니 정년도 없다.
“얼마 전에 드라마를 보는데 남자 주인공 직업이 여행사 본부장이었어요. 우리 회사 본부장들과 비교해보니 너무 다른 거예요. ‘같은 여행사 본부장인데 왜 이렇게 다르냐?’ 했더니 자기들은 뱃살도 나오고 옷도 못 입어서 그렇대요. 그래서 1인당 1천만원 지급할 테니 1년 동안 운동하고 공부해서 비주얼, 스타일, 매너 다 저렇게 만들어보라는 미션을 줬어요. 그때가 오키나와 워크숍 중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들 운동 다니고 영어 학원 등록하고 바쁘게 시작하더라고요. 오는 3월이 최종 점검 달인데 얼마나 성공했을지(웃음). 본부장급들이 성공하면 다음 팀장급, 팀장급이 성공하면 그 아래로 이어지거든요. 초미의 관심사예요.”
신 대표는 사장이 명품을 쓰면 사치지만 직원이 명품을 쓰면 회사가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어디 가서 사인할 때 기죽지 말라며 직원들에게 고급 만년필을 선물하는가 하면 10년 장기 근속자들은 1천만원 한도 내에서 해외여행을 보내준다. 지난 8월엔 10년 이상 차 직원들과 11박 12일 동안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고 이제 그 다음 기수들이 여행을 준비 중이다.
‘내가 사장이 되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여행박사의 복지정책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주거 복지다. 출퇴근시간이 왕복 3시간이 넘으면 회사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택에 입주할 수 있는데, 현재 서울에서는 서울 직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5명의 직원들이 회사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창립 초기부터 실시해온 것으로 회사의 여러 가지 복지정책 중 신 대표가 각별히 고수해온 것이기도 하다.

여행박사 신창연 대표의 행복한 회사 만들기
검정고시를 치르고 군대에 다녀온 그는 뒤늦게 대학에 입학해 관광경영학을 전공했다. ‘내 점수에 맞춰 잘 먹고 잘 놀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싶었단다. 그렇게 선택한 전공이 적성에 맞았다. 대학교 때는 일본으로 무전여행을 다녔고 졸업 후엔 제법 큰 여행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체질적으로 구속을 싫어하는 그가 상명하복식의 권위적인 조직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문관으로 찍혀 자회사로 전출되는 등 쓰라린 경험도 많이 했다. 생각해보면 오늘의 그를 만든 귀중한 시간들이다. 그는 그때의 경험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회사 경영에 녹였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강요받던 것을 떠올려 복장 규율은 처음부터 만들지도 않았고 출퇴근 시간도 탄력적으로 운영했다. 새벽 회의, 아침 조회 같은 건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 중 상당수가 당시 회사생활을 하며 만들었던 ‘내가 사장이 되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리스트에 올라 있던 것들이라고 하니 “10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경영수업을 한 것 같다”라는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듯하다.
“고객 입장에서 봤을 때 부당한 것, 직원 입장에서 봤을 때 안 되는 것, 회사원 입장에서 봤을 때 회사에서 하면 안 되는 일들을 많이 보고, 많이 겪고, 많이 욕먹으면서 배웠어요. 여행박사를 시작하며 ‘무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직원 복지, 고객 복지 그리고 즐거운 여행이에요. 처음부터 회사를 크게 키워야겠다보다 재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돈은 함께, 잘 써야 한다
2000년 직원 3명과 2백50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된 여행박사는 일본 여행 전문 여행사로 이름을 날리며 비약적인 성장을 한다. 당시 1백만원은 생각해야 했던 일본 여행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낮춘 ‘올빼미투어’의 원조. 창립 이듬해 5억원이 채 되지 않던 매출액은 2007년 1백57억원을 기록하며 창업 7년 만에 2백 배 성장을 달성한다. “여행사가 다 망해도 여행박사는 안 망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인수합병을 거쳐 상장에 성공했지만 모기업 경영진의 불법 대출과 주가조작 논란으로 8개월 만에 상장이 폐지됐고 급기야 파산선고까지 받았다. 회사의 존폐가 달린 최대의 위기였지만 그와 여행박사 직원들은 6개월 만에 위기를 돌파하고 재기에 성공했다.
“그나마 자금이 조금 남아 있을 때 직원들에게 ‘지금 그만두면 줄 돈이 있다. 어서 그만두라’라고 했어요. 당시 직원이 3백 명이었는데 반 정도 그만두고 1백50명이 남더라고요. 회사에 돈이 없어서 연봉 1원에 계약을 하고 회사 콘도에 쌀이랑 김치 쌓아두고 거기서 합숙을 했어요. 가난한 집 식구들이 사이가 좋다고, 그때 같이 ‘으으’하며 더 돈독해지더라고요. 다행히 3개월 정도 지나며 서서히 상황이 좋아져 6개월부터 복구가 됐어요.”
직원들이 힘을 합쳐 힘든 시기를 극복한 경험은 회사 입장에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다. 그 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다시 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했고 이제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
현재 여행박사의 자본금은 23억5천만원으로 회사의 지분은 신 대표를 비롯해 1백20여 명의 임직원이 골고루 가지고 있다. 전체 회사 지분 중에서 신 대표의 몫은 22% 정도. 직원들 누구나 원하면 증자에 참여할 수 있다. 회사 재정과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회사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비롯해 곳간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 많은 직원 복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궁금해한다. 직원들에게 그렇게 ‘퍼’ 주고도 회사가 망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는 쪽이 더 정확할 듯하다.

여행박사 신창연 대표의 행복한 회사 만들기
‘망할 때 망하더라도 다 주고 망하자’란다. 사장이 회사 돈을 꽁꽁 싸매고 있다 망하는 것은 그야말로 망하는 것이고, 직원들에게 복지라도 잘 해주고 망하는 건 잘 망하는 거다. 직원들에게 남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직원들 여행 보내주고 공부시켜준다고 회사가 망하지는 않는다. 지난 한 해 약 40억원의 영업이익 중 28억원가량이 직원들을 위한 복리후생과 인센티브로 돌아갔다.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쌓아두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우리가 삼성처럼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기업도 아니고, 일 자체가 먹고 놀고 여행 다니는 거니까요. 버는 만큼 함께, 잘 쓰고 싶어요.”
그가 말하는 ‘함께, 잘’ 쓰는 것에는 사회 환원도 포함돼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과 소년소녀가장,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환갑의 부부들, 장애인과 그 외에 손이 닿을 수 있는 이들에게 무료 여행을 선물하고 있다. 모든 경비는 직원들이 급여에서 1%를 기부하고, 그만큼의 금액을 회사가 추가로 기부해서 마련한다.
“회사가 직원 개개인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누구라도 회사에서 독립해 무언가 시작하고 싶다면 힘닿는 데까지 지원할 생각입니다. 제가 눈감을 때쯤 우리 회사 출신 직원들이 사회 곳곳으로 뻗어나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정말 멋질 것 같아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