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준 교수 “가족간의 대화가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송용준 교수 “가족간의 대화가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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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두 딸과 일주일에 밥 한 번 먹기도 힘들어진 현실. 일요일 한 끼라도 함께하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밥 먹으면서 「논어」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두 딸은 자신들만 듣기에는 아깝다며 아버지 몰래 강의를 녹음해 팟캐스트에 올렸다. 가족의 식탁에 전 국민을 초대한 것이다.

송용준 교수 “가족간의 대화가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송용준 교수 “가족간의 대화가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과 공자의 제자들이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유교 문화권에서 성장하면서 「논어」에서 전하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내재해왔기 때문일까. 2천5백 년의 간격을 두었음에도 효제(孝悌), 인(仁)과 예(禮), 진정성(忠) 등을 이야기하는 「논어」의 문장들이 주는 울림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통계 자료로 탄탄히 뒷받침된 요즘의 리더십 이론보다 쉽고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일상에 위안을 주기도 했다. ‘학즉불고(學則不固)’, 배움으로써 고루해지지 않는다는 공자님의 말씀대로 ‘식탁 위의 논어’를 공부하는 지난 8개월 동안 가족 간의 대화가 풍성해졌고, 동양 고전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수 있어 즐거웠으며, 앞으로도 배움을 계속하고 싶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출간된 「식탁 위의 논어」에 실린 송용준 교수 딸의 후기 중에서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니었다.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란 성인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어린 시절을 대할 때와 변함이 없는가 보다. 어리면 어린 대로 가르쳐줄 게 많았고, 크면 큰 대로 일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이제는 어른이 된 자식들에게 때로는 힘이, 때로는 위로가 되길 바랐다. 오로지 그 마음뿐이었다. 욕심을 부렸다면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밥이라도 한 끼 나눌 수 있는 기쁨 정도였다. 「논어」로 차려진 가족의 식사 시간은 그렇게 시작됐다. 클 만큼 크고, 배울 만큼 배운 자녀들은 그 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부모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가족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배웠다. 이는 「식탁 위의 논어」라는 인문학 팟캐스트 강의로 유명한 서울대학교 중문과 송용준(60) 교수의 가족 이야기이다. 출간된 책 속에 소개된 송 교수 딸의 후기를 보면 이 강의가 가족에게, 특히 자녀인 자신에게 어떤 배움을 주었는지 잘 나타나 있다. 부모의 작은 바람처럼 일상에 위안이 돼주기도 했다는 대목에서는 지식의 교류를 넘어 인문학이 주는 따뜻한 통찰마저 느낀 것은 아닐까 짐작되기도 한다.

「논어」로 차려진 한 끼
시작은 참 소박했다. 가족이 모두 모여 밥 한 끼 먹자는 것. 하루 한 끼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끼 말이다. 장성한 두 딸은 직장 일로 바빴다. 그렇다고 송 교수 내외가 한가했던 것도 아니다. 학교 일로, 집안일로 부부 또한 딸들이 비는 시간을 언제든 맞춰줄 수 있는 처지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함께하는 한 끼의 식사 시간에 대한 가족의 바람이 더욱 간절했다. 더불어 어렵게 낸 시간을 알차게,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것은 제 집사람이었어요. 일요일 아침을 가족이 모두 모여서 먹기로 정했어요. 제 전공이 중국 고전문학이고, 중국 경전을 많이 보니까…, 아내가 그러더군요. 서로 현실적인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경전을 읽고 토론하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시작된 거예요.”

매주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논어」를 이야기해보자고 가족은 결정했다. 중국 고전이니, 경전이니 말은 거창했지만 사실은 수다를 떨 듯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가족이 모인 시간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가족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말이 강의지, 진짜 밥을 먹으면서 진행됐다. 평생 강단에서 엄숙한 강의만 해온 송 교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의실이 아닌 편안한 내 집 식탁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으며 「논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논어」를 본격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배경지식 삼아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가 문화적으로 어떤 상태였고, 공자가 교육에 힘쓰게 된 동기와 과정, 성과 등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송 교수가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중간중간 그의 아내가 재치 있게 지적을 하거나 되물었고, 두 딸은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질문을 했다(송 교수는 아내와 자녀들의 실명이 거론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팟캐스트 강의를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말한 거예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니까요. 반말을 써가면서 말이죠(웃음). 편안하게 그저 아이들이 알기 쉽게 말했다니까요.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고요. 지금 다시 들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 있기도 해요. 그때그때 아이들이 묻는 것에 바로 답해줬으니 연습 같은 걸 했을 리 만무하잖아요. 그걸 다른 누군가가 들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답니다.”

강의를 몰래 녹음한 딸
송용준 교수 “가족간의 대화가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송용준 교수 “가족간의 대화가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식탁 위 강의를 두 번 정도 진행하고 난 뒤였다. 송 교수의 둘째 딸이 “아빠 강의를 몰래 녹음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팟캐스트(파일 형태의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매체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지 물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송 교수는 팟캐스트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자신의 이야기가 녹음되고 있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왜 녹음했는지 물었더니… 둘째 아이가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녹음을 해서 나중에 다시 들으며 ‘되새김질’을 하는 게 회사 생활에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아빠 강의도 녹음해서 복습 삼아 나중에 들어보려고 했다고요. 그런데 듣다 보니 혼자 듣기가 아까웠다는 거예요. 제가 제 입으로 말하려니 무척 낯이 뜨겁습니다만(웃음).”

아빠의 강의가 좋다는 딸의 말에 송 교수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 누구보다 자식에게 인정받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뭘 어떻게 녹음해 사람들에게 강의를 듣게 하겠다는 건지 감이 오질 않았다. 하지만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논어」를 이야기하는 것이야 어차피 가족이 약속한 사안이었고, 녹음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진행돼야 했기 때문에 딸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했다. 녹음을 한다고 해서 송 교수가 따로 준비를 하거나 가족의 식사 시간에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녹음 내용을 사람들에게 공개는 하되 누가 강의를 하는지, 어느 집 가족인지 알지 못하도록 익명 처리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저는 잘 몰랐지만 팟캐스트에 강의를 올리는 데도 관리자가 필요하고, 또 관리비도 내야 하더군요. 둘째 아이가 자신의 월급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실행에 옮겼어요. 처음에는 다운로드 횟수가 적으니까, 비용도 얼마 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팟캐스트라고 해서 뭐 거창한 건가 했더니 녹음 과정도 단순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냥 둘째 아이 휴대전화로 녹음했으니까요.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어요.”

그렇게 탄생된 강의가 바로 ‘식탁 위의 논어’다. 유명 학자와 강사가 강의하는 인문학 강의는 많지만 가족끼리 「논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의 강의는 아마 세계를 통틀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진짜 밥을 먹으면서 말이다. 비록 강연에 나선 아빠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는 본의 아닌 반칙(?)이 약간 섞이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만 듣기에는 아깝다”라는 둘째 딸의 말처럼 송 교수의 강의는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논어를 처음 접하는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식탁 위의 논어’라는 강의명 자체부터 어려운 내용일 거라는 부담감을 덜어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른 가족의 대화를 몰래 듣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하는 컨셉트는 사람들의 흥미를 돋웠다. 하루가 다르게 다운로드 횟수가 늘어갔고, 급기야 팟캐스트 인문학 분야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둘째 딸의 예감이 적중했다고나 할까.
반면 의도하지 않았던 일도 생겼다. 강의 어디에도 ‘강의하는 누구누구입니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다운로드 횟수가 늘어가면서 서울대 중문과 송용준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진정한 대화 파트너로 거듭난 가족
“아무리 비밀로 하려 해도 다 알게 되더군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다’ 하고 알잖아요. 학생들도 알게 되고 말이죠. 딸아이가 강의를 인터넷에 올린다고 했을 때만 해도 몇십 명 정도 듣겠거니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다운로드 횟수뿐만 아니라 무려 1백여 개국에서 다운로드 받았다는 통계를 전해 들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부담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와 두 딸만 앉아 있던 식탁에 그야말로 온 국민을 초대해버린 셈이 됐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뜨거운 반응에 학자로서 느끼는 바가 컸다. 지금껏 학문의 깊이와 수준을 높이는 데만 온 힘을 쏟아왔다면 학문의 대중화에 대한 필요성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 하지만 송 교수는 무척이나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뜻하지 않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일까. 나름 도모하고자 하는 일이 있음에도 훗날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자며 짧게 말을 정리했다. 그러곤 자신의 강의가 ‘잠이 안 올 때 들으면 잠이 잘 오는 팟캐스트 5대 강의’에 꼽혔다는 댓글을 봤다는 얘기를 하며 애써 성과를 축소했다.

“그래도 ‘식탁 위의 논어’라는 이름의 강의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지요. 저와 아내, 두 딸까지 말입니다. 부모는 군림하거나 뒷바라지하는 존재라는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이제는 공동의 주제를 나누는 진정한 대화 파트너로 각인이 된 것이죠.”

부모와 자식이 진정한 대화 파트너로 거듭났다는 송 교수의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부모와 자식이 대화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고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 뭐 했니, 이제 오니, 그거 사 왔니…. 이런 일상의 말은 가족을 묶지 못해요. 공통의 관심사가 없어지거든요. 그렇게 되면 대화를 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 가족은 「논어」라는 공통의 주제를 정했지만, 사실 꼭 「논어」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공동의 주제라면 식탁 위의 대화는 이어집니다.”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곧 가족 간의 원활한 소통을 가져오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공통의 관심사를 형성하며 가족의 결속력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이의 행복이 교육의 목표가 돼야
정답이 없다는 자녀교육. 두 딸을 훌륭하게 키워낸 송 교수의 자녀교육 철학에 대해 묻자(현재 송 교수의 두 딸은 각각 법조계, 외국계 회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되레 “부모는 왜 자녀를 교육시키는가?”라고 물어왔다. 선뜻 답을 하기 어려웠다. 송 교수는 교육의 목적은 아이의 행복이 돼야 한다며 단정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내 아이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이가 어떤 성향을 지녔고, 무엇에 관심이 많으며,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 부모는 끝없이 아이를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부모의 유일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큰아이가 공부를 곧잘 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더니 유독 수학을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나름 조사를 했죠. 그랬더니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제가 미국에 1년 동안 교환교수로 가게 됐는데, 그때 함께 다녀오면서 오면서 수학 진도에 공백이 생긴 거였어요. 원인을 찾으니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내 수학을 잘하게 됐죠.”
송 교수가 사례를 들려주었지만, ‘관찰’이라는 표현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잘하는 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아이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속이 타는 일’이 될 테니까.

하지만 송 교수는 ‘속이 타는’ 것은 아이에 대한 욕심만 있기에 그런 것이며 아이들은 부모의 허영을 만족시켜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그것이 부모의 욕망인지, 아이의 행복인지 구분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대화라는 말이 나오면 저는 제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좋은 친구이자 대화 상대가 돼주었어요. 그게 가능했다는 것은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였다는 거거든요. 그게 ‘관찰’이에요. 현미경으로 아이를 보라는 것이 아니고요(웃음).”

송용준 교수 “가족간의 대화가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송용준 교수 “가족간의 대화가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입니다”

자신은 교육학자가 아니어서 자녀교육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이 땅의 많은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고 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소통만이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송 교수는 다 큰 딸들을 위해 다시 한번 식탁을 차렸는지 모른다. 딸들을 배부르게 했던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놓여 있던 식탁 위에는 「논어」라는 뜨끈한 만찬이 준비돼 있다. 그리고 딸들을 식탁으로 초대한다. 다시 한번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기 위해서.

■글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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