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베이시스트 변주영이 전하는 음악으로 행복한 오스트리아

더블베이시스트 변주영이 전하는 음악으로 행복한 오스트리아

물질은 넘쳐나지만 마음은 가난한 시대, 국가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윤택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저마다 처한 환경이나 생활 방식은 다르겠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만큼은 어디든 같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는 세계 곳곳의 ‘행복한 삶’들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 속에서 ‘행복’을 대하는 자세와 노력을 배울 수 있겠지요. 이제부터 매달 함께 행복의 나라로 떠나는 겁니다.

2月 행복의 나라: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다. 그중 음악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위로의 힘과 즐거움을 연장하는 유쾌함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의 도구로 자리매김해왔다. 독립된 하나의 소리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둘 이상의 멜로디는 그 나름의 하모니로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해왔다.

그런 점에서 오스트리아는 축복받은 도시다. 세계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이곳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음악사의 황금기에 그 중심이 됐던 곳도 오스트리아다. 하이든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까지,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음악가들은 모두 이곳에서 꿈을 키웠고 결실을 맺었다. 18세기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원에 힘입은 여러 음악가들은 유럽의 예술, 문화, 사상의 중심지인 빈에서 주옥같은 명곡들을 만들어냈으며 20세기에도 오스트리아는 현대음악사의 주춧돌이 됐다.
니더 외스터라이히 지역 야외 음악 페스티벌.

니더 외스터라이히 지역 야외 음악 페스티벌.


# 그녀의 행복 멜로디 1
살아 있는 음악 교육
오스트리아, 음악 그리고 행복. 한국 하이든 문화재단의 변주영(48) 대표는 이 세 단어를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이다. 연세대 음대에서 더블베이스를 전공했던 그녀는 1990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빈 시립음악원과 빈 국립음대에 동시에 합격해 두 대학에 다니며 어린 시절 피아노 교본으로 먼저 접했던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매년 신년 음악회를 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름다운 연주홀 뮤직페라인과 빈 콘체르트 하우스를 비롯해 시내 게른트너 거리에서 세계적 지휘자인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리카르도 무티를 만날 기회가 있는 낭만의 음악 도시가 바로 빈이죠.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반 이상이 빈 국립음대의 교수나 조교였고 그중 젊은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은 재학 당시 오디션을 통해 선발돼 노련한 선배 연주가들에 의해 단련됐어요. 오스트리아의 대학은 단순한 배움의 장이 아니었어요. 학습과 더불어 천재적인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많은 연주 기회가 있는 곳이었죠. 마치 저를 위해 조성된 멋진 도시 같다는 착각에 빠진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왕가 시절의 엄청난 부로 클래식 음악의 메카가 됐다. 이는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이 없는데 음악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국민들의 ‘음악 사랑’ 역시 대단하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심포니커, 쉬타트 오퍼(빈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외에도 실력 있는 군소 오케스트라가 유지되고 있다. 또 각 베지리크(Bezirk, 행정구역상 구에 해당)에는 장엄한 음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역사 깊은 가톨릭 성당에서 정기적인 음악회가 연일 펼쳐지는데, 청중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세계적인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가 시민들이 주로 다니는 동선에 위치하고 있어 유명 음악가의 연주회와 시 주관의 수준 높은 공연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오스트리아의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새로운 연주 기법과 장르를 개발한다.

오스트리아는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주최 측의 타이틀에 따라 2백여개의 무도회가 열린다. 사진 속 장면은 베이커리 무도회.

오스트리아는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주최 측의 타이틀에 따라 2백여개의 무도회가 열린다. 사진 속 장면은 베이커리 무도회.

“유학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빈 유학 시절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빈 국립음대와 음악계에선 탁월한 실력만 있으면 내외국인 구별 없이 음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교 선후배 간의 눈총이나 텃세도 없었죠. 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연주가는 시샘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오스트리아의 대학은 공석이 발생해야만 입학이 가능하다. 때문에 다음 학기에 원하는 학과에 공석이 없다면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몇 년이고 기다려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최고의 행운을 누렸는데 ‘더블베이스의 황제’라 불리는 루드비히 슈트라이허(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세계적인 솔리스트) 교수의 제자가 된 것이다.

“슈트라이허 교수의 제자가 된 다음날부터 저의 삶은 달라졌습니다(웃음). 그의 제자라는 타이틀은 저를 학교 안팎에서 인정받게 해줬거든요. 덕분에 참 신나게 유학생활을 했어요. 오케스트라의 신입 연주자 오디션도 주최 측의 까다로운 서류 심사 후에나 초대받을 수 있었는데, 저는 교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에 미리 초대장을 받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자부심만큼 책임감이 따랐고 날마다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근면, 성실함, 부지런함, 각별한 자기관리는 기본이었고요.”

스트라이히어 교수는 동양인 변주영의 신비로움에 끌려 그녀를 첫 한국인 제자로 삼았다고 한다. 이후 그녀의 매력에 빠진 교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마스터 클래스와의 연주회에 그녀를 독주자로 추천했다.

# 그녀의 행복 멜로디 2
클래식의 고향·사운드 오브 뮤직
사실 오스트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는 빈과 잘츠부르크다. 빈의 경우 미국의 컨설팅사인 머서(www.mercer.com)가 전 세계 2백21개 도시를 대상으로 선정한 ‘2012년 삶의 질’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곳이기도 하다.

“빈은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거대하지도 않은 건물들이 아담한 높이로 늘어서 있어요. 덕분에 파란 하늘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또 과거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도시이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시민들의 질서 의식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높은 긍지, 특유의 여유로움이 묻어 있는 빈 스타일 덕분에 생활면에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안정되다 보니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곤 했죠.”

빈 소년 합창단과 기숙학교.

빈 소년 합창단과 기숙학교.

뿐만 아니라 ‘클래식의 고향’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빈에는 음악가들의 묘지가 따로 있을 정도다.

“빈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배가 모차르트의 현 무덤은 시체가 없는 ‘깡통 무덤’인데, 흑사병으로 죽은 이름 없는 무덤들 중 어디엔가 모차르트가 묻혀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러면서 그 묘지를 방문하면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웃음). 그때까지만 해도 유학생활의 두려움이 앞섰던 시기라, 그 주 주말에 묘지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오스트리아와 돈독한 인연을 맺고 있는 걸 보니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웃음).”

잘츠부르크 역시 모차르트를 배출한 도시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이 지역을 가리켜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름다운 그림엽서 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알프스 산자락의 멋진 풍경과 빈에서는 잘 볼 수 없던 키 큰 나무들이 어우러진 잘츠부르크 시내를 걷다 보면 이곳이 스위스의 모태 지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곤 했어요. 특히 모차르테움과 미라벨 정원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죠. 여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었고, 겨울의 잘츠부르크에서는 ‘겨울 스포츠 강국’답게 자연설이 장관을 이루는 스키장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 그녀의 행복 멜로디 3
천상의 하모니, 빈 소년 합창단
<B>1</B> 무대에 오른 빈 소년 합창단. <B>2</B> 알베르티나 광장. <B>3</B> 로나허 뮤지컬 극장.

1 무대에 오른 빈 소년 합창단. 2 알베르티나 광장. 3 로나허 뮤지컬 극장.

빈 소년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 한 여행객은 “마치 산속 작은 계곡 물이 흐를 때 포물선을 그리면서 내는 소리처럼 청명했고, 플루트 같은 미성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했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역시 이 합창단의 공연을 두고 “천사의 소리”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모든 이들에게 그렇듯 빈 소년 합창단은 변주영에게도 오랜 동경의 대상이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합창단의 목소리와 그들의 전통은 같은 음악인으로서 늘 부럽죠. 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어린 음악가들을 키우는 책임 있는 교육 환경에도 무한한 존경심이 들곤 합니다.”

빈 소년 합창단은 궁정 성당에 소속된 성가대로, 7~15세의 변성기 이전의 소년들로 구성되며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음악 훈련을 받는다. 5백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합창단은 1918년 독일 사회민주혁명으로 한때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1924년 다시 조직됐다. 종교음악 연주 외에도 민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갖고 있으며 오페라와 영화 등에도 출연해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프란츠 하이든, 프란츠 슈베르트, 클레멘스 크라우스 등이 소년 시절에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이 합창단을 위해 합창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각 21~25명으로 구성된 4개 팀 중 1개 팀만 국내에 남아 성 슈테판 성당의 미사나 연주회 활동을 하고, 나머지 3개 팀은 해외 순회공연을 한다. 한국에는 1978년 첫 내한 공연을 한 뒤로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하이든 서거 2백 주년을 기념해 한국 하이든 문화재단과 오스트리아 빈의 공동 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2회에 걸친 ‘하이든 음악여행’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외교부 대표인 발터 네티흐(사업가이자 정치가, 빈 상공회의소 대표 역임)가 빈 시장을 대신하는 국제특사로 방문했죠. 이분도 빈 소년 합창단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그분과의 인연으로 지난해 빈에서 ‘한국 하이든 문화재단 창립 10주년&한·오 수교 1백20주년 공식 기념 연주회’를 개최했는데,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일간지인 ‘크로넨 신문’에 저희 연주에 대한 기사가 실려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또 지난 연말에는 궁전 아우에르슈페르크 콘서트홀 ‘The Muth’의 개관식 연주에도 정식 초청을 받았어요. 여러모로 빈 소년 합창단은 저에게 ‘행운의 아이콘’ 같습니다.”

# 그녀의 행복 멜로디 4
음악 민간외교관
<B>1</B> 2012년 빈 란트만 카페 기자회견 리허설 룸에서 동료들과 함께. <B>2</B> 빈 소년 합창단 대표 발 터 네티흐씨와 합창단원들.

1 2012년 빈 란트만 카페 기자회견 리허설 룸에서 동료들과 함께. 2 빈 소년 합창단 대표 발 터 네티흐씨와 합창단원들.

변주영은 1996년에 귀국했다. 하지만 척박한 공연계 풍토와 문화생활에 대한 관객들의 냉랭한 시선에 그녀는 실망했다. 공연할 기회도, 보러 오는 관객도 적었다. 이런 생활이 오스트리아에 알려졌고 그곳의 친구들 역시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결국 그들은 그녀를 다시 오스트리아로 불러 NCC(New Classic Community)를 창단해 음악감독의 자리에 앉혔다. 단원들은 모두 이미 뛰어난 실력을 입증받은 솔리스트들이었다.

“무뚝뚝해 보이고 대꾸도 잘 안 해줄 것 같은 콧대 높은 첫인상과 달리 오스트리아인들은 동양인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어요. 특히 공자 등 철학자의 깊이 있는 가르침에 존경심을 표하기도 하고, 동양 문화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줄 줄 알죠. 개인적으로는 당시 타인의 일에 조언보다는 경청을, 비판보다는 묵묵히 지켜보던 그들이 참 야속했는데(웃음) 지금 돌이켜보니 언제나 조용히 말을 아끼면서 신뢰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2000년 그녀는 오스트리아 국영 방송인 아이젠쉬타트 ORF에서 협연을 했다. 이날 연주를 유심히 지켜본 하이든협회의 감독 라이히가 그녀에게 하이든 협회 아시아재단의 대표가 돼달라고 요청했다. 하이든협회는 하이든 음악을 위한 사업을 하는 세계 총본부로 국가 예산을 받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의회 의장이 의무적으로 협회장을 맡는 큰 조직이다.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한국에 알리고, 하이든의 작품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하이든의 높은 문화 공연을 한국에 가져오기도 하고, 한국의 음악인들과 그들 사이에 교류의 장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최근 그녀는 오스트리아 하이든 쉴로스 카펠레 오케스트라의 대표로 임명됐으며, 모차르트 공원 한국 설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음악의 민간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그녀에게 ‘오스트리아에서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오스트리아는 자신이 할 도리만 흐트러짐 없이 한다면 배신 없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고요. 여전히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떠날 때면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다른 사람의 삶을 구경하고, 저를 돌아봅니다. 급하지 않은 삶을 살게 해주는, 과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20년 전 바로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마이 해피 플레이스’입니다.”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제공 / 변주영, 아우어스 페르그 궁전, skyun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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