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여준 이는 청소 노동자 출신의 김순자(59) 전 후보였다. 지난 4·11 총선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기성 정치판을 흔들었던 김 전 후보는 이번에도 역시 ‘노동자 대통령’을 표방하며 대선에 뛰어들었다. 소외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하고, 보통 사람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구현하는 진정한 정치를 펼치고 싶었던 까닭이다. 결과는 낙선. 김 전 후보는 총 4만6천17표를 얻어 0.1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객관적으로 짚어봤을 때는 완주가 무색할 정도의 실망스러운 숫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훨씬 많은 지지를 획득한 그 어떤 정치인들보다 씩씩하고 희망적이었다. 주저앉아 머무르기보다는 누구보다 크게 ‘파이팅’을 외치며 다시 뛰는 것을 선택했다. 넘어진 그곳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서.
돌아온 일상, 무엇이 달라졌나
지난 총선 때는 선거가 끝난 다음날 바로 일터로 복귀해 ‘세상을 빛나게 하는 청소 노동자’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직접 트위터로 전하셨던데, 대선 이후에는 ‘공적인’ 인사들만 있더군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선거 기간을 워낙 정신없이 보내서 그런지, 끝나고도 쭉 그랬어요. 한 달 정도 지나니까 그제야 한숨 돌리겠더라고요. 물론 곧바로 일터로 돌아가서 늘 하던 대로 학교를 돌며 청소하고 한동안 못 만났던 동료들과 반가운 시간도 가졌죠. “고생 많이 하셨어요”라며 먼저 말 건네주시는 울산과학대학교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인사도 하고요. 특히 총장님께서 “애쓰셨죠. 표도 많이 나왔더군요” 그러시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후에 몇 군데 언론사와 인터뷰도 하고, 울산 지역 외에도 이곳저곳 집회 현장이나 강연회에서 불러주셔서 계속 바빴어요.
아직 일상으로 완벽히 돌아오지는 못하셨군요.
집회 참여나 단체 연대 요청은 대통령 선거 이전에도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기술대학교 지부장으로서 계속 참여했던 일이니까 일상이라고 볼 수 있긴 하죠. 다만 예전보다 저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게다가 선거 이후 좌절하고 주저앉는 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잖아요. 더욱 벼랑 끝으로 몰린 현안들도 많고, 새롭게 방향을 모색해보려는 움직임도 있고요. 제가 대선 후보로서 내걸었던 가치와 목표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해서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할 때인지도 몰라요.
선거 기간 내내 강행군을 소화하느라 지치기도 하셨을 텐데, 버겁진 않으신가요?
저는 이렇게 많이들 불러주시는 게 감사하기도 해요. 소외받는 이들, 부당함에 맞서고 있는 이들,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고 힘을 보태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또 선거 활동을 하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저를 응원해주시고 물심양면 도와주셨잖아요. 그 감사함을 갚기 위해서라도 ‘부름’에 답해야죠. 그동안의 제 경험과 활동들이 힘이 되기만 한다면 좋겠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다든가 개인 ‘김순자’로서의 생활도 찾으셔야 할 텐데요.
선거 운동 하는 동안 워낙 일정이 빡빡하고 불규칙하다 보니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아 신경 쓰고 있어요. 잠을 많이 못 잤거든요. 하루에 4~5시간씩 자면서 전국을 돌아다녔으니까요. 최근에는 산에 자주 갔어요. 원래 등산을 좋아했었는데 두어 달 동안은 산 근처에도 못 갔죠. 오랜만에 산을 오르니 다리도 무척 아프고 힘들더라고요. 처음 간 날은 3시간 정도 걷다가 내려왔는데 다음날 다리가 땅겨서 앉지도 못했어요(웃음). 아, 선거가 끝나자마자 미뤄뒀던 김장을 했어요. 예전에는 배추를 잔뜩 쌓아놓고 절이고 버무리고 했었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몇 포기밖에 안 해요. 그래도 일단 김장은 손이 많이 가니까 ‘해야 되는데’ 생각만 하면서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해치운 거죠. 주부들은 그런 큰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속이 시원하잖아요. 마음이 뿌듯해져서는 삶은 고구마랑 같이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무사히 대선 레이스를 완주하셨습니다. 선거를 끝낸 소감은 어떠신지요.
글쎄요. 시원섭섭하다고나 할까요. 사실 아쉬운 점이 많지요.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대변하고 최대한 해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큰 역할은 하지 못한 것 같아요.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지나고 보니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아요.
그동안 노조활동이나 총선 등을 거치면서 현실과 정치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했고, 또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움직이고 싸워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하셨는데요. 하지만 대통령 후보 출마는 보통 결심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제게 2012년은 새로운 전환점이 된 해였어요. 그야말로 ‘선거의 해’였죠. 몇십 년간을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로 살아오다가 이제껏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된 거예요. 집에서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살림 꾸리느라 바쁘게 살았던 ‘아줌마’가 50세가 다 돼 처음으로 ‘직장생활’이란 걸 하게 되면서 노조활동에 눈을 떴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적어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부분들, 먹고 쉬고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 정도만큼은 사회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정당한 노동에 따른 보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잖아요. 특히 총선 기간 동안 곳곳을 돌며 청소 노동자, 경비 노동자, 학교 비정규직분들을 만나면서 함께 바꿔나가야 할 일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당선이 되든 안 되든, 그 사람들과 같이 계속해서 노력하고 바꿔내야 한다는 점도 함께요. 절망하고 있는, 무기력해진, 체념에 빠진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시작했죠. 예전부터 제가 자주 했던 이야기가 국회에 우리 같은 청소 노동자 출신 의원이 3명만 있었어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처우나 노동 환경, 임금 문제가 지금 같진 않을 거라는 거였어요. 이 현실을 대변해줄 사람이 필요하단 거죠. 현실적으로 힘든 점이 무척 많겠지만, 저라도 나서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망쳐놓은 나라를 조금이라도 바꿔놓는 데 힘을 보태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린다는 심정이었어요.
직업란에 ‘노동자’라고 쓴 대선 후보가 두 명이었죠. 일각에서는 노동자 후보로 김소연 전 후보와 김순자 전 후보가 따로 나온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어요. 두 분 다 끝까지 각각 목소리를 내셨는데요.
진보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후보가 한 명이었으면 좋았을 거란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죠. 하지만 출마 이후 제게 어느 누구도 단일화하라는 제안을 하지 않았아요. 김소연 전 후보는 큰 조직에 속한 노동자로의 입장을 대변하려 했고 저는 그보다 더 소수로 흩어져 있는 분들의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해요. 서로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게 더 크지 않겠나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저는 사실 완주하지 않을 거면 처음부터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보통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고, 그 절박함 때문에라도 끝까지 제 목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19대 총선을 훌륭히 치러낸 경험이 있지만,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는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비록 국회에 입성하지는 못했지만, 총선을 통해 저와 같은 청소 노동자들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점과 그만큼 정치는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삶 하나하나와 연결돼야 한다는 점 등을 알릴 수 있어서 무척 뿌듯했어요. 물론 고민은 많았지만 대선도 그런 성과들을 기대하며 시작했어요. 선거 과정 또한 한 번 겪어봤으니 비슷하게 밟아나가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생각했고요. 그런데 막상 뛰어들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웠어요. 총선 때도 시간이 부족해 연일 강행군을 했는데, 이건 그보다 몇 배 더 바삐 움직여야 했어요. 몸도 정말 힘들고, 공부해야 할 것도 무척이나 많더군요. 정치, 경제를 비롯해 사회 모든 방면의 현안을 공부하고 확인하고 또 분석해서 정책을 내놓아야 하니까요. 게다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한 번 보고 들어선 기억이 잘 안 나는 거예요(웃음). 도와주시는 분들께 밤마다 과외를 받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대선을 거치면서 개인적으로는 참 많이 똑똑해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총선 때와 같은 혁신적인 활약을 기대했는데, 두드러지는 점이 없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를테면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TV 토론회에서는 현실을 반영한 생생한 언어로 ‘순자 어록’을 탄생시키기도 했잖아요. 방송에서 “최저임금이 1백만원도 안 되는데 그 돈으로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도둑질을 해야 합니까, 그냥 굶어야 합니까?”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는 속이 다 시원했거든요.
저의 역량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고, 또 선거가 초반부터 지나치게 양당구도로 고착되면서 제대로 기회를 얻기도 어려웠어요. TV 토론회도 각자의 정책을 심도 있게 펼치고 후보 간 진정한 토론을 벌이기 힘든 상황이었고요. 대통령 후보들조차 힘이 없으면 제 목소리 한 번 내기가 어려운 거죠. 언론 보도도 마찬가지예요. 하루 종일 움직여도 뉴스에 한 줄, 한 꼭지 나가기가 힘들어요. 현장에서도 유력 후보 일거수일투족은 다 찍고 기록하면서 저희 같은 무소속 후보들은 옆에 있어도 관심조차 없더라고요. 언제쯤 이런 부분들이 바로 고쳐질지 막막한 심정도 들었어요.
그렇다면 선거 경험이 있고 체계적으로 조직된 정당 안에서 출마했다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민주주의 선거의 기반이 정당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볼 때 무소속으로 나온 것은 좀 의외였습니다.
내부적인 사정이 여러모로 복잡했던 것 같아요. 저는 선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믿고 지지할 만한 후보가 반드시 나와야 하고, 진보신당에서 그런 후보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니,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죠. 정당이 있고 지향점이 있는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홍세화 대표가 출마를 고려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반가웠어요. 찍을 후보가 있다는 게 다행스럽더라고요. 그런데 결국 안 하기로 하셨다고 하고, 당원들이 제게 출마를 제안해왔어요.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라며 거절했어요. 대통령 후보라니,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다 자신도 없었고요. 계속되는 설득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몰라요. 한 달여를 망설인 끝에 결심을 하긴 했는데, 이후 진보신당에서는 당론으로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더라고요. 자세한 논의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저와 함께하겠다는 동지들과 다시 논의를 시작했죠. 그리고 처음의 결심을 살려 끝까지 함께해보자는 데 뜻이 모아져 결국 탈당을 하고 출마하게 된 겁니다. 그동안 저를 지지하고 함께 뛰어준 당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결정이었어요.
그래도 김순자 전 후보와 함께 미래를 꿈꾸고 그리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기꺼이 귀중한 표를 던진 유권자들도 4만여 명이나 되고요.
출마를 결심하고 나서도 후보 등록 비용 마련부터 시작해서 곳곳에 산적한 문제들과 맞닥뜨려야 했어요. 참 대단한 건 사람들의 힘으로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해왔다는 겁니다.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저를 지지하고 후원해주신 분들 덕에 여기까지 왔어요. 굉장한 감동이죠. 실제로 자신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선거 비용에 보태준 분도 계셨어요. 무척 죄송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어요. 또 지지를 호소하며 거리 연설을 할 때 차를 대놓고 유심히 들어주시던 시민분들, 공감하며 손뼉 치시던 분들, 제게 용기가 대단하다며 힘내라고 손 잡아주시던 분들, 추운 날 고생한다며 피로 해소제며 목도리 등을 선물해주신 분들, 한 분 한 분 다 생각나요. 무엇보다 저를 보면서 가진 것 배운 것 없는 사람들도 사회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시던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평범한 국민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아요.
절박한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소가 아닌 직접 삶으로 체득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는데요. 그래서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들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사회와 정치에 무관심해지거나 냉소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노동자들에게는 선거 기간 때만 바짝 관심을 갖고 온갖 장밋빛 공약들을 늘어놓지요. 가만히 있어도 손발이 꽁꽁 어는 이 추운 날씨에 철탑 위에 올라간 노동자들 앞에서 외치는 ‘사람 사는 세상’이란 공허한 구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보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해법과 약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내세운 노동 시간 단축, 노동자 유급 안식년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주장은 결코 어려운 것도,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대다수 국민들의 행복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반드시 실현해야 할 가치들이죠.
특히 ‘청년 알바들의 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띄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중에서도 특히 이쪽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를 비롯해서 제 주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 대개 큰 회사보다는 작은 사업장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우선 서너 명 혹은 많아도 열 명 이내의 소규모 노동자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요즘 상당수가 아르바이트생이에요. 예전에는 아르바이트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일로 했다고 하면, 지금은 정규적인 ‘직업’이 됐어요. 그런데 이들이 일하는 현실이 무척이나 열악하고 힘든 거예요.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놀랍고 심각한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없는 거죠. 무엇보다 최저임금 문제만큼은 꼭 해결하고 싶었어요. 시간당 4천5백80원인 최저임금으로는 한 달을 꼬박 일해도 최소한의 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들어요. 제가 이런 주장을 하니 당사자인 ‘알바 노동자’들이 먼저 사업장 걱정을 할 정도로 소심해져 있더라고요. 그들이 당당히 노동의 가치를 요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구심점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알바 연대’가 꾸려진 것이군요. 그러면 앞으로는 ‘알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주력할 계획인가요?
선거 이후, 젊은 친구들과 함께 만든 ‘알바 연대’의 대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무엇보다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이 저희의 가장 큰 화두예요. 현재 10만 명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고, 각종 강연이나 토론회도 개최하고 있어요. 낮은 최저임금은 기본적인 삶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노동의 가치도 천시하게 만들어요. ‘알바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고용주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바꿔내고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아 부을 예정이에요.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제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애당초 선거 자체가 아닌 좋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으니까요.
선거가 끝나고 비록 추구하는 가치들의 실질적인 변화는 당장 이뤄낼 수 없게 됐지만, 오히려 이 시점에서의 행보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는 책임과 역할을 따지는 데서 벗어나 현재를 잘 수습하고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분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요. 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요.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데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에요. 새 대통령께서도 선거 기간 동안 내세웠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관한 공약만큼은 반드시 지켜주시길 바라봅니다. 협동조합과 같은 여러 대안이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이어졌으면 하고요. 저는 계속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발로 뛰며 노동과 정치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선거를 치르면서 힘들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끝까지 노력해봐야겠다는 희망도 발견했어요. 또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면서 더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아무리 훌륭한 대안과 정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인물의 힘만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겠지요. 그만큼 사회 각 구성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처음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늘 조합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뭉치면 주인이 되고 흩어지면 노예가 된다”라고요. 종종 “나는 아직 괜찮아” 혹은 “누군가 바꿔주겠지”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어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직장 어디든 가봐라. 비정규직의 처지는 별다를 것 없다. 지금 네가 있는 자리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싸워서 바꿔야 한다”라고요. 현실이 워낙 각박하고 매서워서인지 젊은이들조차 너무나 움츠러들어 있어요. 부당한 점을 느껴도 무조건 참는다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자본 앞에서는 고개 숙이고 순종해야 하는 거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욱 그래요. 하지만 우리가 무작정 쉬게 해달라거나 돈을 더 달라거나 잘 살게 만들어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충분히 성실하게 일한 만큼, 또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땅에 떨어져 있는 노동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찾아 올려놓을 수밖에 없어요.
대선 이후 진정한 발걸음을 시작한 한 시민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요?
우리부터 생각을 바꿔내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겁니다. 돈도, 지식도, 경험도, 명예도 없는 평범한 청소 노동자였던 제가 이렇게 사회를 바로잡겠다고 앞장서게 된 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부터 스스로 움직여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소리 내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아요. 그리고 당장 나만 어려움에서 벗어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입니다. 사회구조 자체가 지금과 같다면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은 결국 피폐)ㄴ해질 수밖에 없어요. 부당한 것, 잘못된 것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