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복지를 생각하는, 시민들의 시의회
김명수 서울시의회 의장(54)과 송윤미 여사(52)와의 인터뷰가 있던 날은 제246회 서울시의회 임시회 개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서울시정과 교육행정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논의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 잠시 시간을 내 마련된 인터뷰. 인터뷰 장소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 도착한 부부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봄꽃들에서 쉬 눈을 떼지 못했다. 2010년 출범한 제8대 서울시의회 민주당 원내대표와 운영위원장을 거쳐 지난해 서울시의회 의장에 선출된 김명수 의장은 9개월째 의회를 이끌어오고 있다. ‘작은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서울시의 시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그간 계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밀려드는 민원과 결제 건들을 처리하고 정책 방향 토론과 회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면 시곗바늘은 어느덧 자정을 향하기 일쑤다. 최근 부쩍 살이 빠진 남편을 바라보는 송 여사의 마음은 여느 아내들과 다르지 않다.
“남편이 두 달 만에 8kg이나 빠졌어요. 체력 하나는 자신 있어 하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살이 빠지니 걱정도 되고 안쓰럽죠. 식사는 꼬박꼬박 챙기도록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아요. 아침엔 간단한 선식이라도 준비해서 빈속으로 출근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편이에요.”
“사실 예전에는 서울시의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서울 시민들도 잘 모르셨어요. 지방 선거 때에도 시장이나 구청장보다 관심이 적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8대 서울시의회가 출범한 이후로는 확실히 달라진 것을 느낀다는 시민들이 많아지셨어요.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사람과 복지 중심의 행정이 빛을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습니다.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고 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몸 힘든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번째 만남에 프러포즈, 석 달 만에 웨딩마치
전남 화순이 고향인 김 의장은 젊은 시절 사회교육사업으로 성공한 뒤 아태평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후원 활동을 해오다 1998년 서울시의원에 선출돼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송 여사를 만난 건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그가 사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시기였다.
“젊은 시절 교육사업가로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했어요.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했죠. 이제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학부모님들께 중매를 부탁드렸어요. 당시 꽤 많은 여성분들을 소개받았는데, 그중 딱 한 명 제 마음에 들어온 사람이 집사람이에요.”
그는 맨 처음 아내를 만났던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약속 장소에 그녀가 나타나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단다. 흔히 말하는 ‘첫눈에 반한’ 순간이자 일생의 동반자를 만난 순간이었다. 게다가 다방에서 차를 마신 후 그녀가 2차를 사겠다는 제안까지 했으니 그녀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음을 확신했다. 결정적으로 정이 많고 진지한 자신과 달리 활달하고 밝은 아내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이 사람과 살면 돈이 없어도 우리 두 사람이 평생 부족함이 없겠구나’라는 심정이었다고. 결국 두 번째 만난 날 프러포즈를 하고 석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사실 아내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는 건 나중에야 들은 얘기다.
그녀가 기억하는 김 의장의 첫인상은 ‘사투리 쓰는 전라도 청년’이었다. 발목 위로 껑충 올라오는 양복바지에 말끝마다 진한 사투리가 묻어나오던 그 청년이 평생 배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의 추진력은 대단했어요. 불쑥 저희 집에 찾아와 아버지께 결혼 승낙을 받는데 말을 무척 조리 있게 잘하는 거예요.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두 사람이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죠. 결국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식을 올리게 됐어요.”
하루빨리 부부가 되고 싶었던 마음에 김 의장이 잡아온 결혼식 날짜가 6월 6일이었다. 송 여사는 순국선열을 추도하는 현충일에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며 반대했지만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어느덧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끔, 어쩌다 현충일에 결혼을 하시게 됐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김 의장은 ‘허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단다. “부부가 국가관이 남달라서요”라고 말이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은퇴 없는 삶’
“그 힘든 길을 왜 가려고 하는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고요. 솔직히 남편이 정치를 시작하고 나서 원망도 많이 했는데, 처음 시의원 선거를 치를 때 선거운동으로 밤새 끙끙 앓던 사람이 시민들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 이게 이 사람이 정말 원하는 삶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남편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곧 저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이 행복하면 저도 우리 가족도 다 괜찮을 거라고 믿었고 남편 역시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어요.”
성실함과 추진력, 송 여사가 아내로서 정치인 남편의 장점으로 꼽는 것이다. 김 의장의 업무는 귀가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전화벨이 울리는 한 남편의 업무는 계속된다는 것이 송 여사의 말이다.
“집에 있을 때도 지역 주민분들께서 전화로 민원을 요청해오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해당 부서나 담당자를 연결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스타일이에요. 일을 추진하고 밀어붙이는 힘이 굉장히 강해요. 이런 부분을 주민분들께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공무원은 고도로 발달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김 의장의 생각이다. 민원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결국 미뤄지고 사장되게 된다는 것.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 신속하고 명확하게 해결점을 찾아내는 것이 시민의 혈세로 살아가는 공무원의 책임이자 의무다.
“시민이 설령 불법을 저질렀다고 해도 공무원은 그 불법 사실만을 봐서는 안 됩니다. 왜 그 사람이 불법을 저지르게 됐는지,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피고 찾아서 알려줘야 해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정보거든요. 시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정말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역시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성공회대에서 사회복지학과 석사학위를 받고 오랜 시간 사회복지가로 활동해온 김 의장은 여러 복지사업 중 특히 노인 복지에 각별하다. 송 여사 역시 남편의 뜻에 따라 몇 해 전부터 요양보호사로 독거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중이다. 재가복지센터를 운영하며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요양보호사도 양성하고 있다.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고 뜻을 따라준 아내에게 김 의장은 고마운 마음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함께할 사람이 있는 삶을 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삶이 저에게는 가족 그리고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다시 개인의 입장이 되면 더 큰 정치를 하기 위해 저와 가족을 혹사시키지 않을 생각이에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한 제 사전에 ‘은퇴’란 없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요양사업을 통해 봉사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 부부의 노년은 행복할 거라 생각해요. 그때까지 서울시와 가족을 돌보며 제 할 일을 열심히 해나갈 계획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프리랜서) ■장소 협찬 / 서울시립미술관 석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