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내가 스타! ‘박카스 할아버지’ 곽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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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중반 할아버지에게 신선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양강장제 CF에 출연한 곽용근씨는 예외였다. 설렌 마음으로 손자들을 기다리다 막상 장난꾸러기 아이들로 인해 집 안이 난장판이 되는 모습에 망연자실하는 할아버지.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의 표정 연기는 기존의 모델에게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내가 스타! ‘박카스 할아버지’ 곽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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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 곽용근씨(75)의 일자 워킹이 인상적이다. 중절모에, 파란 티셔츠 그리고 청바지. 패션의 완성이다. 평소 팔자걸음을 걷는 기자에게 ‘갈지(之)자가 웬 말이냐’라며 5m 앞을 내다보고 배와 허리에 힘을 주며 걸으라고 충고한다. 평생의 습관이라도 6개월이면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그를 만난 덕수궁 앞에서 워킹 훈련이 시작됐다. 곽용근씨는 10여 년 전부터 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모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워킹, 표정, 연기, 패션 등을 익혔다고 한다.

“IMF로 회사에서 퇴직하고 막 환갑을 넘긴 나이에 서초노인복지관을 찾았어요. 처음에는 컴퓨터나 배워볼 작정이었죠. 그런데 제 눈에 들어온 건 복지관의 모델 교육 프로그램이었어요. 교육을 받으며 과거에는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을 느꼈지요.”

그는 한양대학교 화공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이후 승승장구해 현대종합금속 공장장과 광덕기계공업 부사장을 지냈다. 한때는 강남에 30억원 상당의 빌딩을 살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1990년 철강 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다 부도가 나면서 재산을 잃고 말았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을 자주 탔어요. 정상에 올라가면 자살 충동까지 일 정도로 피폐해 있었죠. 그런데 다 늙어서 모델로 제2의 인생을 살 줄 어찌 알았겠어요. 연기라고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했던 연극이 전부인데 말이죠(웃음).”

그의 모델 데뷔작은 2004년 모 보험 회사의 지면광고였다. 복지관을 통해 모델 섭외를 하러 온 광고대행사를 통해 발탁됐다. 최근 화제가 된 자양강장제 CF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뽑힌 것이다.

“저는 촬영할 때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 편이에요. 박카스 CF는 아이들과 강아지가 함께 나와야 했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서 촬영 시간이 길어졌지요. 그래도 서너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실제로 다섯 명의 손자가 있어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현장에서는 무조건 감독의 말을 따라 최소한으로 NG 컷을 줄인다는 자신만의 연기 철학을 갖고 있기도 했다.

“오래 찍는다고 좋은 그림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기획한 감독의 말만 그대로 잘 따라서 하면 좋은 그림이 나오게 마련이죠. 감독들이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제 수염에 까만 털이 몇 가닥인지도 알 정도로 세심하고 꼼꼼하더라고요.”

자고 일어나니 내가 스타! ‘박카스 할아버지’ 곽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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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연극이다
CF를 통해 곽용근씨를 처음 봤을 때 워낙 참신한 느낌이라 연기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일반인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아온 준비된 프로였다. 그간 부족한 표정 연기를 보충하기 위해 연극 무대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순간에 많은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CF 모델은 꼭 연극을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웃어라, 울어라’라는 감독의 지시에 따를 수가 없어요.”

그의 두 번째 출연작인 통신사 케이블 광고. “할아버지 집에는 뽀로로가 안 나오잖아!” 하며 매몰차게 돌아서는 손자를 보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는 탁월한 연기. 단 한 번의 연기로 OK 사인을 받아내 현장 제작진들의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그 장면은 ‘어머니의 사랑’을 연상하면서 촬영했어요.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지요. 연기는 삶의 기본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희로애락이 다 녹아 있잖아요.”

그는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각종 언론 매체에서 취재 요청이 쇄도하고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인생의 수많은 고비를 넘겼던 그에게 이런 변화를 신기할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다며 덤덤히 말한다.

“세상에는 낮은 곳도 높은 곳도 없어요. 그저 제 앞에 놓인 하루하루라는 평평하고 아름다운 길을 걸어갈 뿐이에요.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요?”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학창 시절에는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군대도 ROTC 장교로 다녀왔다. 지금까지도 자기관리는 철저하다. 수영과 평행봉은 젊은이들보다 자신 있다고 말한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스텝 바이 스텝으로 천천히 나가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영화든 드라마든 정통 연기도 해보고 싶고요. 한번 멋지게 데뷔해서 세상을 떠날 때 원한이 없도록 말이지요.”

불과 3년 전 그의 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진 실버 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두 편의 CF를 통해 어느 정도 이뤘다고 볼 수 있으니 짧은 기간에 목표를 달성했다. 정통 사극 연기에 대한 도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란 사실을 몸소 보여준 증인이니까 말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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