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인연! 한좋은·몬세라트 피네이로 부부의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인연! 한좋은·몬세라트 피네이로 부부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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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넷에 이어 아들을 낳은 부모는 무척이나 좋은 기분을 그대로 담아 아들 이름을 ‘좋은’이라고 지었다. 꾸밈없는 담백한 성정은 자연스럽게 대물림이 되는 것일까. 멕시코 여자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백 마디 말보다 진심을 보여주는 그 남자가 있으니 한국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건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인연이라는 게 진짜 있긴 있구나.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구나’ 지금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눈을 딱 뜨니까 식장인 거예요. 아, 내가 진짜 이 사람과 결혼하는구나. 꿈꾸는 줄 알았어요. 말로는 표현이 안 돼요,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 같은 인연! 한좋은·몬세라트 피네이로 부부의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인연! 한좋은·몬세라트 피네이로 부부의 그 순간

한참을 칭얼대다가 아빠가 한달음에 사온 감기약을 먹은 아티나는 어느새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지난 1년간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한좋은씨는 주저 없이 지난해 말 딸이 태어났을 때를 꼽았다. 인생사 경이로움의 강도가 있다면 2세의 탄생만큼 강력한 것이 있을까. 아무리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인연으로 맺어진 부부라고 할지라도.

어느 날 내 인생에 등장한 그녀
한좋은(35)·몬세라트 피네이로(33) 부부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했다. 한 번의 데이트와 1년간의 이메일로 맺어진 커플? 이 부부의 남다른 인연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커다란 물음표가 먼저 그려졌던 게 사실이다.

소개팅을 앞두고도 사전 조사를 하고, 하물며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여러 차례 가격비교를 해보며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세상에 어떻게 부부의 연을 그렇게 ‘심플’하게 맺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첫눈에 반했어요”라는 대답은 사양하기로 했다. 요즘은 드라마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신화이지 않은가. 이 사람이다, 를 감지한 ‘그 순간’의 느낌이 몹시도 궁금했다.

멕시코시티 힐튼에서 근무 중이던 주방장 몬세라트씨는 2009년 9월 밀레니엄 서울힐튼에서 열린 멕시코 내셔널 데이 행사에 초청돼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이 호텔 패스트리 파트에 근무하는 셰프 좋은씨가 몬세라트씨를 비로소 알게 된 건 1년 뒤. 같은 호텔 뷔페식당 오랑제리의 멕시코 음식 특선 초청 조리장 자격으로 다시 한국을 찾은 그녀가 핼러윈 브레드를 만들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주방을 찾으면서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좋은씨는 “예쁘다”라고 말해버렸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굳이’ 영어로 몬세라트씨에게 그 얘기를 전한 덕분에 첫 대면의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키 큰 남자가 있어서 올려다봤는데, 셰프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정말 멋있더라고요(웃음). 얼굴도 하얬고요. 몇 번 얘기를 나눴는데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한국 남자와 결혼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절대.”
프랑스에서 요리 유학을 했고, 이후 유럽 활동 계획까지 세우고 있던 몬세라트씨가 막연하게나마 그리던 배우자는 프랑스어를 쓰는 파란 눈의 금발 남성이었다.

“그 느낌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사귀는 것과 이 사람과 일생을 보내는 것, 그 관념이 다르게 보이지 않았어요. 이 여자가 내 옆에서 함께 삶을 살면 굉장히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통은 처음 만나면 사귀는 것까지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 인생에 이 사람이 확 들어온 것만 같았어요. 네, 그거였어요!”

백 마디 말보다 진심 어린 배려
18일간의 한국 일정이 끝날 무렵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사려는 그녀를 위해 가이드를 자청한 좋은씨는 인사동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를 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아쉬움과 서로의 이메일 주소뿐. 그로부터 1년간 이메일이 오갔다. 익숙지 않은 영어 탓에 짧은 사연만을 보내는 답답함 그리고 물리적인 거리감이 주는 불안함. 우직한 경상도 사나이의 가슴에 확 불이 지펴진 것은 그녀의 프랑스행 결심이 담긴 이메일 때문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잘 가라고, 잘 먹고 아프지 말라는 인사만 짧게 보내고 만 하루를 앓았다. 머리로는 보내고 싶었지만 마음은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대로 보내면 끝일 것만 같았다. 한국으로 와달라는 장문의 이메일을 썼다. 이번엔 한국어로.

평소 그렇게도 순할 수가 없다는 딸 한 아티나 솔.

평소 그렇게도 순할 수가 없다는 딸 한 아티나 솔.

마음 졸이는 2주가 지나갔다. 그녀에게 답이 왔다. 한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좋은씨의 편지를 번역하고, 그의 프러포즈에 마음을 다잡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 지체 없이 전화를 걸었다. 한국으로 가겠다고. 2010년 11월 드디어 그녀가 한국으로 왔고, 이듬해 1월 결혼식을 올렸다. 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식당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하객이 야속하기도 하고, 소녀 시절부터 그려온 로맨틱한 해변 웨딩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청담동 드레스를 권하는 남편에게 아현동 드레스가 좋다고 고집을 피운 속이 꽉 찬 여자였다.

몬세라트씨는 이제 한국말을 제법 한다. 물론 편한 영어만큼 속도가 붙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틈틈이 익힌 한국말 실력은 시댁 식구들이 만날 때마다 놀랄 정도. 그 덕인지 좋은씨의 영어 말하기 실력은 아직은 마음 같지 않다.

“사람들이 저한테 ‘부부싸움 할 일이 없겠다’라고 해요. 말이 안 통하니까(웃음).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 싸우는 게 아니에요. 한 번은 제가 퇴근 후 피곤해서 아내가 하는 말을 건성건성 듣고 있었더니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시 말해보라’라고 하더라고요. 뜨끔했죠. 그러더니 ‘피곤하면 바로 말해. 나중에 얘기하면 되니까’라고 하더라고요. 아내는 그때그때 감정을 표현해요. 이렇듯 저를 이해해주니, 저도 바뀌더군요.”

규칙적으로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도 사전에 구매 리스트를 적어서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린 뒤 최단시간에 쇼핑을 마치는 것을 즐기던 그였다. 충동구매는커녕 필요하지 않은 매장을 둘러보는 여유도 모르고 살았다. 쫓기듯 살던 그의 인생에 여유가 되어준 사람이 몬세라트씨였다.

“(남편과 살면서) 전 좀 더 인내심 있는 사람이 됐어요. 스트레스도 덜 받고 이해심도 많아졌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퇴근 길 자신이 좋아하는 초밥을 사들고 귀가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러블리하다’며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백 마디 말보다 앞서는 배려가 부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었다. 요즘 몬세라트씨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내 체류자 커뮤니티를 위한 잡지 창간 작업에 바쁘다. 게다가 전공을 살려 멕시코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타말레스 인 코리아’라는 웹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5개월 된 아이를 돌보면서 혼자 힘으로 5백 인분 주문까지 소화한 적도 있단다. 좋은씨조차 아내의 왕성한 추진력에 “매일매일 놀라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가 따로 없다는 감탄에 “멕시코 여자들은 다 그렇다. 우리 할머니도 그랬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페인어 문화권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그녀의 포부까지 귀 기울여 듣다가는 이 부부가 맞은 모처럼의 휴일을 몽땅 빼앗을 것만 같았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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