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한센인들에게 사랑의 의술 펼친 치과의사 강대건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33년간 한센인들에게 사랑의 의술 펼친 치과의사 강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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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대문구 영천시장 입구, 허름한 건물 2층에 들어서니 언뜻 보아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오래된 치과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40년 가까이 치과를 운영해온 강대건(81) 원장은 한센인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1979년부터 전국을 돌며 한센인들의 아픈 이를 치료해온 것이 어언 33년. 지난해 가을 노환으로 봉사를 그만두기까지 그의 매 주말은 언제나 한센인들과 함께였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33년간 한센인들에게 사랑의 의술 펼친 치과의사 강대건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33년간 한센인들에게 사랑의 의술 펼친 치과의사 강대건

“젊은 시절 가톨릭치과의사회 모임을 통해서 나환자 정착촌에 치과 무료 진료를 갔던 것이 계기가 됐어요. 당시만 해도 한센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기에 한센인 환자들은 치과 치료는 고사하고 생계를 이어가기도 힘들었어요. 아파서 병원에 가면 ‘병원 문 닫게 할 일 있느냐’라며 내쫓기는 시절이었죠. 그런 모습을 보고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설 자리는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것이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센인들이 공동묘지 옆에 동네를 형성하고 살았을 정도로 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따갑던 시절, 경기도 음성 나환자 정착촌에서 무료 진료를 시작한 그는 경기도 안양 한센 환자 요양소를 비롯해 경상도와 전라도 구석구석까지 전국을 돌며 한센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왕진 가방을 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환자들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하나 둘씩 환자가 줄어들고 더 이상 진료할 환자가 없으면 환자를 찾아 다른 곳에 터를 잡았죠.”

대구에서는 가톨릭피부과 병원 옆에 작은 방을 얻어 진료실을 꾸렸고, 전라도에서는 10년 동안 열군데의 성당 공소를 옮겨 다니며 진료를 이어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이지만 환자를 진료하는 데는 종교와 사람의 구분이 없었다. 한센인과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 무료 진료 말고도 인근의 중·고등학교와 구세군 사관학교에까지 그의 손길이 미쳤다. 그가 지금까지 한센인들에게 만들어준 틀니만 해도 5천여 개. 그에게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고 진료기록부만 두꺼운 공책으로 열 권이 넘는다.

처음에는 진료비는 물론 재료비조차 받지 않고 자비를 들여가며 무상 진료를 하다가 “그렇게 하면 오래할 수 없다”라는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재료값만 받기로 했다. 재료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은 사실을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한센인 공동체에 전액 기부했다. 기공비를 아끼기 위해 틀니 등을 직접 만드느라 정작 자신의 병원 일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한센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에게 포기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무리하다 싶은 봉사에 반대했던 아내와 네 딸도 나중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가족의 응원과 지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수십 년 동안 환자들을 만나오며 가슴 뭉클했던 적이 셀 수 없이 많아요. 치아가 없는 환자에게 틀니를 해주면 다시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신체적 변형이 많은 한센인들의 특성상 맞는 틀니를 갖기가 쉽지 않거든요. 앞니가 없는 환자에게 이를 해 넣어주면 아이처럼 좋아하죠. 그런 모습들을 보며 저 역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지난해 가을, 건강 문제로 봉사를 그만둔 그는 이제 병원 일도 접고 조용히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처음 봉사를 시작했던 1970년 말, 40만 명에 달하던 한센인은 이제 1만2천여 명으로 수가 크게 줄었다. 30년 넘게 해오던 봉사를 그만두고 약간의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구나 하는 심정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봉사, 그가 여든이 넘어서까지 봉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33년간 한센인들을 찾아 기차와 택시로 전국을 누비면서 교통사고 한 번 나지 않았어요. 힘들고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도와주신 분들도 많았고요. 저로서는 참 감사한 삶이었습니다.”

어려운 이들과 함께한 수십 년의 세월이 녹아든 백발 치과의사의 인자한 미소는 무르익은 봄볕만큼이나 따스했다.

※미소 한 스푼에서는 숨 가쁜 일상 속 비타민이 돼줄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쉬어가는 건 어떨까요. 지친 하루에 기분 좋은 미소를 부르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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