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차 주부 기자, 내 남편의 본심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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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9개월 차. 기자는 모두가 말하는 ‘아직은 좋은’ 신혼이다. 하지만 매 순간이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행동들을 마주할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대나무 숲이 필요했다. 여자들이 알지 못하는 남자들의 속마음, 새댁 기자가 「남편의 본심」의 저자 윤용인 작가를 만나 시원하게 물었다.

40대 남편은 아내가 샤워할 때 무섭고(고개 숙인 남자), 50대 남편은 아내가 곰국 끓일 때 무섭고(장기간 여행 떠날까 봐), 60대 남편은 아내가 이사 가자고 하면 무섭고(자기 버리고 이사갈까 봐), 70대 남편은 아내가 등산 가자고 하면 무섭고(산에다 자기를 버리고 올까 봐), 80대 남편은 아내가 목공소 가자고 할 때 무섭다(자기 관 짜러 가나 싶어서)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30대 중반인 기자의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남편은 “이런 거 물을 때…. 그리고 저거 참 예쁘다고 말할 때”라고 답했다.

양말 좀 벗지 그래
9개월차 주부 기자, 내 남편의 본심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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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혼 초, 하루 종일 신었던 양말을 잠들기 직전에야 벗는 남편의 습관에 깜짝 놀랐어요. “양말 한 짝으로도 싸움이 시작된다”라는 선배들의 말을 제 눈으로 목격하고 실감했죠. 여전히 퇴근 후 ‘양말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요. 남자들은 왜 그렇게 씻는 걸 싫어하죠? 왜 남편들은 아내들이 쫓아다니며 “손 씻어라”, “발 씻어라”, “양치해라”라고 노래를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걸까요?


A 저는 남자치고 잘 씻는 편이라 이해를 못하겠어요(웃음). 예전에 친구 2명과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2박 3일 내내 그들은 제게 씻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죠. 보는 것만으로도 근질거릴 지경이라 마지막 날엔 두 사람을 대중탕으로 끌고 갔어요. 하지만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 친구들은 샤워기를 틀고 몸을 씻는가 싶더니 정확히 15초 만에 밖으로 나갔어요. 그런 일이 몇 번 계속되면서 참지 못한 저는 여러 친구들이 있는 술자리에서 두 사람의 만행을 폭로했어요. 여자들은 ‘우욱’ 하며 토하는 흉내를 냈지만 남자들은 달랐어요. 오히려 “하루 이틀 안 씻어도 사람 안 죽어”라고 했죠.

조금 과장해 이야기하자면 남자들에게는 씻기 싫어하는 유전자가 있어요. 씻는 것 자체를 일종의 변화로 보는 건데,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변화를 싫어하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죠.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집 안 가구들이 모두 위치를 이동해 있더라. 이건 남자들이 풀지 못하는 여자들의 미스터리 중 하나 중 하나예요. 도대체 저 무거운 것을 어떻게 아내 혼자 옮겼을까, 하는 경이로움과 함께 왜 이것들을 기를 쓰고 옮겨야 했나, 하는 궁금증에 빠지죠. 여자는 그렇게 해야 기분 전환이 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해서 생기는 일시적 혼란과 불편을 싫어해요.

씻기 싫어하는 남자의 정신세계 어딘가에는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루 종일 몸에 붙은 먼지, 적당한 땀과 텁텁한 입 안…. 이 모든 것을 씻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쾌함보다 지금의 일체감 혹은 안락감이 더 좋은 거죠.

물론 예외는 있어요.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자발적으로 씻어요. 뛰고 구르느라 온몸이 더러워진 훈련병들에게 주어진 샤워 시간은 그리 길지 않거든요. 옷을 벗고 비누칠을 하고, 머리를 감고…. 심지어 속옷을 빠는 기적을 실행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더운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입김을 호호 불며 적극적으로 씻곤 했죠(웃음).

개인차는 있겠지만 남자들이 잘 씻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 듯해요. 저는 어느 순간 친구들이 제 잔소리를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두 사람은 피로 맹세한 동지처럼 우정을 강화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기도 했죠.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Q 며칠째 이어진 야근으로 집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저녁 식사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화를 걸었는데 남편은 이미 만취 상태더라고요. 동료의 고민을 들어주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변명하면서 그 와중에 “막차는 타고 들어갈게” 하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한 번은 큰 목소리로 “형님, 들어가십시오!”라고 잠꼬대를 한 적도 있어요. 가끔씩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는 남자들의 의리가 잘 이해되지 않아요.

A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버지에게, 방과 후 친구들에게 혹은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여자들이 모르는 ‘의리학’을 배웠어요. 약주를 드신 저희 아버지도 늘 말씀하셨죠. “이놈아, 남자는 의리 빼면 시체야.”

우정은 너와 나, 두 사람의 존재를 더욱 공고히 하는 친교 행위예요. 영자와 미자의 우정이 돈독하다고 해서 미자가 더 많은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을 주진 않죠. 그건 철저히 둘만의 문제예요. 반면 의리는 사회적 관계망을 넓혀가는 매우 중요한 도구가 돼요. 의리 있는 남자들은 의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네트워크를 확장해갈 수 있지만, 의리 없는 남자들은 그 자체로 인간관계의 사형선고를 받아요. 의리의 바탕에는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관계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에요. 일종의 품앗이죠. 내가 네 일을 도와주면 너도 내 일을 도와 줘, 하는 주고받음이 의리예요. 남편분이 선배들한테, 친구들한테 깍듯하게 잘하는 건,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너도 나한테 그렇게 해죠, 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고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남자들도 어느 순간 그 의리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깨닫게 돼요.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의리는커녕 친구라는 것이 원래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도 하죠. 중년의 남자들에게 의리는 그저 잃어버린 전설이 돼요. 그러니 가끔 자정 넘은 시간에 친구들 데리고 온 남편이 술상을 봐달라고 하거나 어려움에 빠진 친구들을 돕기 위해 십시일반하기로 했다며 의리를 들먹일 땐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세요. 단 의리를 운운하며 친구 빚보증을 서줘야 한다고 말하거나 처자식은 나 몰라라 하면서 친구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건 의리가 아닌 워리(Worry)예요.

내가 좋아? 야구가 좋아?
9개월차 주부 기자, 내 남편의 본심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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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몇 주 전부터 대청소를 하자고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남편이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가 있는 거예요. 결국 오후 내내 남편은 소파와 한 몸이 돼 TV 앞을 떠나지 않았지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정성스럽게 요리를 했는데, 제 정성이 무색할 정도로 밥과 국만 들고 쪼르르 가서는 소파 위에서 먹는 거예요. 응원하는 팀이 점수를 내자 온 세상을 얻은 듯 환호를 지르고, 반대로 한 선수가 실점을 하자 얼마나 으르렁거리던지, 스포츠와 열애에 빠진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선배 내외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형수가 선배 흉을 봤어요. 아이가 아프다고 해도 술자리 다 챙기고 새벽에 들어오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칼’ 퇴근을 하기에 ‘사춘기인 작은 애를 위로해주려나 보다’ 하고는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선배 왈, 월드컵 대표 평가전을 보기 위해서 일찍 왔다는 거예요. 얼굴까지 벌게지면서 찬물을 들이켜는 형수를 보면서 “내 이야기인데”라고 중얼거렸죠.

한 번은 새벽 2시에 생중계하는 박지성의 출전 경기를 보기 위해 커피를 ‘원샷’하고 졸음을 쫓는 제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힘들어할 거면서 웬 생고생이냐. 스포츠 뉴스 보면 하이라이트로 골 들어가는 것 다 보여준다”라고 핀잔을 했어요. 그때 아내가 외계인 ET로 보였죠.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축구, 야구, 골프 등 종목이 다를 뿐이지 숱한 남자들이 그럴 거예요. 어떤 남자는 김연아와 박찬호의 경기를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에 취하고, 또 어떤 이는 방금 본 야구 경기를 복습하면서 자신이 주전 투수라도 된 것처럼 놓친 게임을 역전시키는 상상에 빠진다고도 해요. 여자들이 드라마 한 회를 놓쳐서 스토리를 따라갈 수 없어 답답한 기분,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홈쇼핑 방송을 놓친 기분이라고 하면 조금 이해가 될까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왜 스포츠를 보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재미있으니까”라고 대답할 거예요. 싱겁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게 정답이에요. 재미있으니까 열광하고 좋아하는 거예요. 왜, 라는 질문은 갈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갈치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맛있으니까 좋아하는 거예요. 재미있으니까 좋아하고. 그러니까 남편에게 제발 “나보다 야구가 더 좋아?”라는 질문은 하지 말아주세요. 대신 남편이 스포츠 중계를 볼 때 간식이나 식사를 챙겨주세요.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엄청 고마워할 거예요. 그렇지만 절대로 ‘내가 이런 것까지 챙겨주고 있다’라고 생색내지 않기. 여자들은 꼭 그 생색을 인정받고 싶어 하던데(웃음), 대다수의 남자들은 말을 아끼는 것이 가볍지 않은 것, 진심이 가득 담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거든요.

오빠였다가 동생이었다가
9개월차 주부 기자, 내 남편의 본심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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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라는 노래가 있죠. 결혼하고 나니 제 남편이 딱 그래요. 연애할 때 남편은 밤하늘의 별도 달도 따주겠다던 남자였는데,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지만, 결혼 후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달라고 해요. 그러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꼭 “내가 오빠잖아”라고 말해요. 또 가끔씩 본인의 고민을 저에게 털어놓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하다가도 친구나 선배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속마음을 얘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무척 서운해요.

A 남자들에게는 모순적인 부분이 있어요. 아내를 통해 어머니나 누나의 모습 혹은 모성애를 갈구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아내에게 왕이고 싶은, 권력자의 카리스마를 갖고 싶은 이중성이 있어요. 후진 발상인 걸 알면서도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남편의 고교 동창 송년회 모임에 참석한 한 아내가 그 자리에서 자신의 남편이 사표를 쓴 사실을 알게 됐어요. 워낙 절친한 동창들이다 보니 아내들끼리도 친해져 누구네 남편이 삼각팬티를 입는지, 사각팬티를 입는지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동갑내기 아내 하나가 “자기도 고생이 많았어. 회사를 그만두네 마네 했으니 집에 있는 사람은 마음을 얼마나 졸였겠어”라며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대요.

아내는 자다가 홍두깨로 등짝을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겠죠. 낙하산으로 내려온 상사에게 시달림을 당했을 남편이 안쓰러운 건 나중 문제예요.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혼자 몰랐다는 황당함, 내 남편의 일을 남의 여자들에게 들었다는 수치감. 결국 분노에 차오른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람을 그렇게 허깨비로 만드니까 기분이 좋아?”라고 소리를 질렀대요.

이런 상황에서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말이 되어 튀어나오지 못한 사연의 파편들과 말주변이 없어 정리하지 못한 생각의 조각들이 아마 폐와 간, 콩팥, 심장 여기저기에서 제각각 꿈틀거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것들을 차분히 모아 퍼즐로 맞췄다면 아마 이런 사연 덩어리로 요약됐을 거예요.

“당신을 무시해서 그런 건 아냐. 처음부터 그랬던 것도 아니고. 신혼 초 내가 회사 동료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당신은 내게 뭐라고 했어? 무슨 남자가 그렇게 소심하냐고 했지?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 모를 거야. 내 약점이 잡힌 기분이었다고. 그리고 2년 전이었나. 내가 당신에게 당분간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하니까 당신 얼굴은 흙빛이 됐어. 애들은 자꾸 크는데 이렇게는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밤새도록 뒤척이고 한숨 쉬는 당신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밖에서 생기는 고민거리를 집으로 갖고 오지 않겠다고 생각했어.”

여자들이 들으면 그냥 웃고 넘길,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하는 아내 자랑이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시골 가서 살까?”라고 했더니 흔쾌히 아내가 “그래”라고 답했다는 영웅담과 좋은 집을 줄여 치킨집이나 하자고 했더니 “나, 튀김 잘해”라고 했다는 위인담이 바로 그것이에요. 남자들이 정말로 귀향을 하거나 치킨집을 차리겠다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을 거예요. 그냥 그랬을 때 아내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거죠.

어쩌면 앞서 말한 그 남편도 아내에게 이런 대답을 원했을 거예요. “그 놈이 죽일 놈이네. 감히 우리 남편에게!” 혹은 “월급 줄면 적게 먹고 적게 쓰면 되지. 애들 학원 못 간다고 큰일 나지 않아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여자들이 갑자기 통 크게 나갔을 때 “어머나”를 외치며 작아지는 게 오히려 남자란 동물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남편이 꺾인 날개로 들어와 세상 다 끝난 것처럼 푸념할 때 그 바탕에는 자기가 이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응석이 숨어 있음을 읽어주세요. 아내가 자신을 무한 신뢰하고 있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나머지 하는 행동임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이럴 땐 남자보다 대범하게 말하고 대처하세요. 과민하게 반응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쇼’라고 할지라도 이 약발이 신통방통하게 잘 먹힘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보너스로 집을 평소보다 깨끗이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꽃단장까지 한다면? 그러면 게임은 완전 끝이에요. 남편은 몰래 화장실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 캔디처럼 외칠 거예요. “그래,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내 남자의 폐경기
9개월차 주부 기자, 내 남편의 본심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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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은 남편이 일시적인 원형 탈모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어요. 걱정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전에 만난 한 취재원과 탈모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아내가 외도는 용서할 수 있지만 대머리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내 남편의 탈모,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요?

A 정말 무시무시한 말인데요. 아마도 그분은 아내의 말에 짱돌로 맞은 기분이 드셨을 겁니다. 여자들이 폐경기를 경험하는 것처럼 남자들도 비슷한 시기를 겪어요. 성 기능이 뚝뚝 떨어짐을 조석으로 확인하고, 기운차던 머리카락이 비실거리면서 흰머리로 바뀌고, 그 마저도 숭덩숭덩 빠지기 시작할 때, 그때가 바로 남자의 폐경기입니다. 여자의 폐경기는 사회와 가정에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편이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남자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로 사느니 동굴로 들어가 혼자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마음일 겁니다.

저도 일전에 탈모를 경험했어요. 경과가 꽤 지나고 나서 아내에게 말했는데 저는 그때의 아내 반응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처자식 먹여 살리려 얼마나 애를 썼기에 그 많던 머리카락이 빠졌단 말이요”라는 반응을 바란 건 절대 아니고 적어도 혀는 쯧쯧 차줄 줄 알았는데, 보던 드라마에 정신이 쏙 팔려서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으며 “나이 먹으면 다 빠지는 거지”라고 했거든요.

남편들이 폐경기를 겪는다, 싶으면 ‘우쭈쭈’ 요법을 사용해보세요. 아이가 밖에서 엉엉 울면서 들어와 까진 무릎을 엄마에게 내보일 때 엄마들은 “우쭈쭈, 아팠어? 호~ 해줄게” 하잖아요? 남편에게도 공감의 오버 액션을 해보세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해주세요. “나는 당신이 대머리가 돼도 여전히 귀여워해줄 거야.”

부부 싸움은 나의 힘
Q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여전히 ‘욱’ 하고 올라오는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웃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서로 예민한 부분은 건드리지 말자, 하는 암묵적인 동의를 하게 됐어요. 지난 결혼생활을 돌아봤을 때 언제가 가장 큰 고비였나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20년 동안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트러블이죠(웃음). 결혼생활의 시기마다 싸움의 이유가 달랐어요. 하지만 대체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다름 때문에 다퉜던 것 같아요. 대화의 코드가 달랐다고나 해야 할까요. 남자는 여자가 싸움을 걸어오니까 싸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죠. 또 시작됐군, 이라고요. 가끔씩 뜬금없이 과거의 기억까지 들춰낼 땐 정말 기억력도 좋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저는 신혼 때 아내가 마트에서 쇼핑 카트를 밀게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힘이 센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벼운 짐조차 들지 않으려고 하는 아내에게 부아가 치밀어 오른 적도 많아요. 게다가 제가 무거운 짐을 끙끙거리면서 들고 다니는데도 아내는 옷 쇼핑을 하질 않나(웃음). 아내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건 마흔이 넘어서였어요. 아내는 카트와 짐의 물리적 무게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혼자 소파와 책상을 옮기는 괴력의 여성이잖아요. 다만 최소한 자기 남편 앞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연약하고 보호받고 싶은 존재이고 싶었던 거죠. 아내의 마음을 읽은 후로는 외출할 때 현관 앞에 차 대기시켜놓기, 산책하면서 윗도리 벗어 입혀주기 등 ‘닭살 짓’도 잊지 않아요. 그러면 아내는 “요즘 바람피우냐”라고 눈을 흘기면서도 좋아해요. 아내는 지혜롭기로는 솔로몬을 능가하고 용기 있기로는 다윗을 앞서지만 자기 남자 앞에서는 언제나 연약한 여왕이고 싶어 하는 존재더라고요.

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부부들이 가정 안에서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을 버리고 기쁨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하기를 소망해요. 사실 남편의 본심은 아내의 본심과 완전히 다르거나 대단히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나를 좀 더 인정해주고 존중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상대의 신발에 내 발을 살며시 넣어보고, 그 널널함과 어색함을 경험하면서도 상대 발의 온기와 촉감을 느껴보는 것. 그것이 공감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9개월차 주부 기자, 내 남편의 본심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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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인 작가는…
딴지일보 기자와 사업국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Media&Travel’의 대표로 있다. 지난 2000년부터 여행 전문 웹진 「딴지관광청」을 발간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성과 결혼, 육아와 심리 등 인간의 심리와 관련된 폭넓은 글을 썼다. 저서로는 「사장의 본심」,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등이 있다.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조민정 ■참고 서적 /「남편의 본심」(윤용인 저,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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