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와타나베 아이코-일본 딩크족의 삶](http://img.khan.co.kr/lady/201306/20130617165602_1_ico1.jpg)
[일본 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와타나베 아이코-일본 딩크족의 삶
와타나베 아이코(33). 그녀는 도쿄의 한 법률사무소에 근무한다. 외국인 변호사 사무실로 주로 영어를 사용하며 변호사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오사카의 한 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대학 시절엔 캐나다로 유학을 다녀와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하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지난 4월 말엔 결혼 7주년을 맞이했다. 경영 컨설턴트인 동갑내기 남편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를 언제 낳을 것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당황스럽거나 수치스럽다고 느끼진 않는다. 단지,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어인 딩크족은 비단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OECD 조사를 보면 한국은 결혼은 많이 하지만 아이를 갖지 않는 나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은 결혼도, 출산도 적은 나라다. 일본 딩크족 아이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저희 사무실은 외국인 변호사가 대부분이에요. 개발도상국 같은 곳에서 자원이 발견되면 일본 상사와 은행들이 계약을 하는데 그 계약을 도맡는 변호사를 지원하는 거지요. 사무실에선 영어를 80% 정도 사용합니다.
영어로 일하는 데 지장은 없나요?
고등학생 때 외국 영화에 푹 빠지면서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자막 없이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영어에 심취하게 됐고, 간사이외국어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어요. 대학 시절엔 교환학생으로 캐나다에 다녀왔고요. 이런 경험이 영어에 자신감을 주었고 외국인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보통 근무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7시쯤에 퇴근합니다. 잔업 수당이 없어서 더 길게 일하지는 않아요. 일이 많으면 늦게까지 업무를 하기도 하는데, 늦어도 7시엔 퇴근하려고 해요. 아이가 있는 여성들은 더 일찍 퇴근하지요. 변호사들의 3분의 2는 남자지만 저희 같은 비서와 지원 업무 팀은 대부분이 여성이에요. 그렇다 보니 여성의 어려움, 특히 아이가 있는 직장인의 어려움을 알고 있어서 회사가 배려해주는 편이에요. 아이가 있는 여성은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모두 퇴근하지요.
현재의 일을 사랑하나요?

인생의 두 번째 즐거움인 훌라댄스. 발표회를 열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갖췄다.
대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주변엔 부모 덕에 편하게 학교 다니는 학생도 있었을 텐데.
아뇨, 전혀. 저는 아르바이트하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일을 배우는 재미도 있었고, 학교에선 만나지 못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생에 대해 배웠어요. 그야말로 젊음을 만끽했던 시절이에요.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충당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했어요. 교환 유학생이라 학비는 필요없었지만 캐나다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금도 마련했지요. 제 자신이 잘하고 있단 생각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어요.
한 민간 취업 회사의 통계(취업저널, 2013년)에 따르면 일본 고교생의 40%, 대학생의 90%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대학생의 경우 학원 강사, 시험 감독, 과외 교사로 일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2위가 편의점 점원, 판매원이었으며 3위는 창고, 농장, 목장 아르바이트였다. 시급은 평균 1천1백 엔으로 나타났다. 1주일에 두세 번 하루 5시간이 평균적인 아르바이트 시간이었다.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용돈을 벌기 위해, 자취생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대답했고,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학생의 90%가 “아르바이트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대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는 당연지사다. 비싼 학비를 부담하는 부모를 위해 생활비를 벌어 쓰는 것도 당연하고,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자신이 번 돈으로 구입하는 일도 익숙하다. 도쿄의 최저임금은 시급 8백50엔이다. 이렇게 높은 임금도 아르바이트를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아르바이트 경험은 취업시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유용하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책임감을 얻었다, 사교성을 배웠다 등의 경험은 일본 대학생들의 주된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아이코 역시 아르바이트를 통해 더 큰 세상을 보았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생활했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자존감이자 자부심이 됐다.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 딩크족
일 외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있나요? 취미활동이라든지.
실은 회사만 다니다 보면 도중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저도 다른 걸 해보고 싶을 때가 있었죠. 앉아서 일만 하는 게 괴로웠어요. 그렇지만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어서 그만둘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대신 몸을 움직이기 위해 댄스를 시작했지요. 저는 훌라댄스에 푹 빠졌어요.
얼마나 배우셨나요?
벌써 10년째예요. 부모님이 하와이를 좋아하시는데 그 영향을 받은 듯해요. 훌라댄스가 제게는 힐링이지요. 천천히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다 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싹 풀려요. 게다가 밝은 색상의 화려한 의상을 입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져요.
결혼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2006년 4월에 결혼했으니, 벌써 7년이네요.
아이는 있나요?
생각이 없어요. 제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계획도 없고요. 실은 결혼 직후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3년간 떨어져 살았어요. 신혼생활을 제대로 보내지 못해서 요즘 둘이 알콩달콩 살고 있어요.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 났을 때 따라갈 생각은 없었나요?
전혀. 그런 선택 사항 자체가 없었어요. 저는 제 일을 좋아했고 남편도 그걸 알고 있었거든요. 자연스럽게 떨어져 지냈어요. 남편이 주말마다 도쿄에 와서 같이 보냈고요.
남편이 같이 가자고 조르지도 않았나요?
아니요. 저는 저대로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일하고, 주말부부였지만 부족함을 느끼진 않았어요.
남편도 아이에 대해선 같은 생각인가요?
네. 저희는 아직 아이 생각이 없어요. 지금 현실에 만족하고 있고요. 저도 남편도 여행이 취미예요. 왜 일을 하느냐? 첫째는 일이 좋아서, 둘째는 훌라댄스를 맘껏 배우고 싶어서예요. 남편이 번 돈이면 부담스러울 텐데 저도 버니까 훌라댄스에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어요. 세 번째 이유는 여행이에요. 남편도 저도 여행을 무척 좋아해요. 평소엔 일이 많아서 길게 못 가지만 매년 결혼기념일이 되면 1주일에서 열흘간 여행을 가요. 저희 부부 결혼기념일이 일본 황금연휴와 같거든요.
지금까지 어떤 곳을 여행했나요?
신혼여행은 타히티와 하와이였고요. 홍콩, 오키나와, 이집트, 터키, 모로코, 호주. 올해는 인도에 다녀왔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이집트와 모로코. 이집트에서 투탕카멘과 피라미드를 마주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고요.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이집트에 드디어 왔구나 싶어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모로코에선 사막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냈어요. 남편과 같이 본 저녁노을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선명해요. 어찌나 아름답던지. 새벽에 밝아오던 해도 아름다웠고요. 매년 남편과 여행을 다니는 일이 제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랍니다.

결혼기념으로 1년에 한 번씩 떠나는 여행지에서 남편과 찍은 사진. 일곱 번의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이가 없어도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난 것은 아이코, 그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도 얼마든지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아이코는 생각한다. 아이코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딩크족은 늘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출산율이 낮아 인구 저하가 큰 문제라며 내년부터 ‘여성수첩’이란 것을 교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성수첩이란 임신과 출산 적령기를 적은 수첩이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수첩은 여성 차별이며, 임신과 출산을 오로지 여성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산부인과를 늘리고, 부족한 어린이집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현재 4만 명의 어린이들이 어린이집 대기상태다), 교육비 절감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여성들의 주장에 정치가들은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2013년 4월 1일 현재 15세 미만 인구는 1천6백49만 명으로, 이는 전체 인구의 약 13%로 역대 최저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령자 수는 매년 증가 중이다. 7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6.9%로, 아이의 3배나 되는 수치다. 후생노동성 조사를 살펴보면 40세 시점에서 미혼, 기혼 관계없이 아이를 한 번도 출산하지 않은 여성은 27%다. 일본 여성의 3분의 1이 평생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고학력, 사회 진출로 인해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고, 결혼 후에도 일과 경력을 우선시해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역시나 출산을 거부하는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 출산은 오로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정부 관여하에 출산율 증가와 억제 정책들이 행해져왔고, 현재는 아이를 낳으라고 성화다. 그렇지만 ‘여성수첩’처럼 출산과 육아를 모두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행태에 출산을 쉽게 선택하는 여성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보통 아이가 없으면 남편은 가사에 관심이 없던데, 아이코씨 집은 어떤가요?
저희는 가사는 확실히 분담해서 하고 있어요. 남편은 청소, 저는 빨래와 요리. 평일에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아요. 시켜먹거나 남편과 데이트 겸 외식을 하지요. 남편은 제가 요구하면 거의 들어주는 편이고, 청소나 쓰레기 버리기도 솔선수범해서 해요.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죠.
부부싸움도 하나요?
저는 남편이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아 화를 낼 때가 있고, 남편은 제가 코트를 옷장에 걸어두지 않아 화를 낼 때가 있어요. 그런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지요. 전에는 남편이 먼저 사과했는데 요즘은 동시에 사과해요.
좋은 부부 사이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공통된 취미생활과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 불만을 이야기하고 개선점을 찾으려 노력해요. 또 둘 다 여행이 취미다 보니 이를 통해 삶을 즐기고요. 요즘은 주말마다 같이 조깅을 해요. 1, 2년 뒤에 호주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같이 나가는 것이 꿈이에요.
주말은 어떻게 보내나요?
토요일 오전에 저는 훌라댄스를 배우고, 남편은 수영을 하지요. 끝나고 밖에서 만나 쇼핑을 즐기고 저녁은 집에서 같이 만들어 먹어요.
결혼 7년째, 깨가 쏟아지는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코 부부. 아이코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다고 한다. 현재 다니는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소소한 일상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자격증을 따거나 수입이 더 좋은 회사로 옮길 의향도 없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지금처럼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훌라댄스를 배우며, 1년에 한 번 부부가 함께 열흘씩 여행을 다니는 삶.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영위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다른 사람과 삶의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아이는 없지만 충분히 풍요로운 인생이다.
와타나베 아이코의 Album
■기획 / 이유진 기자 ■글&사진 / 김민정(일본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