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는 늘 민감했다.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일본군 위안부 부정 발언, 아베 총리의 침략 부정 발언 등 요즘 들어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은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왕실의 손녀에 관한 얘기를 쓰자니 마음이 무겁다. 일본 왕실을 동경하거나 일본을 미화하기 위함은 물론 아니고 일본의 전쟁 책임을 조금이라도 긍정하기 위함도 아니다. 단지 일본의 수많은 아이코 중 한 명, 일본 왕실의 공주 아이코 이야기다.
일본에 존재하는 ‘왕실’이란?
현 아키히토(80) 일왕에게는 아들 둘과 딸이 하나 있다. 장남인 나루히토(53) 왕세자의 가족은 우울증에 걸린 마사코(50) 왕세자비와 딸 아이코(11) 공주가 있다. 차남인 후미히토(45) 왕자에게는 두 딸과 만 7세 되는 아들이 하나 있다. 일왕 가족의 막내는 노리노미야(41) 공주인데, 평민과 결혼해 현재는 구로다 사야코란 이름으로 살고 있고, 평민이 된 후의 소식은 전혀 들리는 것이 없다. 2001년 아키히토 일왕은 2002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간접적으로 백제의 후손임을 밝혔다.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듯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령왕은 일본과 관계가 깊고, 이때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가 일본에 대대로 초빙돼왔습니다. 또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일왕에게 전쟁 책임은 묻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의 왕권제는 고스란히 남아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 일왕 가족이 과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베일에 싸일수록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 왕실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은 수많은 스캔들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세간의 주목을 받은 왕세자비, 마사코
올해는 왕세자와 왕세자비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다. 1993년 4월 12일에 약혼식을 했고, 6월 8일 결혼식이 거행됐다. 이날, 결혼 퍼레이드에는 19만 명의 시민들이 마사코 왕세자비와 왕세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이 모습을 담은 TV 프로그램 시청률은 무려 79.9%를 기록했다. 외교관 아버지를 둔 마사코 왕세자비는 어린 시절을 소비에트연방, 스위스, 미국 보스턴 등에서 지냈다. 중·고교를 미국에서 보낸 마사코는 아버지의 일을 존경했고, 자신도 외교관을 꿈꿨다. 1985년 하버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에 돌아와 도쿄대 법학부에 입학해 1986년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여성 외교관이 드물던 시절 하버드를 졸업한 그녀는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사무직이 아닌 외무직에 합격했고, 그녀의 이런 합격 소식은 일본경제신문 등에 보도되기도 했다.
마사코는 왕세자와 결혼하기 전부터 특별한 여인이었다. 그 특별함을 나루히토 왕세자는 첫눈에 알아봤다. 나루히토 왕세자가 그녀에게 반한 건 1986년 마사코가 외무직에 합격해 스페인 공주의 환영 연회에 출석했을 때다. 참하지만 자기주장을 제대로 할 줄 알고 영어에 능한 그녀는 왕세자비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마사코는 나루히토 왕세자와 별다른 관계가 아니라고 부정했고, 1987년 외무성(우리나라의 외교부)에 들어가 본격적인 외교관 교육을 받은 후 1988년 외무성 연수로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했다. 그녀의 왕세자의 총애를 받는 여성으로 그녀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여성지들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고, 모든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그녀의 패션에 주목했다. 단아한 슈트 차림에 화려한 스카프를 걸친 그녀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마사코가 타던 도요타 승용차 모델도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뛰어난 스펙, 그러나 득남을 못한 왕세자비
마사코는 지금까지의 왕실 여인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화려한 외모와 경력,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갖고 있었고 자기주장도 강했다. 언론들은 그녀가 일본의 왕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한몫할 것이라 보도했다. 반면 일부 언론들은 그녀가 전통 속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혀 반대의 기사를 실었다. 결국 그녀는 현재 후자의 삶을 살고 있다. 마사코 왕세자비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뛰어난 언변도 아니었으며 하버드대 졸업생이란 스펙이나 외교관의 자질 또한 아니었다. 그녀는 왕실에 사는 왕세자비였던 것이다. 그 왕세자비에게 주어진 첫째 의무는 아이, 그것도 남자아이를 출산하는 일이었다. 일본 왕실은 첫째 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도록 하고 있으며, 공주의 경우 평민과 결혼하면 공주란 지위까지 박탈한다.
그녀는 1999년 한 차례 유산을 했고, 2001년 두 번째 임신으로 12월 1일 아이코 공주를 낳았다. 그녀가 서민이었다면 딸이었어도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마사코 왕세자비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언론들은 그녀가 왕실에서 잘 견디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2004년 나루히토 왕세자는 왕실 기관이 아내의 커리어와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살았고,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했던 그녀는 엄격한 전통을 요구하는 궁내청(왕실을 돌보는 기관)과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딸을 낳은 마사코 왕세자비는 공식석상에 자주 불참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지난 4월, 10년 4개월 만에 공무로 네덜란드 국왕 즉위식에 출석했다. 결혼생활 20년간 그녀는 언론에 발표된 기사만 봐도 무려 절반의 시간을 마음고생하며 보냈다는 걸 알 수 있다.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온 그녀도 오래된 전통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잘난’ 여자였기에 겪어야 했던 맘고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왕세자비가 되는 것도, 왕세자비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공주로 태어난 아이, 아이코 이야기
비운의 왕왕세자비는 결혼 8년 만에 공주를 낳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돼라’라는 의미에서 아이코라 이름 붙였다. 아빠를 쏙 빼닮은 아이코 공주는 태어나기 전부터 일본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아들인지 딸인지부터 작명, 외모에 이르기까지. 공주로 태어났기에 받아들여야 했던 운명이다. 아이코가 어느새 만 11세가 됐고, 지난 4월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일본 왕족이 다녀온 가쿠슈인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며, 특히나 국어를 매우 잘하고 부모들 사이에선 도쿄대에 들어갈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란 소문이 자자하다고 한다. 학교에선 농구부와 관현학부, 방송부로도 활동 중이다. 방송을 통해서는 아이코 공주의 목소리 등이 전해지지 않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방송부로 점심시간에 DJ까지 하는 걸 보면 엄마를 닮은 것으로 보인다. 궁내청 발표에 따르면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줄넘기를 하고, 집에 와서는 서예를 배우거나 궁내청 직원과 피구를 하며 지낸다고 한다. 최근에는 1주일에 두 번씩 가쿠슈인여자대학교에서 실시되는 영어 양성 강좌에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공주로 태어나 큰 관심을 받았던 아이코는 초등학생으로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따금 궁내청이 아이코 공주 소식을 전해주고 이를 언론을 통해 듣는 것이 전부다. 일본의 왕실 정보는 철저히 통제돼 있다. 지금은 평탄해 보이는 아이코 공주도 한때는 어려움을 겪었다. 단지 ‘공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짓궂은 언어폭력을 당했던 것이다. 2010년 3월 5일 궁내청은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코 공주가 학교를 결석 중이며, 그 원인은 가쿠슈인초등학교의 남자 아동이 난폭한 행동을 한 것이 원인이라고 판명됐다”라고 발표했다. 궁내청은 직접적인 폭력이나 왕따는 아니라고 부정했다.
정확한 원인은 밝히지 않았다. 일본 주간지 정보를 종합해보면 아이들이 복도에서 아이코 쪽으로 뛰어와 부딪치거나 부딪친 후 아이코의 잘못으로 몰았고, 때로는 아이코의 물건을 숨기기도 했다고 한다. 또 정신적으로 피폐한 아이코의 엄마, 마사코 왕세자비가 공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데 대해 “너희 엄마는 세금 도둑!”이라고 몰아붙였고, 몇 명의 아이들이 “도둑, 도둑!”이라고 합창까지 했다고 한다. 아이코는 그 후 거의 2년간 엄마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 아이코의 이런 현실은 ‘공주’로 태어나도 삶이 순탄치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누구나가 공주를 꿈꾼다. 동서양을 막론한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콩쥐팥쥐」를 읽으며 자라왔고 무의식 속에 누군가가 자신을 공주 혹은 왕비로 발탁해주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자리가 실로 어마어마한 의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나 일본 왕실에선 입조심은 물론 아들을 낳아야 하고, 세금 도둑으로 몰릴 때도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 줄 알아야 한다. 현대 일본 사회에선 ‘왕세자비’란 지위가 서민보다 더없이 불편한 굴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공주로 산다는 건…
‘프린세스’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 고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고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 그리고 요즘 패션 잡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 특히 패션 아이콘이 된 미들턴 왕세손비의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모두 궁금해한다. 미들턴 왕세손비가 고른 유모차는 무엇일지, 아이는 어떤 장난감을 갖고 놀지도 파파라치에 의해 금세 기사화될 것이고, 같은 제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쇄도할 것이다. 에르메스의 켈리백을 남긴 그레이스 켈리는 요절했고, 다이애나 또한 사랑에 좌절해 이혼한 후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일본의 마사코 왕세자비는 이제 좀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왕실 생활에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다. 그 딸로 태어난 아이코 공주도 공주로 사는 어려움을 어린 나이에 체험하고 있다. 아무도 그들은 공주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동경의 눈이 그녀들을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고, 상상 속의 공주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뚱뚱해선 안 되고, 늘 아름답고, 성격도 좋아야 하며, 참하면서도 반듯해야 한다.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하며, 적절한 소통 능력도 있어야 한다. 왕위 계승 순위가 아들, 특히 장남에 치우쳐 있다면 아들을 잘 낳아야 하는 의무도 부과된다.
일본 왕세자의 자손은 현재 아이코 공주뿐이다. 여성도 일왕이 될 수 있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는 안도 제기되고 있으며 공주가 평민과 결혼해도 공주의 직위는 지켜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이 왕위를 이어가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올해 만 50세가 된 마사코 왕세자비는 그녀가 아무리 글로벌 인재로 어마어마한 스펙을 자랑한다 한들,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가야 한다. 공주로 태어났다 해도 나중에 평민과 결혼하면 왕식 직위를 박탈하는 것도 좀 잔혹하다 싶다. 배경이야 어찌됐든 공주로 태어난 아이코는 쑥쑥 자라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아이코 공주가 초등학교 2학년 말부터 등교하는 데 불안감을 가졌고 마사코 왕세자비와 함께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4학년 가을부터는 점차 혼자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아이코의 발걸음을 돌아보면 부모로서 감개무량하다”라고 밝혔다. 왕세자에게 아이코는 공주이기 이전에 딸이다. 왕세자는 기자회견에서 어느새 열한 살이 된 딸아이를 보는 평범한 아빠의 마음을 피력했다.
일본의 왕실 제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가늠할 수 없다. 왕족은 점점 적어지고 있고, 왕실에 아들도 드물다. 간신히 둘째 왕자 부부에게서 늦둥이 막내아들이 태어났다. 현재 일본의 왕실은 하나의 상징으로만 남아 있다. 로열패밀리에 열광하던 세대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스캔들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일본의 로열패밀리가 언제까지 유지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불어 왕실 여인들의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온 천하가 알게 됐다. 동화 속에서 왕비로 발탁된 여인들의 그 후 인생이 그려지지 않은 이유는 최소한의 판타지를 남겨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기획 / 이유진 기자 ■글 / 김민정(일본 통신원) ■사진 제공 / 일본 궁내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