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요리 전문가 전경무 셰프의 Oh, My Greece!
행복 레시피 ① 공대생, 인생을 볶다
맛과 멋이 넘치는 젊음의 거리, 홍대 앞. 10년째 같은 자리에서 그리스 요리 전문점 ‘그릭 조이’를 운영하는 전경무(57) 셰프는 맛깔스러운 음식 솜씨 외에도 담백하고 구수한 입담으로 유명하다.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식사 시간을 피해 가야 셰프님의 진국 그리스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라는 알짜배기 정보가 있을 정도.
“인생이라는 것이 계획한 대로 다 살아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렇게 그리스 음식을 직접 만들어 손님들께 선보이는 즐거움을 가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후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해 발전소 설계 담당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를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었고 결국엔 트레이드마크인 미소까지 잃게 됐다.

그리스 요리 전문가 전경무 셰프의 Oh, My Greece!
고민 끝에 그는 이민을 떠났다. 요리사로 한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미국의 한 스시 학교를 수료한 뒤 캐나다로 옮겨가 일식집에서 일했다. 그리스 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건 가게를 열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던 즈음이었다.
“토론토 시내를 다니다가 목 좋은 곳을 찾았는데, 그 집이 바로 그리스 요리 전문점이었어요. 그리스인이 주인이었는데 ‘내가 여기서 꽤 오래 장사를 했는데 밥 굶지 않고 잘 살았다’라고 하더군요. 저 역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말에 솔깃해 다시 선택의 기로에 빠졌습니다(웃음). 계획대로 여태껏 배워왔던 스시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갈까 고민이 참 많았는데 인생은 모험이니까요. 후회하더라도 인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5년. 즐겁게 일했다. 특유의 유쾌함과 성실함 덕에 매출도 서서히 올랐다.
“파란 눈의 서양인이 남대문 시장에서 뚝배기 집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처음엔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이 몰릴지 몰라도 맛에 대한 의구심이 들 것 아니겠어요? 저도 그랬어요. 그리스인에게 직접 전수받은 비법으로 요리를 했지만, 동양 사람이 그리스 음식을 만든다고 하니 손님들이 뚝 떨어지더군요. 뚝심으로 몇 개월을 버텼어요. 맛과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면서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그리스인이 운영할 때보다 두 배 이상 매출이 늘더군요. 돌이켜보니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던 시간이었어요.”
행복 레시피 ② Simple but Special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그리스 요리 전문점을 오픈하기 전, 전경무 셰프는 그리스로 맛 여행을 떠났다. 신화와 유적의 나라, 유럽 문명의 발상지이자 고대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 푸른 바다와 강렬한 햇빛,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매력에 세계 여행자들이 마지막 여행지로 손꼽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그리스인 할머니로부터 정통 요리에 대한 특별 과외수업을 받았다. 여전히 그는 시간이 날 때면 그리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리스는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이에요. 3년 전이었나? 4주 정도 크레타 섬의 시골 마을에 머무른 적이 있어요. 아쉽게도 산토리니나 아테네에서는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춘 투어리스트 푸드로 변형돼 고유의 맛을 느낄 수가 없거든요. 물어물어 시골 밥상을 맛볼 수 있는 곳을 찾았죠. 아, 그런데 가게에 들어갔는데 손님이 없어요(웃음). 가끔씩 동네 사람들이 와서 술 한 잔 마시고, 그러면 주인이 부침개를 부쳐주고 술국을 끓여주고 하는 게 전부예요. 그런데도 그 집 맛을 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스 요리 전문가 전경무 셰프의 Oh, My Greece!
“가게 안에서 나던 특유의 향, 푸근했던 아주머니, 그날의 날씨 같은 것 하나하나 기억이 나요. 뺀질뺀질한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이었어요(웃음). 집에서 담근 포도주를 아낌없이 퍼주시기도 했죠.”
그는 “대다수의 그리스인들이 여유가 넘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음식 문화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그리스의 정식 요리를 판매하는 타베르나에 가면 삼삼오오 둘러앉아 악사들의 연주와 노래에 취해 있는 그리스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진정한 미인들은 짙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쁜 옷을 입지 않아도 빛이 나잖아요. 요리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리스 요리들은 지중해의 풍부한 해산물을 재료로 한 것들이 많아요. 또 신선한 재료 자체의 풍미를 살리는 것이 특징이라 담백하고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죠. 그리스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재료들이 있는데 바로 올리브유, 레몬, 차지키(Tzatziki) 소스, 허브, 올리브, 페타치즈예요. 사실 그게 전부이기도 해요. 한마디로 ‘Simple but Special’! 재료나 제작 프로세스는 심플하지만 그럼에도 식감이나 맛이 스페셜하답니다.”
행복 레시피 ③ 음식으로 소통하기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의 전경무 셰프는 최대한 자신이 만든 요리를 직접 서빙하려고 노력한다. 음식의 맛은 어떤지, 양이 적지는 않았는지를 묻기 위해서다. 때때로 손님들의 사연을 귀담아듣기도 한다. 정성이 가득 담긴 맛있는 음식으로 고객들과 소통하기. 그가 제일로 여기는 경영 철학이다. 그리스인들에게 배운 서비스 정신이기도 하다.

그리스 요리 전문가 전경무 셰프의 Oh, My Greece!
그는 맛있는 음식은 행복한 요리사의 손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참을성과 인내심은 셰프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정년 없고 눈치 볼 상사가 없어 좋겠다’라고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체력 떨어지면 정년이에요. 건물주, 손님, 아르바이트생들이 주는 압박감은 또 어떻고요(웃음). 창작이라는 말로 포장이 돼 있지만 ‘히트’ 칠 작품을 만들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도 일을 하는 짬짬이 연구하고 공부해요. 손님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 여기고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어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공부할 거예요. 제 나이에 은퇴하고 방향을 못 잡는 사람들도 많은데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일이 즐겁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몰라요.”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이 주는 특별한 감동.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은 친절함.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마음이 꼭 담백한 그리스 음식 같다고 생각했다.
“요즘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려다가 불행해져요. 매번 행복을 확인하면서 살려고 하다 보니 아등바등 살게 되고…. 힘들면 쉬어가고, 신나면 뛰어가고, 그렇게 이따금 느끼는 행복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라 믿어요. 행복은 가까이에 있더라고요.”
그리스 요리 맛보기

그리스 요리 전문가 전경무 셰프의 Oh, My Greece!
채소와 고기를 올리브유에 볶은 뒤 화이트소스를 뿌려서 오븐에 구운 그리스 전통 오븐 요리다. 감자, 호박, 가지를 슬라이스해 올리브유에 조리한 채소를 가장 아래층에, 잘게 간 쇠고기와 토마토 소스를 중간층에, 우유, 버터, 밀가루 등이 섞인 베샤멜 소스를 가장 위층에 놓는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 일곱 종류가 소개될 정도로 대표적인 그리스 요리다.

그리스 요리 전문가 전경무 셰프의 Oh, My Greece!
‘칼’을 뜻하는 ‘수블라’와 ‘작다’를 뜻하는 ‘키’가 합쳐진 수블라키는 우리말로 꼬치를 의미한다. 25cm 정도의 꼬치에 다양한 재료를 꿰어 그릴이나 오븐에 굽는 요리인데 생선, 채소, 과일 등 재료는 다양하다. 수블라키는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일반 노천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피타(Pita) 빵에 차지키 소스를 올려 먹는다. 차지키 소스는 요거트, 마늘, 오이, 올리브유, 딜, 소금, 후춧가루, 민트 등을 섞어 만든 것으로 우리의 된장과 같은 ‘국민 소스’다. 고기뿐 아니라 생선, 채소, 빵 등과 함께 먹는다.
Note in Greece
그리스는 종교 의식과 음식이 밀접한 관계를 이루면서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종교적인 의식이 있는 날이면 양고기를 잡았다고 합니다. 고기가 귀하다 보니 살코기는 높은 계급 사람들의 차지였습니다. 나머지 부위를 서민들이 먹었는데, 이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먹기 위해 머리 고기, 내장 등을 모두 버리지 않고 탕을 끓이기 시작했답니다. 그것이 바로 ‘파차(Patsa)’입니다.

그리스 요리 전문가 전경무 셰프의 Oh, My Greece!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이성원(프리랜서) ■사진 제공 / 전경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