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성우 이성미씨-시각장애인들 귓가에 등불을 밝히다](http://img.khan.co.kr/lady/201307/20130708154801_1_leesmi.jpg)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성우 이성미씨-시각장애인들 귓가에 등불을 밝히다
마음을 먹자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녀는 바로 노원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독서 낭독 봉사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음성 도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타고난 맑은 목소리로 평생 ‘말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을 낭독할 때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시각장애인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요. 말하는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읽는지 금방 알아차리죠. 목소리에 몰입도 더욱 잘하고요.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금방 티가 나요. 때문에 더욱 풍부한 감성을 담아 한 자 한 자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읽게 되더라고요.”
독서 낭독 봉사는 연예인들이 다큐멘터리나 캠페인에 내레이터로 참여하며 목소리를 기부하는 것이나 상업적 용도로 만들어지는 오디오북과는 다르다. 책 한 권을 책임지고 녹음해야 하는 장기 봉사로 보통 1주일에 한 번 기관을 찾아 녹음을 하는 경우 3백 쪽짜리 책 한 권을 녹음하는 데 꼬박 2, 3개월이 걸린다. 복지관이 공사를 시작하며 녹음 봉사를 쉬게 된 지난해까지 그녀가 녹음한 책은 총 12권. 매주 금요일, 두 시간씩 작은 부스에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녹음하는 일은 생각보다 인내를 요하는 일이었지만 봉사를 하며 그녀의 생활 역시 밝아졌다.
“녹음하는 책은 복지관에서 선정하기도 하고 제가 직접 고르기도 해요. 주로 「보물섬」과 같이 모험이나 희망적인 스토리가 담긴 책 위주로 골랐어요. 듣는 분들이 신나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그런 책들을 읽다 보니 저 역시 활기가 생겼고, 무엇보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이 되려 나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시각장애인들의 귀를 밝혀주려고 시작한 일이 제 인생을 환하게 밝혀줬어요.”
봉사를 시작하며 그녀뿐만 아니라 가족 역시 시각장애인들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는 길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가까운 이웃이 됐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일이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제가 독서 낭독 봉사를 하며 가슴 깊이 남았던 구절이 있어요. ‘희망,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희망만 남아 있다면 거기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희망은 항상 출발이자 영원한 시작이다’라는 말이에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도 희망의 씨앗이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미소 한 스푼에서는 숨 가쁜 일상 속 비타민이 돼줄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쉬어가는 건 어떨까요. 지친 하루에 기분 좋은 미소를 부르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