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들었던 구수한 옛날이야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되던 그 많던 이야기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사라져가는 우리의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신동흔 교수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매달 한 편씩,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내가 사는 양평의 작은 산골마을 뒤편에는 부용산이라는 아늑한 산이 있다.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산이다.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부용산이 아닐까 싶은데,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부인당’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실제 봉우리 맨 위에 가면 부인당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는 한 편의 전설이 얽혀 있다. ‘방귀’에 얽힌 사연이다.
옛날 어느 대갓집 주인(왕이라고도 한다)이 색시를 얻었는데 첫날밤에 방귀를 뀌자 부정하다며 쫓아냈다. 쫓겨난 여자는 부인당 자리에 혼자 살았는데, 첫날밤 인연으로 아들을 낳았다. 어느덧 그 아이가 자라나서 왜 자기한테는 아버지가 없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방귀에 얽힌 한 맺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봇짐을 싸들고 본가를 찾아가서 크게 소리를 쳤다.
“저녁에 심어서 아침에 따 먹는 오이 사세요!”
주인이 나오더니만,
“이 엉터리 같은 녀석아, 세상에 그런 오이가 어디 있어?”라고 말했다.
“네. 방귀를 한 번도 안 뀌는 사람이 심으면 분명히 아침에 오이를 땁니다요.”
“허허, 이놈아! 세상에 방귀를 안 뀌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자 아이가 정색을 하면서,
“그런데 왜 우리 어머니를 쫓아내신 거지요?”라고 물었다.
주인은 아이가 자기가 쫓아낸 아내가 낳은 아들임을 알고, 그 영특함에 탄복해서 산속에 살던 아내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고 한다(일설에는 본가에서 불렀으나 여자가 돌아가지 않고 산에서 살다 죽어서 부인당 자리에 묻혔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저녁에 심어 아침에 따 먹는 오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민담인데, 특이하게 마을의 전설이 됐다. 한 여자가 산에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이 된 것이다. 이야기를 보면, 아이의 놀라운 지혜가 눈길을 끄는 한편으로 ‘방귀’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첫날밤의 그 어렵고 조심스러운 자리에서 그만 ‘뽕!’ 하고 실수를 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우습다. 하지만 그 일이 집에서 쫓겨나는 빌미가 됐으니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은 이렇게 작은 일에까지 미쳐서 삶을 질식시켰던 것이다. “세상에 방귀를 안 뀌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냐!”라는 남자의 말에 “그런 줄 잘 알면서 왜 우리 어머니를 쫓아내신 거지요?”라고 되받는 아이의 외침 속에는 엉뚱한 명분으로 여성을 억누르는 세상에 대한 항변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자의 방귀에 얽힌 사연으로는 아마도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가 최고일 것이다.
옛날에 방귀를 잘 뀌는 처녀가 시집을 가게 됐다. 부모님은 절대 방귀를 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시집간 여자는 방귀를 억지로 참다 보니 얼굴이 노래져서 사색이 됐다. 시부모님이 보다 못해 이상해서 물었다.
“아가야, 왜 그러냐? 어디 아픈 데라도 있어?”
“아, 그게요. 뀌고 싶은 방귀를 못 뀌어서 그래요.”
“뭐라고? 야, 그까짓 방귀 맘껏 뀌어라. 괜찮다!”
며느리가 기쁜 마음에 방귀를 ‘뿡!’ 하고 뀌었더니 그만 난리법석이 났다. 시아버지가 기둥에 매달린 채 세 바퀴를 돌고, 가마솥 뚜껑이 덜컥 열려서 시어머니가 쏙 빠지고, 문짝이 신랑을 매단 채로 열렸다 닫혔다 했다. 마당을 쓸던 노인네는 몇십 리 밖으로 날아가서 ‘여기가 어딘가’ 하면서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야, 이래서야 집안 살림이 하나라도 남겠나. 안 되겠다. 가자!”
며느리는 방귀 한 번 제대로 뀌었다가 시아버지 손에 이끌려 친정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둘이 길을 가면서 언덕을 넘어서다 잠시 쉬는데 나무에 배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이야, 저 배 맛있게 생겼구나!”
“아버님, 제가 저 배 따드릴까요?”
“저렇게 높이 있는 걸 어떻게 따?”
“에이, 그까짓 거 일도 아니에요!”
며느리는 배나무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대더니 ‘뿡!’ 하고 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나무줄기가 뒤뚱뒤뚱하고 가지가 덜덜덜 떨리면서 배가 후두두 떨어져내렸다. 시아버지가 먹어보니 향기까지 더해져서 그런지 맛이 천하일품이었다.
“네 방귀 그거 쓸모 있구나.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며느리는 다시 시댁으로 와서 살게 됐다. 며느리의 방귀가 얼마나 쓸모가 많은지 그 집은 그 후로 큰 부자가 돼서 잘 살았다고 한다.
한 편의 우스운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그냥 마음 편하게 웃고 즐기는 것이 제격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속에 만만치 않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방귀’가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여성들의 억눌린 욕망을 상징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며느리가 방귀를 못 뀌고 억지로 참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억압된 상황을 나타낸다. 욕망이 억압되니 부작용이 나타난다. 며느리가 얼굴이 노래져서 사색이 되는 모습이 그것이다.
마침내 며느리가 방귀를 한 번 뀌니 그 힘이 막강하다. 그간 참고 참았던 터라 위력이 몇 배가 됐을 것이다. 실제로 억눌렸던 욕망이 터져 나오면 이처럼 무시무시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저 집에서는 며느리를 쫓아냄으로써 그 욕망의 힘을 피하려 하지만, 그 힘이란 실제로는 부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맛있는 배도 생겨나고 집안 살림도 불어나 부자가 된다. 이 이야기는 즐거운 웃음 속에서 여성의 욕망이란 거부하고 배제하기보다 긍정하고 끌어안아야 할 대상임을 말해준다.
어느 날 방귀쟁이 며느리 집에 웬 유기 장수가 찾아오더니, 자기도 방귀깨나 뀐다며 한번 시합을 붙어보자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가득 둘러싼 가운데 한판 대결이 벌어졌다. 먼저 유기 장수가 엉덩이를 내밀고 힘을 주었다.
“갠지 갠지 갠지갠! 깨갱 깨갱 깨갱깽!”
방귀가 박자를 제대로 맞추어 꽹과리 소리를 냈다. 이때 미소를 지으면서 며느리가 엉덩이를 내밀었다.
“웅박캥캥 늴리리, 웅박캥캥 삘리리!”
그만 엉덩이에서 삼현육각 소리가 한바탕 울려 퍼졌다.
“갠지 갠지 갠지갠! 웅박캥캥 늴리리~ 깨갱 깨갱 깨갱깽, 웅박캥캥 삘리리~~.”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방귀 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얼쑤~! 좋다~!”
어찌 여성의 욕망뿐일까. 남성도 마찬가지고, 노인들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누르고 막으면 부작용이 생긴다. 반대로 자연스럽게 배출하면 욕망은 즐겁고 생산적인 힘이 된다.

구비문학자 신동흔 교수가 들려주는 옛날 옛적에_두 번째 이야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구비문학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우리나라의 민담과 신화, 설화 등 사라져가는 옛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계민담전집1 한국 편」, 「살아 있는 우리 신화」,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시집살이 이야기 집성」 등이 있으며, 그의 홈페이지 (www.gubi.co.kr)를 통해서도 다양한 우리 옛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신동흔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