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공무원, 요리로 인생 역전…‘마스터셰프 코리아2’ 도전자 윤리
‘마스터셰프 코리아2(이하 마셰코2)’의 다섯 번째 요리 미션인 베이킹 경연의 탈락 미션 현장. 심사위원과 도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탈락 대상자로 선정된 윤리(46) 도전자가 완벽하게 부풀어 오른 수플레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수플레는 섬세한 재료 배합과 정확한 조리 과정이 요구되는 까다로운 디저트.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오븐 안에 들어간 수플레가 부풀어 오르던 순간, 윤리 도전자가 급하게 오븐을 열고 수플레를 꺼냈다. 충분히 시간을 채우지 못한 수플레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태. 결국 그는 마셰코2 본선에 진출한 14명의 도전자 중 다섯 번째로 앞치마를 반납하며 3개월간의 도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주방에서보다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선한 눈매와 연륜이 묻어나는 눈빛, 멋진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얼굴과 마주하니 ‘윤리 클루니’라는 그의 별명이 떠올랐다. 도전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2주. 아내는 “수고했다”라는 말로 석 달 만에 집에 돌아온 남편을 맞았다.
“도전기간 동안 합숙소에서 지내며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거든요. 탈락이 결정되는 순간 ‘아, 이제 집에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심사위원들의 잔소리와 안녕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죠(웃음).”
말로는 홀가분했다는 그이지만 사실 탈락하고 1주일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니 역시나 아쉬움이 컸나 보다. 평소 자신 없어 하던 베이킹 미션, 거기다 도전자들이 가장 두려움에 떤다는 ‘공포의 머랭치기’까지 탈락 미션으로 수행해야 했으니 더욱 아쉬웠을 법도 하다.
“보통 탈락 미션은 상위권 한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도전자들이 함께하는데, 베이킹 미션 때는 저와 김하나씨 단둘이 미션을 수행했어요.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탈락하는 거였죠. 대기실에서 펑펑 우는 김하나씨를 달래면서 저도 참 마음이 심란하더라고요.”
탈락 미션이었던 수플레는 정확한 계량과 온도, 머랭 만들기 등 복잡한 조리 과정을 필요로 하는 음식이다. 그만큼 험난한 수행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장 큰 혼란을 준 것은 본래 알고 있던 수플레 레시피와 제공된 레시피가 달랐던 것. 중간에 달걀노른자를 익혀야 하는데 레시피에는 그 과정이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고민 끝에 제공된 레시피대로 요리를 수행하던 그는 결국 오븐에 넣기 직전에 실수를 깨닫고 처음부터 요리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평소 심사위원님들이 요리에는 ‘원래’라는 것이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거든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만드는 방법도 있나 보다, 하는 생각에 레시피대로 했는데 실수였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정신없이 재료를 배합한 다음 이번에는 무사히 오븐에 골인했다. 남은 시간은 15분, 이제 수플레가 부풀어 오르기만을 기다리면 되는데, 오븐을 들여다보던 그가 갑자기 문을 열고 수플레를 꺼내버렸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윤리는 오븐에서 왜 그렇게 빨리 수플레를 꺼냈는가’라는 궁금증을 남긴 장면이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오븐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수플레가 부풀어 오르다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더라고요. 어디선가 수플레가 한쪽으로 흐트러진다 싶으면 꺼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 급하게 빼버리고 만 거예요. 좀 더 차분히 기다렸어야 하는데 말이죠.”
결론은 사공이 많았다는 것.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주위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주관을 가져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얻은 또 하나의 귀중한 깨달음.
“제가 베이킹에 약한 걸 알고 아내가 언젠가 미션으로 나올 테니 미리 준비하라고 했거든요. 그때 미리 좀 해둘걸, 역시 아내 말을 잘 들어야 돼요(웃음).”
잘나가던 뉴욕 주 공무원, 요리로 쓴 인생 역전 드라마
그의 본업은 비즈니스다. 열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에서 법률과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뉴욕 주정부 공무원으로 9년을 일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는 이제 7년째. 현재 한국과 홍콩을 오가는 무역업에 종사하며 강남에서 작은 와인 바를 운영하고 있다. 독특한 이력이 화제가 된 만큼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했다.
“뉴욕 주정부 경제부 내에서 국제 부문을 담당했어요. 뉴욕에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외국 기업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죠. 경제부 장관 보좌관으로 대행 업무도 수행했고요.”

뉴욕 공무원, 요리로 인생 역전…‘마스터셰프 코리아2’ 도전자 윤리
“거의 매일 밤 장관을 대신해 각종 파티에 참석했어요. 옆에서 툭 치면 자동으로 인사말이 튀어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계획하던 연방정부 진출이 좌절되며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사업 파트너가 요식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어요. 마침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죠.”
타고난 도전자 기질이 있었던 걸까? 10년 가까이 일해온 안정된 직장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의외로 망설임 없이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뉴욕 주 공무원에서 대형 시푸드 레스토랑 사장으로 요리와 첫 인연을 맺은 순간이었다.
“규모가 꽤 컸어요. 한꺼번에 5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층짜리 건물에 일하는 스태프만 80여 명이었으니까요.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으니 장사가 정말 잘됐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일상에 여유도 생기고 또 장사까지 잘되니 더 이상 바랄게 없었어요.”
그렇게 화려한 인생 2막이 열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2001년 뉴욕에 9·11테러가 발생하며 레스토랑 경영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의 희생을 치른 사건인지라 시민들 사이에서 유흥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애도 기간이 1년 넘게 지속됐어요. 집집마다 성조기가 걸리고 외식도 자제하는 분위기였죠. 자연히 레스토랑 경영에 타격이 왔고, 결국 오픈한 지 2년 만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어요.”
의기양양하게 시작한 첫 사업은 그렇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시작한 여러 사업에서도 실패가 이어졌다. 멕시코에 공장도 지어봤다는 말에 어떤 일이었는지 묻자 얘기하면 길다며 사람 좋은 미소만 지어 보인다. 인생의 큰 시름없이 성공가도만을 달려왔을 것 같은 이 젠틀하고 여유 넘치는 뉴요커의 과거에는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전과는 180° 다른 삶을 살게 됐으니 요리로 인생 역전한 것만은 확실하다.
“힘든 일을 계속해서 겪다 보니 미국이 싫어지더라고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맨해튼의 집을 팔고 서울로 돌아왔어요.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2006년이었다.
한 끼가 즐거우면 인생이 즐거워져요

뉴욕 공무원, 요리로 인생 역전…‘마스터셰프 코리아2’ 도전자 윤리
“그때 주방을 알았어요. 사실 그 전까지 요리를 취미로만 했지 식당을 하면서도 진지하게 배워볼 생각을 못했거든요. 모르니까 답답하더라고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단골 일식당과 중식당을 찾아다녔어요. 무작정 가서 일 좀 하게 해달라고 졸랐죠. 설거지, 청소 다 할 테니까 하루에 몇 시간만 배우게 해달라고요.”
‘사장님’으로 불리던 단골손님이 일을 배우게 해달라니, 식당 입장에서 황당한 것은 둘째치고 불혹을 넘긴 나이에 힘든 주방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주위의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요리 감각으로 귀동냥, 눈대중으로 배운 요리를 금방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무척 재미있는 거예요. 어느 정도 요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배우다 보니 새롭게 시도해볼 만한 것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제가 하는 요리가 전형적인 미국식이라 생각하시는데, 사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건 한국에서였어요.”
마셰코2 1차 오디션이었던 ‘100인의 오디션’에서도 ‘홍어구이를 올린 버섯리소토와 두릅구이’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그다. 틀에 박힌 레시피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식재료를 신선하게 재해석한 결과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법을 요리를 통해 배웠다. 유행이나 규모에 치우치지 않은 조그만 와인 바를 오픈해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요리 철학에서 비롯된 것. 사업으로 바쁘게 해외를 오가며 요리가 마음 한쪽에 간직한 꿈이 돼가고 있던 중 그에게 마셰코2 지원을 권유한 것은 바로 아내였다.
“당시 베트남에 있었는데 아내가 전화를 해서 ‘한번 도전해보는 거 어때?’라고 하더군요. 자세한 건 묻지도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요식업을 하며 많은 실패를 겪고 나니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요리로 제대로 된 성공을 보여주고 싶었나 봐요. 나도 요리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싶었던 거죠. 그게 가장 큰 동기였고, 그런 면에선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가 Top 14 도전자들과 함께 숙소에 합류하던 날은 아내가 산부인과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숙소에 들어가게 되면 외부와 연락이 일체 차단되기 때문에 이만저만 걱정됐던 것이 아니다.
“딸이 미국에 있어요. 한국에는 아내와 저 둘뿐이거든요. 하마터면 뛰쳐나갈 뻔했죠(웃음).”
다행히 그는 숙소를 뛰쳐나가지 않았고 젊은 도전자들과 함께 꿈을 향한 가슴 뛰는 경쟁을 펼칠 수 있었다.
“젊은 친구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좋았고 또 영광이었어요. 아마 제가 스무 살 때 이러한 경험을 했다면 지금 느끼는 이 도전의 가치를 몰랐을 거예요. 이 나이에 하고 보니 정말 감사해요. ‘내가 이걸 해냈다니, 앞으로 뭐든 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됐죠. 희망은 어느 곳에나 있다는 것,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소박한 하루하루를 꾸며가고 있는 중이다. 아내와 번갈아가며 파스타와 김치찌개를 요리하고, 캠핑 장비를 사 모으며 휴가 계획을 세우고, TV 출연이 가져다준 약간의 유명세를 비타민 삼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살고 싶다. 언젠가 테이블 여섯 개 정도 되는 작은 레스토랑을 열어 외국 사람들이 편안하게 한식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요리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간직한 채 말이다.
“요리는 무궁무진한 분야예요.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한 끼가 즐거우면 하루가 즐겁고 하루가 즐거우면 1년이 즐겁고 1년이 즐거우면 인생이 즐거워져요. 꼭 요리가 아니더라도 모두 인생을 풍요롭게 할 작은 즐거움 하나씩 발견하시길 바랄게요.”
윤리가 제안하는 아내를 위한 남편 요리 레시피
간단 닭조림덮밥
1 뼈를 바른 닭다리살을 껍질째 준비해주세요. 2 소스는 간장과 맛술, 청주, 설탕, 후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 다진 파를 넣어 만듭니다. 3 준비된 소스에 닭다리살을 5분 정도 재워주세요. 4 프라이팬에 소스에 재운 닭고기를 껍질 부분부터 앞뒤로 2분씩 구운 다음 쿠킹 포일에 놓고 남은 소스를 뿌려 200℃로 예열한 오븐에 5분간 구워주세요. 오븐이 없는 경우 프라이팬에 물을 살짝 붓고 뚜껑을 덮어 구워줍니다. 굽기 전에 닭고기에 칼집을 넣어주면 골고루 잘 익어요. 5 토핑으로 잘게 썬 지단과 김가루를 준비해주세요. 6 이제 밥 위에 닭조림을 얹고 마지막으로 지단과 김가루를 뿌려주면 완성!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사진 제공 / 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