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스럽지만 고집스럽게…메이크업 아티스트 선덕
“저는 누구누구를 좇는 트렌드를 좋아하지 않아요. 고객들한테도 그렇게 말해요. 그런 건 연예인이나 어울리는 거라고요(웃음). 연예인들과 우리는 삶의 방식도 패턴도 달라요. 그 눈화장을 한다고 해서 그 눈빛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아름다움은 행복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것이 메이크업의 핵심이라고 믿어요.”
당당한 고졸 출신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무 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선덕 원장은 정신과 의사를 꿈꿨다. 하지만 바라던 학교, 뜻하던 학과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고 여유롭지 못했던 가정 형편 탓에 재수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린 마음이었지만 부모님께 경제적인 보탬을 주고 싶었던 그녀는 아버지를 설득해 여의도의 한 메이크업 학원을 찾았다.
“저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서 MBC와 연극 무대에서 분장 일을 하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쪽 분야의 일을 하게 됐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환경이 더 열악했어요. 한 달 내내 쉬지도 못하고 24시간 대기하며 받은 돈이 고작 10만원 정도였죠. 생계가 어려워 아침저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메이크업을 배웠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촬영 현장에 순 남자들뿐이니 커피를 타고 잔심부름을 하는 일도 다 제 몫이었어요. 오죽하면 별명이 ‘썬 다방’이었겠어요(웃음).”
즐거움이 앞섰기에 고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감각적인 실력과 성실한 성격 덕에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마침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작품인 뮤지컬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업계에 좋은 평판을 남기며 그녀는 본격적으로 무대 메이크업을 맡게 됐다. 꼬박 6년.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함께 숨을 쉬고, 주어진 역할에 맞는 메이크업을 직접 디자인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했다. 인내의 열매는 뮤지컬 ‘명성황후’라는 대작을 통해 맺어졌다. 그때 나이 스물여섯. 1백20명이나 되는 배우들의 메이크업을 하면서 몸은 비록 고됐지만 마음만은 무척 행복했다. 이후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등의 뮤지컬 무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수십 년 경력의 분장사들 사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그녀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무대를 떠올리면 심장이 뛰어요. 하지만 그 당시 문득 ‘언제까지나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적인 문제였는데, 일은 한정적이고 가져가는 몫은 적은 상황이다 보니, 후배들이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가 떠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맨땅에 헤딩하기
다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인맥도, 세련된 사업 노하우도 없었지만 사람에 대한 진심, 그것 하나면 충분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냉랭했다. 지난 10년의 화려한 경력이 그저 이력서의 한 줄을 채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전혀 다른 세상과 마주하게 됐다.
“이른바 ‘몸값’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처음 웨딩 플래너와 미팅을 했는데 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더라고요. 나름 무대 메이크업 세계에선 승승장구하던 사람인데…. 자존심이 상해 그 자리에서 엄청 울었죠. 몰랐던 현실에 좌절하며 ‘다시 무대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다른 뷰티숍에서 러브콜이 왔어요. 면접을 보러 갔는데 ‘경력이 전무한 것과 마찬가지니 직원들 앞에서 테스트를 했으면 한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과거에 연연하다 보면 나만 더 힘들어지니 받아들일 건 빨리 받아들이자,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촌스럽지만 고집스럽게…메이크업 아티스트 선덕
“예쁜 사람의 메이크업은 누구나 예쁘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실력이거든요. 저는 촌스러운 방법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메이크업을 배웠잖아요. 거기에 무대 메이크업을 하면서 큰 그림을 익혔고 거칠고 굵은 선을 그리는 데는 도가 텄어요. 펜이나 붓을 다루는 것도 능수능란하죠. 다른 분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하는 아이라인을 저는 상대적으로 아주 쉽고, 빨리 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아이라인을 파격적으로 잘 그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입소문을 타게 됐죠(웃음).”
무대 메이크업을 하던 시절부터 함께해온 배우 강성연, 단골 숍이 문을 닫으며 우연한 기회에 그녀를 찾았다가 10년째 인연을 이어오는 한채영과는 막역한 사이다.
“다른 뷰티숍처럼 스타 마케팅도 좀 해야 하는데 성격이 유들유들하지 못해 그게 참 힘들어요. 성연씨나 채영씨에게는 농담처럼 ‘당신들보다 내 고객들이 더 소중해’라고 말하기도 해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사람들은 스타들에 앞서 일반인 고객들이니까요.”
까다롭기로 유명한 신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실제로 많은 신부들이 그녀의 솜씨에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라고 후한 칭찬을 늘어놓는다.
“사실 신부 화장이라는 것이 웬만한 베테랑이 아니고서는 소화해내기가 어렵거든요. 더욱이 내가 가장 돋보이고 싶다는 기대감을 갖고 오시잖아요. 그 사람에 대해 애정을 쏟지 않고 또 파악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없어요. 그래서 하루 20명 가까운 신부들을 혼자 다 맡은 적도 있어요. 상담을 하고, 관리 차트를 적고, 메이크업을 받고 나서는 순간까지 모두 제가 체크했죠. 그 고지식함이 트렌드가 된 것 같아요.”
9월 말쯤 또 하나의 뷰티숍을 오픈할 예정인 선덕 원장은 인터뷰 말미, 자신의 세 번째 꿈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기회가 된다면 후배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학벌이나 인맥보다 기본과 진심이 중요해요. 저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걸 널리 알리고 싶어요. 또 현재 직원들이 1백 명 정도 되는데, 모두가 잘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용계의 삼성이 한번 돼보는 것이 작은 소망이에요(웃음). 그러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