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아이, 19세기 귀족의 주얼리로 꾸며진 그녀의 비밀 정원

일본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

다나카 아이, 19세기 귀족의 주얼리로 꾸며진 그녀의 비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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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코 시리즈’는 옆 나라 일본에 살고 있는 아이코(愛子)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여성이란,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가’의 의미를 찾는 기획 기사다. 일본의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삶을 따라가보며 한국과의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들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번에는 앤티크 주얼리 숍의 대표이자 디자이너로 활약 중인 다나카 아이를 통해 일본 부유층의 삶을 엿본다.

도쿄 아오야마는 프라다, 구찌, 샤넬 매장이 늘어선 명품 거리다. 오카모토 타로 미술관, 네즈 미술관에서 예술의 향도 느낄 수 있다. 번잡스러운 쇼핑가를 벗어나면 골목 사이사이에는 자신만의 가게를 경영하는 젊은이들이 있고, 그 골목으로 좀 더 들어가면 으리으리하고 개성이 넘치는 주택가가 펼쳐진다. 원룸의 월세만 해도 10만 엔 이상으로 도쿄에서 집세가 가장 비싼 곳이기도 하다. 주얼리 디자이너 다나카 아이(42)의 가게는 고즈넉한 주택가에 우뚝 선 고급 아파트에 입주해 있다. 로비에 분수가 흐르는, 곁눈질로만 봐도 고급스러운 아파트다. 간판도 붙어 있지 않고, 손님 마음대로 오갈 수도 없다. 아는 사람만 아는 ‘프라이빗 숍’인 것.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시간대별로 예약을 받고 있어서 손님끼리 부딪칠 일도 없다. 그녀의 가게 ‘빅토리안 박스’에 가려면 무엇보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일본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다나카 아이, 19세기 귀족의 주얼리로 꾸며진 그녀의 비밀 정원

[일본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다나카 아이, 19세기 귀족의 주얼리로 꾸며진 그녀의 비밀 정원

필자는 일본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이런 비밀 가게에 가보기는 처음이다. 성인용품 가게에 가는 것보다 더 떨렸다. 일반 주얼리 숍에 갈 때도 마음이 두근거리며 옷매무새까지 가다듬는데, ‘셀렙’을 위한 비밀 가게이니 오죽할까. 아파트는 금세 찾았지만 입구를 찾을 수가 없어 주변을 서너 바퀴 돌았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덕분에 입구를 찾아 초인종을 누르고, 여러 개의 잠금장치를 통과한 후 ‘빅토리안 박스’에 도착했다. 커다란 천연석 주얼리를 한 다나카 아이가 미소로 맞아주었다. 그야말로 소설 「설국」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공간의 괴리감을 느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 아니 ‘보석의 고장’이었다.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등등 화려하고 다채로운 보석이 샹들리에 아래서 빛을 발하고 있다.

영국에서 자유와 예술을 배우다
프라이빗 숍은 처음이에요. 가슴이 설레네요.

특정 손님을 대상으로 앤티크 주얼리와 오리지널 주얼리를 판매하고 있어요. 오리지널은 제가 직접 디자인하고요. 요즘은 상하이의 숍에도 주얼리를 제공하고 있어요.

주얼리의 세계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는요?
유치원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해서, 그 시절 꿈이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비즈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엄마한테 선물했는데 동네 아줌마들한테 인기가 좋았어요. 돈을 줄 테니 만들어달라는 분들이 있었을 정도로. 중·고생 때는 ‘이케바나’라 불리는 일본 꽃꽂이를 배웠어요. 꽃꽂이 전문가를 꿈꿨죠. 그러다 우연히 자연을 소재로 한 랜드스케이프 아트를 접했어요. 자연을 아트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꽃꽂이와도 일맥상통했고, 그걸 배우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럼 처음부터 주얼리 디자이너를 꿈꿨던 건 아니군요.
셰필드 대학과 더비 대학에서 주얼리의 역사와 비즈니스, 제작법을 배웠어요. 대학에 간 첫날, 그릴 재료를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릴 재료? 일본 학교는 물감인지, 목탄인지, 먹인지 재료를 정해주잖아요. 종이 크기까지. 근데 그냥 그릴 재료를 가져오래요. 그것부터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보드를 사려고 했더니 일본에 흔히 있는 재료 가게인 도큐핸즈(잡화점)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무판자를 사고 종이를 직접 붙여서 보드를 만들어 가져갔죠. 그렇게 날이 밝았어요.

그래서요?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캔버스 대신 종이컵을 가져온 학생, 아예 발가벗고 온 학생에다 붓 대신 나뭇가지를 가져온 학생도 있었어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자기네 집 문짝을 떼어왔더라고요. 그림을 그려 다시 가져다 붙인다고. 맨홀 뚜껑을 가져온 학생도 있었어요. 그건 법에 저촉되지 않나요?(웃음) 여하튼 그런 자유로운 사상 자체가 문화적 충격이었죠.

19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 시절, 여대생들은 영국을 동경했다. 「런던에 가고 싶다」는 책이 발매됐을 정도로 인기였다. 영국의 최신 록 음악과 패션은 일본 여대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신 런던에 가고 싶다」까지 시리즈로 발매됐다. 다나카 아이는 동경하던 영국에서 조각을 전공하려 했으나 일본까지 가져갈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쳐 가장 작은 조각인 주얼리 아트를 공부하게 됐다.

졸업 후 바로 가게를 열었나요?
졸업 전시회에 제출한 주얼리가 영국 백화점, 하비 니콜스 담당자의 눈에 띄었죠. 곧바로 제 이름을 그대로 쓴 ‘Ai Tanaka’란 브랜드를 만들어 하비 니콜스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운이 좋았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치과 한편에 제작소를 만들어 거기서 작업을 한 뒤 하비 니콜스에 가져가는 생활을 했어요. 영국에서 번 돈으로 주얼리 마켓에 가서 앤티크 주얼리를 사 모았어요. 거품 경제였던 일본에선 앤티크 주얼리(1백 년 이상 된 주얼리로 주로 19세기 영국 귀족들이 애용하던 것)가 인기였거든요. 미키모토(일본의 주얼리 브랜드로 진주가 유명하다) 바이어를 소개받아 제가 수집한 주얼리를 철제로 된 과자 상자에 넣어 찾아갔어요.

과자 상자요?
네. 미키모토 바이어가 “바이어 인생 40년에 과자 상자에 주얼리를 가져온 사람은 처음 본다”라며 웃더라고요. 스물셋의 나이에 대학을 갓 졸업해서아무것도 몰랐던 거예요. 그냥 주얼리가 좋아서 그걸 팔고 싶어서 급하게 찾아간 거죠.

그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런던의 주얼리 마켓을 휘젓고 다녔다. 손전등을 들고 어둠 속에서 오래된 주얼리를 하나하나 확인해 그녀의 눈에 든 것만 사 모았다. 그녀의 전략은 마침 유행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거품 경제 시절, 앤티크 주얼리는 일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고, 다나카 아이가 수집한 제품은 미키모토에서 판매됐다. 유명 주얼리 브랜드 두 곳에 판로를 얻은 건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에겐 크나큰 성공이었다.

한 평에서 시작해 주얼리 숍의 대표가 되다
디자이너에서 주얼리 컬렉터 그리고 현재는 주얼리 숍의 대표인데, 첫 가게는 언제 열었나요?

20년 전에 메구로에 한 평짜리, 관리비까지 3만 엔인 가게가 제 첫 가게였어요. 주얼리도 서른 개가 전부였고요. 그때부터 예약제로 판매를 시작했어요. 광고는 처음엔 입소문으로, 나중엔 블로그를 통해서만 했지요. 점점 손님이 많아지면서 가게가 커졌어요. 일반 앤티크 숍은 구매 가격의 열 배는 더 되는 가격으로 팔았지만 저는 좀 더 싼 가격으로 설정했거든요. 그랬더니 금세 소문이 나서 세일 때는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였어요.

디자이너로, 대표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경영방침은 무엇인가요?
저는 꼭 돈이 많아야 성공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손님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느냐가 핵심이지요. 손님의 요구사항을 가능하면 다 들어드리고 싶어서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한 분 한 분께 가장 적절한 주얼리를 소개하고 싶고, 또 오래 천천히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어서요. 손님을 보석처럼 소중하게 대하면 그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소개해주시거든요.

디자이너, 컬렉터라면 매우 바쁠 텐데 언제 일의 보람을 느끼나요?
손님이 기뻐할 때죠. 제 블로그를 보고 홋카이도, 오키나와, 캐나다,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까지 찾아와주시거나, 이메일을 통해서 구입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럴 때 정말 보람을 느끼죠. 저한테 약혼반지나 결혼반지 디자인을 부탁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 반지에 두 사람의 이름을 새길 때 감동을 느껴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는지요?
주얼리가 좋고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아요.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해서 손님을 초대해 와인 파티를 가끔 열어요. 대화하고 술 마시고 그런 분위기가 좋아요. 조용히 혼자 지내는 시간도 좋지만 전 남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성격이에요.

그녀의 재능 8할은 할머니 손에서
다나카 아이는 도쿄 세타가야구에서 자랐다. 일본의 부촌이다. 아버지는 치과의사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외할머니는 3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귀족을 위한 숙소를 경영하던 집안의 후손이다. 나가노에는 아직도 이 집안의 옛 호텔이 남아 있다. 현재 호텔로는 쓰지 않지만, 유서 깊은 건물을 지키기 위해 어린 시절 여름방학은 온통 건물 청소를 하며 보냈다고 한다.

주얼리를 만들고 가게를 오픈하고 모두 혼자 해왔는데, 그 비결은요?
저희 외할머니 덕분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외할머니 옆집에 살았어요. 저는 학습장애랄까, 집중력이 떨어지고 공부는 당연히 못했죠. 할머니는 그런 저를 보고 심하게 놀라신 것 같아요. 그때부터 매일 손수 문제집을 만들어주셨어요. 하루 한 장씩. 사회, 산수, 국어 등등. 캐릭터 그림을 직접 그리시고, 그 옆에 문제를 내주셨죠. 방과 후에는 할머니 집에 가서 할머니가 만든 문제집을 풀고, 할머니와 함께 놀았어요. 달리기, 나무 오르기, 창호지 붙이기, 종이 접기 등등 모든 걸 할머니한테 배웠어요.

할머니 교육의 효과는요?
그게 말이죠, 제가 반에서 꼴찌 수준이었는데, 할머니 옆집에 살고 나서부터는 1등이 됐어요. 게다가 달리기도 잘하게 돼 운동회 때는 릴레이 선수로 뽑혔고요. 덕분에 엄마가 다니셨던 가쿠슈인 중학교에 무사히 입학했어요.

가쿠슈인은 초·중·고, 대학교까지 있으며 일본의 왕족·귀족이 다니는 학교로 유명하다. 일본의 상류사회를 나타내는 단어는 세타가야구(고급 주택지)와 가쿠슈인(귀족 명문학교)이다. 다나카 아이는 세타가야구에 살며, 가쿠슈인을 다녔다. 일본의 상류층으로 살아왔고, 그런 상류층을 위해 까르띠에의 앤티크 다이아몬드, 19세기 영국 귀족의 보석을 판매하고 있다.

명문 중·고교를 나왔고, 유서 깊은 집안 출신이잖아요. 어떻게 컸나요?
별거 없어요. 그냥 평범하게 자랐어요. 여름마다 외갓집의 옛 호텔을 청소하고, 아빠 별장을 청소하고 또 청소하던 기억밖에 없어요. 남들은 부자라고 부러워하는데, 유지비만 해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청소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매년 저희가 직접 했어요. 벽걸이 그림만 해도 무려 6백 장. 그걸 다 떼어내고 닦는 거예요. 솔직히 여름방학이 지긋지긋했죠.

그녀는 재산을 물려받을 욕심을 부려본 적도 없고, 부모로부터 좋은 차를 선물받은 기억도 없다. 단지 할머니가 공부를 가르쳐주신 덕분에 꼴찌를 면했던 것과 외국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할 뿐이다. 가쿠슈인 시절의 친구들과는 여전히 깊은 인연을 맺고 있고, 그들은 그녀의 주얼리를 사랑하는 고객이 됐다.

일본, 영국, 중국을 오가는 비즈니스우먼
다나카 아이는 작년 중국 상하이로 비즈니스 거점을 옮겼다. 그녀는 올해로 열한 살이 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맘이다. 일본에 있으면 일에 치여서 아들을 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녀가 외할머니에게 받은 것처럼 건축가가 꿈인 아들을 그렇게 지원해주고 싶다.

상하이에 간 계기는 무엇인가요?
유니세프 홍보 일을 하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상하이로 갔어요. 전 거기 놀러 갔어요.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2주간 오롯이 아들과 함께한 거죠. 의외로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저는 일이 없으면 심심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상하이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죠. 그곳은 우선 교육열이 높고 국제학교가 일본보다 저렴하며,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었어요. 아이가 더 크기 전에 2년만 일보다 아이를 위해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상하이 생활은 어때요?
환경오염이 심각해요. 천식이 있어서 집 안에선 공기청정기를 써야하고, 외출할 땐 마스크가 필수예요. 초기엔 영어와 중국어를 쓰는 인터내셔널 스쿨에 아들이 적응을 못해서 억지로 학교 보내느라 고생 좀 했죠. 요즘은 즐겁게 잘 다니고 있어요.

상하이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은 없나요?
거기는 참 자유로워요. 가구 매장인 이케아의 전시용 침대에 누워서 실제로 자는 사람도 있고, 한 커플은 소파에서 도시락을 먹더라고요. 도시락을 먹고 나서는 망고와 과도를 꺼내들고 껍질을 깎기 시작하는 거예요(웃음). 일본에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죠. 저는 그런 것들도 즐기고 있어요.

그녀가 상하이에 있는 동안 아오야마의 가게는 직원이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컴퓨터로 가게를 연결해 손님과 대화를 나눈다. 상하이에선 아들 교육에만 전념할 생각이었는데, 그녀의 팬이라는 상하이 비단 잡화점 애너벨 리의 요청으로 최근 그곳에 자신만의 브랜드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의 가게 앞에 선 필자는 37년을 살아오면서 이런 곳과 전혀 인연 없이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을 약간 한탄했다. 필자처럼 상류층과 인연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앤티크 보석 모양이지만 훨씬 저렴한 오리지널 주얼리도 디자인하고 있다. 독자 누구라도 도쿄를 방문한다면, 그녀의 가게를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세상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아두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영국과 아트에 심취했던 한 소녀가 실제로 주얼리 디자이너가 됐고,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고 브랜드까지 만들어냈다. 꿈의 주인공 다나카 아이. 성공 비결은 열정이다. 마치 신들린 듯 밤새 일하고도 즐거운 것. 잘 모르는 외국의 주얼리 마켓을 돌아다니면서도 흥이 나는 것. 냉정한 눈으로 좋은 주얼리를 만들고 수집하는 그런 열정이 그녀에게 성공을 가져왔다고 믿는다. 필자는 대범함도 성공 비결에 추가하고 싶다. 영국에서 주얼리를 판 돈으로 다시 주얼리를 구입하는 그런 대범함 말이다. 필자처럼 소심한 사람은 그 돈을 뭉쳐 쥐고 귀국했을 것이다. 환율을 아까워하면서. 겨우 스물을 넘긴 나이에 그녀는 번 돈을 모두 재투자하는 엄청난 리스크를 선택한 것이다. 그녀의 ‘아이’란 이름은 ‘모두를 사랑하라’라는 아가페적 의미에서 부모님이 지어주셨다. 외국 바이어들과 만날 일이 많다 보니 외우기 쉬운 자신의 이름이 더욱 좋아졌다고 한다. 하나씩 이뤄온 인생, 다양한 주얼리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앞으로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다나카 아이의 Album
[일본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다나카 아이, 19세기 귀족의 주얼리로 꾸며진 그녀의 비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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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이어를 사용해 시원스러운 느낌을 살린 주얼리.
일본 잡지 「25ans」에 실린 빅토리안 박스.
전 세계 주얼리 마켓에서 수집한 앤티크 반지들.
비밀 가게인 빅토리안 박스. 어디에 있는지는 고객에게만 살짝 알려준다. 일반인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상류층만을 위한 주얼리 숍이다.

[일본통신원 김민정이 만난 열두 명의 아이코]다나카 아이, 19세기 귀족의 주얼리로 꾸며진 그녀의 비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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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이던 성적을 1등으로 올려주신 외할머니. 요즘은 치매가 와서 손녀에게 주었던 지혜를 모두 잊은 채 살고 계신다.
모든 고객은 예약제를 통해 받는다. 고객이 오는 시간은 절대로 겹치지 않는다. 천천히 맘에 드는 주얼리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기획 / 이유진 기자 ■글 / 김민정(일본통신원) ■사진 제공 / Yutaka Sakai(EGG) ■취재 협조 / 빅토리안 박스(gold.ap.teacup.com/victorian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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