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명수’  김선우·박혜윤 부부의 결혼 10년 차 보고서

‘싸움의 명수’ 김선우·박혜윤 부부의 결혼 10년 차 보고서

댓글 공유하기
두 사람 이상이 모인 곳엔 언제나 갈등이 있다. 부부 사이도 예외는 아닌지라 결혼생활의 많은 부분에 있어 부부는 다툼을 벌인다. 피곤하다고? 여기 ‘싸우지 않는 부부가 더 위험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번 이혼할 듯 서로에게 달려들지만 싸움은 규칙을 낳고, 규칙을 세운 문제로는 두 번 다시 싸우지 않는다는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흥미진진했다.

‘싸움의 명수’  김선우·박혜윤 부부의 결혼 10년 차 보고서

‘싸움의 명수’ 김선우·박혜윤 부부의 결혼 10년 차 보고서

저녁 7시, 부부가 서울 신사동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부부는 닮는다는데, 패션과 행동 패턴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냈다. 동아일보 전직 기자 박혜윤씨(40)는 쇼트커트에 편안한 복장, 수더분한 매너를 가진 반면, 남편인 같은 신문사 현직 기자 김선우씨(42)는 구김 없는 흰 와이셔츠에 빛나는 구두를 신었으며 행동에는 절제가 묻어났다. 다른 듯한 부부의 공통점은 싸움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싸움 예찬론자. 이 부부는 「싸우지 않는 부부가 위험하다」에 싸움의 철학을 담아 출판했다. 따지자면 확신범 쪽이다.

왜 이렇게 싸우나요?
아내
우리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화가 나요. 어떤 부분이 잘못됐나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면 화가 더 나고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왜 남편과 살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곤 합니다. 그래서 이혼을 불사하고 화를 내죠.

남편 저는 아내의 화를 멈추게 하려고 싸웁니다. 신혼 초에는 아내가 다혈질이니까 곧 화가 가라앉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싸움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제 판단이 틀렸더라고요. 아내는 화가 증폭되는 스타일이에요. 더 화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로바로 싸워야 합니다.

아내 제가 다혈질이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논리적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잘못된 부분들이 명확하게 보이는 거예요. 물론 무작정 화만 내는 건 아닙니다. 싸우고 나면 우리 부부는 어떤 결론을 도출해요. 부부만의 룰을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남편이 직업상 회식이 잦은데요. 전화도 안 주고 새벽 2시에 들어와서 꼭 저를 깨우는 습관이 있었어요. 가족을 기숙사 친구보다 더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지 않나요? 이런 부분들 때문에 크게 싸우고 나서는 밤 11시에는 집에 전화해서 회식이 언제쯤 끝날 것 같다고 언질을 준다는 규칙을 세웠어요. 이 규칙을 세운 이후로는 귀가 시간 문제로 다투는 일은 없었습니다.

부부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분은 동의합니다. 특히 신혼 부부에게 필요하죠.
아내 결혼 직후에 3백 일 정도는 정말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새벽 5시까지 싸운 적도 있어요. 욕이 난무하고 노트북이 부서지고 거의 전쟁통이었죠. 요즘은 체력이 달려서 새벽까지 싸우진 못하지만요(웃음).

남편 싸움이 상대방에게 감정의 응어리를 푸는 작업일 뿐이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싸움을 할 때 상대방이 하는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물론, 감정적으로 격앙돼 있을 때는 힘들지만요(웃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서로 오해했던 부분들을 찾게 됩니다. 각자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거죠. 방금 이야기했던 귀가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귀가 시간을 통보하라는 아내의 요구가 부당하게 느껴졌어요. 시간을 예측하는 게 어려울 뿐 아니라 저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언짢았죠. 하지만 아내는 제가 연락 없이 늦게 들어가는 행동을 자신을 무시하거나 아내로서의 존재를 부정당했다고 해석하더라고요. 싸움을 통해 상대방의 본심을 알게 되면 갈등을 해결하기 더 쉬워집니다.

글쎄요. 싸움하면 아무래도 감정이 상하게 되지 않나요?
아내 싸움에도 규칙이 필요해요. 우리 부부는 인신공격을 하지 않아요. 싸우는 이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요. 다른 부분들이 개입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거든요. 물론, 어렵죠. 그럴 때는 잠깐 멈춰서 ‘저 사람이 내 남편이 아니라 옆집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다소 객관적이고 너그러워져서 인신공격성 발언은 안 하게 됩니다.

남편 싫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일정한 주제에 대해서 의견을 맞춰나가는 건 다르잖아요. 그걸 구분하는 거죠. 물론 말처럼 쉽진 않지만 결혼생활 10년 동안 훈련을 받은 셈인 거죠.
아내 많은 육아 서적에서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싸워야 하면 싸웠어요. 물론 설명을 하죠. 아빠와 엄마가 서로 미워서 싸우는 게 아니라 생각이 달라서 화가 나는 거라고요. 아이들도 반복되는 주제에 대해서는 싸움으로 합의점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어서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들을 합의했나요?
아내 싸움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다, 회식이 있을 때는 밤 11시 전에 전화해서 예상 귀가 시간을 알린다, 상대방이 제안하면 일단 긍정한다 등이요. 마지막 규칙을 만들기 위해서는 숱하게 싸웠습니다. 가정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결정할 사항들이 많잖아요. 여름휴가지, 아이들 교육 문제, 주거 장소 등이요. 제가 제안을 하면 남편이 단점부터 지적하는 거예요. 직접 제안을 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의 제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나쁜 습관이잖아요. 언젠가는 휴가를 무산시킨 적도 있어요. 이것도 저것도 싫고 의견도 내지 않으면 휴가를 못 간다는 교훈을 준 거죠. 이후부터는 상대방의 제안에 대해 자세히 듣고,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이야기한 다음에 논의를 시작한다는 합의를 봤습니다.

남편 기념일에는 선물보다 편지 쓰기,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가 있을 때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아이들 앞에서 상대의 양육 방식에 대해 개입하거나 비난하지 않기 등의 규칙도 있습니다.

‘싸움의 명수’  김선우·박혜윤 부부의 결혼 10년 차 보고서

‘싸움의 명수’ 김선우·박혜윤 부부의 결혼 10년 차 보고서

아내 아, 최근에 만든 규칙도 있어요. 일명 ‘적극적인 이야기 듣기’예요.
남편 이야기를 들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단순히 ‘재미있었겠네’ 이런 건 안 됩니다. 만약 아내가 5분간 이야기를 했다면 저도 다른 질문을 하거나 비슷한 화젯거리로 2~3분 정도는 이야기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매번 그런 건 아니에요. 듣고만 싶을 때는 오늘은 반응을 하지 못한다고 미리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내도 이해하고요.

포기해야 하는 부분
부부의 이야기에 따르면 수많은 싸움이 지나간 자리에 규칙이 세워진다. 그런 규칙을 10년간 세운 셈인데, 그렇다면 더 이상 싸울 일도 없지 않을까. 물론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수 있겠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습성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 어떤 부부나 그렇듯 이들 부부도 마찬가지다.

이제, 결혼 10년 차인데 아직도 싸우나요?
남편 한 번 세운 규칙을 변경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여러 번의 싸움을 통해서 문제를 인식하고 정립한 것들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결혼 전 30년 동안 가지고 있던 습성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정말 싫어합니다. 반면 아내는 그런 저의 생활방식에 대한 저항감이 있고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기보단 자신의 행복에 맞춰 생활하라는 거죠.

아내 저 역시 까다로운 부분이 있어요. 집에 물건을 쌓아놓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요. 남편과는 반대죠. 전 안 읽는 책이나 읽고 난 책을 서재에 쌓아두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책뿐 아니라 가구, 의류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이 파란색 셔츠가 있는데, 또 파란색을 사려고 하면 집에 있는 셔츠는 버리라고 말하는 거죠. 소유물을 최소화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남편 이런 습관이 충돌하면서 불협화음을 내기도 하고요. 어떻게 고치냐고요? 조금씩 고쳐가는 수밖에 없는 거죠. 보통은 제가 맞추려고 하는 편입니다

남편이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거 같은데요.
남편
눈치 보고 산다기보다는 아내에게 필요한 게 뭘까 배려하는 거죠. 저는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맞춰서 행동하는 부분은 자신 있습니다.

아내 저도 생활습관은 남편이 바꾸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저보다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추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니까요. 간혹 서로 절반씩 양보하면 된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방법은 효과적이지도, 오래가지도 않아요. 반씩 양보하면 양보한 만큼 배려를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문제는 항상 자신이 양보하는 부분이 더 커 보여요. 갈등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저희는 생활 방식을 맞추는 부분은 남편이 맡았어요. 저는 남편이 맞춰주는 부분에 대해 항상 고마워하고 그 감정을 표현하죠. 제가 말을 세게 해서 그렇지 사실은 남편을 굉장히 사랑합니다(웃음).

요즘은 싸움의 레퍼토리가 바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남편 40대 부부들은 자녀들 교육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자녀교육에 대해서만큼은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육아를 하던 시절부터 느낀 건데, 제가 부모가 되는 속도와 아내가 부모가 되는 속도의 차이가 무척 크더라고요. 아내가 빠르고, 정확합니다. 그런 부분은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아내 교육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교육철학이 확고한 편이고요. 남편도 그렇지만 저 역시 소위 ‘강남 8학군’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교육의 폐해에 대해 산교육을 받은 셈이죠. 아이들에게 풍요가 아닌 빈곤을 주자는 게 저의 방침이에요. 우선 집에 전자제품이 거의 없어요. TV는 물론이고요. 책도 잘 사주지 않습니다. 우선, 생활이 지겨워야 배움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아요. 첫째는 학원을 보내긴 하지만, 그것도 아이가 제게 학업에 대한 열정을 보여서 보낸 거예요.

싸움은 계속된다. 그들의 사랑처럼
호불호가 확실한 아내와 자기 의견을 드러내 내세우지 않는 남편.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싶지만 10년간 계속 싸움을 이어가는 걸 보면 남편 역시 만만찮은 내공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딱’ 붙어서 10년간 싸우는 이유는 서로 참 괜찮은 카운터 파트너라서가 아닐까.

언제까지 싸울 예정인가요?
아내 계속 싸우지 않을까요(웃음)? 저희는 육아 문제로 싸우지 않는 편인데 근래 몇 번 충돌했어요. 첫째랑 둘째랑 터울이 여섯 살인데, 둘째가 네 살이 되면서 첫째랑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맏이라서 첫째 스트레스가 먼저 이해되고 남편은 막내여서 둘째를 먼저 배려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싸울 때는 꼭 부부가 편 가르기라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삶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때마다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싸움을 선택하겠죠. 저희 부부에겐 제일 잘 맞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남편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래도 덜 싸웁니다. 결혼초에는 아내가 싸움을 걸었는데 요즘은 가끔 싸움을 피하더군요. 특히 졸릴 때요. 그럴 때를 공략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웃음).

아내 청출 어람이죠. 뭐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남편에게 고마워요. 싸움도 서로 애정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냥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생각하는 순간 서로 포기하는 부분이 생기는 거 아닐까요. 저희는 서로를 포기하진 않습니다.

그들만의 규칙과, 그 규칙을 정하는 방법마저 독특하게 느껴졌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다.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 아는 법이니까. 오랜 시간 살 부비고 살면서 쌓인 역사는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니까. 그런데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이 부부가 자랑을 늘어놓은 건 아닐까. 10년 차 부부지만 우리는 여전히 뜨겁게 사랑한다고, 말이다. 밤 10시, 차가워져야 할 아스팔트가 아직도 뜨거운 것처럼.

부부, 싸우려면 이렇게 싸워라
1 사과는 무조건 남편이 먼저 싸움은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 갈무리가 중요하다. 사과를 미루지 말자. 한쪽이 먼저 사과한다고 정해놓으면 불필요한 눈치 보기와 감정 싸움을 줄일 수 있다.

2 화해 의식은 아내 몫이다 사과를 받은 쪽은 사과를 한 사람과 화해를 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사과를 한 남편에겐 따뜻한 말 한마디와 포옹 한 번이 필요한 것. 남편이 사과를 하면 아내는 자신의 방법으로 남편을 배려해야 한다. 애교를 부려도 좋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괜찮다. 구체적인 방법은 부부만의 비밀이다.

3 아내들이여,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을 가르쳐라 육아에 대해서라면 스마트한 남편은 없다. 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단지 무지몽매해서 자세히 가르쳐줘야 할 초보 아빠다. “아이와 놀아주라”라고 말하지 말고,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알려줘라. 딸과 놀기 위해서는 장난감뿐만 아니라 신체 부위에도 이름을 붙여줘야 하고, 곰 인형으로 간지럼을 태워야 한다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하게 일러줘야 한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박은혜(프리랜서) ■사진 / 김영길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