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댓글 공유하기
지난 7월 말 출간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일본 편」은 발매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993년에 첫 발간한 이후 20년간 3백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시리즈의 새내기다운 저력이다. 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일본 답사 여행상품도 판매 하루 만에 동이 났다. 30여 명에게만 주어진 기회에 동행했다.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유홍준(64)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일본 문화유산 답사에 동행 취재가 결정되자 어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유 교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와 함께 답사를 다녀오면 ‘유홍준 신도’가 되거나 비호감을 거둘 수밖에 없다”라고. 유홍준표 답사가 사람들의 호오를 바꿀 정도로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봤자 답사는 답사고, 유홍준은 유홍준일 뿐이겠지’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개인적인 답사 경험이라고 해봐야 중·고교 때 수학여행이 고작. 유 교수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여느 사람들처럼 책이나 언론 보도로만 아는 정도였다.

책장 한쪽 어딘가엔 20년 가까이 여러 차례 이사에도 살아남은 색 바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이하 답사기) 1권이 꽂혀 있지만, 최근까지 유홍준이란 이름과 관련해 주로 머릿속에 입력된 것은 문화재청장 재직 때의 여러 설화와 구설이었다. 청장을 관둘 무렵 유 교수가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 “정말로 원 없이 터지면서도 원 없이 일했다”라는 말도 기억난다. 이제는 클리셰로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말이 됐지만 20년 전인 1993년 답사기 1권이 나왔을 때, 국민적 화두가 된 말은 “아는 만큼 보인다”였다. 유 교수에 대해 ‘아는’ 것은 논쟁적이고 열정적인 인물 정도뿐이었다. 일본 답사 동행은 유 교수를, 또 ‘답사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저자에게 직접 듣는 공부만큼 좋은 게 있을까.

여행 가이드부터 버스 강의까지
이번 일본 답사는 답사기 일본 편의 2권 ‘아스카·나라 편(1권은 규슈 편)’에 맞춘 것이다. 한진관광이 기획한 ‘유홍준과 함께하는 일본 답사 여행’ 상품은 판매 하루 만에 동이 났다. 완판 소식에 말로만 듣던 ‘유홍준 신도’들의 실체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유홍준표 답사도 곧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행 상품 광고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본 상품은 쇼핑센터를 방문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다른 여행 상품과의 차별성을 도도하게 알리는 표식 같은 것이었다.

답사는 8월 24일 오전 인천을 떠난 비행기가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유 교수는 공항에 대기하던 버스에 오르자마자 마이크를 잡았다. 첫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마이크는 유 교수 손을 떠날 줄 몰랐다.

“답사기 2권에 나온 코스대로 계획을 잡으려다가 나라에서 전국 체육대회가 열려 숙소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교토는 답사기 일본 편 3권에 나올 지역인데, 사실 일본 편의 ‘앙꼬’가 되는 곳이에요. 그걸 여러분께 제공하려고 합니다. 교토 답사가 급히 끼는 바람에 여러분을 위해 3권의 서문을 미리 썼어요. 그 내용도 다 자세히 이야기할 겁니다.”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뜻밖이었다. 주로 유 교수의 ‘말’은 문화유산 현장에서 터져 나올 줄 알았다. 버스길이 1시간이면 10~20분 적당히 이야기를 풀어놓고 나머지 시간은 여행 가이드에게 대강 맡기려니 했다. 게다가 유 교수는 가이드의 몫도 남겨두지 않았다. “물은 여기서 준비했어요. 더 필요하면 단체로 사면 돼요. 점잖은 마당에 각자 슈퍼에서 하나씩 사려면 시간 낭비죠.” 그리고 이런 가이드까지. “첫날 저녁은 교토 남선사 부근의 유명한 두부 요리집에 갈 겁니다. 스님들이 만들어서 더 유명해진 두부예요. 제가 교토에 오면 거기서 잘 먹어요. 호텔에서 30분 거리입니다.”

유 교수의 답사길 위의 ‘버스 강의’는 일찍이 유명했다. 유 교수가 한겨레신문이 연재했던 ‘한홍구·서해성의 직설’에 나가 밝힌 버스 입담의 내력, ‘유홍준 구라 전설’의 내력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학, 미술계 인사들과 대절 버스를 타고 해남 대흥사를 거쳐 화순 운주사로 가던 길이 폭설로 정체됐다. 그날따라 ‘구라’가 별로였던 소설가 황석영으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그는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에 얽힌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이야기며, 정약용의 강진 유배기를 줄줄 이어가며 11시간 가까이 ‘썰’을 풀었다. 첫 목적지인 대흥사에 당도하기 전이었다. 8년 뒤 답사기 1권이 나왔을 때, 함께 답사를 다녔던 지인들은 그의 입심이 그대로 배어 있다는 평을 내리곤 했다.

유 교수의 오랜 답사 내공과 가공할 입담의 내력에는 어두웠던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새겨져 있다. 그는 1974년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고, 이후 그 전과 때문에 대학에서 교편을 잡지 못했다. 와중에 미술 잡지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미’ 시리즈 편집을 맡아 답사 여행을 다녔다. 직접 찍은, 4만 장의 분량으로도 유명한 슬라이드 강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를 열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고된 내력이 현장 답사를 가게 했고, 입심을 두텁게 했으며, 대중과의 거리를 좁혀 ‘예술 대중서의 선두주자’로 만든 셈이다.

문화유산 답사기는 대중과 나누기 위한 것
원래 첫 답사 목적지는 도후쿠지(東福寺)였다. 비행기가 1시간 이상 연착되면서 교토 일정 수정도 불가피했다. 오후 4시까지 문을 여는 도후쿠지 대신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기요미즈데라(靑水寺)로 답사지를 바꿨다. 유 교수는 “부석사처럼 일망무제로 교토 시내가 다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기요미즈데라 부근 야사카(八板) 신사 쪽은 고구려 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기요미즈데라 초입에서 첫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유 교수는 기자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반가워했다. 유 교수는 답사길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비유, 농담을 자주 했는데, “혈연, 학연보다 끈끈한 게 바로 흡연이다”라는 말도 그중 하나였다. 기억에 남는 것 또 하나가 있다. 미국에선 자동차 번호판에 원하는 글자를 넣을 수 있는데, LA에서 유 교수가 본 것 중 하나는 ‘Buja12345’였다. 그러니까 이민 온 한국인이 ‘부자’가 되고 싶은 넘쳐나는 욕망에 번호판을 그리 새긴 것이다. 유 교수가 그 부자가 되려는 욕망에 관한 ‘실화’를 전한 것은 다음 이야기를 하려고 한 때문이다.

“이민 가는 사람의 중요한 속성이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이민 안 가요. 못 먹는 사람, 없는 사람, 있었는데 빼앗긴 사람, 잘 지내다 못 지내게 된 사람들이 가는 거예요. 장수왕이 쳐들어와 한강과 금강 사이를 점령했잖아요. 백제 귀족들이 고구려 밑에서 살겠어요? 일본 땅으로 간 거죠. 최후의 선택이 이민이야.”

유 교수와 담배를 나눠 피우며 던진 첫 질문은 답사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해 답사기 제주 편이 나왔을 때도 그는 시민들과 함께 제주도길에 올랐다. 일본 편을 내기 전에도 지인, 전문가들과 함께 일본을 다녀왔다.

“일종의 독자 반응에 대한 점검입니다. 책에 쓴 내용대로 이야기하면 답사객들이 좋아하는 게 있고, 또 ‘아, 저렇구나’ 하고 감탄하는 것도 있고, 관객 반응의 리허설이죠. 그 다음에 현장 확인입니다. 수도 없이 현장에 왔다 갔다 했지만, 글쓰는 시점에 어떻게 돼 있나 다시 확인을 하죠.”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돌아가는 버스에서 유 교수는 답사객들에게 르네상스에서 휴머니즘의 의미를 끄집어낸 부르크하르트 이야기를 꺼내며 이런 말을 했다.

“영어판, 일본어판이 없어 읽지는 못했는데, 그가 쓴 「로마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쓴 미술사가의 이야기」라는 책 제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제 답사기도 미술사가로서 우리 산천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중과 나누기 위해서 쓴 것일 뿐이죠.”

유 교수는 호불호가 뚜렷한 사람이다. 답사기 1권에서부터 좋고 나쁜 것을 분명히 구분했다. 어느 문화유산을 두고 흐느끼듯 감탄했고, 또 다른 문화유산을 두고는 독재 권력의 기획 상품이라고 비판했다. 주례사 비평이 넘치던 시절 그는 실명 비판도 피해가지 않았다. 답사의 원칙을 이야기하던 그의 말은 대뜸 요즘 소설가들로 옮아갔다.

“그렇게 답사를 한 게 20, 30년입니다. 여행하는 기분이 제 책 속에 담겨 있는 거죠. 우리나라에 1인칭 소설이 많은 게 소설가들이 돌아다니지 않고 책상에 앉아 써서 그래요. 흔한 영화의 범죄자와 형사 간의 대사만 해도 밀도가 높은데 요즘 1인칭 소설엔 그런 게 없어.”

유 교수의 직설은 여러 곳에서 쏟아졌다. 3일 차 아스카·나라 답사에선 우리 국토 곳곳에서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개발에 대해 분노를 토해냈다.

“여수 쪽은 슬로시티로 등재해놓고 다리를 놨어요. 불편해도 섬은 섬으로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거죠. 선거 때문에 망가지는 겁니다. 지중해의 산토리니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여수 앞바다보단 아름답지 않아요. 그런데 거긴 지키고 가꾸는 데는 탁월해요. 그 동네에서 난 건자재를 쓸 게 아니면 건축 허가를 안 내줘요.”

토건 국가는 일본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도 4대강 사업 못지않은 개발 광풍에 시달린 적이 있다. 주요 답사지인 아스카와 나라 지역도 1970년대 광풍에 직면했다. 이 지역 사람들과 이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저지했다. 아스카와 나라를 오가는 길은 좁았다. 수십 년 전에 만든 2차로나 1차로의 일방통행로였다. 퇴근 무렵이 되자 도로는 순식간에 정체됐다.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듯했다. 유 교수는 아스카와 나라, 교토에서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두고 여러 번 “25년 전 왔을 때랑 똑같아.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눈썰미 사나운’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일본 답사기

답사라면 6만 보는 기본
유홍준표 답사 철학 중 하나는 걷고 또 걷는 것이다. 빌릴 수 있다면 자전거를 타고 풍광을 받아들이며 누비는 것도 좋다. 그는 아주 먼 거리가 아니라면, 답사지와 답사지 사이를 걸어 다녔다. 유 교수의 답사는 관광버스를 타고 오가며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사람이라면 자칫 고생길일 수 있다. 그는 답사 첫날 답사객들에게 이런 사전 경고(?)를 했다.

“지난 7월에 규슈 답사가 있었어요. 그때 만보기를 가져오신 스님이 계셨는데, 하루에 1만 보에서 1만5천 보를 걸었어요. 최종 6만7천 보가량 나왔는데, 이번에는 6만 보가량 될 거 같네요.”

답사의 힘도 걷는 데서 나오는 듯했다. 답사 이튿날 방문한 도후쿠지는 유 교수가 우연히 찾은 절이다.

“교토하고 오사카를 오가는 게이한 선을 타고 가는데, 교토에 다 왔나 싶은데 동복사역이라고 써 있기에 그냥 내려서 와본 거야. 불국사역 보면 내리고 싶지 않나요? 딱 내려서 걸어서 왔어요. 옛날에 왔던 기억이 나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삼문(三門)이 여기 있어요.”

유 교수의 답사 강의는 꼼꼼했다. 여러 절들을 오가며 사찰 한 모퉁이 폐쇄된 작은 우물의 내력까지 꿰고 있었다. 건축가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와 앞서 미술사가 아비 바르부르크가 했던 말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세세한 것들을 기억하며 자신의 의미를 덧붙여 풀어냈다. 답사객들은 문·사·철을 종횡무진하는 인문학적 입담에다 전직 관료 ‘유홍준’이 전해주는 생생한 경험담과 뒷이야기에도 흥미를 느꼈다. 도후쿠지의 정원에 걸터앉아 유 교수는 문화재청장 재직 때 경복궁 등 궁궐 입장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청장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게 경복궁 입장료를 올린 겁니다. 1천원을 5천원으로 올리려다 보니, 그 권한이 재경부 장관한테 있는 거야. 노무현 대통령이 밥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지요. ‘청장 할 만합니까?’ 하고 물어보시더라고. ‘경복궁 입장료도 못 올리는 문화재청장이 무슨 권한을 갖고 일을 합니까’ 했어요. 노 대통령이 굉장히 심플한 사람이거든. ‘왜 안 되냐’라고 하기에, ‘물가지표에 입장료도 들어 있어서 그렇다’라고 했어요. 그게 흰 고무신, 팔각 성냥 값을 지표 삼던 시절 때 들어간 거거든. ‘(궁궐 입장료를) 물가지표에서 빼면 되겠네요’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지표가 없어졌는데도 있는 줄 안거야.”

그는 “결국 나중에 3천원으로 정리됐어요. 사실 3천원 하려고 5천원을 불렀거든” 하고는 웃었다.

유 교수는 청장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무원 답사기’를 쓸 계획이다. 그 답사기엔 이런 내용이 실릴 것 같다. 유 교수는 공개라는 말 때문에 언뜻 투명해 보이는 ‘공개입찰’의 이면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합리적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퀄리티를 조달해야 하는데, 로또처럼 일을 따내는 겁니다. 공개입찰이라고 부정이 많아도 면죄부가 주어지고요.”

2008년 숭례문 화재를 두고는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당시 자신과 문화재청에 쏟아진 비판과 비난이 악의적이고 부당한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언론이 소실이란 말을 썼는데, 소실은 사라져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1층은 그대로 있고 2층만 불탄 겁니다. 중환자실에 온 걸 사망 신고를 해버린 거죠. 국보는 문화재청 관리라고 하지만, 지자체에 위임해서 하는 겁니다. 숭례문은 중구청 관리죠. 방화에 대비해야 하는 건 경찰이고요. 낙산사 산불은 산림청이 끄게 돼 있어요. 소방방재청이 아닙니다. 이런 사실은 후손들한테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무원 답사기’를 쓰겠다는 거요.”

3박 4일간의 일본 답사는 1993년인가 94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유 교수를 평했던 “입심 좋고 글솜씨 좋고 먹성 좋고 눈썰미 사납고 꽤나 극성맞은 연구자 겸 평론가”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백 교수는 유 교수가 1990년대 초반 답사기를 ‘사회평론’에 연재할 때 눈여겨보다 출판을 결정했던 이다.

4일 차 귀국을 위해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그는 한국의 정치경제, 문화행정, 한일 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1시간가량의 특강을 진행했다. 문화유산과 더불어 살아온 수십 년 인생에 관한 회고도 녹아났다.

“세상 어디를 가든, 죽어도 하겠다는 뭔가를 갖고 있다면 그 인생은 실패해도 후회되지 않습니다. 요즘 미술사가 블루오션이 된 건 아니지만, 제가 미학과 간다고 했을 때 우리 엄마가 3박 4일을 울었어요. 나는 배짱으로 살겠다고 이야기했죠. 그런 개성을 가지게 하는 게 교육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시대적 사명도, 지식인의 사명도 그 개성 있는 사람들이 하려는 일을 하도록 해주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내 나이 아직은 40대
지난 8월 24일 답사객을 태우고 일본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인천발 KE723편은 불안정했다. 오전 9시 15분 출발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비행기 점검 때문에 오전 10시가 다 돼서야 이륙했다. 1시간 45분의 짧은 비행시간 동안에는 난기류 때문에 여러 차례 비행기가 요동쳤다. 유 교수는 그 불안하기 그지없던 비행 동안 ‘죽으면 뭐가 좋을까’를 생각했다.

“그게 바로 원고를 안 써도 되는 거더라고요.”
그럼에도 정작 원고 쓰기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답사길을 함께한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년이 정년인데, 제 생물학적 나이는 마흔다섯인 거 같아요. 앞으로 10년은 더 팔팔하게 글을 쓰고, 답사도 심심찮게 갈 겁니다. 겨울쯤 교토 답사를 올 것 같습니다. 답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다른 분들에게 유홍준을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해주시고, 또 이번에 오신 분들 다시 오시면 반갑게 맞겠습니다.”

유 교수는 답사기가 자신의 사명이라고 했다. 일본 편은 교토와 오사카 편이 남았다. 남한강을 따라 돌며 한국 답사기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편은 독도에 관해 쓸 계획이다.

사족 하나, 30여 명의 시민과 함께한 답사에는 유 교수의 몇몇 지인도 동행했다. 그중엔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부인 김정숙씨도 있었다. 문 의원의 권유로 답사길에 올랐다고 한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답사 3일 차 때 백제 도래인 조상을 모신 히노쿠마(橋關) 마을의 오미아시(於美阿志) 신사 뒤쪽 폐사지 빈터에서 유 교수의 권유로 답사객들에게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주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사진 / 김종목 기자(경향신문 문화부)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