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이장호 감독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를 따라 절에 들어가 글을 써보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시나리오를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으름장에 가까운 부탁을 하곤 했다. 그래도 군말 없이 배시시 웃어주는 친구였다. 늘 한발 앞서가는 친구여서 따라다니기에 바빴는데 저세상도 이렇게 먼저 가버렸다. 작가 최인호.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추억하는 길밖에 없다.

고(故) 최인호는 내 친구였다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막 부산국제영화제를 치르고 서울로 돌아온 이장호(68) 감독을 만났다.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기꺼이 반갑게 기자를 맞아주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한 그의 영화 ‘시선’은 관객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고 후배인 강우석 감독이 배급을 맡겠다고 나선 상태다. 마치 초야의 고수가 다시 부활한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영화계의 떠들썩한 반응에 별로 휘둘리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가까운 이를 잃었기 때문일까.

“제가 부산에서 좀 고단했던 모양이에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목소리가 잠겼어요. 근데 생각해보니 인호는 침샘암이었거든요. 목소리도 쉬고 그래서 나중에는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어요. 감기 기운으로도 이렇게 목이 아픈데, 인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장호 감독과 최인호 작가는 특별한 사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으며 젊은 시절을 함께했다. 모든 걸 공유하던 사이였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창작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인호의 첫인상은 아직도 생생해요. 작은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교단에 올라 상을 받는 모습이에요. 인호는 신동이었어요. 우리는 교단에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녀석은 무슨 백일장 대회에 참가하면 늘 상을 받았죠.”

그가 1963년 고2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사실도 정확히 기억해냈다. 최 작가는 이미 중학교 때 연애소설을 쓸 정도로 동년배들과는 사고의 성숙함이 남달랐다고 한다.

“신춘문예 당선작은 제목도 기억나요. ‘벽구멍으로.’ 얼마나 거창해요. 중학교 1학년 때는 같은 반이었는데요. 선생님이 글짓기 숙제를 내줬는데 인호가 연애소설을 써왔어요. 그걸 읽어본 선생님은 깜짝 놀라서 ‘네가 진짜 쓴 거냐? 베낀 거 아니냐?’라고 캐물으셨죠.”

이장호 감독이 연출부에 들어가 충무로에서 일 하고 있던 시절, 최 작가는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별들의 고향’이라는 신문 연재 소설을 쓰고 히트 작가가 돼 있었다. 이 감독은 친구라는 이유로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저는 그야말로 연출부 막내 시절이었는데 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인호에게 시나리오를 부탁했어요. 인호를 거의 반강제로 여관에 들어앉혔죠. 근데 그 여관비조차 없어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인호 애인(훗날 부인)에게 대신 내달라고 했을 정도였어요(웃음). 그러니 얼마나 민폐였겠어요. 아마 인호에게 저는 지긋지긋한 친구였을 거예요.”

게다가 ‘별들의 고향’이 인기를 끌면서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그의 소설을 탐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인호 작가는 큰 판권료를 제시하는 사람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오랜 친구인 이 감독에게 소설 판권을 건넸다. 공존의 히트를 친 영화 ‘별들의 고향’은 이장호 감독의 화려한 데뷔작이 됐다.

“인호는 항상 저를 ‘철부지’라고 불렀어요. 인호가 목욕탕 위에 있는 사글세 단칸방에서 막 신혼을 시작했던 때예요. 저는 종종 술에 취해 건물 밖 배관을 타고 올라가서 신혼집 창문을 두들겼어요. 그러니 부부가 자다가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아마 인호는 소설을 주지 않으면 제가 어떤 망나니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줬을지도 몰라요(웃음).”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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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병질적이고 날카로운 친구
우리는 다르기도 했고, 닮기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돈키호테 같은 친구와 선병질적이고 날카로운 친구는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 서로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한 끌림이 아니었을까.

“인호는 영리하고 영악한 소년이었어요. 어른들의 세계를 다 알고 있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아이로 위장을 했죠. 일부러 세상물정 모르는 유아적인 저 같은 아이와 어울렸을지도 모르죠. 그가 쓴 소설 「상도」만 봐도 통찰력이 대단하잖아요.”

실제로 이 감독이 최 작가에게 해준 가벼운 우스갯소리도 그의 소설에 적절히 차용되기도 했단다.

“한번은 같이 술을 마시며 ‘별들의 고향’이 재밌다고 엄청 칭찬해줬어요. 그런데 인호가 ‘야, 그거 네가 아이디어 준 거잖아’라고 하더라고요. 과거에 둘이 청주에 있는 화장사라는 절로 글을 쓰러 들어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가 ‘도시가 죽인 여자’라는 제목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인호에게 말했거든요. 그러나 스토리텔링이 약한 저는 그걸 다 완성하지 못하고 서울로 와버렸는데 인호가 그 내용을 모티브로 잡아서 ‘별들의 고향’을 썼다고 하더라고요. 아!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서 저에게 ‘별들의 고향’을 준 것 같은데요? 모티브를 제공해준 보답으로.”

과거를 떠올릴수록 추억은 하나 둘 되살아난다. 함께 절에 들어간 이야기를 하다 재밌는 일화를 들려준다. 제목을 붙이자면 ‘짧았던 금단의 사랑’쯤으로 해두면 좋을 듯하다.

“우리가 간 절에 같은 또래의 비구니 스님이 있었어요. 밤에 물소리가 들려 창호지를 뚫고 보니 스님이 세수를 하고 계신 거예요. 저는 그 모습에 반해버렸죠. 어느 날 스님이 시내 치과에 가신다고 하기에 제가 얼른 따라나섰어요. 볼을 쥐고 아파하는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저린지요. 저는 이후 절을 떠나서도 그 스님을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호의 한마디로 한 방에 정리가 됐어요. ‘야, 그 스님께 가발 씌운 상상을 해봐. 그래도 좋니?’ 가발 쓴 모습을 상상하니 정말 거짓말처럼 그분이 평범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잊을 수 있었죠. 아! 스님이 이거 보시면 안 되는데. 그분도 큰 스님이 되셨겠죠?(웃음)”

이 감독은 최 작가가 유년 시절 글을 쓸 때면 늘 보고 있던 사진 한 장에 대한 기억도 털어놓는다. 마치 당장이라도 각혈을 하며 쓰러질 듯한 파리한 백인 소년이 유리병 속 개미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인호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이었어요. 제가 ‘그런 사진이 뭐가 그리 좋냐’라고 물었는데 인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소년의 모습에 굉장히 공감을 한다고 말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인호의 속마음은 그 백인 소년의 느낌처럼 굉장히 예민하고 사회에 대한 저항심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술꾼」이나 「모범동화」 같은 엉뚱한 상상력의 단편소설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고 불렸고 주목받았던 최인호 작가는 ‘천재는 요절한다’, ‘천재는 일찍 내리막길을 걷는다’라는 말들을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한 작품으로 크게 주목을 받고 끝나는 작가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했어요. 늘 인호는 ‘나는 최씨에 곱슬머리에, 옥니를 가진 독종’이라며 기를 쓰고 글을 썼어요. 결국 나중에는 대하소설을 쓰더군요. 몸이 아파도 작품에 매달렸던 이유가 그런 데 있었던 것 같아요.”

이장호 감독은 친구라는 이유로 늘 치기 어린 농담만 주고받았던 것이 못내 아쉽다. 빛나는 청춘을 함께한 친구로서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대신 그가 남긴 작품을 곱씹으며 그를 추억하려 한다. 마지막까지 그의 고집스러운 창작열이 만들어낸 귀중한 보물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돈키호테 같은 친구
이장호 감독, 시작점에 다시 서다
이장호 감독은 ‘별들의 고향’, ‘외인구단’, ‘바람 불어 좋은 날’ 등 1980, 90년대 영화를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이끈 주역이다. 그는 그동안 현장을 떠나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정년퇴직을 한 그가 갑자기 영화판으로 돌아와 메가폰을 들었다. 18년 만의 일이다.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바뀌는 긴 시간이다.

“스스로 데뷔작이라 생각하고 찍었어요. 제가 영화를 만들 때랑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었더군요. 동시 녹음부터 디지털 기기까지 기술적인 문제가 가장 컸죠. 게다가 스태프들 중 제 영화를 본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캄보디아의 어느 한인 식당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보고 오히려 스태프들이 신기해할 정도였으니까요.”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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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식과 같은 어린 친구들에게 배우면서 촬영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 ‘시선’은 그의 데뷔작과 다름이 없다고 말한다. 한때 거장이라고 불렸던 사람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영화를 다시 찍고 싶다는 열정이 더 컸다.

“학교에서 정년퇴직하고 영화를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저는 한 번도 제작에서 손을 떼려 한 적이 없었어요. 상황이 어려웠을 뿐이지요. 그리고 늦었다는 말은 없어요. 단지 준비가 덜 됐던 거죠.”

마침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해외 영화제 수상 경험이 있는 감독들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장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내고 심사위원 최고 점수를 받아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종교색이 강한 소재라서 선정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문제보다 인간의 내면을 다룬 영화적 메시지가 심사위원들에게 신뢰를 줬던 것 같아요.”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이장호 감독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다’

영화가 공개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직도 ‘기독교 영화’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제에 출품하면서도 이 감독은 그런 점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이 영화를 비크리스천이 봤을 때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든가, 전혀 흥미를 갖지 못한다든가 할까봐 가장 많이 우려했어요. 종교를 떠나 관객들이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였죠. 강우석 감독도 영화를 보고 자기가 배급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그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신파가 아닌 감동으로 관개의 마음을 흔든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한다. 그의 영화는 희망을 품고 있다.

“결론은 해피엔딩이에요. 이슬람 반군의 가족들과 피랍인들 간에 우정이 생기는 과정을 그렸으니까요. 결론을 말해버려도 영화적 반전과 재미는 충분하니 괜찮아요.”

영화는 대부분 캄보디아의 밀림에서 촬영했다. 지뢰밭, 처음 보는 독충, 우기철 벼락 등 환경이 열악한 것을 떠나 목숨이 위험할 지경이었다.

“팔뚝만 한 지네도 많았고요. 지뢰밭에서 촬영할 때는 현지 군인들이 협조해주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또 피뢰침도 없는 들판에서 촬영을 하다가 벼락이 내릴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아요. 한국의 벼락은 정말 로맨틱하다고 말할 정도예요. 그곳 우기철에 내리치는 벼락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여기저기서 번쩍거려요. 게다가 각종 영화 촬영 장비 때문에 벼락 맞기 십상이었지요. 먹구름만 몰려오면 무조건 도망가야 했죠. 우리 스태프들이 정말 많이 고생했습니다.”

촬영은 무사히 마쳤지만 불행히 소중한 한 사람을 잃었다. 유비저 바이러스로 패혈증이 발병해 사망한 중견배우 박용식이었다. 그는 이장호 감독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신앙인으로 함께 봉사활동을 해오며 평소 절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마지막 촬영 때 괴로워하면서 식사를 못하더라고요. 우리 스태프들은 한 번씩 다들 물갈이를 했으니 ‘그런 거려니…’ 생각했죠. 적도 부근에만 있는 희귀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일단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시름 놓은 상태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망 소식을 들었죠.”

어이가 없어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굉장히 무거운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를 영화에 끌어들인 것은 감독인 본인이었으니 말이다. 가족의 원망, 모두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조문을 갔는데, 박용식씨 부인이 절 보더니 울음을 터뜨리시더라고요. ‘아, 올게 왔구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서 있었지요. 시간이 지나고 부인이 저에게 오더니 ‘마지막으로 좋은 작품을 찍게 해줘서 고맙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되레 저를 울리시더라고요.”

개런티가 적어 출연을 망설였던 그를 설득한 것이 바로 아내였다고 한다. 이 감독은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와서 영상을 편집했다. 그런데 화면 속의 그가 던지는 즉흥 대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유언처럼 그는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창호 감독의 영화 ‘시선’의 장면들.

이창호 감독의 영화 ‘시선’의 장면들.

“영화 속에서 박용식씨를 포함한 선교사들이 버스를 타고 밀림으로 가는 장면이 있어요. 현지인이 ‘과거 이 지역은 굉장히 위험했다’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죠. 그때 박용식씨가 즉흥으로 ‘그럼 지금 순교하면 바로 천국이겠네, Highway to Heaven!’이라고 하더라고요. 좋은 사람이니 편안한 곳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을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것이 그를 추모하는, 남겨진 가족을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영화는 편집과 기술적 부분 수정을 마치고 이제 일반 관객을 위한 공개만이 남았다. 소중한 친구를 먼저 보내고 믿고 따르던 후배를 잃었다. 이 감독은 늘 함께했던 사람들이라 한때는 ‘이제 내 차례’인가 못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단다. 그러나 아직 그의 실패에는 풀어야 할 실타래가 길게 남아 있다. 관객들에게 인간에 대한 희망과 따뜻함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18년 만에 우리 앞에 나타난 거장에게 ‘시선’을 돌려본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영길,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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