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홀로 집을 지키던 김 할머니(79)는 빨래를 걷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 넘어지면서 엉덩이뼈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정화조가 설치돼 있는 옥상에는 물이끼가 끼어 미끄러운 곳이 많았는데 발을 잘못 디뎌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다. 연로하신 할머니는 꼼짝도 못하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세가 많은 분이라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 업히지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셔서 서둘러 119에 신고를 했죠. 다행히 구조대원들이 금방 도착했고 할머니는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이송돼 가셨어요. 가슴을 쓸어내렸죠.”
우편배달 중 수신인이 집에 없으면 현관문에 쪽지나 부재표를 붙여놓고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배달이 많은 날은 더더욱 신속히 이동을 해야 하는 터라 주변에 관심을 갖기 힘든데, 그날 그가 옥상에 올라가지 않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면 할머니는 더 큰일을 당하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께서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돼 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다시 업무로 복귀해 평소처럼 근무를 마쳤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의 선행은 김 할머니의 딸이 우편고객만족센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뒤늦게 알려지게 됐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칭찬에 그저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서우체국 소포실에서 배달 일을 시작해 4년 9개월째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성실함과 따뜻한 마음으로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훈훈함을 안겨주는 사람이다. 결혼 1년 차로 정규직 발령을 꿈꾸는, 5개월 된 딸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언제나 시간에 쫓기며 배달하는 동안에도 동네 어르신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거나 길 안내를 해드리는 것은 이제 그의 일상이 됐다.
“힘들어도 보람을 느껴요. 익숙한 얼굴들, 따뜻한 말 한마디, 반겨주시는 미소, 그런 데서 힘을 얻어요. 요즘 세상이 무섭다 보니 집배원들이 문전박대당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말 한마디라도 ‘고생하신다’라고 따뜻하게 건네주시면 정말 힘이 나요. 저보다 훨씬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제 목소리를 빌려 집배원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알리게 돼서 참 다행입니다.”
‘미소 한 스푼’에서는 숨 가쁜 일상 속 비타민이 돼줄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쉬어가는 건 어떨까요. 지친 하루에 기분 좋은 미소를 부르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