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전 부처의 코디네이터
“여성가족부가 중앙 부처로 자리 잡은 건 2001년이에요. 정무 제2장관실에서 시작돼 여성위원회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있다가 여성부가 생겼어요. 처음에는 작은 부서였는데 보육 업무, 가족 업무, 청소년 업무가 들어왔고 이후 여성, 가족, 청소년 이 3가지 업무 부서로 짜여지게 됐어요.”
‘양성평등가족부’가 시대에 맞고 자연스러운 명칭이라는 생각에 여성가족부의 유래를 물었다. 점차 진화하는 타 부처들과 마찬가지로 아마 시간이 흐르면서 업무도 다양해지고 명칭도 바뀐 것 같았다. 조윤선 장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독신 남성 빼고는 모두 저희 정책 대상인데요. 1인 가구까지 감안하면 독신 남성도 저희 소관일 수 있지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문제인 범죄, 폭력, 학교폭력, 가출, 청소년 문제 이런 것들이 결국 가족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가장 강하게 만들 수도, 가장 약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가정이니, 이 가정을 튼튼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제 신념이에요.”
가족은 국가 안보의 시작이자 사회적인 안정을 떠받드는 힘의 기본 단위라는 것이 장관의 생각이라고. 그리고 시대에 따라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여권신장, 예를 들면 호주제를 폐지하고 사회적인 이데올로기나 양성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게 이제까지 여성부의 역할이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양성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그런 사회의 토대가 되는 가족을 건강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가 주안점이에요. 전 부처의 코디네이터가 되라는 것이 대통령의 주문이기도 하고 여성가족부의 원래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는 일이 굉장히 많지요.”
여성가족부의 정책 과제는 다양했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결손가정 등 특수한 상황의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자활을 돕는 ‘특수복지’, 부모교육, 부부교육, 성교육,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등 학교를 떠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끝으로 여성들의 ‘일과 가정 양립’, 동시에 남성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일 가정 양립 고용정책’이 그 지향점이라고 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외면해서 차별을 낳지 말고, 학생 신분의 청소년과 가정을 탈출한 아이들과의 차이를 외면해서 차별을 낳지 말아야지요. 정말 사정상 어쩔 수 없어서 집을 나온 아이들도 있거든요. 요즘은 이들을 일컬어 가출 청소년이 아니라 ‘탈가정난민’이라고 하는 분들도 많아요. 또 결손이 없는 가정과 다문화, 미혼모, 한부모, 조손가정을 차별하지 말고 잘 아울러서 가자는 의미를 담아서, 저희의 슬로건이 ‘같이 가요’예요.”
조 장관은 ‘같이 가요’라는 예쁜 엠블럼이 그려진 명함을 꺼내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보니 홀로 살아남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홀로 남게 된 사람에게 행복은 있을 수 없다. 같이 가야만 행복하다.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다. 이런 양성평등과 행복에 대한 논의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변화라고 했다.
기를 쓰며 살았던 ‘여 변호사’ 시절
지난 3월 취임한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조 장관의 개인적인 행복이 궁금해졌다. 그야말로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공인에게 행복은 어떻게 다가설까?
행복은 스스로 느끼면 든든한 재산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스쳐 지나가버린다. 그렇다면 장관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만족한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을까?
“저도 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이 떨어져도 봤고, 치열하게 일하는 변호사 생활도 오래 했는데요. 변호사 생활하면서 잠깐 행복하지 않은 때가 있었어요.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니 모든 불행의 시작은 남과 비교하는 데에서 오더라고요.”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고 나니 똑똑한 사람들이 많더란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힘이 돼줄 선배나 동기들도 많았다. 법대 출신도 아니고 남자 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그녀는 동문이나 동기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쟁쟁한 동료들 속에서 조 장관은 주눅이 들었다고 했다.
“제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첫 번째 여자 변호사였거든요. 여자 변호사 뽑았더니 애 키우느라고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소리도 들으면 안 되겠고, 여자 변호사 뽑았더니 지적인 면이 떨어진다는 소리도 들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저로 인해서 다음부터 여자 변호사 뽑으면 안 되겠다는 얘기가 나오면 큰 일이니까요. 그렇다 보니 얼마나 기를 쓰고 했겠어요? 그런데 그 누구하고 비교를 해도 제가 조금씩 떨어지는 거예요(웃음).”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당시에 느꼈던 고충은 어떠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다. 그렇게 힘든 2, 3년을 보낸 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바로 위의 선배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그가 하던 일을 전담하게 된 것이다. 장관이 찾은 해법은 스스로에게 ‘잘한다, 잘한다’ 주문을 걸 듯 세뇌를 하는 것이었다. 노력의 결실은 주변의 인정으로부터 시작됐다. 차차 자기 확신도 생기고,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불행을 극복하는 그녀의 노하우는 인내와 노력이었다. 전형적이지만 시대를 초월한 불행 탈출법이다.
“그때 느꼈어요. 내 안에서 뭔가 단단히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 만큼 꽉 찬 그런 느낌을요. 뭔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떠밀려서 내 몸보다 훨씬 큰 옷을 입고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부담감이 있잖아요. 반대로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무엇을 해도 안심하고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지금 필요한 것, 행복교육
행복의 또 다른 퍼즐인 자랑스러운 순간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거나, 남을 위해 베풀고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 때라고 했다. 그렇지만 만족과 자랑 속에는 경쟁의 덫이 숨어 있다. 비교하게 되고 욕심을 갖게 돼 자칫 불행해질 수 있다.
“학창 시절에는 똑같은 공부를 하고 똑같은 문제를 푸니까 비교가 되잖아요. 그런데 로펌에 들어가보니 그 어떤 선배도, 그 어떤 동료도 같은 과제를 두고 저와 비교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은 사회에서 느끼는 만족감이란 누군가 저에게 일을 맡겼을 때 ‘얘한테 일을 시키니까 편하구나, 잘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거든요. 일렬로 뛰어가는 게임이 아니니까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느냐가 큰 부분을 차지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과정 역시 중요하고요.”
경쟁은 행복에 분명 방해가 되는 요소라며, 조 장관은 한 백인 여의사가 쓴 책(「무탄트 메시지」(말로 모건 저))에서 읽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부족과 함께 대륙 횡단을 하던 한 백인 여의사가 “오늘이 내 생일이다”라며 축하를 해달라고 했단다. 그러자 부족민들은 매년 돌아오는 날, 한 살씩 더 먹는 게 무슨 축하할 일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족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어느 날 음식을 하는 사람의 솜씨가 탁월해졌다면 그날이 그 사람이 모두의 축하를 받는 날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말 비교해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고 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 경쟁은 불행의 씨앗이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난달 만났던 채정호 박사가 들려준 옵티미스트의 핵심 가치 ABC 중 베터 앤드 베터(Better&Better, 발전하고 나아지는 것)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장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국민의 행복에 대한 그림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이라는 게 결국은 개인이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모이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가 무엇을 즐기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는 교육을 받거나 연습을 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적도 없고요.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거죠.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것이지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행복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공부, 즉 행복교육인 거 같아요.”
대물림되는 행복, 그래서 가족이 우선
“전형적인 가장은 직장에 올인하고 부인은 가정과 아이들에게 올인해서 두 사람이 평행선을 이루다 보니 가족 안에서 공통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잖아요. 그래서 가계의 책임을 부인도 좀 나누어 지고, 대신에 남편도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서 나올 수 있는 기쁨을 같이 느낄 수 있게 해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교집합이 생기게 하자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 가정 양립과 가족친화경영문화 확산의 핵심이에요.”
세상이 바뀌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는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남성이 가계를 책임지던 시절과 비교해서 사회적 환경과 인식이 별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들은 더 힘들다. 가계의 일부를 책임지면서도 전통적으로 담당하던 가사까지 다 해내야 하니 말이다. 그 결과는 여성 자신뿐만 아니라 남성 그리고 가족 전체에 불행이 된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남편과 아빠가 바뀌어야 한다. 두 딸을 키우며 지금까지 달려온 조 장관은 워킹 맘의 롤모델로 불리기도 했다.
“로펌에 근무할 당시 여자 후배들과 함께 김앤장의 김영무 박사님, 장수길 변호사님을 모시고 조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때 ‘동료들한테 느끼는 경쟁심에 부대끼면서, 아이들한테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기를 쓰지 마라.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건 본인한테 무척 축이 나는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에 힐링이 되는 거 같더라고요.”
욕심은 나쁘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일에서도, 육아에서도 만점을 받으려는 욕심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명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욕심은 불행을 자초하게 마련이다. 조 장관은 100점 만점이라면, 육아와 일에서 모두 만점을 맞으려 하지 말고, 70점 정도만 하라고 주문했다. 아이들한테 신경 쓰면 회사가 울고, 회사에 신경 쓰면 아이들이 운다고 하지 않는가. 둘 다 완벽하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결코 자괴감이나 미안함을 갖지 말 것이며, 정해놓은 본인의 한계를 잘 지켜주길 바랐다. 끝으로 조 장관은 요즘 무엇으로 행복할까를 물었다.
“요즘요? 일에서는 흩어져 있던 것들을 일맥상통하게 꿰어서 방향성 있게 나아가도록 정리가 될 때, 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가는 게 맞다’라고 동의해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제가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현장에 나가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분들을 보는 것도 행복해요. 정말 그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멘토들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행복에 있어 성취는 양날의 검과 같다. 경쟁을 통해 단순히 돈이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실 행복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불행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취의 방향이 공적인 의미와 목적에 맞춰져 있다면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 된다. 조 장관은 그런 면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조 장관에게 큰 행복을 주는 것은 자녀들과의 관계였다.
자녀와의 대화에서 행복을 얻는 것처럼 이상적인 것은 없다.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 자체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장관의 말대로 ‘고마운 일’이다.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부모라면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행복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 부모가 될 터이고, 그러면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이 느꼈던 행복을 전달해줄 것이다. 행복은 교육이고, 그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돼야 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몇몇 학자들의 최근 주장을 전해주었다. 인류는 모계사회에서 시작해 부계사회로 발전했다가, 다시 현재는 모계사회로 진화 중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남성가족부’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고 농담을 해보았다. 조 장관은 즐겁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5천 년 만에 슬슬 그렇게 되려나 봐요(웃음)?”
조윤선 장관은…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1994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첫 여성 변호사, 씨티은행 부행장, 보수 정당(한나라당) 사상 첫 여성 대변인,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 등 독보적인 이력을 쌓아오다가 지난 3월 새 정부의 첫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학창 시절 미술 학도를 꿈꾸었다는 조 장관은 오페라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문화가 답이다」 등의 책을 쓰기도 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도서관에서 만난 박성엽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행복도 내가 느끼면 있는 거고, 내가 못 느끼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행복을 조금씩 느끼면 그게 저축이 되듯이 쌓이는 거고 내가 행복을 계속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게 되는 거죠”
“일에서는 흩어져 있던 것들을 일맥상통하게 꿰어서 방향성 있게 나아가도록 정리가 될 때, 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가는 게 맞다’라고 동의해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제가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현장에 나가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분들을 보는 것도 행복해요”
행복 디렉터 김진세가 전하는 11월의 제안
행복해지는 자녀와의 대화법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자리이지만,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47)은 딸들과 대화할 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녀들과의 대화가 항상 즐겁지만은 않지요. 어떤 때는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불편하답니다. 하지만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고, 서로를 이해해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겠지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행복의 지름길이고요.
대화를 통해 행복해지려면 우선 ‘잘 듣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치료를 합니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말하는 입이 아니고, 듣는 귀랍니다. 잘 듣는 것은 그저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데 상대방이 딴 생각을 하는 것 같으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지요. 집중을 해야 진짜 잘 듣는 사람이랍니다.
두 번째는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문제가 있어서 상담을 온 부모들은 대부분 문제의 원인이 대화 부족에 있고 해결책은 대화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대화의 시도는 늘 꾸중, 설교, 잔소리로 끝나고 말지요. 욕심 때문입니다. 정곡을 찌르고 감동을 불러일으켜 자녀가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대화를 하려고만 하지요. 그러지 마세요. 아이들이 귀와 입을 닫습니다. 그냥 가벼운 주제의 이야기를 해보세요. 세 번째는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부모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먼 나라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어렵다거나 동떨어졌다거나 심지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니까요. 아이들이 부모와의 대화에서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혼나거나 꾸중을 듣고 싶을 리는 없겠지요? 이해받고 즐기고 싶을 뿐입니다. 그 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대화법은 반드시 자녀와의 대화에서만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부부든, 친구든, 직장 선후배든 모든 관계에서 행복해지는 대화법이 됩니다. 대화가 안 통해서 답답한 사람이 있다고요? 잘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보세요.
속 시원해지는 순간이 올 겁니다.
여자보다 여자 마음을 더 잘 아는 여성심리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는 한편, ‘행복연구소 해피언스’를 통해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행복 멘토’라 불리고 있다. 요즘은 MBC-FM ‘여성시대-양희은, 강석우 입니다’의 월요일 코너 ‘마음학교’에 고정출연하며 청취자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2008년 1월호부터 3년간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을 통해 서른여섯 명의 긍정 아이콘을 만나 그들이 가진 긍정의 힘을 독자들과 공유해왔다. 저서로는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심리학 초콜릿」, 「스타트 신드롬」, 「애티튜드」가 있다. 트위터 @happy_mentor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김진세 ■사진 / 민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