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희의 지상 특강]갱년기, 끝이 아닌 인생 2막
“제가 내일모레면 예순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갱년기가 없었어요. 많은 주부들께 그 기술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어요. 세월을 역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갱년기를 거부하지 마세요. 사춘기 시절에 당당하게 반항하며 지냈던 것처럼 그렇게 갱년기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 교수는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르의 서적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의 내용을 예로 들며 진정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사인 그는 수많은 환자들을 대하다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떠올릴 수 없어서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결론은 하나였어요. ‘비교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마라. 그냥 이 순간을 사랑하고 감사하라’. 저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비교하자 마라’로 꼽고 싶어요.”
행복을 위해서는 우리는 모두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 순간을 그냥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저도 이렇게 억세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코스모스처럼 연약한 여인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얼마 전 모 케이블 프로그램에 출연을 했어요. 사회자가 ‘남편을 사랑하시나요?’라고 질문하기에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라고 대답했죠. 방송이 자극적인 걸 좋아하다 보니 그 부분만 편집돼서 예고편이 나가고, 저희 집은 완전 비상사태가 된 거예요. 맞아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저는 지방 강연을 가서 민물생선매운탕을 먹으면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남편 얼굴이 떠올라서 포장을 합니다. 요전에는 영암에 갔더니 세발낙지가 맛있어 보이더군요. 그때 또 남편이 생각나 사왔어요. 솔직히 꼭 붙어 앉아서 물고 빨고 하는 게 부부가 아니잖아요(웃음). 사랑하지는 않지만 함께 공유한 추억이 많아서 자꾸 생각나는 사람. 그게 솔직한 부부의 정 아닌가요? 이상적인 삶이란 없어요. 있는 그대로 내 삶을 받아들이세요.”
[정덕희의 지상 특강]갱년기, 끝이 아닌 인생 2막
어떤 가정도 문제없이 평탄한 곳은 드물 것이다. 아닌 척하다 보면 속으로 병이 든다. 감추기 급급한 시간들 대신 내 자신을 위한 미래를 설계하고 행동하자.
“저는 1994년에 첫 출판기념회를 했어요. 여고 동창생들을 초대했는데 두 부류로 나뉘더군요. ‘좋겠다, 부럽다’로 끝나는 친구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제가 저렇게 발전하고 있을 때 나는 뭘 했나?’ 하는 친구. 그 중에 그 길로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지금 목사가 된 친구가 있어요. 제 친구 중에 늦게 공부해서 교수 하고 있는 친구가 2명이나 있고요. 갱년기 여성들에게 절대 늦지 않았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그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남이 하는 것을 훔쳐보고 따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 교수는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나보다 경험이 적거나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많다.
“얼마 전에 개그맨 신동엽씨와 같이 식사를 했어요. 저는 되게 싱겁게 먹는 편이라 늘 국에 넣을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거든요. 그도 나랑 입맛이 비슷한가 봐요. 국에 찬물을 붓더군요. 그래서 제가 ‘찬물 넣으면 맛없어요. 미적지근해지잖아’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남을 귀찮게 하는 것보다 제가 미적지근한 것에 익숙해지는 게 더 편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바로 배웠어요. 이제 어디 가서 유난스럽게 뜨거운 물 달라고 안 합니다.”
정 교수는 결국 인생은 ‘잡념 없애기’라고 말한다. 갱년기가 왔을 때 뭔가 집중할 것을 찾아야 한다. 한 가지에 빠지면 외로움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당장 할 것이 없다면 독서를 하라고 권한다. 책은 잡념 없애기에 간단하고 좋은 도구다.
[정덕희의 지상 특강]갱년기, 끝이 아닌 인생 2막
정 교수는 2011년도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조기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복지원 실습활동 1백20시간을 충실히 수행하기도 했다.
“제가 작년까지 아무에게도 이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만약 중도에 포기하게 되면 창피하잖아요. 그런데 실습도 아주 재밌게 마쳤어요. 다른 주부들도 늦지 않았어요. 학교가 아니더라도 뭐든 준비해보길 추천합니다.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거잖아요.”
50, 60대 주부들,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야 진정한 자유인이 됐다고 생각하자. 아내, 며느리, 엄마로 살았던 지난 시간과 견주어보면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제는 다시 홀로서기, 걸음마를 시작할 때다.
“진정한 자유인을 위한 세 가지 다짐을 해보세요. 첫 번째, ‘돌아보지 않겠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지 마세요.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나를 외롭게 하지 않겠다’. 그동안 같이 동행한 나를 외롭게 하지 마세요. 피아노를 치고 싶다면 당장 하세요. 기초부터 할 것 없이 두 곡만 칠 수 있도록 연습하세요. 어디 가서 한 곡 쳤을 때 ‘앙코르!’ 하면 또 한 곡 칠 수 있도록!(웃음). 세 번째, ‘최고로 사랑하겠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내 몸을 쓰다듬어주세요. ‘얼마나 힘들었니? 많이 지쳤지?’라면서 그동안 별 탈 없이 함께한 몸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주세요.”
인생을 개척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늦었다는 건 없다. 적당한 ‘타이밍’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이 바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 순간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영길,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