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너 사세에게 한국인의 결혼을 묻다
인터뷰를 위해 베르너 사세(72) 전 한양대 석좌교수가 살고 있는 경기도 안성 ‘웃는 돌’을 찾은 날은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차를 달려 1시간 반, 도착을 알리는 이정표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그의 집은 온통 비 내음과 흙 내음에 휩싸여 있었다. 2010년 제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사세 교수와 홍신자씨(73)는 한동안 제주도에서 지내다 2년 전 홍신자씨의 무용단이 있는 이곳 ‘웃는 돌’로 올라왔다. ‘육지에 일이 많아서’였다. 향가와 고려방언 연구 전문가인 그는 얼마 전 「농가월령가」의 독일어와 영어 번역을 마쳤고, 지금은 「동국세시기」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 중이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홍신자씨 역시 여전히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 중이다. 그날 아침 공연을 위해 인도로 떠난 그녀는 열흘 후에 돌아온다고 했다.
사세 교수는 독일에서 한국학 연구를 개척한 1세대 독일인 한국학자다. 그가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6년, 비료공장에 기술고문으로 부임한 장인을 따라 한국에 오면서부터였다. 기술고등학교 강사로 일하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독일로 돌아가 한국학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독일은 물론 유럽을 통틀어 한국학은 미개척 분야였다. 그는 독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됐다. 학위 논문은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방언」이었다. 보훔대학교와 함부르크대학교에서 한국학과를 개설하며 유럽 내 한국학 연구를 이끌어온 그는 지난 2006년 함부르크대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구 귀국’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것이다”라 말하는 그이니 ‘돌아왔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몸은 독일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항상 한국에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한국 신문을 보고, 한국에 관한 강의를 하고, 현지 조사를 위해 1년에 서너 달은 한국에 머물렀으니까요.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그림과 한국학인데, 그림은 세계 어디서나 그릴 수 있고 한국학은 한국에 가서 하는 것이 가장 좋으니 한국에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예순이 넘은 나이에 한국에 정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그의 한국어가 유창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구수하다. 맨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은 곳이 전남 나주였고 귀국 후에는 담양 시골마을에 정착해 한옥에 살며 촌로의 삶을 즐긴 그이다.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한국을 내 집 드나들듯 오갔으니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기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생활한복을 입고, 한옥과 막걸리를 사랑하며, 뜨끈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 가을비 오는 날 진한 쌍화차 한 잔을 내미는 이 푸른 눈의 선비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이곳에서 느끼는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살며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곤 합니다. 물론 독일과 한국은 무척 다른 나라이고 배치되는 것들이 있지만 저에겐 그러한 차이가 힘든 것이 아닌 재미있는 것이었어요. 새로운 경험이었죠. 그건 아마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낯선 것은 새로운 것이 되거든요.”
주변 시선 아닌 내 기준에 맞추는 결혼식
다르다는 것은 새롭다는 것이고 새로운 것은 영감이 된다. 때때로 사람들이 그에게 아내와 결혼한 이유를 물어올 때면 그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에”라고 답한다. 몇 해 전 지인의 미술 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 후 몇 번의 우연과 필연을 거쳐 2010년 10월 9일 부부의 연을 맺었다. 화제의 연속이었다. 독일에서 온 한국학자와 세계적 무용가 홍신자의 결혼. 사람들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방점을 찍곤 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에요. 아내는 미국 뉴욕과 인도에서 유학하며 오랜 외국생활을 했고 저 역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다녔으니, 둘 다 한국에 사는 세계인인 셈이죠. 그간 쌓아온 인생의 연륜이 있기에 나와 다른 것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제주도 돌문화공원 하늘연못가에서 전통 평양식 혼계복장을 하고 식을 치렀다.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 남과 북을 한데 모았으니 두 사람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결혼식이 또 있을까.
“식이 끝난 후에는 모두가 새벽까지 어울려 놀았어요. 음식은 한국식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 준비했고요. 요즘 결혼식을 보면 낭비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요.”
사세 교수는 얼마 전 저서 「민낯이 예쁜 코리안」을 통해 외국인 출신 한국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엮어냈다. 그는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물질주의를 매섭게 꼬집은 가운데, 최근 한국의 결혼식이 심각한 물질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걱정했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집이나 혼수 문제로 다투거나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이곳이 전통과 정신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던 한국이 맞나, 하고 의구심이 들 정도다. 얼마 전엔 신부가 신랑 측에 보낸 예단비 3천만원이 작다며 신랑 측에서 탐탁지 않아 했다는 기사를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 평균임금이 3백만원 정도인 사회에서 3천만원이 작다니, 새로운 가족이 돼 앞으로 인생을 함께할 사람들이 지나치게 계산적인 것을 보면 욕심을 떠나 병적이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베르너 사세에게 한국인의 결혼을 묻다
물론 독일과 한국의 인식과 사정이 같을 수는 없다. 한국에는 조선시대 때 신부 측에서 가구와 부엌살림을 준비하고 신랑 측에서는 집을 마련하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이며 시대와 사회가 달라졌다. 물론 혼수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결혼을 약속한 당사자들을 괴롭게 할 수준이라면 과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체면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한국인의 태도에서 문제점을 찾는다.
“주변에 보이는 것, 집과 차, 물질적인 것에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 차가 굉장히 오래 됐는데 친구들이 저를 보고 ‘너희는 예술가라 오래된 차 타고 다닐 수 있지, 우리는 그렇게 못해’라고 얘기해요. 체면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나대로’, ‘우리 부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해요.”
두 사람은 결혼할 때 서로의 재산에 대해 묻지 않았다.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기준에 충분했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자랄 땐 별수 없다. 아끼고 다른 대안을 찾는 수밖에.
“제가 독일 와인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무척 비싸서 마시기가 힘들어요. 웬만한 건 3만원 이상이에요. ‘내가 돈이 없어서 와인을 못 마시는구나’라고 한탄하기보다 다른 대안을 찾아요. 그러다가 막걸리에 빠지게 됐죠(웃음). 비싼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내가 만족하고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그게 좋은 거예요. 결혼 역시 마찬가지고요.”
다르다는 것은 재미있는 것, Love is Play
그렇다면 이상적인 결혼생활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말할 수 없다”라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대답이었다. 이 세상에 부부가 각각 다르듯 이상적인 결혼생활 또한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의 기준에서는 ‘서로 도우며 서로의 다른 면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 정착과 안정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 부부가 원하는 것은 삶의 재미와 즐거움이다.
“저희 부부의 모토가 ‘Love is Play’예요. 우리 둘은 혼자일 때도 안정감을 느끼며 살았어요. 때문에 안정을 찾으려 결혼을 한 건 아니에요. 자식을 낳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각자 활동하고 있는 영역이 있으니 서로에게 영감이 될 만한 재미를 함께 찾아나가자고 했어요.”
서로에게 영감이 될 만한 재미라, 예술가들만의 비범한 소통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싶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서로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존중하며 극진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 세상 모든 부부들에게 통용되는 행복한 부부생활의 정석이다. 참고로 두 사람은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 할 시간도 없고 재미도 없다. 덧붙여 틈날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서로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에 언제나 하트가 가득하다는 것 정도는 추천할 만한 예시다.
“제가 보기에 많은 부부들이 배우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요. 자기만 생각하면서 자기중심적인 부부생활을 하다 보니 갈등이 생기고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너와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해요. 무조건 모든 일을 함께하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집사람이 인도에 갔으니 지금쯤이면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있겠구나, 이따 몇 시쯤에는 무엇을 하겠구나, 하며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을 해요. 제가 가끔 독일에 갈 때 집사람 역시 마찬가지고요. 함께 있지 않아도 항상 서로를 생각한다면 언제나 함께하는 거죠.”
누가 결혼을 구속이라 했는가.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배경이 돼주니 무슨 일을 하든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재미와 긍정적인 사고는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을 일구는 유용한 거름이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문제라고 생각해요.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세상엔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아요. 문제로 받아들이지 말고 새로운 것, 탐구해볼 만한 재미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오늘 이렇게 비가 와서 낙엽이 땅에 떨어져 있는 걸 보고 ‘이걸 언제 치울까’ 걱정하는 것보다 비에 젖은 낙엽도 그 모습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훨씬 행복해지잖아요.”
이 부부는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일이 생긴다면 융통성을 발휘할 것이고 기회가 생기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서로에 대해 계속해서 탐구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황혼의 부부의 늙지 않는 애정이 부럽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