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보기 드문 ‘사위 경영’으로 주목받던 동양그룹의 몰락

재계 보기 드문 ‘사위 경영’으로 주목받던 동양그룹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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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막아내지 못하고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된 투자 피해자들의 울분은 현재현 회장 일가를 향해 있다. 시멘트, 섬유, 증권 등 3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양그룹은 한때 재계 10위권을 유지했을 정도로 역사와 저력이 있는 기업이었다. 그런 동양그룹은 왜 추락하게 됐을까.

동양그룹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동양그룹이 ㈜동양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동양 계열사의 기업어음과 회사채에 투자했던 투자자들과 경영진을 믿고 부실 계열사의 회사채를 팔았던 동양증권 직원들이 위기에 처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투자 피해자는 4만9천5백61명으로 금액은 1조5천7백7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동양그룹은 그동안 다른 대기업들과는 다른 특성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바로 재벌 사회에서 보기 드문 사위 총수 기업이라는 점이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동서인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함께 국내 재벌가에서 처음으로 가업을 승계하며 ‘사위 경영’ 시대를 열었다

1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 지난 10월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2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동양증권 본사.

1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 지난 10월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고개를 숙인 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2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동양증권 본사.

동양그룹의 창업주는 1989년 별세한 이양구 회장이다. 그의 인생 역시 한국 재벌 창업주들의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와 흡사한 궤적을 나타낸다. 함경도 함주 출신인 그는 가난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일찍이 일본인이 운영하던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했고, 이때 배운 상도를 바탕으로 이후 식품도매업에 종사하게 된다. 1945년 서울에 정착해 과자 행상을 한 것을 발판으로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경남 지역에서 ‘설탕왕’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1955년 공동 출자로 세운 동양제당공업주식회사에 이어 과자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풍국제과까지 인수해 1956년 동양제과공업(주)을 설립한 것이 동양그룹의 시작이다. 이듬해 삼척시멘트 인수를 바탕으로 한 시멘트 사업에 진출,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를 출범하며 승승장구해나갔다. 1989년 이 회장이 별세하며 큰사위인 현 회장이 취임했고, 동양제과를 물려받은 둘째 사위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2001년 동양제과 계열 분리를 통해 오리온그룹을 출범했다.

동양그룹이 국내 최초로 사위 총수 기업이 된 데는 창업주 이 회장이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것과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만 둘을 두는 등 가족 및 친척이 단출한 이유가 크다. 또 이 회장의 가치관이 자식들의 결혼과 사업을 연관 짓기보다는 처음부터 사위 자체의 능력과 인품을 가장 우선시했던 데서 연유한다. 1976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던 현 회장이 장녀 이혜경 부회장과 결혼하자 창업주 이 회장은 사위를 그룹 후계자로 지목했고, 현 회장이 미국 스탠포드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오자, 이 회장이 직접 현장을 데리고 다니며 실전 및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실시했다고 한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3학년 시절 사법고시를 패스한 ‘정통파’ 현 회장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집안끼리의 중매로 이 부회장과 만나 결혼해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다.

이 회장 타계 후 13년 동안 사위 간 독자 경영을 해오며 자연스럽게 기업 분할과 계열 분리를 진행한 동양그룹은 이후 금융사업에 공을 들이며 무리하게 덩치를 불려나가다가 건설 경기 악화에 따른 직격탄을 맞으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그룹의 주력 사업이던 시멘트 사업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이를 기점으로 그동안 내조에 전념해오던 이 부회장이 아버지의 회사를 살리고자 경영에 뛰어들게 됐는데, 경영 경험이 전무한 이 부회장을 돕기 위해 나선 이들이 모이면서 그룹 내 비선 조직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동양 사태’를 야기한 핵심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우연한 계기로 김 대표를 알게 된 이 부회장은 그를 매우 신임했고, 곧 일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 김 대표가 그룹의 실세로 떠올라 자산 매각 관련 협상에도 관여하게 됐다고 한다. 김 대표의 의견을 수렴한 이 부회장이 그룹 내 주요 사안마다 현 회장과 부딪히면서 구조조정 등이 더디게 진행된 것이 그룹의 좌초를 가속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동양그룹의 몰락에는 시장 상황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무리한 사업 확장, 견제 시스템의 부족, 불투명한 경영, 경영진의 부정과 비리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 하나로 사위 경영자로서의 한계도 지적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서 ‘젠틀맨’으로 통하는 현 회장이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핵심은 총수 일가의 경영상 배임 및 불법행위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총수 일가의 도덕적 해이와 개인 비리에 관한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수많은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철저한 조사와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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