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름에 푹 빠진 이방인, 커티스 존슨의 천하장사 도전기
키가 얼마나 되나요? 발 사이즈는요?
키는 233cm, 발 사이즈는 400mm입니다.
혹시 최홍만 선수라고 아세요?
아! 격투기 선수지요? 인터넷을 통해 경기하는 걸 봤습니다. 엄청나게 크고 빨간색 머리가 인상적이었죠.
본인이 16cm나 더 큰 거 아세요?
정말이요? 몰랐어요. 제가 정말 크긴 크군요(웃음).
몇 번째 한국 방문인가요?
2011년과 2012년 뉴욕 천하장사 대회 우승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천하장사 씨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왔어요.
그동안 한국에서 이룬 성적은 어느 정도인가요?
예선 통과도 못했습니다. ‘천하장사 씨름대회’에 참가했다는 의의만을 갖고 돌아갔죠.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미국에서 틈틈이 연습도 했고 올해는 상위권 진입이 목표입니다.

씨름에 푹 빠진 이방인, 커티스 존슨의 천하장사 도전기
미국 코치가 있어요. 1주일에 2, 3일씩 미국에 계신 코치에게 훈련을 받았죠. 주말이나 일을 마치는 저녁 때 시간을 내서 했지요. 모래판은 없지만 매트가 깔린 도장이나 공원 잔디밭에서도 연습했습니다. 또 한국에서 열린 씨름대회 동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됐어요.
본업은 무엇인가요?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에 있는 영국계 은행 바클레이스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어요.
대회 일정이 꽤 긴 걸로 아는데 휴가를 낼 수 있었나요?
1년 치 휴가를 전부 모으면 3주간의 휴가를 가질 수 있어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했답니다(웃음).
한국 첫 방문 때에 비하면 그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사실은 주변 씨름 관계자들도 인정한다. 신체적으로도 유리할 뿐만 아니라 기본기도 많이 늘었다는 평가다. 그는 이번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에서 세계 특별장사 씨름대회, 세계 씨름 친선 교류전 그리고 천하장사 결정전에 출전한다. 외국인 선수로는 미국인인 그뿐만 아니라 스페인, 몽골, 러시아 등 씨름과 유사한 전통 기예가 있는 나라의 프로 선수 50여 명이 참가한다. 씨름이라고는 전무한 나라에 살고 있고, 게다가 아마추어인 그가 겨루기에는 외국 프로 선수들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대회를 앞두고 준비하고 있는 나만의 필살기가 있을까요?
말할 수 없어요. 비밀입니다(웃음). 농담이고요. 제 장점인 큰 체구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밀어 넘어뜨리는 전법을 주로 연습했습니다. 현재 컨디션도 매우 좋은 편이에요.
샅바를 매는 건 꽤 어려운 일인데요. 혼자 맬 수 있나요?
아직은 불가능해요. 미국에는 샅바가 없어요. 한국에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다 짧아서 제게 맞는 게 없었어요. 급하게 특별 제작한 것을 가져와서 연습하고 있어요.

씨름에 푹 빠진 이방인, 커티스 존슨의 천하장사 도전기
2003년도 대학농구 우승 팀인 세인트존스대학교 소속으로 농구를 했어요. 포지션은 당연히 센터였죠. NBA의 하부 리그인 ABA에 진출했다가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운동을 그만두고 수술하고 재활치료를 했어요. 그리고 중국 리그로 스카우트됐다가 다시 발목에 문제가 생겨 쉬고 있던 중에 씨름을 접하게 된 거예요.
유독 씨름에 빠지게 된 이유가 뭘까요?
운동은 늘 부상 위험이 뒤따르게 마련지만 모래 위에서 하는 씨름은 소프트하잖아요. 위험도가 적어서 일단 마음에 들었고요. 제 큰 체구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운동이라 더욱 좋아하게 됐어요.
가족에게 한국에 가겠다고 하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저희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버지니아 주 노퍽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었어요. 현재는 큰 규모로 돼지 농장도 하고 있죠. 시골 소년인 제가 뉴욕에 처음 온 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였죠. 그 정도로 시골이니 부모님들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세요. 어머니는 처음에 “왜 굳이 지구 반대편 나라까지 가려 하니?”라며 놀라셨어요. 아버지는 “남자라면 하고 싶은 일은 해야지! 그래! 가서 상금 타와라”라고 말씀하셨죠. 아마 미국에서 응원하고 계실 거예요.
씨름을 좋아해서일까? 덩치 큰 이방인인 커티스 존슨에게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기자보다 두 살이 어리니, 귀여운 남동생처럼 느껴진다. 본인에게는 모든 것이 낯선 환경이지만 말 한마디마다 사람들을 웃기려는 개그 본능은 숨길 수 없었다. 사실 미국식 유머라 잘 와 닿진 않았지만 그의 해맑은 표정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났다. 한국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어 인터뷰 전날 저녁에는 삼겹살을 먹으며 파무침을 세 번이나 추가해 먹었다는 후문이다.

159cm 신장의 본지 기자와 함께.
전 한국이 좋아요. 제일 좋은 것은 씨름이고요. 한국 사람들은 친절해요. 또 음식도 정말 맛있어요. 3년째 오다 보니 순대, 매운탕을 비롯해 거의 모든 한국 음식을 먹어봤어요. 단, 개고기는 빼고 말이죠.
순대는 맛있었나요? 매운탕은 맵지 않았어요?
전 생고추도 잘 먹어요. 쏘가리 매운탕은 최고였어요! 순대에 함께 나오는 간도 맛있었어요. 하지만 동물의 발이나 내장은 잘 못 먹겠어요.
미혼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 여성은 어떤가요?
(박장대소를 한 다음) 잘 모르겠어요. 한국 여성들은 저를 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존슨씨가 잘생겨서 그럴 겁니다.
(또 박장대소한다) 그렇겠죠? 미국에서도 종종 듣는 얘기입니다. 사실은 한국 모 기업에서 CF를 찍자는 연락을 받은 상태예요. 지금 관계자와 협의 중입니다.

커티스 존슨은 촬영 당일, 인하대학교 씨름부 학생과의 연습 경기에서 1승 2패로 석패했다. ‘씨름은 기술’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계획이 없고요. 미국에서 직장 잘리면 한국에 오겠습니다!(웃음)
씨름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미국에서 주짓수(브라질 유술)를 가르치는 도장에서 씨름 훈련을 하곤 했는데요. 제가 씨름 연습하는 걸 보고 주짓수를 배우던 사람들이 “나도 배울 수 있냐?”라고 많이 물어왔어요. 그런 걸 봤을 때 씨름은 미국에서도 가능성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씨름의 인기는 일본의 스모보다 낮은 게 사실이지요?
저는 영원한 씨름맨입니다. 씨름은 스모보다 훨씬 재밌는 운동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미국인들에게 씨름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어요.
그의 입에서 나온 ‘씨름맨’이라는 단어에서 새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그간 무관심했던 씨름에 무한 애정을 쏟는 낯선 이의 눈빛을 보며 조금은 머쓱해진다. 그의 무모하지만 의미 있는 세 번의 도전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참 많다. 인터뷰 후 씨름 대회에 참가한 커티스 존슨은 세계 특별장사 씨름대회 부문 3위를 차지했고 외국인 선수의 가능성을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받아 ‘기술왕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영길, 김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