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광야에서 보낸 1년

표창원, 광야에서 보낸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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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만남이었다. 3년 전 만삭 의사 부인 사망 사건 판결 직전 프로파일러 표창원을 처음 만났고, 이듬해 「한국의 CSI」라는 책을 펴낸 과학수사관으로 두 번째 만났다. 모든 타이틀을 내려놓은 세 번째 만남. 그는 이제껏 봐온 중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지난 1년 수많은 사건과 이슈에 휩싸였던 사람치고는 말이다. 경찰대학을 떠나 자유인으로 산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격랑’의 시간 속에는 2014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혼란과 희망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표창원, 광야에서 보낸 1년

표창원, 광야에서 보낸 1년

거친 파도 속, 잘 버텼다
18대 대선을 1주일여 앞둔 2012년 12월 11일, 경찰은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굳게 잠긴 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국정원 직원이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유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당시 경찰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표창원은 수사당국에 즉각적인 진입, 수사에 임해 결과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고, 그로부터 며칠 뒤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신이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경찰대 교수’라는 직위가 이용될 수 있음에 대한 우려였다. “자유, 표현의 자유, 글을 쓰는 데에 어떠한 구애도 받고 싶지 않다”라며 사직의 이유를 밝힌 그는 그렇게 수십 년간 몸담았던 경찰 조직을 떠나 자유인이 됐다.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유능한 범죄 수사관,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 경찰대 교수. 그간 자신을 수식하던 타이틀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온 지난 1년. 그는 ‘격랑’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지만 “잘 버텼다”라고 말이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인터넷 프로필에는 ‘전 교수’라고 나오던데 어떤 게 편하세요?
글쎄요(웃음). 그전에 저를 아셨던 분들에게는 ‘교수’라는 호칭이 익숙하실 텐데 ‘전’자를 붙이더라도 경찰대를 달고 다니는 건 대단히 부담스러워요. 저는 그냥 한 사람의 시민이고 싶은데 무언가를 대표하는 것같이 알려지고 이해가 되니까요. 물론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전 경찰대 교수’라는 한마디로 모든 게 소개되니까 자꾸 그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이제 저는 새 출발한 사람이니까 새롭게 불리는 게 맞아요. 현재로서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니 작가라는 호칭이 가장 맞는 것 같아요.

경찰대를 떠나신 지 그리고 국정원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일단 개인적으로만 본다면 1년을 잘 버텼다, 라는 게 스스로에게 내리는 총평이에요. 극적인 변화였잖아요. 제 커리어를 비롯한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도 있었어요. 경제적으로나 가정적, 개인적으로 크게 손상을 입지 않고 버텨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돌아보니 잘 버텼네요. 감사하죠. 하지만 저를 변화하게 한 원인이었던 정치, 사회적 문제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저가 버틴 만큼 그들도 버틴 거죠. 그 모양 그대로 1년이 갔고, 그 사이에 진실과 정의를 바랐던 시민들은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어떤 분은 희망을, 어떤 분은 목숨을 버리셨어요. 1년을 돌아보자면 복잡한 심경이에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생겨났어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큰 이슈가 됐죠.
사실 저는 이전까지 정치에 크게 관심을 뒀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정치에 대한 피상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죠. 지난 1년간 공부하고 들여다보고 관찰하며 우리 민중, 시민들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암울하고 통제되고 한쪽으로 쏠려나가는 사회에서조차 본질과 진실을 잃지 않고 정의를 지키려는 열망을 느꼈죠. 특히 작년 연말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안녕들하십니까’를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사실 저희 세대에게 지금의 젊은이들은 사회문제에 무신경한, 스펙 쌓기에만 열중하는 이미지로 비친 경향이 있어요. 대학생들과 고등학생, 중학생들까지 주축이 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망치로 꽝 얻어맞은 듯했죠. 저나 저희 세대가 참 오만했고 무책임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들이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우리에게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가 청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강요했는가. 공부, 취업만 강요하지 않았나 하는 자기반성의 시간도 가지게 됐어요. 무엇보다 그러한 모습들 안에서 더 큰 긍정과 희망을 보았고요.

어떻게 보면 대중을 가장 가깝게 경험했던 1년이 아닌가 싶어요. 프리허그와 강연, 팟캐스트, 토크 콘서트 등 다양한 형식과 자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소감은 어떠신가요?
한 공간에서 물리적 접촉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때뿐 아니라 트위터나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시민들의 열망이 참 뜨겁고 강하다는 걸 느꼈어요. 다만 각각 자신의 열망을 내세우는 모양은 다 달라요. 좀 더 강하게 선동해달라고 하는 분도 계시고 중도를 지키며 끝까지 가달라, 너무 정치적으로 나서지 말고 시대의 중심을 잡아달라 등등 다양한 주문을 해오세요.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가 혼란과 과도기를 겪고 있다는 거겠죠.

때로는 가시 돋친 말들도 많았을 텐데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상처받지 않으셨나요?
제가 성인군자는 아니거든요(웃음). 욕설과 비난, 교묘하게 시간을 잡아먹을 수 있는 자극적인 시비도 많아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한 분 한 분 다 얘기해보고 싶지만 저에게 지지와 응원을 주시는 분들에게도 일일이 피드백을 못해드리는데, 부정적으로 시비거시는 분들에게 시간을 쏟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도 해요. 만약 제가 정치인이라면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도 모두 포용하는 것처럼, 혹은 못들은 체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저 시민의 한 사람이고 싶거든요. 제가 저의 역할이나 포지션을 정해놓으면 대응 매뉴얼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정해진 게 없어요. 때문에 지난 1년 동안 싸우기도 하고 대화도 하고 시간을 들여 변화시키기도 하고 사과를 받기도 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표창원, 광야에서 보낸 1년

표창원, 광야에서 보낸 1년

표창원이 변했다? 난 변하지 않았다
국정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경찰대를 사직하게 된 시발점이자 지난 1년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논란의 뿌리가 된 사건이다. 자유인이 된 후 그는 부지런히 쉬지 않고 국정원과 정부에 범죄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 시정을 요구해왔다. 그러는 사이 정치적 사안에 목소리를 높이는 인물로 비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표창원은 그대로다. 범죄는 처벌받아야 하고 사회는 그들에게 반성과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국정원 사건 수사가 결국 해를 넘겨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지난 1년간 결과는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총장이 소위 말하는 ‘찍어내기’로 밀려났고 그에 대한 국정원의 개인정보보호법, 가족관계등록부 관련법 위반이 드러난 상황이에요. 배후로는 청와대가 지목되고 있고요. 이제까지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범죄가 충분히 확인됐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서는 99% 유죄 판결이 날 거라고 봐요. 판사들도 자신의 이름이 권력 범죄의 부역자로 남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다만 형량에 따라 정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볼 수 있겠죠. 아마 사법부가 부담을 지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타협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 후 청와대나 새누리당 쪽의 시나리오는 예상 가능해요. “유감을 표명한다. 그동안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해달라”라는 식으로 발표하고 여론의 향배를 지켜보겠죠. 아마 이번 철도 파업의 결과처럼 시간이 길어지며 저항하던 이들이 소수로 남게 되고 그렇게 흘러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모든 희망과 바람을 떠난 가장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예상 시나리오예요.

지난 1년 동안 국정원 사건에 대한 인정과 사과, 개혁을 끊임없이 요구해오셨는데 결국 본질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경찰 시절부터 늘 얘기해왔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요.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예요.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책임을 묻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 사회의 책무이고요. 우리 사회가 그걸 배워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잘못이 확실한데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이들이 있어요. 그러는 사이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피해자와 가족들은 몇 배로 고통받아요. 제가 정부에 바라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모범을 보이라는 것, 그 다음에 다시 일어서라는 거예요. 따르지 않겠다면 끝까지 처벌받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가 이제까지 겪어왔던 수많은 범죄 사건, 범죄자들에게 했던 단죄의 행동들을 뒤집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이전에 범죄 수사관으로서 해왔던 말들과 일맥상통하는 말들이네요. 모든 사람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안타까운 것이 사람들이 자꾸 저에게 변했다고 하는 거예요. 예전에는 저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변해서 싫다고요. 범죄를 대하는 마음, 처벌과 절차에 관한 한 그때와 지금의 전 다르지 않거든요. 국정원 사건 자체가 크나큰 범죄이다 보니 제 직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제 선택의 의미와 무게, 역할과 방법이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조금 긴 호흡으로 표창원이라는 사람을 지켜보신다면 전 늘 일관돼왔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국내외 경제 문제, 철도 등 각종 민영화 문제, 밀양·강정마을 문제, 원전 비리 등 수많은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입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뭐라고 보시나요?
사실 전 누가 대통령이건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중요한 건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감시돼야 한다는 거예요. 국회, 언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부의 일들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해요. 정부와 국민, 각 분야 최고의 실력자와 브레인들을 모아서 타개해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국정원 사건으로 정통성을 의심받는 정권이 이 위기를 제대로 돌파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죠. 건강보험 문제를 예로 들자면 수가를 올리든지, 구조적인 조정을 해야 문제가 해결되는데 국민의 반대가 두려워 그걸 못하는 거예요. 에둘러 슬쩍 영리사업을 하게 만드는 식이거든요. 지금 모든 문제의 핵심은 정권의 정통성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통성 있는 정부로 바꾸든지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정통성을 확보해야죠. 과거의 잘못을 드러내고, 고백하고, 용서를 받고, 그 다음에 산적한 현안에 대해 솔직하게 국민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해요.

국가에서 개인의 행복이 정권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네요.
그렇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민생이 중요하기에 정쟁을 그만둬야 한다는 건 잘못됐다는 거예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하는지, 민생과 정치는 별개일 수 없고 무엇보다 정권의 정통성이 회복돼야 나와 우리 가족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자유인으로 1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
표창원을 ‘한국의 볼테르’라 부른다면 그가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지 모르겠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라고 말한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처럼 그 역시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그는 함께 포기하지 말고 ‘9회 말 2아웃’의 기적을 누리자고 말한다.

지난해 김조광수 감독 결혼식에 참석하셨죠. 그동안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아동학대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오셨는데 새롭게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참 죄송스러운 게 1년 동안 워낙 큰 문제에 휩싸여 있다 보니 그동안 글과 논문, 학회를 통해 주장해왔던 일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힘을 실어드리지 못했어요. 제가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여러 시민 단체나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감사드리고요. 김조광수씨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했을 때 저를 지지하는 많은 분들 중에서도 “제발 거기만은 가지 마십시요”라고 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이른바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아직 받아들이는 못하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만큼 성소수자가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걸 방증하는 거겠죠. 저는 그분들 옆에서 지지해드리고 싶어요. 저야 두려울 게 없으니까 욕하고 오해해도 괜찮아요. 설령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분들의 목소리를 보호하고 지켜드리고 싶어요. 우리 모두 언제든지 사회의 소수자, 시스템적인 오류나 결함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경찰대 퇴직 당시 초등학생 아들이 울었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요즘은 어때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그때는 아빠가 더 이상 경찰대 교수가 아니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나 봐요(웃음). 이제 아빠가 매일 밤 곁에서 재워주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니 싫어할 이유가 없죠. 아이가 저를 비난·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많이 성숙해졌어요. 동네에서 저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좌빨’, ‘종북’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 적이 있는데 학교 가는 길에 그걸 보고 아빠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대요. 그러한 변화를 겪어나가면서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크게 상처 입지 않고 잘 버텨온 것 같아요.

가장 고맙고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누굴까요?
아내는 지난 1년 내내 마음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에요. 내색은 안 하려고 해도 불쑥불쑥 불안해하는 게 보여요. 그럴 때면 그냥 끌어안아줘요. 다양한 문제에 대해 대화도 많이 하고요. 감정의 영역에서 일어난 불안감들을 이성의 영역으로 치유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그동안 우리의 역할이 긍정적이지 않았나, 잘 버텨왔다, 라며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며 1년을 지나왔어요.

가깝게 지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이 계신가요?
지금은 가족뿐이에요. 예전 경찰 동료들은 제가 일부러 피해요. 저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고맙게도 SNS를 통해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지난 1년 동안 잃은 것과 얻은 것, 뭐라고 생각하세요?
잃은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외적으로 보자면 직업과 함께 일했던 경찰 동료들을 잃었죠. 하지만 상황이 바뀐 것뿐이지 정말로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얻은 건 대단히 많아요. 저를 지켜주시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많은 분들을 얻었고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쓸 수 있었던 책도 썼고요(그는 지난해 2월,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역할은 무엇인지를 타진하는 책 「표창원, 보수의 품격」을 발간했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글도 쓰고 사람도 만나고 많은 걸 얻었어요. 물론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함께요. 만약 제가 계속 경찰대 교수로 있었다면 아이의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서 평일 먼 지방에 가는 길은 힘들었겠죠.

2014년이 시작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돼가고 있네요. 새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대통령이 사과하고 정의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랐지만 이뤄지지 않았어요. 새해 소망으로 빌어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책을 한 권 쓰고 있는데 이제까지 썼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책이에요. 그 책이 여러분께 좋은 선물이 됐으면 해요. 많은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 당장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불의가 용납되고 승리하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정의가 이긴다는 생각으로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길게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힘들고 어렵더라도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놓지 마시고 진득하게 끝까지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지켜봐주셨으면 해요.

야구에 ‘9회 말 2아웃’ 상황이 있죠. 우리 팀이 7:0으로 지고 있어요. ‘어차피 질 건데’ 하며 뒤돌아 나가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뒤에서 함성이 들려와요. 주자가 한 명 두 명 걸어 나가고 1점 2점 점수가 나다가 그 경기가 7:8로 넘어가는 순간이 오죠.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 그 감격은, 그 기적 같은 광경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신 분들만 보실 수 있는 거예요. 속고 또 속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은 분들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고요. 포기하지 마시고 7:0이 7:8로 뒤집어지는, 9회 말 2아웃의 기적을 누리시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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