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보물들’ 모아  기부하는 제기동 맥가이버 허남연씨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버려진 ‘보물들’ 모아 기부하는 제기동 맥가이버 허남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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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도 없는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이는 얼마나 될까? 고장 난 물건을 고쳐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는 허남연씨. 그는 버려진 빈 병과 캔을 모아서 판 수익금을 기부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버려진 ‘보물들’ 모아  기부하는 제기동 맥가이버 허남연씨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버려진 ‘보물들’ 모아 기부하는 제기동 맥가이버 허남연씨

오가는 상인과 자동차들로 분주한 제기동 시장 골목 한쪽, 허름한 빌라 지하에 자리한 작은 사무실로 들어서면 진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우산과 신발, 선풍기, 전축 등 온갖 물건이 수북이 쌓여 있는 이곳은 이 지역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사무실이자 지회장을 맡고 있는 허남연씨(59)의 비밀 창고다. 한국전력에서 전기기술자로 근무하다 2009년 퇴직한 그는 동네 망가진 물건들을 하나둘 고쳐주다 이제 이곳에서 고장 나거나 못 쓰는 물건들의 수리를 도맡고 있다. 살이 부러져 못 쓰는 우산을 뚝딱 새 우산으로 만들고, 수십 년 된 전축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 소리를 얻으니 과연 ‘제기동 맥가이버’라 불릴 만하다. 새 생명을 얻은 물건들은 필요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보육원 등으로 보내진다. 이른 새벽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며 빈 병과 캔을 모아 판 수익금을 보육원과 양로원, 장학회 등에 기부해온 지도 5년째다.

“동네에 재래시장이 많아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길거리에 버려진 깡통과 빈 병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걸 밟고 넘어지는 사람도 많고요. 하나둘씩 치우다가 이걸 모아서 팔면 좋은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매일 새벽 3시, 그는 자전거에 종이 상자와 플라스틱 상자를 싣고 집을 나선다. 종이 상자는 알루미늄 캔, 플라스틱 상자는 유리병용이다. 아침 6시까지 3시간 동안 제기동과 용신동, 신설동, 청량리 일대를 돌며 수거하는 알루미늄 캔이 10kg 정도. 빈 병까지 합하면 하루 평균 5천원 정도의 수익이 생긴다. 폐지로 생계를 유지하시는 노인분들을 위해 폐지는 줍지 않는다. 하루를 보면 적은 돈이지만 1개월, 1년 동안 모으니 꽤 큰 액수가 된다.

“처음에는 좀 창피하더라고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빈 병을 줍고 있는데 동네 산악회 회원이 ‘어, 허 회장 아니야?’ 하고 알은체를 해오는 거예요. 지금은 오히려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네요.”

그의 손을 거치면 버려진 물건도 보물이 된다.

그의 손을 거치면 버려진 물건도 보물이 된다.

그는 이곳에서 60여 년을 산 동네 토박이다. 그런데 회사를 퇴직하고 보니 동네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이 절반도 안 되더라는 것. 그동안 직장생활 하느라 바빠 이웃들과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탓이었다.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새벽, 자전거를 타고 빈 병을 수거하러 다니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동네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고 소통하게 돼 오히려 즐겁다”라고 말하는 그다.

“새벽에 다니다 보니 주로 만나게 되는 분들이 동네 어르신들이에요. 낮에 찾아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며칠 안 보이신다 싶으면 사람들에게 안부도 물어가며 이웃들과 더 친해지게 됐죠. 매일 아침마다 3시간씩 자전거를 탄다고 생각해보세요. 좋은 일도 하고 운동까지 하니 저에겐 더없이 즐거운 일이죠.”

그는 장모님과 아내, 딸 넷과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조용 하던 일이다 보니 정작 가족은 최근에야 그의 선행을 알게 됐다고. 이른 새벽 나갔다가 아침에 가족이 눈 뜨기 전에 들어오니 다들 부지런한 아빠가 아침 운동을 하고 오거나 새벽 예불을 다녀오시는 줄로만 알았단다.

“딸들은 대환영인데 집사람은 캄캄한 새벽에 나서는 일이 좀 걱정스러운가 봐요. 그래도 앞으로 계속할 생각이에요. 길거리에 뒹구는 쓰레기도 누군가에겐 필요한 보물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보물들이 참 많아요. 옷장 안에 입지 않는 옷들, 신지 않는 신발들, 하찮다 생각 마시고 기부하세요. 나눔의 기쁨과 이웃 간의 온기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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