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재래시장이 많아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길거리에 버려진 깡통과 빈 병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걸 밟고 넘어지는 사람도 많고요. 하나둘씩 치우다가 이걸 모아서 팔면 좋은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매일 새벽 3시, 그는 자전거에 종이 상자와 플라스틱 상자를 싣고 집을 나선다. 종이 상자는 알루미늄 캔, 플라스틱 상자는 유리병용이다. 아침 6시까지 3시간 동안 제기동과 용신동, 신설동, 청량리 일대를 돌며 수거하는 알루미늄 캔이 10kg 정도. 빈 병까지 합하면 하루 평균 5천원 정도의 수익이 생긴다. 폐지로 생계를 유지하시는 노인분들을 위해 폐지는 줍지 않는다. 하루를 보면 적은 돈이지만 1개월, 1년 동안 모으니 꽤 큰 액수가 된다.
“처음에는 좀 창피하더라고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빈 병을 줍고 있는데 동네 산악회 회원이 ‘어, 허 회장 아니야?’ 하고 알은체를 해오는 거예요. 지금은 오히려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네요.”
“새벽에 다니다 보니 주로 만나게 되는 분들이 동네 어르신들이에요. 낮에 찾아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며칠 안 보이신다 싶으면 사람들에게 안부도 물어가며 이웃들과 더 친해지게 됐죠. 매일 아침마다 3시간씩 자전거를 탄다고 생각해보세요. 좋은 일도 하고 운동까지 하니 저에겐 더없이 즐거운 일이죠.”
그는 장모님과 아내, 딸 넷과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조용 하던 일이다 보니 정작 가족은 최근에야 그의 선행을 알게 됐다고. 이른 새벽 나갔다가 아침에 가족이 눈 뜨기 전에 들어오니 다들 부지런한 아빠가 아침 운동을 하고 오거나 새벽 예불을 다녀오시는 줄로만 알았단다.
“딸들은 대환영인데 집사람은 캄캄한 새벽에 나서는 일이 좀 걱정스러운가 봐요. 그래도 앞으로 계속할 생각이에요. 길거리에 뒹구는 쓰레기도 누군가에겐 필요한 보물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보물들이 참 많아요. 옷장 안에 입지 않는 옷들, 신지 않는 신발들, 하찮다 생각 마시고 기부하세요. 나눔의 기쁨과 이웃 간의 온기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