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맨’ 김준호 대표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미리내맨’ 김준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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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대학교에서 전기정보제어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준호 교수에게는 ‘미리내맨’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선불 기부 가게인 ‘미리내 가게’ 대표로 전국을 누빈 지 어느덧 1년. 지난해 5월 문을 연 경남 산청 1호점을 시작으로 1년 사이 전국에 1백60개의 미리내 가게들이 생겨났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미리내맨’ 김준호 대표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미리내맨’ 김준호 대표

“이름 그대로 누군가를 위해 미리 돈을 낼 수 있는 가게예요. 예를 들어 설렁탕 한 그릇 먹고 한 그릇 값을 더 계산해놓는 거죠. 그렇게 미리 계산된 음식이나 제품, 서비스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요.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쉽고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기부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방법은 간단하다. 미리내 가게 현판이 걸린 곳을 이용한 뒤 특정 메뉴나 기부 비용을 쿠폰에 적어 미리 내면 가게 앞 알림판에 표시되고 익명의 누군가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물론 현금 기부도 가능하다. 추운 날 노숙인들을 위해 커피를 선불로 계산하는 이탈리아의 ‘서스펜디드 커피’나 미국의 ‘페이 잇 포워드’ 운동을 떠올려볼 수 있다.

“사회복지사이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주위의 어려운 분들과 가깝게 지냈어요. 자연스럽게 나눔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소프트웨어와 매체공학을 전공하며 ‘기부톡’이라는 기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는데,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나눌 마음이 없으면 기부한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유럽의 서스펜디드 커피를 알게 됐어요. 생각해보니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정서인 거예요. 지나가던 객에게 사랑방도 내주던 조상들이잖아요.” 예전 동네 슈퍼에 어르신들이 아이들 먹을 과자값을 미리 내기도 했고, 대학가에도 선배나 교수들이 학생들의 밥값을 미리 계산해두는 문화가 있었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미리내맨’ 김준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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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사라진 이러한 정(情) 문화를 다시 살려보자는 뜻도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경남 산청에 ‘후후커피숍’을 시작으로 뜻을 함께하는 가게들이 늘어났고 지금은 카페와 식당뿐 아니라 목욕탕, 체육관, 휴대폰 대리점까지 나눔에 동참하는 착한 사장님들이 늘어가고 있다. 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미리내맨’에게 참여 의사를 밝히면 김준호 교수가 직접 찾아가 상담과 운영 방법을 알려준다.

“처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과연 미리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더군요. 동네 어르신들 드시라고 커피 40잔 값을 미리 내고 가는 사람도 있고 거스름돈을 미리 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꼬박꼬박 두 사람 몫을 계산하시는 단골손님들도 많고요.”

이렇게 모아진 정성은 굶주린 노숙인의 따뜻한 밥 한 끼가 되기도 하고, 여름날 폐지 줍는 할머니의 시원한 음료수가 되기도 한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세탁비나 동네 어르신들의 목욕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휴대폰 요금으로도 쓰인다. 액수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창의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미리내 가게의 특징이다. 공짜라고 하면 사람이 마구 몰리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붐빌 시간을 피해 조용히 와 먹고 가곤 한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미리내맨’ 김준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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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국수집에 폐지 주우시는 할머니께서 문을 빼꼼히 열고 국수가 얼마냐고 물으시더래요. 2천원이라고 말씀드리니 그냥 가시더라는 거예요. 하루 벌이가 3천원인 할머니에게 밥값 2천원은 무척 큰 금액이었던 거죠. 공짜로 드린다고 하면 안 드시는 분들도 계세요. 누군가 미리 낸 돈이니 맘 편히 드시고 가시라 할 수 있는 거죠. 어떤 학생이 라면 가격을 묻고 돈이 모자랐는지 그냥 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팠다며 신청하신 사장님도 계세요. 미리내 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은 기본적으로 나눔에 대한 경험과 생각이 깊으신 분들이에요. 대부분 사람들이 미리 낸 금액에 보태서 더 내시고 지역사회에서 좋은 일도 많이 하세요. 그분들이 정말 칭찬받아야 할 분들이죠. 신뢰와 믿음이 없었으면 지속될 수 없었을 거예요.” 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눔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게 미리내 가게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내가 오늘 미리 낸 걸 남이 먹고, 남이 미리 낸 걸 내일 내가 먹을 수도 있다.

“특히 학생들의 참여가 놀라워요. 꼬박꼬박 용돈을 모아 미리 내는 아이들도 있고, 친구들과 꼭 미리내 가게를 찾아다니며 먹는 아이들도 있어요. 예쁜 마음이 참 기특하죠. 이 일을 하며 우리 주위에 따뜻한 마음들이 많다는 걸 느껴요. 사는 게 점점 삭막해진다고 하지만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도 알게 됐죠. 어렵지 않아요. 길을 가다 혹시 미리내 현판이 보이면 한 번 들러주세요. 더 많은 가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눔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정을 느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종민 ■문의 / 010-2101-1402, mirinae.sos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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