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은 간단하다. 미리내 가게 현판이 걸린 곳을 이용한 뒤 특정 메뉴나 기부 비용을 쿠폰에 적어 미리 내면 가게 앞 알림판에 표시되고 익명의 누군가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물론 현금 기부도 가능하다. 추운 날 노숙인들을 위해 커피를 선불로 계산하는 이탈리아의 ‘서스펜디드 커피’나 미국의 ‘페이 잇 포워드’ 운동을 떠올려볼 수 있다.
“사회복지사이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주위의 어려운 분들과 가깝게 지냈어요. 자연스럽게 나눔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소프트웨어와 매체공학을 전공하며 ‘기부톡’이라는 기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는데,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나눌 마음이 없으면 기부한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유럽의 서스펜디드 커피를 알게 됐어요. 생각해보니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정서인 거예요. 지나가던 객에게 사랑방도 내주던 조상들이잖아요.” 예전 동네 슈퍼에 어르신들이 아이들 먹을 과자값을 미리 내기도 했고, 대학가에도 선배나 교수들이 학생들의 밥값을 미리 계산해두는 문화가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과연 미리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더군요. 동네 어르신들 드시라고 커피 40잔 값을 미리 내고 가는 사람도 있고 거스름돈을 미리 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꼬박꼬박 두 사람 몫을 계산하시는 단골손님들도 많고요.”
이렇게 모아진 정성은 굶주린 노숙인의 따뜻한 밥 한 끼가 되기도 하고, 여름날 폐지 줍는 할머니의 시원한 음료수가 되기도 한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세탁비나 동네 어르신들의 목욕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휴대폰 요금으로도 쓰인다. 액수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창의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미리내 가게의 특징이다. 공짜라고 하면 사람이 마구 몰리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붐빌 시간을 피해 조용히 와 먹고 가곤 한다.
“특히 학생들의 참여가 놀라워요. 꼬박꼬박 용돈을 모아 미리 내는 아이들도 있고, 친구들과 꼭 미리내 가게를 찾아다니며 먹는 아이들도 있어요. 예쁜 마음이 참 기특하죠. 이 일을 하며 우리 주위에 따뜻한 마음들이 많다는 걸 느껴요. 사는 게 점점 삭막해진다고 하지만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도 알게 됐죠. 어렵지 않아요. 길을 가다 혹시 미리내 현판이 보이면 한 번 들러주세요. 더 많은 가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눔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정을 느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종민 ■문의 / 010-2101-1402, mirinae.sos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