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 조셉 캘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지영아!”
동행했던 사진기자도 웃음을 터뜨렸다. 수수하지만 감출 수 없는 이국적인 외모의 그가, 이토록 구수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부인의 이름을 부를 줄이야. 바로 그 순간의 유쾌함을 글로 다 전하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녀의 나라로 오다
때는 바야흐로 2003년. 조셉이 런던에서 대학을 다닐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함께 임대아파트에서 살던 그는 학기가 먼저 끝난 친구 하나가 고향으로 돌아가자 하우스 메이트를 구한다는 신문 광고를 냈다. 며칠 뒤, 그는 자신의 몸무게보다 곱절은 더 나가 보이는 가방을 씩씩하게 끌고 온 오지영씨(36)를 만났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좀 당황했어요.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온 아내에게 ‘가방을 들어줄까?’라고 선심 쓰듯 물었는데, 그 가방이 너무 무거웠던 거예요(웃음). 어떻게 저렇게 날씬한 몸으로 이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지, 싶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두려움 없이 다른 나라에 공부를 하러 오고, 또 모나지 않게 잘 적응하는 모습에 반하게 됐죠.”
평소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그녀는 최고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방 안 가득 한국어 단어들을 종이에 써 붙여뒀던 그가 신기했던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
“제 방을 둘러보던 지영이가 좀 놀란 눈치였어요(웃음). 어릴 적부터 경제학에 관심이 많아서 전공도 경제학을 선택했는데, 사실 경제 이론이라는 것이 언어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들더라고요. 특히 한국은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의 케이스로 종종 거론되곤 해 관심이 더 많았거든요. 교양과목으로 한국어를 배웠죠. 그런 상황에서 지영이를 만난 거예요.”
영국 남자 조셉 캘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그러나 처음부터 흑심이 있었던 그와 달리, 오지영씨에게 조셉은 ‘그저 착한 동생’일 뿐이었다. 메신저를 통해 그가 꾸준히 말을 걸었을 때도, 어느 날 불현듯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했을 때도 그녀는 그의 감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했다. 그저 한국 여행을 오려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고 그래서 영국에서 자신이 받았던 도움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가이드를 자처했을 뿐이라고 했다.
“저만 진지했더라고요, 저만. 지영이도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웃음).”
다시 한 지붕 가족이 되다
애초부터 뚜렷한 계획을 갖고 한국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인생을 펼쳐 보이고 싶다는 열정이 전부였다. 그렇게 1년. 한결같은 자상함과 따뜻함이 그녀의 마음을 열었다.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마침내 2009년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아내가 가끔씩 ‘왜 내가 좋아?’, ‘왜 나랑 결혼했어?’라고 물어보는데, 도대체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제가 보기에 아내는 굉장히 고귀해요.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강하면서도 여성스럽고, 겁은 많지만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요. 놀라워요.”
아내에게 그렇듯 그는 딸 다윈에게도 다정한 아빠다. 촬영을 하는 내내 다윈이는 아빠의 품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의 칭얼거림조차 사랑스러운 듯 그 역시 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딸을 마주하는 그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다윈이가 예쁘대요. 그러니 제 눈엔 오죽하겠어요(웃음).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지금처럼 밝은 아이로 컸으면 좋겠어요. 가끔씩 제 시간이 없어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아이가 주는 기쁨이 더 커요. 그렇지만 정말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요(웃음). 영국은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굉장히 독립적이고 강하게 키우는 편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요즘엔 물 흐르듯 그냥 자연스럽게 두고 있어요.”
영국 남자 조셉 캘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가끔씩 장모님께서 반찬을 택배로 보내주시는데, 손이 크셔서 깜짝깜짝 놀라요. 신혼 초엔 분명 저희 부부의 냉장고인데 장모님이 보내주신 것들이 많아 정작 먹고 싶은 것들을 채워 넣지 못해 조금 속이 상하기도 했죠. 그리고 또 하나,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게 있어요. 바로 잔소리(웃음).”
물론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장인이 평범하지 않은 외국인 사위를 낯설어 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확인한 청첩장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이 ‘조셉’이 아닌 ‘요셉’으로,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제라드’가 아닌 ‘재섭’으로 적혀 있음을 확인하고 내심 서운했다고 했다. 그래도 돌이켜보니 이 모든 에피소드가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를 꼭 닮은 집
조셉이 유년기를 보낸 칼라일은 잉글랜드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이 절경을 이루는데, 그림 동화 「피터 래빗」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울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에게 서울은 여전히 낯설고도 삭막한 공간이다.
“딸 다윈이가 태어나고 이사를 해야 했는데, 마음에 드는 집이 없더라고요. 아파트나 연립주택도 싫고, 가격은 말도 안 되게 비싸고. 한옥을 사서 개조해 살자, 했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은 거예요. 그러다가 다락방과 마당이 있는 지금의 집을 발견했어요. 아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지만, 저는 신이 났죠. 오랜 역사와 특별함이 있잖아요. 얼마나 신비로워요.”
지은 지 40년이 넘어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그는 이 집에서 꼭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그녀를 설득해 집을 구입했다. 매매가 되질 않아 전 주인이 3대째 살았다는, 낡고 초라했던 바로 그 집을 말이다. 꼬박 1년. 직접 타일을 사다 붙이고, 손수 전기공사를 했으며 커튼봉 하나조차 기성품을 사지 않았다. 몸은 고됐지만 날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집을 보면서 집에 대한 애정도 더해졌다. 여전히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집을 수리하고 있다.
“솔직히 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았죠. 이렇게 고된 일인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예요(웃음).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지인들은 총동원된 것 같아요.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저희 집은 아직도 폐허일 거예요. 이제야 겨우 사람 사는 집 같아요.”
삐뚤빼뚤. 그의 손때가 묻어 있는 집은 완벽하지 않아 더 정감이 간다. 섬세하면서도 꼼꼼한 그를 꼭 닮은 것도 같다. 집은 그에게 위로이자 안식처다.
영국 남자 조셉 캘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인터뷰 말미, “한국인들은 유난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다”라고 스치듯 던진 그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 유난히 시선이 머물렀던 것도 바로 그의 낡은 신발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1년간 마을버스 운전기사로 일한 적이 있어요. 시골길을 달리며 사람들을 만나는 그 일은 정말 즐거웠죠. 한국에서 이력서를 낼 때 그 경력을 적었더니 모두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러고는 흠 잡힐 수 있으니 다음부턴 쓰지 말라고 충고하더군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다. 마음을 비울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든 순간이 항상 행복할 순 없어요. 그래도 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제는 힘들었지만 오늘은 행복하다, 그렇게요.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은 담아두지 말고 버려야 해요.”
활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찾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그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찾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지금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건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그래서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을 때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워요. 그럴 때마다 더 잘해야겠다, 하는 채찍질로 저를 더욱 발전시키죠.”
쉼 없는 분주함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곤 한다. 그를 만나고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가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더불어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더욱 반짝거리는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한국인들이 보기에 영국인들은 분명 느릴 거예요. 영국 사람이 보기에 한국은 굉장히 빠르거든요(웃음). 이제야 조금씩 한국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어요. 두 나라는 문화가 완전 다르잖아요. 저는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았어요. 많은 걸 배웠어요. 제 인생은 지금 ‘행복 모드’에 놓여 있어요.”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박종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