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서명을 받는 것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그리고 가볍게 흘리는 사인 하나면 되는 서명, 빠르면 30초,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공들여 써도 채 1분이 안 되는 시간이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탓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서늘한 바람이 부는 서울의 밤은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가득했다. 노란색이 이다지도 아련한 색이었던가. 바람에 흩날리는 노란색 리본 끝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꼭 누군가를 부르는 손짓 같았다.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일
선 소장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직접 회원들과 거리로 나와 행동하게 된 계기부터 물었다.
“세월호 사고 소식을 아침 뉴스를 보고 알았어요. 점심때까지 보도된 뉴스 내용도 그렇고, 크게 인명 피해가 없을 것 같아 마음을 놓았죠.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상황이 그대로인 거예요. 사망자 수가 나오고, 실종자 수도 어마어마해요. 시간이 자꾸 흐르니, 생존 가능성이 낮아지고요. 일순간에 터져버린 폭탄 테러도 아니고… 구조되지 못하고 배와 함께 침몰하다니요.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요. 정말 안타까웠어요.”
“‘세대행동’이란 카페를 제안하기까지 저도 많이 머뭇거렸어요. 지금도 웬 오지랖이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냐며 선입견을 갖고 보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요, 이게 그냥 온라인상에서 떠들고 말 일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그때 빌 게이츠의 졸업 축사 생각나더군요.”
선 소장은 SNS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피력해왔던 영향력 있는 인사 중 하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깊은 의문에 빠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나 떠들라고 팔로우한 건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맺은 온라인의 인연을 오프라인 밖으로 끌어내 의미 있는 에너지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경제연구소의 소장이자 경제사회 저술서의 저자이지만,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 사회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활동가로 나서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았다.
“세월호 참사 후 국민들은 정부와 여당의 무력과 무능을 알게 됐어요.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적당히 감춰져 있었죠. 이번 사고로 온갖 비리를 한꺼번에 여실히 들켜버린 거예요. 야당이라도 멀쩡했다면, 언론이라도 제대로 보도했다면, 시민사회가 국민 뜻을 대변해 욕구를 분출시켜줬다면…. 모든 게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 거죠.”
모두가 현실에 갑갑함을 느꼈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통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먼저 나서서 제안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할 것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세대행동’ 카페가 만들어진 건 세월호 사고 후 2주가 지난 2014년 4월 30일이었다. 처음 카페 명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카페 회원들과 상의 후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명칭을 변경했다. 줄여 ‘세대행동’이라 부른다. 카페 이름에서 모임에 가입한 시민들의 의지와 뜻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카페가 개설된 지 2주 만에 가입 회원 수가 2천5백 명에 육박할 정도로 시민들의 참여가 뜨거웠다. 카페 대문에는 ‘아이들이 묻습니다. 정말 가만히 계실 건가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세대행동’의 활동은 크게 4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월호 사고의 정확한 실상을 알려주는 정보를 모아 많은 사람들이 그 참상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저장하고,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시민들의 의견을 교류하고 힘을 모으며,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함께할 수 있는 행동을 제안하고, 이런 비극적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을 감시, 압박해 올바른 제도와 정책, 법률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서명운동은 세월호 사고의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및 안전한 나라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 범국민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촉구에 관한 범국민 서명운동이다. 목표치는 없다. 그저 유가족 대책위에서 “이제 그만하면 됐다”, “충분하다”, “이제 멈춰달라”라는 요청이 있을 때까지 계속 받을 생각이다. 현재 5만 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했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해주긴 하지만 서명운동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거리로 뛰쳐나올 정도면…. 다들 줄이라도 서서 해주실 줄 알았거든요. 길을 걷다가 서명을 통해 뜻에 동참해주시는 것도 기적을 만드는 작은 움직임입니다.”
서명운동, 재능기부, 기금 모금…
기적이 되는 작은 움직임들
서명운동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카페 회원들 중에는 바쁜 시간을 쪼갠 시민들이 많다. 선 소장의 설명에 의하면 사회운동가나 활동가는 거의 없다고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페에 올라온 도움 요청을 보고 찾아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종각역 서명운동 현장에서 보았지만, 갈 길이 바쁜 사람들에게 서명을 호소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 생업도 접고 서명운동에 동참한 시민들의 마음이 느껴져 뭉클해졌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색 리본 아래에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모두가 말하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작은 기적 중 하나다.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멀리 사는 어떤 아이가 죽었구나, 하고 말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번에도 바뀌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누가 희생자가 될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때다.
“안산에 두 번째 분향을 갔을 때였어요. 대책위 분들을 만나고 한 번 더 조문하고 나오는데, 유가족들이 계시는 천막에서 찢어질 것 같은 통곡이 터져 나오는 거예요. 보통의 곡소리와는 다른, 정말 뭐랄까요. 비정하고 한 서리고 안타까운 울음소리가 일제히 수십 명이 한꺼번에요.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심장에 날카로운 표창이 수백 개가 박히는 아픔이 느껴졌어요.”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 학생들이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는 동영상이 처음 나오던 날이었다. 그 울음소리와 그 울음의 연유를 들은 선 소장은 차 안으로 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안타까운 죽음들이 헛되지 않도록 말이다.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만든다는 말, 맞습니다. 시작이 어려울 뿐이지 할 일이 많아요. 작게는 서명운동을 해주셔도 좋고요. 여러 가지 스티커나 포스터를 붙이고 달고 다니면서 의견을 표현하는 것도 좋아요. 재능기부부터 기금 모금까지 다양한 일에 참여할 수 있어요. 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 그것이면 족하다고 봐요.”
‘세대행동’은 수신료 거부 운동을 통해 언론의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스티커와 현수막 등을 디자인하고 배포해 누구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시민들이 모여 50개의 요구사항을 발표하는 시민선언도 한다. 이와 관련해 아름다운 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민백서도 발간 준비 중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한 어른들의 말을 들은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됐나. 이제 정말 가만히 있을 거냐고 묻는 아이들의 말에 이제 어른들이 답할 차례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가입 회원 1천 명이 넘는 자발적인 시민 모임
인터넷 포털 다음 카페에 개설된 시민 모임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첫 명칭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으나,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로 개명했다. 줄여서 ‘세대행동’이라 부른다. 유가족 대책위를 대신해 범국민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언론의 정상화를 위해 수신료 거부 운동도 제안했다. 세월호와 관련된 시민백서도 발간할 예정이며,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http://cafe.daum.net/momyh)
안산에 사는 엄마 셋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엄마들의 모임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자식을 잃은 엄마들의 마음을 십분 공감하며 같이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이 연대하기로 한 것. 처음에는 안산 지역 엄마들이 중심이 돼 활동할 목적이었으나 많은 엄마들의 호응으로 회원수 8천명이 넘는 전국적인 모임으로 발전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사고 원인은 물론 구조 과정까지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목표다. 침묵시위와 촛불집회 등에 참여하며 유가족을 대신해 엄마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진요(http://cafe.naver.com/sejinyocafe)
‘세진요’는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카페 명의 줄임말이다.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로 순수 시민 모임. 5천 명에 육박하는 회원들이 모여 세월호에 관련된 자료들의 진실과 의혹들을 모으고 있다. 법적 대응, 강력 대응하겠다는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짜 진실이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지 가려보자는 의도로 개설됐다. 진실과 의혹, 언론 보도, 해외 언론 번역본 등의 세월호 관련해 최대한 많은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 특징.
Mini Interview
“사고 다음날이 내가 세월호에 탑승할 예약일이었다”
김종자(60, 주부, 경기 안산시 단원구 거주)
침묵시위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동안 정치니 시위니 하는 것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 이제 60이다. 그런데 지인이 일인시위를 했다더라. 그 소식을 듣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집회가 있다고 알려주더라.
참가한 소감이 궁금하다. 많이 울었다. 나는 안산에 살고 있다. 지금 여기는 전쟁 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사고를 당했다. 도시 전체가 웃음이 사라졌다. 유족들을 직접 알진 못해도, 같은 동네 사람으로 건너건너 다 안다. 하루 세 끼 챙겨 먹고 있는 것도 어떨 땐 미안하다. 그곳에 가서 한 자리 차지해주고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이번 참사로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단원고 학생들이 탄 그 배에 예약돼 있었다. 사고 다음날이 내가 그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날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사고를 당했지만, 어쩌면 내가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구조 과정을 보면서 더 무섭더라. 이건 바로 내 일이었다. 이제 가만있지 않을 셈이다.
어떤 방법으로 ‘가만있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할머니라 인터넷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젊은 사람처럼 대단한 일은 더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나가 앉아 있어보니, 이렇게 어른들도 나와주는 걸 보고 젊은이들이 힘을 얻는 것 같더라. 방송국 뉴스에도 크나큰 실망을 했다. 딸에게 물어보고 한 군데 독립 언론에 한 달에 1만원씩 후원을 시작했다. 투표도 꼭 할 거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세상 사람들 관심도 사라지면 그때 동네 사람으로서, 이웃으로서 밥을 해주든, 청소를 해주든 뭐든지 도움을 줄 생각이다. 동네 사람들끼리도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는 중이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고이란(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