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바네사 핀첨 성이 전하는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미국인 힐러리 바네사 핀첨 성(42). 남편의 성씨를 따 이름 끝에 붙이고 17년간 오매불망 국악에 애정을 쏟으며 한국인보다 더 가까이 국악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존재는 흥미로웠다. ‘흥타령’이나 ‘육자배기’와 같은 구수한 우리 가락을 언급하는 대목은 그 흥미로움이 경이로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실 학부 시절엔 한국이란 나라를 잘 몰랐어요. 미국에서 접하는 동양 문화라고 해봐야 일본이나 중국이 전부였거든요.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음악 치료에 관심이 생겼는데 그러면서 무속 음악에 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죠. 때마침 제가 다닌 대학원에 한국 민속학을 공부하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께서 한국 무당에 대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 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도서관에 소장된 궁중음악과 심청가, 시나위를 듣고, 근처 음반 가게에 가서 CD 3장을 구입했어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는데 뭐랄까,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중국이나 일본 음악과 비슷할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어요. 신비롭고 이국적이었죠.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낯선 언어였던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역사나 문화를 공부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 시간들이 즐거웠다. 한국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박사과정을 마친 1999년, 그녀는 연세대학교의 교환학생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처음 1년은 한국어를 배웠고, 이듬해엔 국제교류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한국 문화를 공부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다시 한국을 찾은 건 2009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면서다.
“고마운 일이에요. 사실 한국 음악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국 곳곳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만약 제가 미국에 있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를 기회 삼아 제 전공인 인류음악과 국악을 접목시켜 한국 음악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그것이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국악과에 부임한 첫 번째 외국인 교수에 많은 시선이 쏠린 건 당연지사. 그러나 그녀가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국악보다는 국악을 접목시킨 음악인류학이다. 이번 학기엔 전공 수업 외에도 교양 수업으로 ‘세계 음악’과 ‘한국 음악 개론’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외국 학생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한국 학생들이에요. 아마 외국인이 국악을 어떻게 가르치나, 궁금해 수강 신청을 한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처음엔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일이 힘들었어요. 제대로 된 수업을 위해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인데, 논문 마감을 해야 하거나 시간에 쫓기게 되면 급하게 준비해야 하니까…. 그런 날은 긴장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녀가 생각하는 한국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살아 있는 흥겨움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자유롭게 연주할 때 비로소 완전한 곡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따라 음식과 언어가 조금씩 다르듯, 세월에 따라 맛과 규칙이 변하듯 한국 음악의 매력은 상황에 따라, 연주자에 따라 매번 변한다는 거예요. 일각에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원곡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조금 다른 입장을 갖고 있어요. 모름지기 음악은, 2014년을 사는 우리의 삶이 녹아 있어야 해요.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건 죽은 음악이에요. 물론 그 속에서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야 해요. 유행을 따라 서양 음악의 패턴을 따라가는 것을 유의해야 해요.”
국악에 대한 애정이 크기에 쓴소리도 가능한 것이다. 내친김에 하나 더. 그녀는 우리 사회의 국악 교육 부재에 대해 꼬집었다.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한국에 처음 와서 학생들이 ‘도레미파솔라시’ 7음계를 단번에 읽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샵이네 플랫이네, 금방금방 읽는 것도 신기했죠. 미국에서는 주로 키를 중심으로 악보를 읽거든요. 문제는 국악도 ‘황태중임남’이 아닌 7음계로 읽는다는 거예요. 초·중·고등학교에서 국악은 한 학기에 한 곡 배울까 말까 하더라고요. 교사들도 배운 적이 없으니까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고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국악기가 얼마나 다양한데요. 그런데도 몇 년째 단소만 배워요. 저렴하니까 그렇겠죠. 그런데 단소가 얼마나 소리 내기 어려운 악기인데요(웃음). 악기를 개량해 배우기 쉽게 개발해도 좋을 텐데 아쉬워요.”
1 꾸준한 연습으로 굳은살이 박혀 있는 핀첨 성 교수의 손. 2 책장을 가득 채운 갖가지 음악 CD들. 3 남산한옥마을 공연중.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거문고와 가야금을 구분하지 못해요. 종종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악 공연을 다니는데, 진행자가 ‘우리 국악 재미있지?’ 하고 물어보면 대답이 없어요. 저는 악기의 스펙트럼을 좀 더 넓게 잡고 다양하게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실로폰, 멜로디언처럼 쉽게 소리 나는 악기들도 많아요. 이젠 변해야 해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출퇴근길에 국악 방송을 들어도 좋고, 가까운 창덕궁이나 운현궁에서 열리는 궁중 음악회를 경험해봐도 좋겠어요. 한옥마을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국악을 듣는다, 얼마나 로맨틱해요.”
촌스럽지만 아름다운 클라이맥스
핀첨 성 교수의 고향은 미국 남부 테네시 주의 주도인 내슈빌. 미국 내에서 남부 지역은 가스펠, 컨트리 음악, 리듬 앤 블루스, 소울, 로큰롤, 블루그래스, 재즈의 탄생지이자 록과 힙합의 중심지로 꼽힌다. 특히 그녀가 성장한 내슈빌은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으로, 한때 이곳에서 미국 음반의 대다수가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삶 자체에 음악이 녹아 있다. 그녀 역시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가정 형편 탓에 악기를 살 여유가 없었던 그녀는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곤 했다.
“악기 값이 비싸다 보니 음악은 잘 사는 동네의 아이들이 주로 했어요. 주에 따라 다르지만 제가 있던 지역은 한국처럼 음악 수업이 정규 과정에 있지 않아 방과 후 수업으로만 운영됐거든요. 그러다 5학년 때였나? 바이올린을 배우던 사촌 오빠가 체격이 커지면서 큰 악기를 사야 하는 상황이 돼 그 악기를 제게 물려줬어요. 그게 인연이 돼 지금까지 이어졌죠. 하지만 무대에 오르는 건 제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웃음).”
그토록 아꼈던 음악이지만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그녀에게 투박하고 촌스러운 남부 음악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됐다. 오래된 것은 낡고 보잘것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남부 지역 특유의 억양을 고치려고 노력했고, 클래식이나 다른 장르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국악과 같은 전통음악들이 있어요. 남부 음악은 특히 자신의 스타일을 담은 즉흥적인 연주가 많아요. 국악에도 추임새가 있잖아요? 비슷해요. 자유롭고, 즐거워요. 그리고 소박한 소리죠. 성인이 되고 난 뒤에야 그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깨닫게 됐어요. 한국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끌림을 느끼게 된 것도 아마 제 고향의 음악과 비슷한 점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많은 외국인들이 국악을 가리켜 ‘한(恨)이 담겨 있는 음악’이라고 한다. 사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그들이 과연 한이라는 막연한 감정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속에 얼마나 많은 편견이 내재돼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됐다.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힐러리 바네사 핀첨 성이 전하는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가족이라는 이름의 하모니
국악을 접하고 연구한 지 17년. 여전히 국악과 국악 교육을 향한 그녀의 열정은 뜨겁다. 그 과정에서 만난 해금은 그녀의 또 다른 취미가 됐다.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그 음색이 경이로웠다고 한다. 연구 시간 짬짬이 연주하는 법을 배웠고 아직까지는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종종 지인들과 함께 연주회를 열곤 한다.
“해금을 배우게 된 것도 바이올린과 비슷한 현악기라는 점 때문이었어요. 지금 와서 보니 활 잡는 법부터 다른, 아주 다른 악기였지만요(웃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은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날마다 꾸준히 연습하는 것, 악기와 친해지기 위한 방법은 그것뿐이더라고요. 티가 안 나는 듯해도 그 하루하루가 쌓여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죠.”
남편은 함께 음악을 즐기는 좋은 친구다. 그와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르바이트로 기업체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중에 만났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시절, 그는 그녀의 든든한 통·번역가였다. 인터뷰나 연구에 도움을 주던 남편도 뒤늦게 국악에 매료됐다고.
“남편은 재미교포예요. 대화가 되는 사람들이 몇 안 되다 보니 빠른 시간 내에 가까워졌죠. 좋은 분인 것 같아 몇 번 밥을 먹었는데, 나중엔 그게 데이트가 됐어요. 하지만 남편도 그 전까지 국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라고요. 한번은 공연을 보러 갔는데, ‘당신 덕분에 처음 본다’라고 했어요. 다 보고 나서는 ‘우리 음악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라고 감탄하더라고요. 그 뒤로 함께 많이 다녀요.”
어린 시절의 그녀가 그랬듯 큰딸과 쌍둥이 아들도 자연스럽게 국악에 친숙해졌다.
“큰딸에게는 판소리를 가르쳤는데 아쉽게도 최근에는 K-pop에 빠져 있어요(웃음). 아이들도 국악의 매력에 빠졌으면 좋겠는데 그건 부모 욕심이고요. 저는 애들이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4학년인 쌍둥이 아들이 국악중학교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음악의 재미에 빠질 수 있도록 국악 공연을 함께 다녀요. 흥미를 붙여주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 촬영을 위해 해금 연주를 부탁했다. 수줍은 새색시처럼 고운 자태로 앉은 그녀의 손끝에서 애절하면서도 신명 나는 선율이 울려 퍼졌다. 마치 사랑하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음악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을, 영향력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삶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슬픔이나 괴로움을 치유하며 마음을 흔들어놓거나 기운을 불어넣기도 한다. 끝으로 행복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더불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이라 답했다. 여러 생각이 남는 만남이었다. 시간을 내어 가까운 경복궁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작년에 아는 분이 뉴욕에서 왔는데 판소리를 배운 분이었어요. 또 다른 분은 가야금을 배웠고. 저희들끼리 즉흥 워크숍을 떠나서 연주를 했죠.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요.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할 때, 그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이렇게 즐거움을 느낄 때가 바로 진정한, 진짜 행복한 순간 아닐까요?”
1 꾸준한 연습으로 굳은살이 박혀 있는 핀첨 성 교수의 손. 2 책장을 가득 채운 갖가지 음악 CD들. 3 남산한옥마을 공연중.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김성구 ■사진 제공 / 힐러리 바네사 핀첨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