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공부를 시작하며 정보 공유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는데 매번 모일 때마다 술자리가 반복되더라고요. 메이크업이라는 전문 기술을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집 근처 복지관을 찾아갔죠.”
마침 찾아간 곳이 봉천동에 위치한 실로암시각장애인 복지관이었다.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 처음엔 복지관 관계자도 고민스러워했다고. 하지만 시각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메이크업 강연은 곧 여성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강연으로 확대돼 한 달에 한 번 마법을 부리는 복지관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매달 7~10명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메이크업 수업은 학생들의 이목구비와 취향에 맞게 맨투맨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장품 가게에서 주문하는 법부터 화장품의 색상과 질감, 무르기에 따른 화장법 설명까지, 꼼꼼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성격이 십분 발휘된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반복 숙달.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말로 묘사하고 설명하는 일이 힘들 법도 한데 학생들을 대하는 그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7년을 해오다 보니 지금은 베테랑이에요(웃음). 화장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은 거울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 시각장애인분들에게는 도전적인 일이에요. 이 일을 하며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죠. 그동안 내가 보아온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삶의 애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참 여러 가지 인생을 접해요. 사회생활하면서 짜증내는 일들이 많잖아요. 네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요. 스스로 많이 부끄럽더라고요. 복지관에서 만나는 분들 중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회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사시는 걸 보며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많이 배워요.”
「빅 이슈」와 함께 노숙인 ‘메이크오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노숙인들이 그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해 다시 삶의 의지를 찾는 과정을 지켜보며 또 한 번의 인생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제가 그분들께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재능으로 비싼 수업료를 대신할 수 있으니 크나큰 행운이죠.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에게 배우며 실력을 다져가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백발이 되더라도 브러시를 들고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게 저의 꿈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고이란(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