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메이크업하는 남자, 임천수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

마음을 메이크업하는 남자, 임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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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를 비롯한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모델들을 멋지게 변신시키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천수씨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메이크업 강연과 노숙인 ‘메이크오버 프로젝트’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지를 선사하고 있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이야기를 만났다.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마음을 메이크업하는 남자, 임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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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화장을 하고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날이면 그렇지 않은 날보다 왠지 걸음걸이가 당당해진다.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무거웠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법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천수씨(34)는 마법을 가진 남자다. 그리고 그 마법을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고 있다. 올해로 7년째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메이크업 강연을 펼치며,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 이슈」의 ‘메이크오버 프로젝트’를 통해 노숙인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시키는 일도 하고 있다. 메이크업 일을 한 지 올해로 8년이 됐으니 그의 선행은 자신의 직업과 그 시작을 같이한 셈이다.

“메이크업 공부를 시작하며 정보 공유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는데 매번 모일 때마다 술자리가 반복되더라고요. 메이크업이라는 전문 기술을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집 근처 복지관을 찾아갔죠.”

마침 찾아간 곳이 봉천동에 위치한 실로암시각장애인 복지관이었다.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 처음엔 복지관 관계자도 고민스러워했다고. 하지만 시각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메이크업 강연은 곧 여성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강연으로 확대돼 한 달에 한 번 마법을 부리는 복지관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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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극중 시각장애인인 송혜교씨가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이 화제가 됐잖아요. 시각장애인들이라고 해서 아예 앞이 안 보이는 건 아니에요. 정도에 따라 빛이나 색을 구분할 수도 있고 화장도 하세요. 다만 보통 여자들처럼 능숙하게 할 수 없기에 다양한 컬러를 바르거나 과감한 시도를 하는 데 제약이 있죠. 저는 실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화장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거예요.”

매달 7~10명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메이크업 수업은 학생들의 이목구비와 취향에 맞게 맨투맨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장품 가게에서 주문하는 법부터 화장품의 색상과 질감, 무르기에 따른 화장법 설명까지, 꼼꼼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성격이 십분 발휘된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반복 숙달.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말로 묘사하고 설명하는 일이 힘들 법도 한데 학생들을 대하는 그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7년을 해오다 보니 지금은 베테랑이에요(웃음). 화장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은 거울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 시각장애인분들에게는 도전적인 일이에요. 이 일을 하며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죠. 그동안 내가 보아온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삶의 애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참 여러 가지 인생을 접해요. 사회생활하면서 짜증내는 일들이 많잖아요. 네가 잘났냐, 내가 잘났냐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요. 스스로 많이 부끄럽더라고요. 복지관에서 만나는 분들 중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회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사시는 걸 보며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많이 배워요.”

「빅 이슈」와 함께 노숙인 ‘메이크오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노숙인들이 그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해 다시 삶의 의지를 찾는 과정을 지켜보며 또 한 번의 인생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제가 그분들께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재능으로 비싼 수업료를 대신할 수 있으니 크나큰 행운이죠.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에게 배우며 실력을 다져가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백발이 되더라도 브러시를 들고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게 저의 꿈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고이란(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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