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셰프가 행복한 요리를 만든다…스페인 셰프 엘란츠 고로스티자

행복한 셰프가 행복한 요리를 만든다…스페인 셰프 엘란츠 고로스티자

댓글 공유하기
바스크인의 후예답게 ‘주방의 마술사’로 불리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인 스타 셰프 엘란츠 고로스티자. 예상보다는 과묵했지만 그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앞으로 행복해지면 되는 것이 인생 아니냐”라며, 짧지만 인터뷰 취지에 걸맞은 명쾌한 답을 주었다. 물론 여기에 몸에도 좋고 맛있는 음식이 함께라면 금상첨화라고.

행복한 셰프가 행복한 요리를 만든다…스페인 셰프 엘란츠 고로스티자

행복한 셰프가 행복한 요리를 만든다…스페인 셰프 엘란츠 고로스티자

얼마 전 JW메리어트호텔 서울은 국내외 유명 셰프를 초청해 그들의 음식과 철학을 선보이는 자리 ‘컬리너리 아트’ 디너 갈라를 열었다. 이 자리에 스페인 셰프 엘란츠 고로스티자(33)도 초청돼 서울을 방문했다. 현재 그는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한 테네리페 섬의 5성급 아버마 스파앤골프 리조트의 M.B 레스토랑을 총괄하고 있다. 이곳은 미슐랭2스타를 받은 유명 레스토랑이다. 그는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두 번의 디너 갈라와 각종 언론 인터뷰, 디너 갈라에 사용할 식재료를 고르러 장보러 가는 일 등을 소화해야 했다. 빠듯한 일정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의 일이니까 즐겁다”라고 답했다. 기자는 그가 이야기를 더 들려줄 것이라고, 그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하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그 공백은 그의 대답이 끝이라는 것을 대신 말해줬다. 그는 외국 영화에 등장하는 수다스러운 유럽 남자 캐릭터가 아니었다. 무뚝뚝했다. 그 상황이 참으로 멋쩍어 인터뷰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이렇게 그와 음식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스크인의 후예는 누구나 요리사!
“스페인과 바스크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민족도 다르고, 일부 언어도 다릅니다. 제가 요리에 소질이 있는 건, 바스크의 혈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바스크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는 음식이거든요. 어린 시절 부엌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며 서툰 솜씨로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그게 제 인생 최초의 요리였죠.”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 부근의 알라바, 기푸스코아, 비스카야 3개 주로 구성된 바스크 지방의 게초에서 태어나 자랐다. 자신의 고향을 소개하면,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몇 번 더 정확히 발음했다. 바스크, 바스크! 그에 따르면 그가 자란 바스크 지방에는 반경 40km 안에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무려 25개가 있다고 한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라고 한다. 이어 그가 무척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미슐랭 3스타를 부여받은 레스토랑 8곳 중 4곳이 바스크 지방에 있습니다. 놀랍지 않으세요? 그만큼 바스크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요리 감성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가족 모임이 열리는 날이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요리를 준비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요리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지요.”

그는 셰프가 되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하는 대신, 동네 유명 식당에 취직하는 것을 택했다. 일찌감치 부모의 곁을 떠나 독립해 하루에 80개 이상의 양파와 감자 껍질을 벗겼다. 그의 나이 16세 때다. 부모는 그가 레스토랑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아들의 꿈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어깨너머로 셰프들이 요리하는 것을 구경만 하던 그에게 어느 날 꿈만 같은 행운이 찾아들었다. 셰프 한 명이 화상을 입어 한동안 출근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저는 반드시 셰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어른들께 자주 했습니다. 요리에 대해 배운 것도 없고, 그럴 만한 환경도 아니었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언젠가 하게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 저를 눈여겨봤던 레스토랑의 사장님이 믿어주셨던 거죠. 운 좋게도 제가 만든 음식은 모두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맛있다고요! 그때부터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죠. 17세 때부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총 6개의 레스토랑을 거쳤다. 그는 “운이 좋았고, 매일매일이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그가 근무했던 모든 레스토랑은 미슐랭 2, 3스타를 받은 곳으로 배울 것도 많고, 재능을 펼칠 기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셰프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고 했다.

엘란츠 고로스티자 셰프는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 밀가루와 버터를 최소화해 속 편한 음식을 만든다. 그가 선보인 디너 갈라의 요리들.

엘란츠 고로스티자 셰프는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 밀가루와 버터를 최소화해 속 편한 음식을 만든다. 그가 선보인 디너 갈라의 요리들.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렵습니다만, 저는 늘 열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운이 무척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물론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죠. 그런 시기를 여러 번 겪다 보니 가만히 있으면 그 기분에 빠져 헤어나기 힘들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무조건 다음으로 그냥 넘어가자, 접어두자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그는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이 셰프의 필수 조건이라고 했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는 상태에서 만든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행복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셰프라는 직업의 힘든 점으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주방에서는 행복하게 요리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의 요리 철학은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먹는 사람도 행복하다’란다.

권위 있는 「미슐랭 가이드북」이 인정한 실력
“평소 아시아 지역의 전통 음식을 즐겨 먹습니다. 흥미로운 음식이 많거든요. 서울은 처음이지만 낯설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프로모션을 위해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고 있지만, 이런 느낌이 드는 곳은 흔치 않아요.”

그는 셰프의 상징인 하얀 가운을 입고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왼쪽 가슴에는 현재 몸담고 있는 M.B 레스토랑의 로고가 멋스럽게 수놓여 있다. 올해 서른셋인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비교적 빨리 성공한 편에 속한다. 16세에 작은 레스토랑에 취직했던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그가 근무했던 레스토랑은 ‘엘 세예 데 칸 로카’ 등 「미슐랭 가이드북」에서 2스타나 3스타를 받은 곳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유명 레스토랑에서 쌓은 그의 경험은 5년째 근무 중인 M.B 레스토랑을 미슐랭 2스타로 인정받게 했다. 그가 보유 중인 요리용 칼은 5백 자루가 넘고, 냄비 등 주방 도구는 그가 원하는 모양과 형태로 장인이 직접 제작한 것을 사용한다.

전 세계 유명 레스토랑은 「미슐랭 가이드북」에 선정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은 곳은 ‘오직 그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위해 떠나도 좋다’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프랑스의 자동차 타이어 회사, 미슐랭사가 1900년부터 고객을 위해 발간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세계 레스토랑의 실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유서 깊은 가이드북이 됐다. 때문에 전 세계 셰프라면 누구나 이 가이드북에서 인정해줄 날을 꿈꾼다.

“저희 레스토랑이 미슐랭 2스타를 받았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물론 저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는 후배 셰프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만드는 음식이 누군가의 행복이 되길 바라야 합니다. 그렇지만 미슐랭 스타를 받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은 분명하거든요. 무척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기로 유명하니까요. 최고 등급인 미슐랭 3스타를 받는 것이 제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는 미슐랭 스타 선정을 위해 손님으로 위장한 심사위원들이 최소 3회 이상 방문해 레스토랑의 모든 것을 꼼꼼히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는 이야기다. 그저 음식 맛이 탁월하다고 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맛은 물론이고 음식 재료와 건강, 철학,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해야 별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지의 스페인 통신원 이희진씨는 고로스티자 셰프에 대해 “스페인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를 좋아하고,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기를 즐긴다. 그는 스페인의 미식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물론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셰프다. 이번 내한 디너 갈라 때도 실력이 입증됐다. 그의 단독 디너 갈라는 국내 미식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고 관계자가 귀띔했다.

행복한 셰프가 행복한 요리를 만든다…스페인 셰프 엘란츠 고로스티자

행복한 셰프가 행복한 요리를 만든다…스페인 셰프 엘란츠 고로스티자

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25가지 디너 코스
그에게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던 생선 요리를 꼽았다. 바스크 지방은 생선 요리가 유명한데, 재료의 신선함이 음식의 가장 중요한 맛을 결정한다고 했다. 또 지금까지 그가 개발한 메뉴의 대부분이 생선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구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세계 여러 도시를 방문할 때나 여행할 때 즉흥적인 영감이 떠올라 재료의 조합을 완성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렇게 제 요리가 완성됩니다.”

그는 가능한 한 밀가루를 쓰지 않는 음식을 개발한다. 보통 서양 음식은 밀가루가 필수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요즘 세계인이 열광하는 건강에 요리 철학을 맞추고 있다. 이를테면 친환경, 유기농 등의 수식어가 붙는 식재료를 사용한다. 여기에는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 식재료를 쓰는 것도 포함된다.

“제 레스토랑의 저녁 코스는 25가지 요리로 구성됩니다. 그렇지만 그 음식들을 모두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아요! 위에 부담을 주는 버터, 밀가루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거나 적게 하려고 노력하고요. 보통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는다고 하면 배 부르게 먹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먹었을 때 속이 편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3백 가지 이상의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어요.”

사진으로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는 배가 지그시 나온 전형적인 아저씨 체형의 소유자다. 요리를 하려면 그 음식을 자주 맛봐야 하니 자연스레 살이 찐 것일까? 그런데 예상외로 그는 현재 직접 요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20, 30명의 셰프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그는 이들을 관리하는 일 위주로 한다는 것. 또 자신과 9년 동안 호흡을 맞춘 후배 셰프가 M.B 레스토랑의 수석 셰프로 근무 중이라 믿고 맡길 수 있는 점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레스토랑이 쉬는 날입니다.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 모터사이클을 타고 화산섬으로 올라갑니다. 왕복 2시간 거리인데, 쉬는 시간이 거의 없는 제게는 꿀맛 같은 휴식입니다. 제가 머무는 테네리페는 스페인보다 아프리카와 더 가까워서 풍광이 이색적이고, 자연환경도 훌륭하거든요. 또 운동을 마친 후 점심에는 제 집으로 동료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하고요.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편이라서 자주 이런 식사 모임을 갖고 있어요.”

현재 그는 미혼이다. 언젠가 결혼하고 싶지만, 매일 18시간씩 일하다 보니 가정을 꾸리는 일이 아직은 힘들 것 같다고도 했다. 셰프로 살아가기 위해 그가 감내해야 하는 점 중 하나다.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 제 삶의 규칙입니다. 좋은 셰프로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고요. 셰프는 저의 운명 같아요.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제 경우 셰프라는 직업이 제 삶 속으로 걸어들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금 무척 행복하다”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던 그다. 마지막으로 그와 인사를 나누며,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 한 가지를 알려달라고 청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해보세요. 다른 생각 없이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꾸준하다면, 누구에게나 행운은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셰프라는 직업이 저에게 찾아온 것처럼요.”

■글 / 정은주(객원기자) ■사진 / 고이란(프리랜서) ■사진 제공&취재 협조 / JW메리어트호텔 서울(02-6282-6262)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