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최초의 한국인 피겨스케이팅 코치 유현아

캐나다 최초의 한국인 피겨스케이팅 코치 유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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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스케이트협회가 인정한 최초의 한인 피겨스케이팅 코치 유현아는 본명보다 베티 유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출전한 유수의 피겨스케이팅대회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수상한 그녀의 다음 도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

캐나다 최초의 한국인 피겨스케이팅 코치 유현아

캐나다 최초의 한국인 피겨스케이팅 코치 유현아

캐나다에서 굳어진 스케이터의 운명
유현아 코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스케이팅을 처음 시작했다. 우연히 TV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 위를 달리는 선수의 모습을 본 그 순간부터 그녀에게 스케이팅은 운명과도 같았다.

“스케이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중학교에 진학한 후였어요. 그 당시에는 스케이팅을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좋지 않았어요. 가르치는 선생님도 많지 않았고 아이스링크도 흔치 않았죠. 그렇다 보니 스케이팅은 꽤 비싼 스포츠였어요. 아버지께서 약국을 하셔서 경제적으로여유 있는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스케이팅을 하기에는 버거웠어요.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스케이팅을 하겠다’는 저와 ‘안 된다’고 반대하는 부모님 사이에 항상 마찰이 있었죠.”

학창 시절 유 코치는 전국체전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는 그녀의 선수생활을 반대했다. 모든 열정을 스케이팅에만 쏟는 그녀의 모습을 못마땅해하신 아버지는 급기야 캐나다 이민을 결정했다.

“이민을 결정한 이유가 꼭 스케이팅 때문만은 아니셨을 거예요.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스케이팅이었어요. 아버지는 제가 평범한 여자로 살아가길 원하셨거든요. 아마도 이민을 가면 더 이상 스케이팅은 못할 거고, 그러면 평범한 여자로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캐나다 이민은 그녀에게 ‘스케이트와 함께할 운명’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녀는 지난 1989년 가족과 함께 밴쿠버로 이주했다. 일단 언어의 장벽을 풀어야 했기에 ESL학교에서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캐나다인 선생님의 조언으로 캐나다스케이트협회를 알게 됐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쉽지 않은 과정을 통과한 끝에 피겨스케이팅 코치 중에서도 상위 레벨에 속하는 스타스케이트(Star Skate)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것은 한인사회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직까지도 유 코치는 캐나다스케이트협회에서 인정한 최초의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한 피겨스케이팅 코치로 기록돼 있다.

마흔을 넘겨 목에 건 의미 있는 금메달
“초등학생 때 처음 스케이팅을 시작해 대학 입학 전까지 했어요. 그런데 현재 제 스케이팅의 대부분은 캐나다에서 다시 배웠어요. 캐나다는 스케이팅의 역사가 긴 만큼 프로뿐 아니라 아마추어 선수도 많아요. 스케이팅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러다 보니 선수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도 많아요. 그리고 스케이팅을 가르치는 순서, 방법 등 모든 것이 한국과 달라요. 처음에는 제가 배운 스케이팅을 고치느라고 애를 먹었죠.”

유 코치는 캐나다에서 스케이팅을 배우며 제대로 스케이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선수로 활동하기에는 늦었지만 선수를 키울 수 있는 코치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그 후 10년 동안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캐나다 최초의 한인 피겨스케이팅 코치’ 자격증을 얻었다.

1 유현아 코치 곁에는 그녀의 남자친구인 데이비드 깁슨이 늘 함께한다. 젊은 시절 유명한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그는 현재 그녀의 코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 당당히 금메달을 수상한 후의 기념 촬영.

1 유현아 코치 곁에는 그녀의 남자친구인 데이비드 깁슨이 늘 함께한다. 젊은 시절 유명한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그는 현재 그녀의 코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 당당히 금메달을 수상한 후의 기념 촬영.

“캐나다에서 스케이팅 코치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해요. 필기시험, 실기시험은 물론이고 인터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그대로 유지되는 게 아니에요. 스케이팅 코치로서 어떤 학생을 가르쳤는지에 대한 보고서도 작성하고,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어떤 세미나에 참석했는지 등에 대해 캐나다스케이트협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타인을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가 항상 노력해야 하는 거죠.”

선수를 가르치는 위해서는 코치 역시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비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스핀, 점프 등 아름다운 피겨스케이팅 기술을 선수들에게 자유자재로 가르칠 수 있다.

“저를 찾는 학생들을 좀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연습을 했는데, 그런 제 모습을 본 캐나디안 코치 친구들이 대회(2014 US&Canada West Coast Challenge Adult Competition)에 출전해보라고 권유하기에 ‘혹시’ 하는 마음으로 출전했는데 금메달을 딴 거예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물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스링크에서 연습하며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생각하기도 했죠. 하지만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그동안의 고생은 싹 다 지워졌어요.”

이 대회는 30세 이상만이 출전할 수 있으며 올해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총 18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이들 중 유 코치는 금메달을 수상했다. 요즘은 한국인 최초로 출전하는 국제대회를 준비 중이다.

“요즘은 내년 독일에서 치러질 국제빙상경기연맹 주최 국제대회(ISU Adult World Competition) 출전을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 한 번에 2시간씩 하루 6시간을 연습합니다. 오늘은 몸이 좀 가벼워서 더블 점프를 시도했는데 영락없이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마음은 김연아인데 몸이 따라주질 않네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그날 ‘스케이팅은 내 운명’임을 직감했다는 유 코치. 내년에 독일에서 치러질 큰 대회를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고.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도전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요?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보다도 작은 몸의 유 코치. 그녀의 온몸은 긍정 에너지로 똘똘 뭉친 듯하다.

Tip 유현아 코치의 따뜻한 말 한마디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는 캐나디안도 있고 한국에서 선수로 활동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주로 방학을 이용해 3개월간의 일정으로 밴쿠버로 오기도 하고, 또 제가 한국으로 가서 코칭을 하기도 해요.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수업을 합니다. 일단 한국 학생들은 스핀이나 점프 실력은 좋습니다. 하지만 피겨스케이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로킹은 약한 편이에요.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스핀, 점프를 가르치지만 캐나다에서는 스트로킹→스핀→점프 순으로 가르칩니다. 스트로킹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거죠.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초’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장 기쁠 때는 아주 작은 변화로 큰 결과를 얻을 때예요. 예를 들면 점프가 안 되던 학생이었는데 몸의 각도를 조금만 바꾸었더니 점프가 되더라고요. 그럴 때는 마음이 뿌듯합니다.”

■글&사진 / 경영오(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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