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한희 디자이너 “패션은 놀이다 ”
짙은 스모키 화장에 긴 생머리,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디자인 스쿨 최연소 입학 및 졸업. 빅뱅의 지드래곤과 투애니원 씨엘의 절친한 친구. 그녀 앞에 붙는 수식어만 들었을 때 조금은 건방지고 대찬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가 점점 두 여자의 수다로 바뀌어가는 걸 보며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확신했다. 새침할 거라 예상한 기자가 의외의 모습이라고 반응하자 “사람들이 제 목소리 들으면 깜짝 놀라요. 외모랑 안 어울린다고”라며 웃는다.
계한희(27)는 패션 브랜드 카이(KYE)의 CEO 겸 디자이너다. 2011년 런던패션위크를 통해 데뷔한 이후 이상봉, 손정완 등 우리나라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그녀의 옷은 소위 ‘패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젊은 스타들 사이에서 계한희의 옷은 없어서 못 입을 정도다. 무거운 사회문제를 패션 장르로 가져와 유쾌하게 풀어내는 것, 계한희 패션의 특징이다.
“청년 실업을 주제로 한 컬렉션에서 ‘청년 홈리스’를 형상화했어요. 노숙자의 박스집, 서울역의 그래피티에서 영감을 얻었죠. 최근엔 ‘아픈 청춘을 위한 치유’라는 주제로 옷에 반창고 프린팅을 적용했어요.”
그녀에게 패션은 재미있는 ‘놀이’다. 작업을 할 때도 놀면서 한다. 음악을 듣고 동료 디자이너들과 농담도 하고. 그래야 일이 더 잘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일이 곧 놀이다. 즐겁게 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꿈도 이루게 됐다.
패션 디자이너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요즘, 그녀의 성공 비법을 묻는 사람도 늘었다. 재미있는 것은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들보다 주부들의 문의가 더 많다는 점이다. SNS에 하루에도 수십 통 궁금한 점을 묻는 글이 올라온다. 주로 ‘적성을 빨리 찾은 비결’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스스로 관찰을 많이 하라고 조언해드리고 싶어요. 뭘 잘하는지, 못하는지. 사실 1주일만 해봐도 알거든요.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경험해보세요. 그다음에 자신에게 맞는지를 선보듯 추려나가면 돼요.”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이지만 능력이 부족하다면? 재능이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했다. 그녀의 답은 명쾌했다.
“다시 생각해야죠. 물론 그 일에 열정을 쏟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성공하긴 힘들겠죠. 적성에 맞고 재능도 있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요. 제 경우엔 그게 다행히 잘 맞았고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서 그림을 잘 그렸어요. 학교 다닐 때도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을 만들어가는 편이었고요. 그래서 패션 디자인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죠.”
이쯤 되면 그녀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일까 궁금해진다. 타고난 능력도 좋은 패션 디자이너인 걸 보니 부모님도 특별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두 분 모두 평범한 분들이란다. 어머니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아버지는 회사원이다.
최고의 서포터, 부모님
“부모님은 언제나 저를 지지해주셨어요. 큰 결정을 내릴 땐 아버지께서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한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게 된 것도 아버지의 권유 덕분이었죠. 원래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때 아버지가 딱 한마디 하셨어요. ‘너 아그리파를 1년 동안 그리고 싶어?’ 싫다고 그랬죠(웃음).”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유치원 때 한국으로 와 서울국제학교를 졸업했다. 국제학교 진학은 정형화된 예술을 하게 될까 염려한 아버지의 선택이었다. 네모는 반듯하게 그려야 하고 아랫부분엔 음영을 더 줘야 한다는 판에 박힌 교육, 그녀는 그게 못 견디게 싫었다.
계한희 디자이너 “패션은 놀이다 ”
아이가 창조성을 펼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패션 디자이너를 키운 계한희 부모님의 교육법이었다.
계한희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패션을 즐기며 살아온 흔적들이 엿보인다. 고등학교 시절,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 온갖 옷가게와 편집매장을 답사했다. 또래 고등학생들이 동대문에서 쇼핑할 때, 그녀는 당시 용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었던 옷들을 당당하게 구경하고 입어봤다. 물론 구매는 못했지만.
“당시에 압구정에 한 커피숍이 있었어요. 서울에서 옷 좀 입는다 하는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었죠. 거기 앉아서 실컷 사람 구경하고 옷 구경하고 놀았어요. 한국에 수입이 안 된 외국 브랜드들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아마 사람들이 그랬겠죠. 쟨 어린애가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웃음). 놀면서 공부하면서 그렇게 패션을 즐겼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디자인 스쿨에 지원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미국의 파슨스, 벨기에의 앤트워프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스쿨이라고 알려진 명문대다. 입학과 동시에 패션 디자이너 계한희의 인생이 시작됐다.
패션 아이콘을 꿈꾸다
그녀는 아주 빨리 날아올랐다. 속도로 치면 LTE쯤 되려나. 그래서 실패라는 단어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지만 그녀에게도 쓰라린 기억은 있다. 스무 살, 케이블 방송의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다. ‘영국 명문 패션 스쿨 출신의 엘리트’ 계한희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부담이 컸던 탓일까. 그녀는 15명의 도전자 중 첫 번째 탈락자가 됐다.
“실망했죠. 내가 옷을 그렇게 잘못 만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몇 달 동안 스트레스도 받고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지금까지의 활동에 자양분이 됐다고 말하는 걸 보니 이젠 제법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여유가 보였다. 사실 ‘프로젝트 런웨이’뿐 아니라 도전을 즐기는 성격 탓에 넘어진 일도 많았다.
“저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타입이에요. 차선책을 수십 개 만들어놓고 하나가 안 되면 나머지 작업에 집중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엎어지는 프로젝트들도 무척 많아요(웃음). 다행히 감정 기복이 없는 성격이라 금방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일을 하죠.”
패션계를 종횡무진 하기에도 바빠 보이는 그녀가 얼마 전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좋아 보여」(넥서스)를 냈다. 책 이야기를 꺼내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는다.
“아직 제가 자서전 같은 걸 쓸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좀 부끄러워요(웃음). 언니, 누나의 마음으로 썼어요. 패션 관련 일을 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상담해주듯이. 제가 아직 어리니까 대선배님들보다 좀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겠다 싶어서요.”
이토록 야무진 그녀의 꿈은 스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고 앙드레 김처럼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게 목표다. 현재 속도대로라면 그리 먼 얘기는 아닐 듯하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컬렉션을 계속 만드는 것이에요. 조금씩 유명해지고 또 바빠지면서 옷 외에 챙겨야 할 것들이 늘었지만 초심을 잃지 않아야죠. 패션 디자이너는 옷으로 말하는 사람이니까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가장 활기를 띤 대목은 바로 애견 ‘휘남이’ 얘기를 할 때다. 두 살짜리 퍼그인 ‘그’는 계한희의 팬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 인사다. 이외에 그녀는 10년 넘게 채식 중이고, 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얼마 전 헤어졌으며, 영화를 사랑하고, 맛있는 것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이런 대화를 나누니 이제야 그녀가 좀 가깝게 느껴진다. 영락없는 스물일곱 아가씨의 모습이다. 이 젊은 패션 디자이너의 10년, 20년 후는 어떨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패션도 성숙해지길 바란다는 계한희의 ‘나이 듦’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땐 또 어떤 패션 놀이를 하고 있을지.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고이란(프리랜서) ■장소 협찬 / D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