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내리는 남편과 변호사 아내의 향긋한 동거, 이용재 · 조아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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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온 손님은 카페가 맞는지 묻는다. 변호사를 만나러 온 의뢰인은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는지 확인한다. “네, 맞습니다!” 당신이 누구를 만나러 왔든지 답은 같을 것이다. 커피를 내리는 남편과 법전을 뒤적이는 아내가 함께 손님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커피 내리는 남편과 변호사 아내의 향긋한 동거, 이용재 · 조아라 부부

커피 내리는 남편과 변호사 아내의 향긋한 동거, 이용재 · 조아라 부부

경기도 광명시 양달로 10번 길. KTX를 타는 광명역 건너편에 이제 막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양지바른 마을의 한 골목길 주소다. 이곳에는 흥미로운 카페가 하나 있다. 그 카페의 이름은 ‘따뜻한 당신’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출입문은 하나인데 2개의 상호가 걸려 있다. 하나는 카페고, 또 하나는 법률사무소다. 2개의 이름 사이에는 오각형의 변호사 배지가 자리 잡고 있는데, 배지 안에는 있어야 할 저울은 보이지 않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 잔이 그려져 있다. 마구마구 궁금증이 샘솟는다. 하나밖에 없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영락없는 카페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카페 어느 방향에서나 환하게, 훤하게 보이는 법률사무실이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가는 이곳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서른네 살의 동갑내기 이용재·조아라 부부가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커피 마시러 온 손님들은 꼭 한 번 물으세요. ‘여기 카페 맞죠?’ 하고요. 그리고 법률사무소에 오신 손님들도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물으세요. ‘이리로 들어가는 거 맞죠?’ 하고요(웃음). 뭐라고 물으셔도 저희의 답은 늘 같죠. ‘네, 맞습니다!’라고요.”

어리둥절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 같다는 말에 남편 이용재씨가 손님들의 반응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포근한 봄 햇살, 푹신한 양털 스웨터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아아, 카페와 법률사무소가 함께 있구나. 아아,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구나. 2개의 간판과 하나의 출입문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다. 그나저나 그럼 누가 변호사예요?

헤어질 줄 알았는데?
변호사는 아내 조아라씨다. 남편 이용재씨는 카페를 운영한다. 아주 놀랄 일이거나,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절로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까지 남편이 변호사고 아내가 카페를 하거나, 아니면 변호사 남편이 카페까지 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저희가 결혼하겠다고 청첩장을 돌리니 다들 헤어질 줄 알았다고(웃음)…. 농담처럼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정말 다들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제가 사법시험 합격하고 헤어질 줄 알았다고요. 다들 우리가 언제 헤어지나, 하고 기다렸나 봐요(웃음). 저한테 대놓고 말은 못하다가 청첩장을 주니 그제야 그러더라고요.”

조아라씨의 얘기를 들으며 옆에 앉아 있는 이용재씨가 괜히 의식돼 조심스러웠는데, 이건 숫제 아내보다 그가 더 재미있어 하는 눈치다. 두 사람은 사법고시 준비를 하면서 만난 사이다. 사법시험에는 조아라씨만 붙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로펌에 다니던 아내는 남편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독립하며 개업 변호사가 됐다. 남편이 카페를 맡아 하고, 아내는 법률사무소를 꾸려간다.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게 됐는지 묻기에 앞서 왜 같이하던 공부를 이용재씨는 그만두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청첩장을 받아든 사람들이 왜 ‘헤어질 줄 알았다’라고 반응했는지 우리는 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의 때가 적당히 묻은 사람들이니까.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네요(웃음). 사법고시를 자의로 그만둔 것은 결코 아니에요. 제가 아팠어요, 많이. 그래서 더는 공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죠. 그것도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가 사법시험에 붙고 난 다음에요. 헤어질 줄 알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어쩌면 당연한 거예요.”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두 사람은 6년 정도 고시 공부를 했다. 조아라씨가 한 해 먼저 합격을 했고, 이듬해 이용재씨는 2차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야말로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얼마간의 짧은 휴식 시간도 다 줄이고 없애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게 무리가 된 걸까. 흔히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라 불리는 심부정맥혈전증에 걸린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앉아 있을 경우 하지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증상이다.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할 만큼 심각한 병이다. 고시생의 책상이란 게 좁은 비행기 3등석보다 못하면 못하지 낫진 않았으리라.

커피 내리는 남편과 변호사 아내의 향긋한 동거, 이용재 · 조아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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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생 애인의 극진한 병간호
“스트레스 영향이 컸을 거예요. 나도 빨리 붙어야 한다는 압박감, 초조함이요. 신림동에서 같이 공부하다가 아내가 연수원이 있는 일산으로 떠나고 혼자 남아 공부하니 그런 상황도 힘들었던 것 같고요. 그때 병이 난 거예요. 처음엔 바로 수술해서 회복을 했어요. 그러고는 다시 공부를 했죠.”

문제는 재발이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한 달 넘게 입원을 해야 했다. 하루 걸러 금식과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이 반복됐다. 고시 준비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용재씨는 당시를 “마라톤 42.195km의 전 구간을 거의 다 뛰고 결승선이 보이는 지점에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라고 표현했다.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남편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는 아내에게서 함께 힘든 시기를 보낸 동지애 같은 끈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의 사랑에 대한 당당함이랄까.

“바닥을 쳤다고 하죠? 그만치 절망감을 맛본 만큼 얻은 것도 많은 시간이었어요. 카페 이름 ‘따뜻한 당신’도 그 시간에 느꼈던 많은 사람들의 온기를 기억하고 지은 거예요. 나를 무리하게 일으켜 세워 결승점으로 끌고 가지 않았어요. 제가 더 소중하다고 말해주며 제 옆을 지켜줬어요. 특히 지금의 아내 그리고 저희 어머니가요.”

사법고시 공부는 하고 싶다고 하고 못하겠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도움, 지원을 한 몸에 받으며 공부하는 탓에 포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시험을 포기하겠다는 말은 이용재씨가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를 가장 아끼며 “네가 더 소중하다”라고 말해주는 어머니와 여자친구였던 조아라씨가 그를 이끌었다. 덕분에 그도 마음을 잡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입원해 있을 때, 아내가 박원순 시장님이 쓴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을 가져다줘서 읽었어요. 오로지 사법고시를 위해 달려왔지만 그 책을 통해 세상에는 다른 길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죠. 얼마든지 다른 세상이 있고, 길도 있겠다 싶었죠. 더욱이 아내가 가져다준 책이기에 더 의미가 컸을 거예요.”

이용재씨가 입원한 병원에서 조아라씨는 꽤 유명했다고 했다. 사법연수생 여자친구가 아픈 남자친구를 위해 틈만 나면 일산 연수원에서 서울 병원으로 와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언제나 침대 곁에 앉아 밝은 모습으로 깔깔 소리 내어 웃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웃음으로 그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남편의 뒷바라지 덕분에
이제는 아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솔직히 남편이 변호사인 얘기라면 인터뷰 요청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농담에 진심을 실어 운을 띄웠다.

“저한테 대놓고 말은 못해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알죠(웃음). 청첩장을 주니까 헤어질 줄 알았다고 하는 것만 봐도요. 하지만 사실 그 부분에 대해 이렇다 할 말은 없어요. 저 사람 많이 아플 땐… 어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남편의 삶이고, 남편의 결정이에요.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부분이 아니에요.”

변호사님 말씀이어서 그럴까. 어딘가 궁서체의 단호함이 느껴진다. 거추장스러운 단어도 묻어 있지 않다. ‘쿨한’ 답에 놀란 기색을 눈치 챘는지 기사에는 ‘사랑의 힘으로 이겨냈다고 써달라’고 해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내 조아라씨는 남편으로 화두를 돌렸다. 평소 이상형으로 ‘요리사, 안마사, 운전사’가 가능한 사람을 꼽았는데 그가 거기에 딱 맞아떨어졌다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이 잘 통했어요. 같은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됐는데 그때부터 친해졌어요. 자취방 옮길 때 짐도 다 날라주고요. 비슷한 기간 동안 공부했지만 서로 시험 스케줄이 달랐어요. 제가 2차 시험 볼 때 남편이 정말이지 전력으로 뒷바라지 해줬어요. 내가 먼저 좋아했나?(웃음)”

커피 내리는 남편과 변호사 아내의 향긋한 동거, 이용재 · 조아라 부부

커피 내리는 남편과 변호사 아내의 향긋한 동거, 이용재 · 조아라 부부

조아라씨는 가장 힘든 시기로 합격하기 직전의 2차 시험 기간을 꼽았다. 공부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이용재씨는 조아라씨가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끼니 때마다 여자친구의 집으로 와 해물 된장찌개를 끓여 손수 식사를 준비했고, 시험장에도 운전해 데려가주었다. 아내는 “남편 뒷바라지 덕분에 합격했다”라며 또 웃었다. 안 그래도 예쁜 얼굴인데 밝게 자주 웃으니 더 예쁘다고 생각하며 남편을 봤다. 좋아 죽겠단 얼굴로 아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플 때 가끔 위축된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러웠어요. 남편 아플 당시에 기대감, 공부, 시험, 포기 등등을 서로 말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제가 할 일은 예전처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찾도록 돕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원하는 일을 하면 돼요. 전 지지할 뿐이에요.”

아내는 남편을 일컬어 ‘대인배’라고 했는데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그녀 또한 만만찮은 크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가장 감동받았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는 연수원 시절 해외로 학회 연수를 다녀오는 자신을 마중 나온 그가 전해준 손편지를 읽었던 때를 꼽았다. ‘나 때문에 하고 싶은 일 접지 말고 얼마든지 하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는 일이라도 괜찮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진심이 전해져 읽자마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야말로 ‘따뜻한 당신’의 마음이었다.

세상 속 따뜻한 사람이고자
이용재·조아라 부부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건강 문제로 사법시험을 잠정 포기한 이용재씨가 다시 시험 준비를 할 수도, 로스쿨에 진학할 수도, 아니면 소설을 쓰거나 커피를 내릴 수도 있다. 지금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심리학을 공부 중이다. 당분간 심리학 공부에 전념할 생각이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변호사가 됐다는 조아라씨는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개업을 한 뒤 더욱 바빠졌다.

현재는 법률사무소 일뿐만 아니라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의 세월호 관련 유족 개인 법률 상담을 돕고 있으며, 사법연수생들이 기부금을 모아 자체적으로 공익 전담 변호사를 배출하는 공익 법률 기금 ‘파랑기금’의 운영위원장과 기금 관리자로 3년째 일하고 있다.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 중이며, 지금 공개할 순 없지만 환경 문제 관련 주민 소송을 진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어째 변호사님이 돈 버는 일하고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시는 것 같다”라고 농을 던졌더니, 아내는 “그게 제일 문제다”라고 답하고, 남편은 “그게 가장 서운한 일이라고 기사에 써달라”라고 받아쳤다.

“내내 친구로 지내다가 처음으로 연인 관계로 발전해 바다에 간 적이 있었죠. 정말 얼마나 설레고 달콤한 순간이에요? 서로 맘은 있었지만 공부해야 하니까, 하고 자제하다가 마침 어려운 수업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잠깐의 휴식을 만끽하러 갔으니까요. 또 이른 시간이라 해변엔 둘뿐이었는데…. 아니 글쎄, 이 여자가 거기서 해변의 쓰레기를 줍는 겁니다(웃음).”

이용재씨는 그 로맨틱한 순간에 쓰레기를 줍는 조아라씨가 싫었다고 했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가 언제 아내에게 반했는지, 또 내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 그게 조아라”라고 그는 에둘러 말한다.

카페라는 공간은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구든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용재·조아라 부부가 꿈꾸는 미래다. 세상 속에서 따뜻한 존재이고 싶고, 그 온기가 느껴지는 거리에서 소통하고 싶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향긋한 동업이 근사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사람으로서 마지막 마무리를 한다면, 둘 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로 하자! 그게 맞다.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김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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