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The Lady

(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70세까지 하려고요”라는 몇 년 전 인터뷰를 본 터라 내심 불안했다. “전성희 이사님이세요?”라는 질문에 맞다고 답하는 낭랑한 목소리를 듣고는 국내 최고령 · 최장수 비서의 건재함에 쾌재를 불렀다. 올해 72세, 지난 1979년부터 30년이 넘도록 대성 김영대 회장의 수석 비서를 맡고 있는 전 이사에게는 배우고 싶은 점도 참 많았다.

[The Lady](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The Lady](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최고의 파트너, 미세스 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별도의 출입구 없이 바로 전성희(72) 이사와 책상이 보여서 다소 놀랐다. 대기업 회장 비서실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이 깨진 것을 눈치 챘는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크지 않은 방이 회장실이라고 일러주었다. 전 이사는 이내 책상 뒤 수납장의 문을 열고 물었다. “어떤 옷을 입는 게 좋을까요?” 무채색 슈트부터 오렌지색 구두까지 구색을 맞춰 준비돼 있었다. 비서계의 대모, ‘명품 비서’라는 수식어를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제가 오늘 한 일을 얘기해줄게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준비해서 5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하면 딱 6시에 도착해요. 더 일찍 올 수도 있지만, 건물 내 피트니스센터가 그때 열어서요. 거기서 목욕하고 단장한 뒤 내려오면 7시예요. 그럼 오늘 오시는 손님에 맞춰서 옷을 갈아입고 커피 끓이고 회장님 일정 정리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지요. 그리고 7시 30분부터는 중국어 공부했어요.”

자타공인 ‘명품 비서’로 유명세를 치르면서 방송 출연을 하고, 강단에 서는 유명인사가 됐지만 30년 넘게 이어온 일상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매년 자신이 세운 기록을 경신해가며 최고령 비서의 새 역사를 써온 그녀에게 감탄과 호들갑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법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만큼은 굳건해 보였다.

“제 전화 목소리가 어때요? 무척 예쁘죠? 처녀 같잖아요(웃음). 회장님께서 제가 할머니 목소리였으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을 거래요(웃음). 또 관절염이라도 있어서 부르면 절뚝거리면서 걸었어도 그랬을 거래요. 그런데 제가 팔팔 뛰어가니까 아직도 하게 하시는 거 같아요(웃음).”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교단에도 섰던 전 이사가 비서가 된 것은 1979년. 김영대 회장(당시 대성 상무)이 결혼 등을 이유로 퇴직할 일 없이 오래 일할 비서를 구한다고 하자 남편인 고 심재룡 전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아내를 추천한 것이었다. 심 교수의 유학 시절 미국을 방문해 친구 아내의 센스 넘치는 접대를 받은 적이 있던 김 회장은 ‘미세스 심’의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미세스 심,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프러포즈는 로맨틱했다. 하지만 이후 저돌적인 업무 추진력을 지닌 상사를 모시는 것은 다큐멘터리와 같은 현실이었다. 이왕 비서가 된 거 차 한 잔을 타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최고로 맛있게 끓여 대접하기로 했다. 37세의 주부 비서는 의전 전문가, 정보처리사, 4개 국어 통번역가, 전화교환원, 플로리스트, 이벤트 플래너 등 만능이 돼갔다.

김 회장은 “내가 미세스 심의 상사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미세스 심이 내 비서이자 보좌역이었던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미세스 심과 나는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이었다기보다는 파트너였다고 보는 게 옳다”라고 2008년 출간된 전 이사의 책에 추천사를 썼다. 남편 출근과 자녀 등교를 보살펴야 할 주부였는데 외국어 공부를 같이하자면서 새벽 6시에 출근하게 한 것이나 손녀까지 얻은 사람에게 아직까지도 구두 수선을 맡기는 일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반성하게 된다는 애교 섞인 고백도 함께.

3인 이상의 몫을 해낸 명품 비서
“비서 일을 한 지 13년이 지나 남편이 교환교수로 캐나다에 가게 됐어요. 그때는 다시는 회사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주식까지 다 팔고 사표를 썼어요. 그런데 제가 그만두고 나서 회장님이 제가 세 사람 몫보다 더한 일을 했다는 걸 느낀 거예요. 나름 교수 부인인데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무렵에는 제 운명 같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돌아와서는 약사에 대한 미련도 없이 열심히 일했죠.”

영어가 되는 비서를 들였더니 한자를 읽지 못해 업무가 더뎠다. 그래서 한자를 아는 비서를 충원했더니 차 심부름은 못하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차 심부름 담당자까지 비서실에 3명의 직원이 있었으나 효율은 떨어졌다는 회장님의 토로는 전 이사의 자부심의 큰 축이 됐다.

국제전화 한 통 하려면 교환원부터 불러야 하고, 1천 장에 달하는 크리스마스카드 봉투에 붓글씨로 일일이 주소를 적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휴대전화 단축 버튼만 누르면 외국에서도 쉽게 통화가 되고, 주소만 입력하면 자동 발송되는 전용 봉투를 쓸 수 있는 시절을 맞게 됐다. 그러는 동안 “우리 아버지랑 연세가 같으세요”라던 비서 후배들도 “작은 할머니와 동갑이세요”라는 세대로 바뀌었다.

“무척 편리해졌지. 편리해진 것만큼 골치 아프고 어려운 게 얼마나 많아요? 그런 게 한계가 되긴 했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한 거 같아요. 컴퓨터 관련해서 못하는 부분은 후배한테 아이콘 만들어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제가 해요. 요즘은 ‘정말 잘하시는데요’ 소리 들어요.”

[The Lady](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The Lady](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비서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순간을 꼽아달라는 얘기에 1990년 독일 헹켈사와 대성산업의 합작 건을 꼽았다. 합작 성사를 위해 당시 세제 생산 부문 세계 2위였던 헹켈사의 세계보건교육 세미나에 참석해야 했는데, 김 회장이 그 적임자로 약사 자격증이 있는 전 이사를 추천한 것이다. 성실히 4주간의 교육을 받은 전 이사는 이후 헹켈사의 국내 실사 방문까지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계약 체결에 큰 힘을 보탰다.

“이후에는 또 제 본업으로 돌아왔지요. 회장님이 어떤 비즈니스를 시작하실 때 관련 업무를 돕고 이후 책임자가 정해지면 모든 업무는 그쪽으로 넘겨왔어요. 마치 관문처럼요. 아쉬움이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본격적인 일은 경영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하는 거고요. 겸손한 걸로 하면 위로가 안 될까요?(웃음)”

한국비서협회 6대 회장을 역임한 전 이사는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 특강에도 자주 나선다. 비서뿐만 아니라 신입사원 막바지 교육용으로 그녀의 강연이 특히 인기라고. 2008년 출간 이래 벌써 8쇄까지 찍은 「성공하는 CEO 뒤엔 명품 비서가 있다」의 인세로는 출강하는 나사렛대 비서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전성희장학금을 주고 있다.

철저한 자기 관리의 역사
서너 달 전 매주 월요일을 기다려가며 즐겨 시청했던 드라마 ‘밀회’가 떠올랐다. 일견 화려하지만 서한그룹 일가의 비리까지 케어하기 위해 24시간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냈던 오혜원 실장의 긴장감 말이다. 불쑥 던진 질문을 전 이사는 능란하게 접어버렸다.

“그 캐릭터는 비서가 아니잖아요. 집사에 가깝다고나 할까. 제가 여러 사람들의 비서를 했으면 모르겠는데, 한 사람만 담당했기 때문에 그 질문에는 안 맞는 거 같아요. 그저 저는 이제 회장님이 눈만 깜빡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것? 서른여덟 살 상무님 시절에 만나서 일흔세 살이 되셨으니 같이 늙어가고 있지요.”

회장님과 의견 합일이 안 되는 유일한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카드 고르는 것이라고 했다. 수천 장의 견본 중 추천할 만한 10여 개 카드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드리는데, 단 한 번도 그중에서 고르는 법이 없었다는 것. 그나마 2년 전부터는 대성이 운영하는 디큐브시티의 전경 사진을 담은 카드를 만들기로 하면서 ‘고질적인’ 갈등도 해소됐다. 이런 얘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전 이사는 회장님의 ‘야당’으로 통한다.

“회장님한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지요. ‘예스’만 하죠. 그렇다고 그냥 야당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회장님이 틀렸을 때는 그걸 입증하기 위한 자료를 준비해서 드리는 거예요. 그럼 잘 들으세요. 회장님이 얼마나 주관이 확고하신 분인데, 아무렇게나 야당 노릇 하면 안 되지요(웃음).”

지금도 전 이사는 회장님의 점심 메뉴를 감안해서 오후의 차와 간식을 준비한다.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견과류나 생과자 같은 간식거리는 사비를 쓴다. “어제 마트에 갔다가 맛있어 보여서 제 돈으로 샀어요. 회장님 대접하는 거예요”라는 생색을 낼 수 있는 여유는 오랜 경력의 할머니 근육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 했다. 전 이사의 장바구니로 실속 있게 채워진 비서실의 냉장고는 그녀의 점심 저장고이기도 하다. 맛집이 많기로 소문난 디큐브시티에 사무실이 있지만 정작 전 이사는 혼자서 점심을 먹는 날이 더 많다. 오랜 습관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누가 같이 먹자고 하면 응하곤 했는데, 이젠 그런 거 잘 안 해요. 중요한 일을 많이 알고 있는 자리인데, 다 모른다고 답하더라도 말이 흐를 수 있잖아요. 제 주관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서 될 수 있는 한 혼자 먹어요. (비서를) 30여 년을 해도 잡음이 없는 걸 보면, 그러길 잘한 거 같아요. 여기저기 치였으면 분명 회장님 귀에도 들어갔을 테니까요. 그 부분만큼은 철저하게 관리했어요.”

워낙 철두철미한 전 이사가 어쩌다 저지른 실수를 발견하면 회장님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40년째 고수하고 있는 멋스러운 짧은 커트머리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해결책이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에서 7천원에 자르는 커트머리와 하와이에서의 10년 생활로 검게 탄 얼굴에 생기를 주려고 바른 빨간 립스틱은 전 이사의 상징이 됐다.

행운과 같은 가족
서른일곱 살, 한창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기에 전 이사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그것도 새벽같이 출근을 해야 하고 퇴근 이후에도 ‘호출’이 있을 수 있는 비서 업무였다. ‘두 아이의 엄마가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워킹 맘의 성공기를 들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드는 걱정이다.

[The Lady](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The Lady](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무척이나 행운이었던 게, 남편이 둘째인데도 어머님께서 손자를 키워주신다고 저희 집에서 같이 사셨어요. 또 어머님의 막냇동생인 시이모님도 함께 지내셨고요. 파출부까지 세 분이 계시니, 저는 집안일을 하나도 안 해도 괜찮았어요. 그래서 새벽 출근을 하며 외국어 공부도 할 수 있었고요.”

‘행운’이라고 표현한 내막에는 남편 심재룡 교수가 있었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만으로도 기사를 쓰기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장과 부반장으로 처음 만났는데, 자신만 혼자 박사과정까지 밟은 것이 못내 미안했던 남편은 보석 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며 10년간의 유학 시절 자신을 뒷바라지한 아내에게 훌륭한 영어 선생님, 프랑스어 선생님 등을 구해주는 것으로나마 보답하고 싶었다.

“남편이 워낙 테니스도 잘 치고, 백두대간 등산도 할 정도로 건강했어요. 애들이 어렸을 때는 아빠 차에 항상 운동기구가 많은 걸 보고 체육과 교수인지 알았다고 할 정도였어요(웃음). 그랬는데, 59세 때 받은 건강검진에서 혈액암이 발견돼 61세 되던 해에 돌아가셨어요. 사람들이 참 아깝다고 했었죠.”

인터뷰 내내 심 교수는 ‘우리 아빠’라는 호칭으로 자주 등장했다. 경향신문 외신부 기자 출신으로 이스트웨스트센터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불교철학 연구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아흐레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 남편은 “끝없는 용기와 지혜로 나를 부추겨오는 성희야, 무슨 원죄로 이 얼뚱이를 만나 전 세계를 누비며 살아왔노? … 돌방구처럼 건강하고 늘 활달하고 기가 센 우리 마나님, 내 꼭 다시 일어나 당신을 사랑하고 오래 살겠소. 부디 기 죽지 말고 아이들 보살피고 세상 사람들 사랑하며 삽시다”라며 살가운 편지도 쓰는 로맨티시스트였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작년까지는 여러 개가 있었는데, 거의 다 해본 거 같아”라고 답했던 전 이사에게도 후회되는 선택은 있었다.

“옛날부터 의사가 되겠다고 했는데, 엄마가 여자가 팔자 사납게 무슨 의사를 하느냐며 여자 약사는 결혼 상대자로 최고라고 하셨어요. 그때 엄마 말 듣지 않고 의대에 갔으면 유명한 의사가 돼서 ‘우리 아빠’를 그렇게 빨리 안 보냈을 거 같아요. 2백28일 동안 항암치료 받으면서 산 자가 막 죽어가는데 의사는 세미나에 가고 인턴, 레지던트는 정말 답답하고…. (내가 의사였으면) 정말 정성껏 남편을 고쳐줬을 텐데. 그게 제일 후회되는 거예요.”

“하늘나라에 가면 심 박사에게 내가 잘해줬다고 전해달라”라고 말하며 위로를 건네는 김영대 회장은 지난 2008년 전 이사의 출판기념회에서 30주년을 의미하는 장미 서른 송이를 전하며 명예회장 비서를 할 때까지 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회장님 그만두실 때까지는 건강하게 나가야지. 제가 아파서 그만두게 되면 참 슬플 거 같아요. 정리 잘하고 제 빈자리가 아쉽지 않게 잘 마무리 짓고 싶어요.”

‘아지 이야기’라는 에세이를 쓰고 있는 홈페이지(www.jhunsunghee.net)에는 현직 비서부터 지망생, 주부까지 방문자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둘째 강아지예요’라며 태권도 노란 띠를 딴 소식을 전하는 둘째 손녀의 안부 글에 달린 할머니의 훈훈한 댓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미혼인 딸이 짝을 찾았으면 하는 것, 아들을 닮은 손자가 생겼으면 하는 것. 명품 비서의 소원은 여느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제가 나와서 일해보니까 가정이 최고예요. 거기서 행복을 얻고 충전을 해야 하더라고요. 가정을 우선으로 하고 아이들 웬만큼 키워놓고 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거 같아요. 아이들이 사춘기에 방황할 때 일하겠다고 나서기보다는 가정을 먼저 지켜야 해요.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 멀어진 거리를 회복하려면 너무 늦어요.”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시기,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냈던 2년은 지금껏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다. “아침이면 주스 갈아서 다 큰 사람들 챙겨 먹이고, 남편 도시락을 싸고, 모노레일역까지 태워다주고, 대륙 횡단 여행도 하고….” 그동안 못해줬던 것을 원 없이 하며 지낸 시간이었다. 이 시기를 돌이켜볼 때 전 이사의 표정이 가장 행복해 보였던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지금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봐야겠어요.”
그 계획을 ‘아지 이야기’에 써주시면 꼭 읽어보겠노라고 약속했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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