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의 열혈 팬 ‘테드찡’ 테드 스미스의 야구예찬

넥센의 열혈 팬 ‘테드찡’ 테드 스미스의 야구예찬

프로야구 구단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있는 날, 목동 경기장에 가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응원단상에 올라가 있는 그를 만날 수 있다. 등판에 ‘테드찡’이라는 한글 이름 석 자를 선명히 새긴 이 사람, 비장한 표정으로 애국가를 따라 부르더니 응원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목동의 명물, 테드 스미스의 행복한 야구 찬가를 들어보자.

넥센의 열혈 팬 ‘테드찡’ 테드 스미스의 야구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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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찡의 극진한 야구 사랑
캐나다인 테드 스미스(27)는 넥센 경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홈구장에서 치러지는 경기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대구에서 진행되는 원정 경기도 빼놓지 않고 관전한다. 맥아더 장군을 흉내 낸 ‘넥아더’ 의상과 홍길동을 연상시키는 ‘삼베 응원복’을 입고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관중석에서 단연 돋보인다.

사실 ‘테드찡’은 팬들 사이에서는 명예 응원단장으로 통하는 유명 인사지만 실제 넥센의 공식 응원단원은 아니다. 현재는 넥센 단장이 자리를 비울 때만 무대를 이끄는 중이다. 그럼에도 벌써 4년째 이어지는 넥센을 향한 이 남자의 애틋한 순애보, 대체 어떻게 시작된 걸까.

“대학 시절부터 동양 문화를 좋아했어요. 부전공이 일본어라 도쿄에서 1년간 살기도 했죠. 일본어를 어느 정도 마스터한 뒤에는 다른 아시아 국가를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된 나라가 바로 한국이에요. 한 번 여행이나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한국어 수업을 듣다 공부에 재미가 붙었고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왔어요.”

2011년 그는 여의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순조로울 줄 알았던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특히 캐나다에서 자유로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그는 0교시부터 8교시까지 빽빽하게 수업이 진행되는 한국의 학교가 답답하기만 했다. 업무 스트레스는 날로 높아졌고 향수병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꽉 막힌 가슴을 해소할 길 없어 맥주 한 캔을 들고 찾아간 목동 야구장. 관중석에서 열심히 소리를 지르다 보니 타향살이의 설움이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

넥센의 열혈 팬 ‘테드찡’ 테드 스미스의 야구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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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인가 봐요. 여의도랑 목동이 가깝잖아요. 퇴근 후 경기가 있는 날엔 무조건 야구장으로 직행했죠. 그땐 넥센 팬이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처음부터 좀 애틋한 마음이 들긴 했어요. 볼 때마다 졌으니까요(웃음). 캐나다에 살 때 아마추어 농구선수로 잠깐 활동한 적 있는데 저희 팀도 항상 꼴찌였거든요. 이런 걸 어려운 말로 ‘동병상련’이라고 하죠. 못하는 선수들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6개월쯤 따라다니며 지켜봤어요. 매번 지니까 포기할 법도 한데 넥센 선수들은 9회 말까지 죽을힘을 다해 뛰는 거예요. 그때 이 팀한테 반했어요. 끝까지 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거든요. 넥센이 우승할 때까지 저도 응원을 멈추지 않겠다고 혼자 맹세했어요.”

조용히 야구를 관람하는 북미의 문화와 달리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선수들의 이름을 열광적으로 외치는 한국의 응원 문화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야구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팬들은 관람석에서 각각 상대팀과 싸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캐나다나 일본에서 야구를 볼 때는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어요. 선수들과 팬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 가슴 찌릿한 ‘정’을 나누는 것. 이게 한국 야구의 매력 아니겠어요? 제가 이놈의 정 때문에 야구 보러 다니는 거라니까요. 하하”.
한국말을 꽤 유창하게 하는 그였지만 정을 느꼈다는 말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가 정(情)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긴 한 걸까. “음, 영어로 정확히 번역할 순 없지만 공감?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라고 답한다. 테드찡, 어느새 한국인이 다 됐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테드 스미스의 고향은 캐나다 서부 앨버트 주의 캘거리로, 토론토와 벤쿠버에 이은 캐나다의 3대 도시다. 로키 산맥에 둘러싸여 있어 4, 5월에도 눈이 올 만큼 추운 이곳은 하키가 유명한 고장이다. 그도 한때는 이곳에서 하키선수를 꿈꿨다. 하지만 별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그만둔 뒤 중·고교 시절에는 아마추어 농구선수로 활동했다. 당시만 해도 야구는 그와 전혀 상관없는 스포츠였다.

“캐나다인들은 야구에 별 관심이 없어요. 한국이나 일본처럼 여러 개의 구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내 경기가 활성화돼 있지도 않아요. 미국 메이저리그에 소속된 ‘캐나다팀’뿐인데 쟁쟁한 미국 야구팀 사이에서 만년 꼴찌예요. 아마 저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야구의 매력을 평생 몰랐을 거예요.”

넥센의 열혈 팬 ‘테드찡’ 테드 스미스의 야구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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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다소 특이한 모습이지만 사실 그는 나름 ‘엄친아’의 삶을 살아왔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명문 맥길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농구부 주장을 맡았으며,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까지 할 정도였다. 석유 사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집안 형편도 남부러울 것 없이 넉넉했다.

“그때는 값비싼 차, 명품 옷만 좋아했어요. 옷장에 수백 달러가 넘는 슈트만 10벌 넘게 있었죠. 겉으로는 풍족한 환경이었지만 마음속은 늘 뭔가가 허전했어요. 그 공허함을 채우려 돈에 집착하면서 살았죠. 그런데 한국에서 야구를 본 뒤로는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넥센 선수들이 자신의 꿈을 열정적으로 좇아가는 걸 보면서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죠. ‘나도 저렇게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속 깊은 데서 불덩이 같은 게 울컥 올라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스스로는 만족하는 한국 생활이지만 부모님의 반대는 예상외로 심했다. 경제적 지원이 모두 끊겼고 몇 달에 한 번, 안부 전화로만 서로의 소식을 들을 정도로 관계는 소원해졌다. 야구에만 푹 빠져 생업을 제쳐둔 아들을 아직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진짜 행복을 찾았다는 그의 고백에 부모님의 마음도 차차 누그러졌다.

“작년에 처음으로 어머니께서 한국에 오셨어요. 목동 야구장에서 응원을 주도하는 제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왜 응원을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라고. 그때 제가 정말 행복해 보였대요. 올가을에는 아버지와 남동생도 서울에 오기로 했는데 그때 또 경기장에 모시고 갈 거예요!”

칭찬받은 이야기를 꺼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 참 해맑다. 그래도 가끔은 캐나다에서의 화려한 삶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금 이대로가 훨씬 더 행복해요.”

넥센의 열혈 팬 ‘테드찡’ 테드 스미스의 야구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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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안빈낙도
그는 1년 전 직장을 그만뒀다. 지방에서 하는 원정 야구경기를 따라다니기 위해서다. 한 번 원정을 갈 때면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을 합쳐 몇십 만원씩 써야 하지만 넥센을 위해서라면 돈이 얼마가 들던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으니 통장 잔고는 자꾸만 줄어들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부족한 응원 경비를 마련하려 아끼던 외제차도 팔고, 집도 좀 더 작은 평수로 옮겼다며 열혈 야구팬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건 좀 창피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차를 팔고 돌아오다 펑펑 울었어요. 제 보물 1호였거든요(웃음). 이렇게까지 해서 넥센을 응원하는 게 맞는 건가, 잠깐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1주일쯤 지나고 나니까 차가 없는 게 오히려 더 홀가분하더라고요. 기름값이며 보험료 걱정 안 해도 되고, 걸어 다니니까 건강에도 좋고(웃음). 그때부터 제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치스러운 물건들을 추려내기 시작했어요. 값비싼 것들이 주는 화려함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행복이 훨씬 크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더 넓은 집도, 차도 필요치 않다. 굶지 않아 기쁘고 잠잘 곳이 있어 감사하다. 20대 후반의 캐나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데 꼭 조선시대 선비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돈은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만큼만 벌고 싶다기에, 그러면 ‘억’ 소리 나게 필요할 거라고 호들갑을 떠니 그가 웃는다.

“한국 사람들은 일밖에 몰라요.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훨씬 여유롭게 살 수 있을 텐데. 더 비싼 아파트에 살기 위해, 더 예쁜 여자친구 만들기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게 안타까워요. 특히 제 또래의 한국 남자들은 신혼집을 마련하느라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여요. 빌려서 살면 안 되나요? 다른 나라 신혼부부들도 다 그렇게 시작하는걸요. 적당히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욕심을 버려라. 맞다. 두 손에 가득 쥔 것을 내려놓으면 행복해진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리지만 이상하게도 실천하기는 제일 어려운 가르침이다. 하지만 그는 이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고 있다. 그래서 남들이 평생을 헤매도 찾기 어려운 행복을 이렇게 젊은 나이에 누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까 제 생활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순 없겠죠. 특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안정적인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더더욱 그렇고요. 한국인의 기준에서 저는 좀 유별난 사람이죠(웃음). 대신 이 말은 꼭 해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세요. 사회적인 기대, 부모님의 바람 때문에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걸 못하는 건 인생의 손해예요. 자신을 깊게 관찰하고,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찾는다면 행복도 가까이에 있을 거예요.”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신나게 행복론을 펼치던 그가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저녁에 있을 넥센 경기를 보러 가야 한단다. 삼베 응원복을 입고 머리에 띠를 두르니 캐나다인 테드 스미스가 다시 ‘테드찡’이 됐다. 오늘도 경기장에서 능글맞게 춤판을 벌이고 트럼펫을 불어댈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가 출발한다. 발걸음이 가볍다. 행복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안지영 ■장소 협찬 / 목동 야구장(02-2652-3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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