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보고 싶어서 아들놈이 입던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아들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아들 옷 입고 아들 바지 입고 아들 양말 신고 다닙니다. 보고 싶습니다. 딱 한 번만, 한 번만 만져보면 좋겠는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최성호군의 아버지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눈물은 하염없이 두 뺨으로 흘러내렸다. 결국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통곡하고 말았다.
“‘별’이 된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이제 썰렁해진 전남 진도 팽목항에는 30명도 되지 않는 가족들만 남아 하루 종일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4백76명 중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10명(7월 18일 기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행여나 살아 돌아올까, 하는 희망을 접지도 못한 채 100일이 다 돼가도록 팽목항 지킴이가 돼버렸다. 한 희생자 가족은 “오늘도 아무 소식이 없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진도경찰서 관계자는 “정말 안타깝다. 가족들이 하루에 몇 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무거운 침묵만 계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신이라도 찾은 가족들은 이제 머리를 싸매고 길거리로 나선 모습이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무엇보다 국민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가족들은 전국을 한 달여 동안 순회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서명지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 건설 특별법 제정 촉구’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렇게 모은 서명만 모두 3백50만여 건. 지난 7월 15일 전국에서 모인 서명지들이 4백16개의 노란 상자에 담겨 국회로 배달됐다.
하지만 국회의 대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고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7월 11일부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TF’를 가동하고 머리를 맞댔지만 특별법 조항을 놓고 충돌하면서 가족들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공개적으로 가족들에게 약속했던 특별법 제정이었지만 새누리당 쪽의 반대가 심했다.
쟁점은 특별법에 따라 설치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할지 등이다. 새누리당은 수사권 부여가 현재의 형사 사법체계를 뒤흔든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한국은 형사소송법상 검찰만이 수사권·수사지휘권·기소권을 갖는데,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면 이는 헌법과 법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라는 설명이다. 반면 야당은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임명된 진상조사위원이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게 하면 가능하다고 맞섰다.
이 와중에 가족들은 국회의 조속한 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아예 안산 합동분향소를 떠나 국회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밤샘 농성에 이어 단식 농성까지 벌였다.
거리로 나선 생존 학생들과 희생자 가족들
살아 돌아온 생존 단원고 2학년 학생 38명도 7월 15, 16일 1박 2일에 걸쳐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도보 행진을 했다. 단원고에서 국회까지 47km에 이르는 거리를 쉼 없이 걸었다. 힘없이 둘러멘 가방들에는 주렁주렁 명찰들이 걸려 반짝였다. ‘박채연’, ‘김빛나라’, ‘김지인’, ‘유예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친구들 이름이다. 출발 직전 취재진 앞에 선 신영진군(17)은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길에) 나섰다. 진실을 꼭 밝혀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도보순례’에 나선 가족들도 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다. 단원고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56)와 누나 이아름씨(25),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52)는 7월 8일부터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팽목항까지 40여 일간에 걸친 도보순례를 하고 있다. 거리는 750km가량이다. 천주교 신자인 이들은 5kg의 십자가를 멘 채 작렬하는 태양 아래 하루에 평균 9시간씩 고행 길을 걷고 있다.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는데 아무도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해 우리라도 지기로 했다”라는 것이 가족들의 뜻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라는 호소뿐이다.
그러나 결국 국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다음 회기로 제정 건을 연기했다. 여야는 서로 “돌연한 협상 결렬 선언”, “(여당은) 거부와 회피로 일관했다”라고 처리 무산 책임을 전가하는 공방을 벌이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희생자 가족들은 특별법 제정 조항 등에 반대로만 일관한 새누리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희생자 가족 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은 7월 17일 서울 광화문 앞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은 이러한 특별법은 ‘전례가 없다’라면서 반대하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도 전례가 없었던 일임을 잊었나”라며 “심지어 대통령과 여야가 모두 약속했던 것을 왜 지키지 않는가”라고 성토했다. 기자회견 직후 단식 농성 중이던 희생자 가족 2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정치권은 여기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가족들은 상실감으로만 고통을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일부의 억측과 오해는 가족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참사 진상 규명 노력을 폄훼하는 소문과 정치권의 부실한 특별법 논의가 원인이 되고 있다.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야당 측이 발의한 특별법안에 담긴 ‘세월호 희생자 전원 의사자 지정’, ‘단원고생 대입 특례’ 등의 조항 때문에 일어났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누리꾼 등 일부 시민들의 반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는 욕설과 비꼬는 말이 섞여 확산되기도 했다.
가족들은 억울해하고 있다.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 호소를 위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보상금이나 특혜를 받기 위해 나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한 유가족은 “‘전원 의사자 지정’, ‘대입 특례’ 같은 조항은 유가족들이 낸 입법청원안에는 없는 헛소리일 뿐이다”라고 잘라 말하고는 “그런데 헛소리가 참소리가 되게 생겼다”라며 허탈해했다.
실제로 가족들은 피해자 전원을 의사자와 의상자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공식적으로 정치권에 제안한 적이 없다. 가족들이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작성해 국회에 청원한 특별법안에도 이 같은 내용은 없다. 단원고 학생을 위한 ‘대입 특례학’ 조항 역시 가족들의 특별법안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정부는 아직 보상 문제를 놓고 가족들이 공식 논의를 한 적도 없는 상태다. 가족대책위가 청원한 특별법안에는 보상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명시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책임의 원칙’ 정도만 적혀 있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피해에 따른 보상은 당연한 조치이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관련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방현수씨(20)의 어머니 김기숙씨(50)는 “어느 부모가 죽은 새끼를 앞세워 목돈을 바라겠나. 끝까지 조사해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것인데 와전돼서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고 박혜선양의 어머니 임선미씨는 7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엄마, 아빠의 심정으로 법안을 처리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는 수면제 없으면 잠을 못 잔다. 배 속에 열 달 동안 있던 내 새끼…”라고 말하고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했지만 오해만 받는 상황 속에서 가족들의 마음에는 또 다른 슬픔과 분노만 쌓여가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 100여 일간의 기록
4월 16일 오전 8시 52분쯤 4백76명 태운 세월호 침몰 시작
4월 18일 구조 인력, 선체 2층 화물칸 문 열고 선체 첫 진입
4월 19일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3명 구속
4월 27일 서울광장 합동분향소 운영 시작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눈물의 대국민담화’ 통해 해경 해체 발표
국회 ‘세월호 임시국회’ 개회
6월 3일 희생자 합동 49제 거행
6월 26일 박 대통령, 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했던 정 총리 유임 결정
7월 8일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정부가 총체적 무능”
7월 11일 여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위한 TF 가동
7월 14일 가족들, 특별법 제정 요구 단식 농성 시작
7월 15일 단원고 생존 학생 38명, 진상 규명 요구하는 도보행진
특별법 제정 촉구 시민 3백60만여 명 서명
7월 17일 여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처리 무산
1 “많은 친구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며 1박 2일 도보 행진에 나선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 2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3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농성 중인 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17일 세월호 탑승 당시 학생들이 찍은 동영상이 상영되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박홍두 기자(경향신문 사회부)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